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포션은 만능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포션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지.’
그걸 복용하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탄은 포션에 있는 힘을 극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오러도 다뤄 봤는데…. 이거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죽기 직전 오러 기사의 경지까지 올랐던 그니까.
벌컥! 벌컥!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탄이 거침없이 헤와른의 포션을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포션 병에 들어 있던 액체가 에탄의 몸 안으로 넘어갔다.
파아앗!
동시에 에탄의 목구멍을 시작으로, 몸 전신에 포션이 가지고 있던 기운이 퍼져 나갔다.
‘역시 모르트의 이파리가 각성 효과를 해 주고 있구나.’
이 모든 게 모르트의 이파리를 넣었기에 가능한 거였다. 그게 없었다면 포션은 아무런 힘도 내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이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
그냥 마시기만 해도 어느 정도 변화는 있지만.
에탄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후우….”
에탄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 후 가부좌 자세를 유지하면서 눈을 감고는.
-우우웅….
몸 안에 있는 이질적인 기운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
그 순간 에탄의 몸에서 검은 땀이 흘렀다.
방탄하게 살면서 쌀인 불순물들이 육체에서 배출되는 거였다.
“으윽…. 후우!”
문제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불로 지진 수백 개의 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에탄이 그것들을 견뎌내기 위해 이를 꽉 물었다.
우드득!
그러자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가문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과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 에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전생의 자신의 최후에 비하면, 이까짓 고통은 새 발의 피도 아니었으니까.
자신을 믿어 주던 세바스찬부터 시작해서 가주까지.
모두가 무참히 죽어 가던 그 모습을 에탄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르게 살리라 마음먹은 그때.
“아빠?”
아린이 잠에서 깨어났다.
타탁!
이어서 가부좌 자세로 기운을 다스리는 에탄을 향해 다가왔다.
“으음….”
그 후 에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에탄은 아린에게 반응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지면 몸에 이변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린이가 기운 내게 해 줄게요!”
그런 에탄을 향해 아린이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주물럭. 주물럭.
부드럽게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기운이 흐트…. 이게 무슨?’
에탄이 아린의 행동에 우려감을 느꼈다.
자신의 몸을 만짐으로 인해, 모아 둔 기운이 흔들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흐름이 더 원활해졌다?’
하지만 에탄의 예상과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성난 파도처럼 움직이던 포션의 힘이 순한 양처럼 변해 버렸다. 그 말은 즉. 아린이 손을 대면서 흐름을 조절하는 게 훨씬 쉬워졌다는 뜻이니.
‘기회다.’
이건 에탄에게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반나절이 넘게 걸리는 작업을 순식간에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 말이다.
-우웅… 우우웅!
에탄이 고요해진 이질적인 힘을 심장 쪽으로 흘려보냈다. 몸 바깥으로 불순물이 계속 뿜어져 나왔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빠 힘내요!”
아린이가 에탄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었으니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아린이가 해 주는 거지만.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네.’
에탄조차 그 이상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확신했다.
아린이 자신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거였다.
“후우….”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때.
마침내 몸 안에 있는 이질적인 힘이 에탄의 심장에 온전히 자리를 잡게 됐다.
쓰윽.
그제야 에탄이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린과 눈을 마주쳤다.
“저 잘했죠?”
“…그래.”
아린의 물음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한 건 잘한 거니 맞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
“으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냥 아빠가 힘들어 보여서 어깨를 주물러 드린 거뿐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아린이 어떤 원리로, 자신의 기운에 간섭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린조차 자신이 뭘 했는지 모르는 모양이니까.
‘…신기하네.’
에탄이 실실 웃는 아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내 아린의 머리 쪽으로 손을 뻗고는.
쓰담. 쓰담.
조심스럽게 아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흐흠~”
아린이 에탄의 손길에 콧소리를 내는 건 덤이었다.
* * *
다음 날. 에탄은 아린과 함께 아침을 먹고 제1기사들의 수련실로 향했다.
붕- 붕!
제 몸집만 한 검을 휘두르던 아린이 에탄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빠, 얼마나 하면 돼요?”
“딱 열 개만 더 해 보자. 숫자 셀 줄 알지?”
“넵! 하나… 다섯… 넷… 일곱….”
에탄이 아린이의 늘어 나는 숫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숫자 세는 것도 가르쳐 줘야겠구만.’
그러면서 역시 애는 애라고 생각했다.
“흐아!”
부웅!
아린의 힘찬 기합 소리가 수련실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아린의 목검이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움직였다.
“좋아. 거기까지.”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그늘에서 쉬고 있어.”
이어서 아린이에게 휴식을 취하라는 말을 붙였다.
“네!”
100번의 목검 휘두르기를 끝낸 아린이 에탄의 말에 힘찬 말투로 답했다. 이어서 그림자가 진 쪽으로 걸어가서는, 벽에 기대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체력이랑 인내심이 상당하네…. 역시 5,500살을 검으로 살아서 그런 건가?’
