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도대체 언제부터 도련님이 힘을 숨기신 거지?’
발헬름이 여전히 대련을 이어 나가는 에탄과 아린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언제부터 저 망나니 에탄이 본 모습을 감춘 것인지 말이다.
‘처음 술을 마시다가 걸릴 때부터? 아니. 실력을 보니 어쩌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거일 수도 있겠어.’
발헬름은 에탄이 태어날 때부터 옆에 있었다.
그 이전부터 가주인 지오반과 함께 생활을 했었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하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데.’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망나니라고 불리면서까지,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있냐는 거였다.
‘가주님도 모르는 거 같고.’
게다가 이 사실을 가주인 지오반조차 알고 있지 않은 것 같으니. 발헬름의 의문은 깊은 미궁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히얍!”
그때. 발헬름의 상념을 깨 버리는 기합이 들려왔다.
아린이 에탄의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목검을 휘두르면서 내는 소리였다.
타앙!
“응. 어림도 없어.”
하나. 에탄은 당연히 들어올 줄 알았다는 듯이 아린의 공격을 막아냈다. 일부러 공격을 유도한 거였기에 당황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린이라고 했나. 도련님의 딸도 범상치 않은 감각을 가지고 있군.’
속된 말로 아린이 에탄의 유도에 낚인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발헬름은 그걸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빈틈을 보는 감각이 있다는 건. 기사로서의 소질이 다분하다는 뜻이다.’
그런 유도를 발견하는 것도 재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발헬름은 아린도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두 사람이 대련을 하는 내내, 대련실 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로 말이다.
“좋아.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
그렇게 15분이 지났을 때 에탄이 손에 들고 있던 목검을 내려놓았다. 동시에 아린이에게 대련이 끝났다는 말을 건넸다.
“으음. 조금 더 하면 안 돼요?”
“이제는 개인 수련 해야지.”
아린이의 말에 에탄이 단호하게 답했다.
대련을 많이 해 보는 것도 좋지만, 결국 자세 또한 중요하기에 적절하게 시간을 분배하는 게 맞았다.
쓰윽.
“이제 그만 나가 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아린이의 대련 연장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하고는, 구석에 있는 발헬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발헬름이 에탄의 말에 아쉽다는 듯 침을 삼켰다.
저 두 사람의 실력을 조금 더 탐구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른 나가. 자꾸 수련 방해하면 아버지한테 말할 거야.”
그래서 엉거주춤 버텨 보려고 했지만 에탄이 그걸 허락할 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오지 마. 이번 한 번이 마지막이야.”
“…….”
발헬름의 말에 에탄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단호하다 못해 철벽을 치는 그의 태도에, 발헬름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기서 애걸복걸 매달리기에는.
기사 단장으로서의 모양이 너무 구겨지니 그럴 수도 없었다.
“…….”
그래서 차마 재방문을 하게 해 달라는 말도 못 하고는.
“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이며 제1기사들의 수련실을 빠져나갔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그 순간, 오랜만에 발헬름의 마음속에 오기가 발동했다.
* *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두가 잠들 시간이 찾아왔다.
“으음…흐으음.”
그리고 발헬름은 그때까지도 계속 에탄과 아린의 대련을 회상하고 있었다.
‘가르치고 싶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두근거림인지도 모를 정도로, 두 사람의 재능은 발헬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지.”
그래서 발헬름은 저녁 식사를 끝내고 자신의 개인 수련실로 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에탄과 아린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후우….”
그 후 방문 앞에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똑똑.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기사 단장 발헬름입니다.”
…
하지만 방 너머에서 에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린이의 소리또한 마찬가지였다.
“도련님? 기사 단장 발헬름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때문에 다시 한번 입을 열었지만.
…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을 확인하는 순간.
“…도련님?”
발헬름은 다른 의미로 당황하고 말았다.
‘도대체 어딜 가신 거지?’
방 안에 에탄과 아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 *
야심한 밤. 슬슬 잠을 자야 하는 시간대에 에탄은 아린과 함께 가문을 빠져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빠. 마을에서 누가 절 찾고 있어요.”
아린이 먼저 침대에서 자던 중 벌떡 일어나서는,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꼭 가야 하는 일이에요… 안 그러면 큰일 날 수도 있어요.”
“꿈꿨어? 밤이 늦었으니까 얼른….”
잘못 들은 게 아니냐고 말하려는데 아린의 눈빛을 본 순간 에탄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마치 잘 벼려진 검 같은 날카로운 기감이 아린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평소에 토끼 인형을 들고 헤실거리던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
‘역시 검은 검이란 것인가.’
그냥 아이가 잠투정하는 것으로 칠 수도 있지만 아린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 아린이 이토록 긴장할 정도라면 평범한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 바로 나가자.”
