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다행히 큰일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일단 위험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에탄이 아린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 올 때까지만 해도, 무슨 사고가 생기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아린이가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으니까.
“헤헤.”
‘하지만 일단 평범한 알은 아닌 것 같아. 아린이가 저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지켜봐도 좋을 듯한데?’
일전에 곁눈으로 슥 본 것만으로도 좋은 검을 골랐던 아린이었다.
그런 아린이가 콕 찍은 거라면 겉보기와는 달리 보통 알이 아닐지도 몰랐다.
“가격은?”
그렇게 안심을 하고는, 에탄이 암시장 상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어서 알의 값어치를 물어봤다.
“암시장에서 물건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하지만… 이 알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2골드에 드리겠습니다.”
“1골드에 사도록 하지.”
“예?”
“어차피 안 팔리면 버릴 녀석이잖아. 그러니까 1골드에 넘겨.”
암상인이 에탄의 말에 당황한 듯 두 눈을 끔뻑였다.
하나. 맞는 지적이기에 반박을 하지 못하고는.
“…알겠습니다. 대신 제가 가격을 깎아 드렸다는 건 비밀입니다.”
“물론이지. 그 정도 규칙은 당연히 알고 있어.”
에탄에게 1골드만 받고 알을 넘기기로 했다.
“아린이가 들래요!”
아린이 거래가 성사되었음을 알아차리고는, 암상인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떨어트리지 않게 조심하렴.”
암상인이 그런 아린을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앙증맞은 아린이의 얼굴을 보니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쩜 애가 이렇게 천사같이 생겼지?’
조금 전 에탄에게 반값 후려치기를 당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정도로. 아린이는 압도적인 귀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네!”
아린이 암상인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그러면서 건네받은 알을 품에 꼭 안았다.
“이제 다시 돌아가요!”
“그래. 자러 가자.”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아린이 손에 들고 있는 알을 쳐다보다가 이내 가문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
.
.
그리고 다음 날부터.
“친구야 잘 잤어? 오늘 날씨가 참 좋지!”
아린이의 알 사랑이 시작됐다.
* * *
이른 아침. 아린은 일어나자마자 어젯밤 가져온 알을 품에 끌어안았다.
“친구야 잘 잤어? 오늘 날씨가 참 좋지!”
그 후 알에 있는 친구한테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당연한 거였다. 아린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첫 친구니까.
토끼 인형도 아린이의 기준에서는 소중한 존재지만, 말에 대답을 해 주지는 못하니, 아린이 그동안 심심함을 느낄 만도 했다.
아무리 에탄이 옆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잘 잤구나! 나도 푹 자고 일어났어!”
아린이가 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 찰나.
“아린아. 밥 먹으러 가자.”
먼저 일어나 있던 에탄이 아린에게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네!”
아린이 에탄의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친구야. 우리 아침 먹으러 가자!”
그 후 두 손으로 알을 조심스럽게 끌어안고는, 에탄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움직였다.
* * *
아린이의 아침 식사는 무난하게 끝이 났다.
가주인 지오반이 알을 보고 당황하기는 했지만, 아린이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하자 납득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오반 할아버지가 너를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다고?”
다만. 알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냥 쓸모없는 걸로 본다기보다는 묘하게 경계하는 눈치였다.
“걱정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할아버지도 너를 좋아해 주실 거야!”
아린이 알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안심시켰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구경하고 싶어?”
그리고 이어지는 알의 말에 두 눈을 끔뻑였다.
생각해 보니 칼라사르 가문의 풍경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했으니.
“그래. 그러면 아빠랑 나랑 같이 돌아다니자!”
이참에 알에게 가문 내부를 소개시켜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아린이는 생각했다.
“아빠. 친구가 여기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데요!”
그래서 목검을 잡고 연습을 하고 있는 에탄에게 말했다. 알과 함께 산책을 하고 싶다고.
“…그래?”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알을 데리고 쫄래쫄래 돌아다니는 것이 꼭 소꿉장난 하는 아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에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이런 건 받아 줘야지.’
아린이를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아 맞춰 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린이한테는 다를 수도 있어.’
게다가 자신의 눈에만 평범한 알처럼 보이는 거고, 아린이한테는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아린이의 존재부터가 남다르지 않은가?
“그러면 친구한테 가문에 뭐가 있는지 같이 산책하면서 알려 줄까?”
“네!”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마침. 아린이도 궁금하던 찰나였다.
