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가문에서 가장 한심한 인물은 누구인가?
만약. 누군가 이런 질문을 빌헬름에게 한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한 사람을 뽑을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가문의 막내이자 망나니라고 불리는 에탄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에탄이 그동안 벌여 왔던 행동들이 너무 많으니까.
‘…….’
그 외에도 에탄을 뽑으려는 근거를 대라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사유들을 일일이 나열하려면 못해도 30분은 걸릴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몸에 기름칠 좀 해 놔.”
그렇기에 빌헬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에탄이 저런 식으로 자신한테 대답을 할 줄 몰랐으니까.
게다가.
“맞아요! 우리 아빠는 약하지 않아요!”
에탄이 데려왔다는 ‘숨겨진 딸 아린.’ 또한 에탄을 옹호해 주고 있었다. 여기서 빌헬름에게 중요한 점은, 저런 아린의 행동은 자신을 호의적으로 대해 주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반응이라는 거였다.
‘단순한 연기인가. 아니면 달라지시기로 마음을 먹은 건가.’
빌헬름이 아린의 분노 어린 눈동자를 쳐다봤다.
진심을 담아서 자신을 째려보고 있었다.
“이 아이가 도련님의 딸이군요.”
따가운 시선에 빌헬름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서 아린을 찬찬히 훑어봤다.
외형은 5살짜리 또래의 어린아이들과 비슷했지만…
‘묘하군.’
그 외에 무언가 더 있는 거 같다고 빌헬름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하나. 그게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기에 빌헬름은 눈을 찡그렸다.
“걱정하지 마. 네가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에탄이 그런 빌헬름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쓰레기처럼 살 마음 없다.”
그 후 빌헬름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
빌헬름이 에탄의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에탄이 손에 쥐고 있는 목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술 수련은 혼자 하시는 겁니까?”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없거든. 미리 말하지만, 누군가를 붙여 줄 필요는 없어. 내가 해야 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에탄의 말에 빌헬름이 침을 삼켰다.
검 한번 제대로 잡아 본 적도 없으면서 혼자 훈련을 한다니. 지나가던 개도 대답을 듣고 콧방귀를 끼리라.
하지만.
‘무언가 있으시군.’
빌헬름은 에탄의 표정을 통해서 깨달았다.
저 말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게다가 자신이 굳이 조언을 해 줘야 하는 이유도 없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한 달 뒤에 뵙겠습니다.”
빌헬름은 에탄과의 대화를 이쯤에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쓰윽.
빌헬름이 말을 마치고는 에탄을 향해 고개 숙여 예의를 표했다. 그 후 옆에 있는 아린을 잠깐 바라봤다.
탁.
‘이번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시면 좋겠군.’
그러다가 이내 에탄에게 아주 작은 기대를 하면서 수련실을 빠져나갔다.
* * *
그렇게 일주일이 더 지났을 때.
“흐흠~”
에탄은 아린과 함께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왔다.
매일 수련실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지루해하는 아린이를 위해서였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콧노래까지 불러?”
“토끼랑 처음으로 같이 외출하는 거라서요! 맨날 방에만 있어서 마음이 신경 쓰였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돼서 좋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게 동행자가 늘었다.
에탄이 아린에게 사 준 토끼 인형이었다.
“참 착하네. 방에 있는 토끼까지 신경 써 주고.”
아린이의 대답에 에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확실히 5살짜리 어린이다운 마음이었다.
‘이런 게 바로 마음을 치유해 주는 명약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렇기에 에탄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거였다.
피와 전쟁에 찌들어 살았던 에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전히 날 쳐다보는 시선은 좋지 않지만 말이지.’
에탄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저번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에탄을 경계하고 있었다.
“저 애 좀 봐…. 세상에 어쩜 저렇게 앙증맞대?”
“얼굴도 완전 예쁘장하게 생겼네.”
“아무리 봐도 에탄 도련님 딸 같단 말이지.”
다만. 이번에는 에탄이 아닌 아린 쪽에 좀 더 관심을 가졌다. 하나. 에탄은 그걸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
‘애가 이렇게 귀여운데 안 보고 배기겠어?’
가뜩이나 귀여운 아린이가 토끼 인형까지 들고 아장아장 걷고 있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아린이한테 쏠릴 수밖에 없으리라.
탁.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시장을 둘러보던 중.
“내 검을 받아라!”
“어디 한번 휘둘러 보시지!”
아린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남자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
그리고 녀석들의 손에 있는 장난감 검을 바라봤다.
이런저런 장식물이 붙어 있는 제법 화려한 장비였다.
“사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에탄의 물음에 아린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검에 꽂혀 있었다.
“아린이는 이미 토끼 인형 있잖아요.”
그러나 아린은 자신이 여기서 저 검까지 요구하는 건.
너무 과한 행동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에탄에게 차마 사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전생이 검이어서 그런지 저런 거에 욕심이 더 많은 거 같네.’