그래서 에탄은 잠자기를 포기하고 아린과 함께 외출을 나왔다.
‘목소리가 들린다라.’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과연 누가 아린을 찾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고 했으니…정령 같은 존재이려나? 하지만 이 근처에 그런 녀석은 없는데.’
에탄은 아린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이런 걸로 장난을 칠 아이가 아니니까.
게다가 조금 전에 보였던 모습도 진지하지 않았는가?
허나. 아린을 부르는 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일이다.’
전생의 자신한테도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누군가 머릿속으로 자신을 찾는 경우는 말이다.
“아빠. 저기서 들리고 있어요.”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면서 걸은 끝에, 에탄은 아린과 함께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환하게 빛나는 시장가를 보면서 에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왜 이렇게 환한가 했더니. 오늘이 야간 시장이 열리는 날이었구나.’
아린과 빠져나온 지금 이날이 밤에도 시장이 열리는 날이라는 거였다.
‘합법적인 야간 암시장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좋게 말해 야간 시장인 거고.
실상은 암시장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하지만 칼라사르 가문은 이걸 제재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서는, 한 달에 한 번 합법적으로 암시장을 열게 해 주었다.
‘물론 노예 같은 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당당하게 거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칼라사르 가문도 눈감아 줄 수 있는 선이란 게 존재한다.
‘어지간한 물건은 가능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팔리는 대부분 상품은 밀수품이다. 이쪽 지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들 위주로 말이다.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리고 있어요.”
그때. 아린이 에탄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에탄의 손을 잡고는 시장 안쪽으로 거침없이 발걸음을 움직였다.
“에탄 도련님이잖아?”
“야밤에 시장은 무슨 일로 오신 거지?”
이런 아린과 에탄을 보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저기예요.”
하지만 아린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근원지를 에탄에게 알려 주기 바빴으니까.
‘동물 상인?’
에탄이 아린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대륙 곳곳에 있는 동물을 파는 상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물론. 정상적인 경로로는 들일 수 없는 녀석도 있었지만. 그건 에탄이 알 바가 아니었다. 오늘 밤은 암상인들도 판매를 할 수 있는 날이니까.
‘평범한 녀석들뿐인 거 같은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는 동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얼른 가요.”
아린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에탄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 후 아장아장한 걸음으로 동물 암상인을 향해 다가갔다.
“에탄 도련님? 도련님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그렇게 에탄이 아린과 함께 암상인한테 다가가자, 장사를 하던 암상인이 에탄을 보고는 몸을 움찔했다. 저 망나니 도련님이 자신한테 무슨 볼일로 온 건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행패질 하러 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에탄 또한 자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알기에, 암상인이 우려하는 부분을 안심시켜 줬다.
“여기 진열되어 있는 녀석들이 전부야?”
“예. 요즘 단속이 심해서 들이는 게 제법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암상인이 팔고 있는 동물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별거 없는데?’
하나. 그중에서 이렇다 하는 녀석은 에탄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린이 잘못 짚은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가지려는 순간.
“저기 뒤에 있는 알에서 소리가 들려요.”
아린이 서 있는 암상인의 뒤쪽을 가리켰다.
“오. 이 알에 관심이 있니?”
암상인이 아린이의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뒤쪽에 있는 알을 들어 올렸다.
그리 귀한 녀석은 아닌지, 허름한 박스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에탄이 그걸 보고는 암상인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저도 잘은 모르는 녀석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신전에서 발견하고 혹시나 해서 가져왔는데… 한 달이 넘도록 변화가 없는 놈입니다.”
암상인이 그 말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뭐, 어디 자잘한 하급 몬스터의 알이겠죠. 어미가 없어서 부화하지 못해 속에서 썩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의 기준에서 아린이가 말한 알은, 별다른 값어치가 없는 짐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저거 맞아요.”
하지만 아린에게는 다르게 느껴진 건지, 아린이 알을 보고는 에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자신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소리의 근원지가 저 알이라고 말이다.
“…….”
그리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에탄의 눈에는 아린이 긴장을 한 것처럼 보였다. 침을 삼키고 입술을 깨무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저 알에 뭐가 있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에탄이 아린의 모습을 보고는 침을 삼켰다.
대련을 할 때도 움찔하지 않던 아린이, 알을 바라보면서 움찔하다니.
암상인은 별것 아닌 듯 말했지만 아린이 저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정말 위험한 게 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류의 몬스터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아린아. 저 알에 뭐가 있니?”
에탄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알에는….”
아린이 에탄의 물음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러면서 말을 잠시 멈추고, 알을 빠안히 쳐다보다가.
“아린이 친구가 있어요!”
이내 해맑게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