이 넓은 칼라사르 본가의 나머지 구역에는 뭐가 있을지 말이다.
거의 한 달 가까이를 이곳에서 살았지만, 에탄과 떨어진 적이 없기에, 아린이도 알고 있는 구역이 별로 없었으니까.
“좋아. 그러면 오늘은 사람들이랑 인사 좀 하자.”
에탄이 손에 쥐고 있던 목검을 내려놓았다.
그 후 아린과 함께 수련실을 빠져나와 본격적인 산책을 시작했다.
“아린아. 저기 있는 시녀들한테 인사하고 와.”
에탄은 아린이를 가문의 사람들한테 소개해 줬다.
지금까지 같이 생활을 하면서 안면을 제법 틀었으니, 이제는 인사를 해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을 한 거였다.
아린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도 퍼진 지 오래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아린이에요!”
그래서 에탄은 아린에게 사람들이 보이면 인사를 하라고 말했다.
“꺄아! 너무 귀여워!”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인형처럼 생길 수 있지?”
“정말. 도련님 어릴 때랑 완전 판박이네!”
그리고 그 선택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도 남을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덕분에 아린이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관심을 제대로 받았다.
“이 알은 아린이 친구예요. 친구한테도 인사해 주세요!”
“어머. 어머. 친구도 있구나!”
“작고 소중한 알이네!”
물론. 자신의 소중한 친구인 알을 보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린이한테 알은 처음으로 대화가 통하는 진짜 친구였으니까.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 때.
“아린아. 이제 슬슬 돌아가자.”
에탄이 아린을 향해 수련실로 가자는 말을 꺼냈다. 아린이 그 말을 듣고 힘차게 ‘네!’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지하를 가고 싶다고?”
아린이의 품속에 있는 알이, 아린이를 향해 말을 건넸다. 칼라사르 가문의 지하 시설을 보고 싶다고 말이다.
“아빠. 친구가 지하를 구경하고 싶데요!”
“…지하?”
“네!”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두 눈을 끔뻑였다.
아린이한테 가문에 지하 시설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평범한 알은 아닌 거 같네.’
그래서 에탄은 지금 이 순간 확신했다.
저 알은 신전에서 쓰이던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라, 정말로 무언가가 있는 녀석이라고.
‘크기도 이상하단 말이지. 계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말이야.’
게다가 알의 크기도 묘했다.
하지만 몬스터의 알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도 없었다.
에탄이 알고 있는 몬스터의 알 중에 저런 외형은 없기 때문이다.
‘아린이가 좋아해서 일단 내버려 두긴 하는데, 저거 집에 둬도 되는 거 맞아?’
“아빠. 친구가 왜 자기를 그런 눈빛으로 보냐고 하는데요?”
“어?”
“자기를 의심하지 말래요!”
그때. 아린이 에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알이 느끼는 감정을 중간에서 전달해 주는 거였다.
“…아빠는 아린이 친구 싫어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에탄이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못 미더워 하는 건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아주 슬픈 눈망울로 에탄을 쳐다보면서 말이다.
“아니. 그냥 어떤 친구일까 궁금했던 거 뿐이야. 절대 아린이의 친구를 싫어한다거나 그러지 않았어.”
“정말요?”
“그럼. 물론이지.”
에탄이 아린의 물음에 강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아무런 미동도 없는 알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지하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지?”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전환 시켰다.
‘지하에 숨겨진 창고가 있기는 한데….’
칼라사르 가문의 지하에는 거대한 창고가 있다.
그렇기에 가주인 지오반의 허락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만.
‘들어가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에탄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창고 문을 어떻게 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전생에서 수십 번을 들어갔다 나온 곳이니까.
‘아린이를 구경시켜 주는 김에 창고나 살펴볼까… 어차피 가져갈 거는 없겠지만.’
문제는 지금 창고에는 에탄이 쓸 만한 게 없다는 거였다.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회귀를 하자마자 들어갔으리라.
‘쓸 만한 물건은 둘째와 셋째가 가져간 지 오래지.’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은 원주민 토벌을 하기 위해 나가 있는 에탄의 둘째와 셋째 동생이, 창고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이다.
“아빠. 지하는 못 들어가요?”
그래서 에탄에게 지하는 큰 의미가 없지만.
“아니. 갈 수 있어. 아린이가 보고 싶다는데 당연히 가야지.”
아린이가 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게 당연한 거였다.
“여기가 지하 창고예요?”
