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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5화 (5/200)

제5화

에탄은 돈이 없다.

가문이 가난해서는 아니었다.

마지막에 몰락하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에탄의 가문은 부유한 측에 속했다.

그런데도 에탄이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없는 원인은.

‘내가 저질러 왔던 업보. 이 빌어먹을 과거의 나…. 정말 훌륭하다! 얼굴에 주먹을 갈기고 싶을 만큼.’

과거의 자신이 했던 짓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강해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조금 찝찝하지만, 그래도 나름 인도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자금을 얻기로 했다.

그게 바로….

“좀 더 불쌍하게. 아빠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아린이의 천사 같은 외모였다.

“이렇게만 하면 돼요?”

“그래. 딱 지금 표정으로 세바스찬을 아무 말 없이 쳐다봐.”

“그러면 아빠랑 같이 바깥 산책 갈 수 있어요?”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질문했다.

“맞아. 아빠랑 재밌게 돌아다닐 수 있어.”

에탄이 아린의 희망찬 목소리로 답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세바스찬한테 돈을 얻어 낸다면, 포션에 필요한 비용을 빼고는 모두 아린이와 노는 용도로 쓸 생각이었다.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지.’

만약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건 아린이 덕분이니. 아린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린이 잘 할 수 있지?”

“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빠가 이런 거 시켰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응응! 아린이 절대 말 안 할게요! 평생 비밀로 가지고 갈게요!”

아린이 에탄의 강조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 후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내밀고는.

“세바스찬 할아버지가 이건 서로 약속을 하는 거라고 했어요. 아빠도 저랑 같이 놀아 준다고 약속해요!”

약속하자고 뒷말을 이었다.

“못 해 줄 것도 없지.”

에탄이 그런 아린의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이어서 아린이의 요구대로 새끼손가락을 걸고는.

“아빠가 꼭 세상 구경시켜 줄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린이에게 약속했다.

“흐음~”

아린이 에탄의 말과 행동에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콧바람을 불었다.

“이제 정원으로 가자.”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순간이 찾아왔다.

* * *

“세바스찬. 나를 위해서 돈을 쓰려는 게 아니라니까?”

“하지만….”

“아니. 우리 아린이가 바깥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잖아. 그래서 돈 좀 빌리겠다는 건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

에탄의 말에 세바스찬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으면 드리고 싶지만…. 도련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도련님한테 개인적으로 돈을 드리는 게 금지됐다는 것을.”

세바스찬이 이렇게 난처함을 표하는 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 없어서가 아녔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주님의 허락을 먼저 받아 오시죠.”

문제는 상황이었다.

에탄한테 돈을 주기 위해서는 가주의 허락 문서가 필요했다.

‘공식’ 적으로는 말이다.

‘역시 깐깐하군.’

정말 유도리가 없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믿음직하다고 하는 게 맞을지.

에탄은 둘 중에 무엇이 세바스찬한테 어울리는 표현인지 고민하면서 그를 쳐다봤다.

‘심지어 고집불통이고.’

절대 가주의 허락 없이는 자금을 주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세바스찬의 눈에서 선명하게 보였다.

“…….”

그 모습을 에탄이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흠. 크흠! 거참 너무하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산책은 포기할 수밖에.”

그러다가 아린과 약속한 대로 기침을 하자.

“아빠…. 우리 못 나가요?”

가만히 에탄의 옷깃을 잡고 있던 아린이 입을 열었다.

두 눈동자에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뭐야. 무슨 연기 실력이….’

에탄이 그런 아린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몸을 흠칫했다. 만약 자신이 시키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본인조차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정도로 수준 있는 연기였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이 돈을 안 준 데. 그래서 아빠가 아린이랑 같이 산책을 못 가게 생겼어.”

“산책…. 못 간다고요?”

“이번에는 그럴 거 같아.”

“…….”

에탄의 말에 아린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충격을 받은 걸까.

아린의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일어났다.

“으응. 그렇구나. 알겠어요….”

그리고 이내 아린의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툭툭 떨어졌다. 그 상태에서 아린이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

에탄이 아린에서 세바스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후 눈썹을 찡그리면서 입을 벌리고.

[진짜 너무하네. 너 때문에 내 딸이 울잖아. 네가 그러고도 내 집사라고 할 수 있어?]

무음으로 세바스찬한테 말했다.

네가 어떻게 아린이를 울릴 수 있냐고 말이다.

“아니…. 이건.”

“으응. 아빠랑 같이 못 가지만…. 아린이는 착한 아이니까….”

세바스찬이 변명을 하려는 순간, 아린이 훌쩍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나쁜 놈.]

에탄이 그걸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뒷말을 이었다.

실망했다는 눈빛으로 세바스찬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

세바스찬이 에탄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설마. 살다 살다 저 망나니 도련님한테 나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줄 몰랐으니까.

심지어는 그 말에 반박도 못 하고 있으니.

자신이 생각해 봐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시에.

‘도련님이 아니라 도련님의 자식분한테 돈을 드리는 거니까. 가주님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군.’

속으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래야 마음을 찌르는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그래. 나는 도련님이 아니라 아린 님한테 돈을 드리는 거다.’

세바스찬이 결론을 내리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쓰윽.

그 후 자신의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고는.

“이건 어디까지나 아린 님한테 드리는 돈입니다. 절대 도련님 마음대로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에탄에게 그걸 건넸다.

“물론이지. 그리고 아버지한테 함구할 테니까 안심해. 명령을 어긴 건 아니지만 그게 너한테도 편하잖아?”

에탄이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받아 냈다.

동시에 비릿한 미소로 세바스찬을 쳐다보면서.

