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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10화 (10/200)
  • 제10화

    1초.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 끝날 정도로 아주 찰나의 순간이다. 그 정도로 1초는 아주 짧다. 무언가를 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1초면 충분하다.’

    에탄에게 1초는 그 이상에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지만, 그걸 활용하는 경지는 각각 다르다고 하듯이.

    에탄은 1초 안에 에르덴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특히. 자신이 선제공격을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후우.”

    에탄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동시에 온몸에 힘을 주고는, 에르덴을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었다.

    ‘오른쪽 옆구리가 비어 있다.’

    그러면서 미리 앞으로 내디뎠던 왼발을 굽히고는.

    왼손에 쥐고 있던 검을 오른쪽으로 던졌다.

    “!”

    에르덴이 공중에 붕 뜬 에탄의 검을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저런 식으로 검의 위치를 바꿀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스릉!

    그때는 이미 늦은 시기였다.

    에탄이 반대쪽 손으로 검을 잡아내고, 곧바로 에르덴의 목덜미에 검날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너무 날 무시했어.”

    “…….”

    “내가 왼쪽에 균형이 치우쳐져 있다고 해서, 왼쪽만 방어하면 되겠지 라고 판단한 모양인데. 맞나?”

    “맞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상대를 깔고 들어가는 건 안 좋은 버릇이니까.”

    에탄이 에르덴을 향해 간단한 조언을 해 줬다.

    동시에 그의 목에 겨누었던 검을 거두었다.

    짝짝짝!

    그 순간 뒤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아린이 입을 반쯤 벌린 채 감탄하고 있었다.

    “아빠 멋져요!”

    “그래?”

    “응응! 완전 최고!”

    그 상태에서 에탄을 최고라고 말하니.

    에탄은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의 딸이 자기를 치켜세워 주니, 기분이 좋은 게 당연한 거였다.

    “그러고 보니 언제 딸이 생기신 겁니까?”

    에르덴이 아린의 얼굴과 에탄을 번갈아 쳐다봤다.

    확실히 둘은 아버지와 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아 있었다.

    그래서 호기심을 담아 질문을 하니.

    “말하자면 복잡해. 그러니까 관심 가지지도 말고 묻지도 마.”

    에탄의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고를 친 것도 아니니까 경멸감 가지지도 말고.”

    “일단은 믿어 드리겠습니다.”

    에르덴이 에탄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썩 믿음이 가는 말은 아니었지만, 조금 전 검을 맞대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많이 달라지셨군요.”

    에탄이 제법 변했다는 거였다.

    고작 1초 남짓한 대련이었지만 에르덴은 그 찰나의 순간을 통해, 에탄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말을 하니까 이제는 별 감흥도 없다.”

    에탄이 에르덴의 말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도 저런 말을 듣다 보니 별 느낌도 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쨌든. 자격은 충분하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내 딸 아린이 거까지 두 자루 부탁한다.”

    “원하는 조건의 검이 있습니까? 요구 사항을 말해 주시면 그에 맞춰서 제작해 드리겠습니다.”

    “조건 있지.”

    에탄이 에르덴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검을 쳐다봤다. 아린이 자신과 잘 맞을 거라고 추천해 줬던 녀석이었다.

    “이 녀석보다 조금 더 묵직하고 단단하고 크게. 그 정도면 일단은 충분할 거 같네.”

    “그러면 상당히 무거울 겁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심이….”

    “상관없어. 네가 무기를 완성할 때쯤이면 지금보다 더 무거운 녀석도 가볍게 휘두를 수 있을 테니까.”

    지극히 오만한 발언이었다.

    “그럼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허나. 에르덴은 알겠다고만 할 뿐, 더 이상 만류를 할 생각은 없었다.

    에탄이 그것도 모를 인물은 아닐 거라 믿었으니까.

    “아린이도 아빠랑 똑같은 걸로 할래요!”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린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래. 아린이도 아빠랑 똑같은 검 가지자.”

    “흐흥~”

    에탄이 그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아이한테는 많이 무거울 텐데요.”

    “그거는 아린이가 알아서 하겠지. 얘 보기와는 다르게 힘 좋아.”

    “그러면 같은 검으로 두 자루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좋아.”

    에르덴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면서.

    “이주 뒤에 찾으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잘 만들어 놔. 돈은 나오는 결과물 보고 줄게.”

    이주 후에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가자 아린아.”

    “네!”

    그리고 아린이의 손을 잡고는 숲길로 다시 발걸음을 움직였다.

    “…….”

    에르덴이 그렇게 멀어지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봤다.

    “거참.”

    그러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갑자기 일이 많아졌군.”

    식어 가는 대장간의 화로를 다시 뜨겁게 달구었다.