“응. 정확히 말하면 저 문 안에 있는 게 창고야.”
그렇게 에탄은 아린을 데리고 지하 창고로 향했다.
쿠쿠쿠쿵…!
이어서 아주 간단하게 지하 창고를 지키는 문을 개방시켰다. 이상한 침입자를 막기 위해서, 여러 마법진이 각인되어 있었지만.
‘쉽네.’
이미 제집 마당처럼 드나들었던 에탄에게는 없는 녀석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여는 방법도 간단했다. 8개의 특정 위치를 순서대로 누르기만 하면 끝이다.
물론.
‘틀리면 그 즉시 사망이지만.’
한 번이라도 잘못 누르면, 온갖 마법들이 마중을 나오기에. 문을 여는데 신중함을 가지는 건 필수였다.
“우아아…!”
에탄이 문을 열자 아린이 감탄을 내뱉었다.
문 너머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웅장한 크기는 아린이의 마음속에 있는 호기심을 건드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친구랑 자유롭게 구경하고 있어. 아빠도 쓸 만한 게 있는지 찾아볼게. 막 만지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만져 보고 싶은 게 생기면 아빠 불러.”
“네!”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그 후 자신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알을 들고는 창고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
.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병이 있네?”
신기한 병 하나를 발견하게 됐다.
* * *
아린이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와 함께 창고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신기한 물건이 정말 많다!”
제법 쓸 만한 물건은 원주민 토벌을 진행 중인 첫째와 둘째가 가져갔지만, 그럼에도 아린이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녀석들 천지였으니.
“흐흠~”
콧노래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음? 저기 오른쪽 구석으로 가자고?”
그래서 신나게 창고 안을 돌아다니던 와중에, 알이 아린에게 말했다. 맨 오른쪽 구석에 있는 벽으로 향하자고 말이다.
“그래!”
아린이 그 말을 듣고는 알이 원하는 곳으로 발을 내달렸다.
“상자?”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녀석이었다.
“한번 열어 보자고? 하지만 아빠가 물건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알이 상자를 살펴보자고 아린이에게 말했다.
아린이 그 말을 듣고는 갈등했다.
“으으음. 어떡하지.”
자신이 보기에도 평범한 상자처럼 보이니, 건드린다고 큰 문제가 일어날 거 같지는 않았다.
“좋아. 한번 열어 보자!”
그래서 결국은 에탄의 도움 없이, 혼자서 상자를 살펴보기로 했다.
터억.
아린이 상자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 후 간단하게 뚜껑을 개봉했다.
…
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당초 마법진조차 각인되어 있지 않은 상자였으니까.
“물병이 있네?”
아린이 그렇게 열린 상자 내부를 보고는 두 눈을 끔뻑였다. 먼지가 쌓여 있던 겉모습과는 다르게, 안에는 제법 화려한 물병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작다!”
하지만 크기가 아주 작았다.
아린이의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더 큰 수준으로 말이다.
“어? 뭐라고?”
그렇게 상자에 들어있는 병이 모습을 드러내자, 알이 아린에게 말했다.
“뚜껑을 열고 물을 부어 달라고?”
상자 안에 있는 물을 자신한테 부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빠의 허락을 받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나 아린은 망설였다.
그건 정말로 자신의 아빠인 에탄의 허락이 필요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이 창고 안에 있는 물건 중에는 위험한 것도 있다고 주의를 줬으니, 아린이 걱정을 표하는 것도 당연한 거였다.
“저걸 흡수해야 더 빨리 나올 수 있다고?”
하나. 이어지는 알의 말에 아린의 마음이 흔들렸다.
저 상자 속에 있는 물을 마시면, 알에서 빨리 깨어날 수 있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으으으….”
그래서 어떻게 하지 고민에 고민을 이어 나가다가.
“좋아. 그러면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이다?”
결국에는 친구를 위해서 아빠의 말을 조금 어기기로 마음먹었다.
쓰윽.
아린이 말을 끝내고는 병을 집어 들었다.
그 후 병 안에 있는 물을 알에게 부어 주는 순간.
파아앗!
알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우아!”
아린이 그걸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빛난다!”
그리고 진심으로 친구의 변화를 축하해 줬다.
하지만 아린은 모르고 있었다.
물병에 아주 작은 글귀가 적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데메레스트 대신관의 축복이 담긴 성수.]
자신이 알에게 부어 준 물이, 절대 평범한 물이 아니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