에탄이 아린의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게 보이지만, 어른인 에탄의 눈에는 속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아린이 검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되기 전에는 전설의 검이었으니, 전생과 같은 존재에게 끌리는 게 당연하리라 생각 한 거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저건 몇 번 휘두르면 금방 박살 날 텐데.’
장난감 검은 내구력이 목검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거였다. 에탄은 아린이 저 검을 휘두르면 5분 안에 박살 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저건 애들끼리 가지고 노는 용도지.
허수아비 같은걸 후드려 패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솔직히 아린이한테 사 준다고 해도, 만족감이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거 같기도 했다.
원래 애들의 흥미는 금방 생겼다가 사라지는 법이지 않은가?
“그렇네. 생각해 보니 아린이는 토끼가 이미 있구나.”
“…….”
아린이 에탄의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아이처럼 토끼 인형을 쥔 손을 조몰락거리는 건 덤이었다.
“아니면 토끼를 팔고 저 검을 가져올까?”
이런 아린의 모습을 보고 에탄의 마음속에 있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토… 토끼를요?”
아린의 큰 눈에 눈물이 가득 맺히더니 아린이 토끼 인형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격하게 도리질을 쳤다.
“토끼는 아린이랑 같이 있는 게 좋대요.”
글썽글썽.
“아린이는 아빠랑 토끼만 있으면 돼요!”
그렁그렁.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을 하고서 저런 말을 하면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허 참… 울리려고 한 건 아닌데. 그나저나 검이라. 그러고 보니 나도 검 한 자루 마련할 때가 됐네.’
에탄이 그런 아린을 쳐다보다가, 이내 허공을 움직이는 장난감 검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자신도 슬슬 진검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마물이나 그 외의 존재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필수로 지참하고 있어야 하는 수단이니 말이다.
‘가문에 있는 검들도 좋기는 하지만, 손에 맞는 게 없단 말이지.’
칼리사르 가문의 무기고.
그곳에는 온갖 장비들이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에탄의 눈에는 마음에 드는 게 없었기에.
‘이번에도 수제로 만든다.’
직접 대장장이를 찾아가 무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그 점은 변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전생의 자신을 위해서 무기를 만들었던 그 대장장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아린아. 대장간 구경하러 갈까?”
에탄이 생각을 끝내고는 아린에게 말을 걸었다.
대장간이라는 말에 아린이 눈을 에탄 쪽으로 획 돌렸다.
“대장간?”
그 후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반문했다.
대장간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니까.
“철을 이용해서 검이나 갑옷을 만드는 곳이야.”
“…!”
“거기서 아린이가 휘두를 수 있는 검도 제작해 달라고 하자. 어때?”
“좋아요!”
에탄의 제안에 아린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힘찬 목소리로 에탄의 물음에 좋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
그런 아린을 향해 에탄이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뒷말을 이었다.
“어떤…. 문제요?”
아린이 에탄의 말에 침을 삼켰다.
설마… 검을 가지려면 역시 토끼를 보내야 하는 건가?
라는 불안감이 아린의 머릿속에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린은 토끼를 꼭 끌어안았다.
“대장간에서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
에탄이 세바스찬한테 받았던 돈주머니를 아린에게 보여 줬다. 그동안 지출을 한 게 있기에, 처음보다 주머니가 아주 가벼워진 상태였다.
“아린이…. 돈 없는데.”
아린이 홀쭉해진 주머니를 보고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후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괜찮아. 이 주머니를 다시 두둑하게 채울 방법이 있으니까.”
“진짜요?”
“응.”
하지만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에탄이 세바스찬한테 받아 낸 이 돈주머니를 다시 원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남아 있었다.
바로.
“저번에 아빠가 세바스찬 앞에서 한숨을 쉬면 뭐 하라고 했지?”
“울먹거리기!”
“아린이. 이번에도 그거 잘 할 수 있지?”
이전에 사용했던 일명 ‘아린이의 울먹이기.’ 기술이었다.
“그거 하면… 아린이도 검 가질 수 있어요?”
“물론이지. 내 검 한 자루, 아린이 검 한 자루. 사이 좋게 두 자루나 만들 수 있어.”
“우아….”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감탄을 내뱉었다.
아빠와 ‘함께’ 검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거였다.
“그럼. 우리 토끼와 함께 세바스찬한테 가 볼까?”
“네!”
에탄의 물음에 아린이 힘차게 답했다.
“얼른 가요!”
그 후 이번에는 에탄보다 앞장서서 가문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에탄이 그런 아린을 흡족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잘 배우고 있구나.’
그러면서 자신의 조기(?)교육에 뿌듯함을 느꼈다.
.
.
.
그리고 정원에서 풀을 자르던 세바스찬는.
“…정말…. 정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울먹이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아린의 모습에, 다시 한번 자신의 신념을 외면하고 말았다. 아린이 앞에서는 견고한 요새 같았던 그의 마음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