    아빠와 딸.

    두 사람만을 위한 무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말이다.

    * * *

    에탄은 아린과 함께 대장간을 들렀다가 다음날 평소처럼 수련실로 향했다.

    “네가 왜 거기 서 있냐?”

    그리고 그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을 마주쳤다. 에탄이 5번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장본인인 발헬름이었다.

    “도련님한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발헬름이 에탄의 등장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에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으니까.

    “제가 도련님과 따님의 검술 수련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걸 말하려고 여기서 계속 기다렸던 거야?”

    “그렇습니다.”

    “흐음.”

    에탄이 발헬름의 말에 팔짱을 꼈다.

    그 후 가만히 발헬름을 쳐다보다가.

    “필요 없어.”

    “…예?”

    “네 도움 없어도 된다고.”

    발헬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가르쳐 준다면 나야 고맙지! 라던가.

    감격의 눈물을 흘릴 줄 알았건만.

    “필… 필요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히려 걸리적거린다는 듯한 에탄의 말투와 태도에, 발헬름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말 그대로인데?”

    “아니… 제가 직접 가르쳐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에탄이 발헬름에게 단호하게 답했다.

    그 후 충격을 받은 그의 얼굴을 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이미 알고 있어. 그리고 아린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도 마찬가지고.”

    “…….”

    “그러니까 나한테 굳이 알려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도록.”

    발헬름이 에탄의 대답에 입을 멍하니 벌렸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가르쳐 준다고 했을 때, 저런 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에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뭐해? 안 나가고? 이제 슬슬 수련할 거야.”

    “…….”

    “설마 방해할 생각은 아니겠지?”

    에탄의 말에 발헬름이 두 눈을 끔뻑였다.

    설마. 자신이 불청객 취급을 받을 줄은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니.

    “그럼 어떻게 수련을 하시는지 지켜만 보겠습니다.”

    이대로는 물러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에탄이 어떻게 수련을 하는지는 알고 싶었다. 그래야 납득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나한테 집착하는 이유라도 있나?”

    “그건….”

    에탄이 발헬름의 말에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다.

    발헬름이 그걸 듣고 대답을 하려다가 몸을 멈칫했다.

    차마. ‘절 거절한 사람은 도련님이 처음이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단순한 호기심과 우려입니다. 혹여나 도련님이 잘못 수련을 하고 계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른 명분을(?) 앞세웠다.

    “그래? 그럼 한번 봐봐.”

    발헬름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수련실 안으로 들어오고는, 목검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흐흥~”

    아린이 그런 에탄을 따라 옆에 있는 가장 작은 목검을 잡았다. 그동안 계속해서 사용해 왔던 아린이 전용 목검이었다.

    “오늘도 대련으로 몸을 풀자.”

    “좋아요! 이번에는 꼭 아빠 머리를 목검으로 때릴 거예요!”

    에탄의 말에 아린이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를 때리겠다는 결의가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

    발헬름이 두 사람의 대화에 몸을 멈칫했다.

    순간적으로 상황 파악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5살짜리 어린아이와 대련이라니.

    발헬름의 기준에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리였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의 입장에서 5살은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는커녕, 자세를 정확히 잡기도 힘든 나이였으니 말이다.

    “먼저 들어와. 선공 양보해 줄게.”

    “네!”

    그래서 발헬름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에탄과 아린은 그걸 가볍게 무시했다.

    “이번에는 머리 때리기 없기예요.”

    “그래. 그래. 막기만 할 테니까 마음껏 들어와.”

    그리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다가.

    팍!

    아린이 땅을 박차면서 에탄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그 후 에탄을 향해 목검을 휘두르는 순간.

    “…!”

    의문으로 가득 차 있던 빌헬름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무슨 기세가?’

    아린이의 공격이 독수리의 발톱처럼 매서웠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을 이기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 균형이 무너졌어.”

    하지만 발헬름의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린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면서, 조언을 해 주는 에탄의 말에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탁!

    “아야!”

    “왼쪽 팔꿈치를 잘 보호해야지. 안 그러면 실전에서 팔 한쪽 날아가는 건 금방이다.”

    단순히 조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전투 때를 대비한 세세한 지적까지 직접 해 주고 있으니.

    “허어.”

    발헬름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저 검의 검 자도 모르는 망나니 에탄이.

    산전수전 다 겪은 기사처럼 지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

    발헬름이 입을 다물었다.

    그 후 두 사람의 대련과 에탄이 아린을 가르치는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어떻게든 부족한 부분을 잡아내서, 수련시키겠다는 생각은 날아 간 지 오래였다.

    다만.

    ‘그동안 도련님이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이제는 에탄을 다른 의미로 착각하게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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