제13화
아린이 자신의 친구에게 성수를 먹인 지(?)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 째가 되는 날.
‘…도대체 야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으음… 아린이가 손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 같아요.”
아린이 묵직해진 자신의 친구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친구였다.
한데. 잠을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알의 모습이 변해 있었다.
“아빠, 친구가 변했어요!”
아린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만약. 알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면 불안에 떨었겠지만.
“아린이가 도와준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게 됐대요!”
알과 대화가 통하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그래. 아빠가 보기에도 알이 많이 커졌네.”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알의 외형을 찬찬히 훑어봤다.
‘도대체 저 문양들은 뭐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알의 겉모습이었다.
일단. 맨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정체불명의 문양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그냥 생겼다고 하기에는 너무 정교해.’
자연적인 무늬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척 보기에도 인위적인 존재가 만들어 낸 수준이었기에.
에탄이 궁금증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크기도 두 배 이상 커졌고. 아무리 몬스터의 알이라고 해도 너무 극적인 변화야. 저거 저 속도로 계속 크면 집 다 부서지는 거 아냐?’
더 이상은 아린이가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설마.’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가설이 떠오르려는 순간.
“아빠!”
아린이 에탄을 불렀다.
“응?”
“친구가 아빠한테 말하고 싶은 게 있대요!”
이어서 알이 할 말이 있다는 걸 에탄에게 알려 줬다.
“우리 아린이 친구가 뭘 말하고 싶어 할까?”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무릎을 반쯤 구부렸다.
그 후 아린이를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친구가 자꾸 자기를 의심하지 말래요.”
아린이 그런 에탄을 향해 두 볼을 부풀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친구인 알을 대신해 에탄에게 성을 냈다.
“아린이는 아빠랑 아린이 친구도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는데… 아빠는 아린이 친구 싫어요?”
이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에탄의 두 눈을 쳐다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여기서 만약 에탄이 ‘그래’라고 말하면 눈물을 터트릴 기세로 말이다.
“당연히 아니지.”
그렇기에 에탄은 아린의 질문에 부정으로 답했다.
“아빠는 그저, 알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봤을 뿐이야. 혹시 어딘가 아픈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거든.”
“진짜요?”
“그럼. 그러니까 우리 아린이가 친구한테 잘 말해 줘. 아빠는 친구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네!”
아린이 에탄의 말에 해맑게 웃었다.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내기가 아닌 건 확실하다.’
알에 있는 놈이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안다는 거였다.
아린이를 이용해 자신의 안전을 지킬 정도로 말이다.
‘지금은 그냥 넘어가지만… 만약 아린이한테 해가 되는 녀석이라면.’
그걸 통해서 에탄은 녀석이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만약 그랬다면 상황을 이용할 줄 몰랐을 테니까.
‘바로 처리해 버려야지.’
아린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저 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는 놈이라면 훗날 해가 될지도 몰랐다.
그때는 망설임 없이 제거하리라.
단순히 앞으로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자식 같은 애검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 *
아린이가 한 손으로 들고 다니지 못할 수준으로 알이 커졌다. 하지만 아린이는 계속해서 알과 함께할 수 있었다.
“딱 어울리네!”
“완전 공주님이야 공주님!”
주변 시녀들이 아린이의 걱정을 듣고는, 고운 천으로 보따리를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린이 자신을 도와준 두 시녀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어머 어머.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아린 님 덕분에 매일매일이 요즘 행복하거든요!”
시녀들이 아린이의 감사 인사에 웃으면서 답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관계였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이렇게 이쁜 딸이 생기셔서 그런가, 도련님도 요즘에는 많이 달라지신 거 같던데.”
“맞아. 예전처럼 술도 안 드시고.”
거기에는 에탄의 변화도 제법 큰 몫을 했다.
만약. 에탄이 전생의 자신처럼 패악질을 부리고 다녔다면, 다른 사람들이 아린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으리라.
“아린이는 이제 아빠한테 가 볼게요! 같이 수련해야 해요!”
아린이 앞에 맨 보따리에 알을 집어넣었다.
그 후 시녀들을 향해 에탄에게 가겠다는 말을 꺼냈다.
“아린 님 조심히 수련하세요.”
“그 고운 얼굴에 상처라도 생기면 큰일 나니까요!”
시녀들이 그 말을 듣고는 아린에게 조심히 가라는 안부 인사를 건넸다.
“네!”
아린이 그 말을 듣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두 명의 시녀에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타탁!
무럭무럭 자라난 알과 함께 수련실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어째서 기사 단장인 저를 이렇게까지 내치시는 겁니까!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우십니까?”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에탄과 말씨름을 하는 발헬름을 발견했다.
* * *
발헬름은 에탄이 있는 제1기사들의 수련실을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다. 심지어는 에탄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제는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지만 에탄에게 늘 퇴짜를 맞았다.