“우리 같은 배를 탄 거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하아. 그럼 저는 다시 정원 일 하러 가 보겠습니다.”

세바스찬이 이런 에탄의 모습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세바스찬 할아버지! 고마워요!”

그때. 아린이 세바스찬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서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아린의 밝은 인사에 세바스찬의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도련님이랑 즐겁게 지내시면 그걸로 저는 만족합니다.”

그 후 인자한 목소리로 말을 끝마치고는 에탄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타탁.

이어서 다시 정원 한가운데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빠.”

그렇게 세바스찬이 멀어지자 아린이 에탄을 빤히 쳐다봤다.

“저 잘했죠?”

그러면서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씨익.

에탄이 그런 아린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웃었다.

그 후 아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그래. 산책하러 가자.”

아린과 함께 첫 외출을 나갔다.

* * *

에탄과 아린이 가문을 나와 시장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대여서 그런지, 거리에 제법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얼른 자리 피하자.”

“여기 있으면 괜히 얻어맞겠어.”

“얼굴만 봐도 무섭다. 무서워.”

그리고 대부분의 영지민들이 에탄을 보고는 거리를 벌렸다. 칼리사르 가문의 망나니 에탄. 그 이름이 널리 퍼진 지 오래였으니까.

“그런데 저 아이는 누구지?”

“정말 예쁘장하게 생겼네.”

하지만 이런 이들한테도 아린의 외모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옆에 망나니 에탄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혹시 딸일까?”

“이 사람아. 그런 얘기 하지 마. 들리면 어떡하려고!”

“하지만 너무 비슷한걸….”

그래서 에탄의 자식일 거로 추측하는 사람부터.

가주의 늦둥이 딸일 거 같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

에탄이 그런 이들의 수군거림에 고개를 영지민들 쪽으로 향했다. 옛날 같으면 뭘 보냐면서 시비를 대뜸 걸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칼리사르 가문의 위신을 깎아 먹는 행위라는걸.

‘그리고 아린이 정서에도 안 좋아.’

게다가 지금은 아린이까지 옆에 있으니.

더더욱 행동 가짐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랑 물건이 엄청 많아요!”

아린이 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감탄했다.

에탄이 사전에 아빠라는 호칭을 붙이지 말라고 주의를 시켰기에 그 명칭은 빠진 상태였다.

“저기 저 빨간 건 뭐예요?”

“사과.”

“그럼 노란 건요?”

“바나나.”

“우아…. 신기하다.”

인간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걸까.

아린은 시장에 있는 여러 가지 상품들을 에탄에게 일일이 물어봤다.

그리고 에탄은 거기에 성실하게 답해 줬다.

원래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은 법이니까.

“저거는 뭐예요?”

그렇게 시장을 누비면서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아린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 후 한 가게 앞에 있는 아이의 손을 빤히 쳐다봤다.

토끼 인형 하나가 녀석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인형이라고 하는 거야. 정확히는 토끼 인형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

“우아….”

바로. 어린이들을 위한 토끼 인형이었다.

“으음….”

아린이가 토끼 인형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이 반짝반짝해진 걸 보니 처음 보는 인형이 퍽 신기한 모양이었다.

‘갖고 싶은 모양인가 보네?’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아린과 함께 인형을 파는 상점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에. 에탄 도련님. 여기는 무슨 일로….”

그러자 상점 주인이 에탄을 보고는 몸을 움찔했다.

툭하면 성질을 부리는 게 일상인 망나니가 왔으니, 그로서는 긴장이 되는 게 당연한 거였다.

에탄은 그런 상점 주인을 무시한 채, 아린에게 진열대에 있는 토끼 인형을 건네주었다.

“우와… 말랑말랑하고 하얗고, 폭신폭신하고 그때 세바스찬이 준 거랑 느낌이 똑같아요!”

“어떤 거?”

“…하얗고, 말랑말랑하고, 폭신한 거요.”

“혹시 푸딩을 말하는 거니?”

“네! 맞아요!”

“갖고 싶어?”

“어? 어… 아니요! 아린은 아빠하고만 있어도 돼요!”

“아니야, 갖고 싶으면 가져도 돼.”

에탄이 아린에게 싱긋 웃어 보인 후, 덜덜 떨고 있는 상점 주인을 향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토끼 인형 하나.”

동시에 세바스찬이 준 돈주머니에서 골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감…. 사합니다.”

상점 주인이 에탄이 내미는 돈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았다. 평소 같으면 돈을 내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아득바득할 그였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런 그의 눈에 에탄의 손을 잡은 아린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혹시?’ 하는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보는 순간.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 예.”

에탄이 그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상점 주인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가게에 있는 토끼 인형 하나를 아린에게 건네줬다.

“감사합니다!”

아린이 두 팔로 그걸 받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참 예쁘네.”

상점 주인이 아린이의 인사에 눈웃음을 지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질 정도로 아린이한테는 좋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에탄 도련님 손 꼭 잡고 돌아다녀야 한다?”

“네!”

“그래. 그래. 조심히 가렴.”

아린이 상점 주인의 말에 웃으면서 답했다.

그 후 한쪽 팔로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나머지 한쪽으로 에탄의 옷깃을 잡았다.

‘…누가 봐도 애 아빠처럼 보이겠구만.’

에탄이 그걸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아빠라는 호칭을 붙이지 말라고 했어도, 결국은 티가 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을 하는 것과 그렇게 보이는 건 다른 문제니 굳이 건들지는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이제 슬슬 그곳으로 가 볼까.’

에탄이 바깥으로 나온 이유인. 헤와른의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헤~”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는 아린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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