에탄이 그런 아린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평범한 5살 어린아이였다면, 100번이 아니라 30번을 했을 때 포기를 선언했으리라.
‘하지만…. 아린이는 오히려 하면 할수록 눈에서 빛이 났지.’
하나. 아린은 아니었다.
평범한 어린아이들과는 다르게 아린이는 ‘전사’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불굴의 전사 말이다.
“흐음! 흐으으음!”
에탄이 그늘진 곳에서 목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는 아린을 쳐다봤다. 그 짧은 순간을 못 참고 혼자서 다시 연습을 해 보는 아린이었다.
‘역시 평범한 아이는 아니야.’
그걸 보면서 에탄은 확신했다.
아린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내 몸도 확실히 달라졌네.”
에탄이 아린에서 자신의 몸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또한 아린을 알려 주면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역시. 헤와른의 포션이야. 성능이 확실하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헤와른의 포션을 통해 흡수했던 기운이, 에탄의 몸을 완전히 바꿔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고작 한 병을 마신 거로 이 정도 효과를 보기는 힘든데.’
아무리 에탄이 기운을 잘 다룬다고 해도.
포션 한 병을 마셨다고 이렇게까지 몸을 바꿀 수는 없다.
‘어쩌면…. 아린이가 도와줘서 그런 거일 수도.’
그런데 아린이의 도움이 더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그 증거가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아린이도 꽤 달라진 거 같은데?’
그때. 에탄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첫 번째 수련 때는 목검을 잡는 것도 버거워했던 아린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00번이나 정자세로 휘두를 정도로 몸이 강해졌네. 꼭 포션을 먹은 것처럼…. 음?’
에탄이 순간 몸을 멈칫했다.
어째서 포션은 자신만 먹었는데.
아린도 함께 성장을 한 것인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나?’
하지만 그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기에, 에탄도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큰 문제는 없겠지.’
에탄이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됐든 이득을 봤으니 됐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그래서 다시 목검을 쥐고 혼자서 수련을 이어 나가려는 순간.
끼익.
닫혀 있는 수련실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수련은 잘 돼 가십니까?”
동시에 중후한 노인의 목소리가 에탄의 귀에 들려왔다.
“뭐. 그냥저냥이지.”
에탄이 노인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 후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바라보면서.
“그런데 빌헬름. 네가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이름을 읊었다.
“허허.”
빌헬름이 에탄의 물음에 허하게 웃었다.
에탄이 5합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인물, 기사 단장 빌헬름이 바로 그였다.
그러니 에탄이 저런 질문을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제가 오신 게 그리 마음에 안 드십니까?”
빌헬름이 에탄의 말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동시에 수련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터벅. 터벅.
단순히 걷는 것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에탄은 빌헬름에게 범상치 않은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가문의 기사 단장 자리를 몇십 년째 유지하는 노 기사 답네.’
평범히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전생에 마주쳤던 전장의 숱한 이들과 비교를 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힘을 빌헬름은 가지고 있었다.
‘빌헬름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너무 늦게 깨달았지.’
빌헬름은 망나니였던 에탄을 탐탁지 않아 했다.
당연한 거였다.
가문의 명예와 위상을 있는 대로 깎아내렸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련님한테 해를 가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그 말은 즉.
지금의 빌헬름은 에탄을 여전히 구제 불능 망나니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니.
“다만. 이 말은 해 드려야 할 거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에탄에게 비호의적인 태도를 가지는 게 당연한 거였다.
탁!
빌헬름이 에탄의 코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 후 중후한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봤다.
에탄 또한 그런 빌헬름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한 달 뒤에 제 검을 5번 막아내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가주님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맞아.”
빌헬름의 물음에 에탄이 순순히 답했다.
이미 지오반이 말을 했을 거라고 에탄 또한 예상하였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빌헬름이 그런 에탄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없습니다.”
그 후 고개를 저으면서 답하고는.
“저는 경고를 하러 왔습니다.”
에탄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뒷말을 이었다.
그 내용이 가문의 후계자한테 하기에는 제법 무례한 말이었지만, 에탄은 뭐라 말하지 않았다.
빌헬름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저는 절대 도련님을 봐 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셔야 할 겁니다.”
“흐음.”
에탄이 빌헬름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아무 말 없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나이가 제법 들었음에도, 여전히 우락부락한 근육들이 갑옷 사이로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눈빛 또한 여전히 흉흉한 게.
당장 전장에 뛰어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빌헬름이 봐줄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니 겁을 먹을 만도 하다.
‘전생의 나였다면 그랬겠지.’
전생의 기억이 없는 에탄이었다면 말이다.
하나. 지금의 에탄은 빌헬름의 말에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씨익.
오히려 환하게 미소를 짓고는.
“절대 봐주지 마. 오히려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두르는 게 좋을 거야.”
빌헬름보다 한 수 더 떴다.
“그러니까 그동안 몸에 기름칠 좀 해 놔.”
거기에 아주 조금의 도발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