그럴 만도 했다.
에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째서 기사 단장인 저를 이렇게까지 내치시는 겁니까!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우십니까?”
7번. 오늘까지 포함하면 벌써 8번째 거절이었다.
그렇기에 발헬름도 울분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아무리 늙었다 하더라도 감각은 여전히 예리합니다!”
발헬름이 에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은 꾹꾹 담아 왔던 감정을 담아서 말이다.
“뭔가 오해하는 거 같은데. 난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야.”
에탄이 그런 발헬름을 차분히 바라봤다.
그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는 거야. 그 시간에 네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게 서로한테 더 이득이기도 하고 말이지.”
에탄의 말에 발헬름이 침을 삼켰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수련실에서 에탄을 봐 온 결과, 에탄은 자신에게 필요한 훈련을 정확히 알고, 그걸 수행해 왔다.
“그러면 아린 님만이라도 제가 가르칠 수 있게 해 주십셔. 도련님 못지않게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발헬름이 아니었다.
그는 에탄을 가르칠 수 없다면, 아린이만이라도 자신의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아린이 또한 검술에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아린이를 설득해 보든가.”
에탄이 발헬름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아린 님한테….”
그래서 발헬름이 아린을 설득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아린이는 아빠가 더 좋아요!”
뒤쪽에서 아린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린 님?”
“저는 아빠랑 수련하는 게 제일 재밌어요!”
“아니… 아린 님. 저 또한 도련님 못지않게 아린 님을 재미있게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린이는 아빠가 제일 좋아요. 발헬름 할아버지는 미워요! 수련 안 할래요!”
아린이가 허리에 손을 착 올리고 나름대로 단호하게 말했다.
콰과광!
아린의 단호한 태도에 발헬름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제 그만 찾아와 주세요. 아빠랑 수련하는데 자꾸 방해돼요!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건 안 좋은 행동이라고 시녀님들이 말해 줬어요!”
“…….”
“자꾸 그러면. 아린이는 발헬름 할아버지 안 볼 거예요!”
“허… 허억!”
발헬름이 아린의 마지막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안 보겠다는 강력한 선포에 큰 충격을 먹은 거였다.
“…….”
빌헬름의 어깨가 물에 젖은 강아지 털처럼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운지, 보고 있는 에탄이 불쌍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알… 알겠습니다. 이제는 도련님과 아린 님을 찾아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이쯤 되면 제아무리 발헬름이라고 해도, 더 이상 에탄과 아린에게 집념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더 많은 걸 잃어버릴 테니 말이다.
“에탄 도련님. 도련님의 말대로 제 검을 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증명을 하겠다고 하신 그날까지 도련님도 최선을 다해서 수련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검날을 더 예리하게 만들리라 다짐했다. 그게 에탄과 아린에게 발헬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에탄이 발헬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발헬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망설임 없이 수련실을 빠져나갔다.
“우움… 발헬름 할아버지 조금 불쌍한 거 같아요.”
그렇게 발헬름이 사라지자, 아린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냥 발헬름 할아버지도 같이 수련하면 안 돼요?”
사실 아린은 발헬름을 싫어하지 않았다.
수련실을 계속 찾아오기는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구경만 하는 수준이니까.
발헬름을 충격에 빠지게 한 사건의 범인은 다름 아닌 에탄이었다.
-아린아, 아빠 말 잘 따라 해.
-네.
-발헬름 할아버지 미워요!
-할아버지 안 미운데….
-괜찮아, 말만 그렇게 하는 거야. 말만! 그러면 아빠랑 더 오래 수련할 수 있어. 자, 발헬름 할아버지 미워요!
-수련… 발헬름 할아버지 미워요!
-그렇지! 잘한다.
누가 들었다면 좋은 거 가르쳤다고 한 소리 할 법한 짓이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다만. 아린이 에탄에게 배우겠다고 한 건 시킨 게 아니었다. 그건 순수한 아린이의 뜻이었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야.”
“우움?”
“원래 귀한 걸 얻으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란다. 그러니까 아린이도 조금만 참자.”
“으음… 무슨 말인지 아린이는 잘 모르겠어요.”
“좀 더 크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에탄이 자신의 말에 아리송해하는 아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후 보따리에 매여져 있는 알을 쳐다보면서 뒷말을 붙였다.
“그리고 오늘은 아빠랑 같이 갈 곳이 있어.”
“어디요?”
“이주 전에 들렸던 대장간 기억나?”
“네! 머리에서 빛이 나는 아저씨가 있는 장소잖아요!”
아린이가 에탄의 물음에 힘차게 답했다.
그런 아린이를 보면서 에탄이 씨익 미소를 짓고는.
“그 빡빡이 아저씨가 오늘 아린이랑 아빠한테 검 주는 날이야.”
대장간으로 갈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에탄과 아린의 두 번째 대장간 방문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