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외전 1화. 몰랐던 재능(1)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을 돌면서 성공적으로 월드 투어 콘서트를 마무리 지은 하니엘 멤버들.
한국으로 돌아왔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들의 복귀를 환영하기 위해 공항을 가득 채웠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기자들과 팬들이 그녀들을 맞이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카메라 소리와 함성들.
멤버들은 이제 이런 상황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인지,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제법 여유로워 보이는 반응을 펼쳤다.
팬들의 선물 공세를 받으면서 겨우 차에 도착한 멤버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긴장의 끈을 살짝 풀 수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리샤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살짝 높아진 체온을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
공항을 벗어나는 와중에도 그녀들이 탄 차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대기 중인 모습들이 보였다.
그만큼 하니엘을 향한 관심이 매우 뜨거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 시우가 혀를 내둘렀다.
“저희가 공항에서 찍힌 사진, 벌써 기사로 올라와 있네요.”
“어머, 진짜?”
“엄청 빠르시네.”
하니엘의 공항 패션이라는 표현과 함께 멤버별로 사진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이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멤버라고 하면 역시.
“연이 언니는 진짜 사진빨도 잘 받는단 말이야. 일부러 포즈를 취한 것도 아닌데. 그냥 가볍게 걷는 것도 어쩜 이렇게 예쁘게 나올 수가 있지?”
한 장 한 장이 다 화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이연은 자신의 공항 패션을 다루는 기사 전문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태도를 취했다.
머릿속에 온통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그렇다.
그러나 이연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은 고작해야 오늘 하루뿐.
내일부터 이연은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박도수 매니저와 같이 움직일 예정이었다.
마침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에게 내일의 일정에 대해 언급했다.
“내일은 행사 있는 거 알지?”
“……네, 알아요.”
행사라는 말에 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니. 무슨 행사 가는데?”
“게임 관련 행사라고 알고 있는데.”
이연은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을 대신해서 비아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슈팅 스타’라는 MMO 슈팅 게임이 있는데, 연이가 거기하고 콜라보 하기로 했거든.”
“그러면 연이 언니 캐릭터가 거기에 출시되는 거예요?”
“그렇지.”
“우와! 신기하다. 언니가 게임에 나오다니.”
그러나 이연은 크게 감흥이 없었다.
이연이 게임에 흥미를 느껴서 성사된 콜라보가 아니라, 게임사 쪽에서 이연에게 관심이 많아서 진행된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유입을 늘리기 위해 잘나가는 연예인을 섭외하는 건 마케팅 중에서도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대세 연예인이 누구냐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니엘이라고.
그러나 하니엘 멤버 전체를 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만들 수는 없었다.
역량 이전에 기간 문제도 있고.
그래서 게임사는 하니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연만 지명을 하기로 했다.
게임사 측에서 제안한 금액이 워낙 크고. 게다가 ‘슈팅 스타’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이다.
여기에 이연이 등장하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하니엘을 홍보할 수 있는 효과까지 누리게 되니까. LC 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이연 본인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얼마만큼 득이 되는지와는 별도로, 게임사한테서 콜라보 제안을 받은 거 자체가 처음이어서 굉장히 신선했다. 그래서 호기심에 한번 해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쌓을수록 그만큼 이 세계의 연예계 데이터가 늘어나는 거니까.
한편, ‘슈팅 스타’라는 게임 타이틀을 듣자마자 여솜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세상에! 콜라보 맺기로 한 곳이 그 게임이었어?”
“알아?”
“당연히 알지! 나, ‘슈팅 스타’ 완전 좋아하잖아!”
여솜이 최근에 모바일로 하는 게임에 푹 빠져 있다는 건 멤버들도 알음알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게임이 이연이 계약 맺은 게임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다.
“나중에 연이 캐릭터 나오면, 내가 꼭 뽑을게!”
이연은 후후 미소 짓는 여솜의 모습이 음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솜이 조종하는 이연.
묘한 느낌이 풍겼다.
* * *
다음 날.
원래는 이연 혼자만 게임 행사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게임사가 여솜이 ‘슈팅 스타’ 고수라는 걸 뒤늦게 접했는지 추가로 그녀까지 섭외 가능하냐는 문의를 건네 왔다.
일이 하루 전날에 갑자기 추진되었지만, 여솜은 흔쾌히 승낙했다.
어차피 행사가 열리는 당일 일정도 없고.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과 좋아하는 이연을 한 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데. 거절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결과, 이연은 졸지에 여솜과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그래도 여솜이라는 든든한 조력자 덕분에 이연은 게임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에 ‘슈팅 스타’라는 게임이 어떤 건지 대략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100명이 모이면, 바로 게임이 시작되거든? 처음에는 비행기 타고 맵 위를 이동해. 여기서 낙하 버튼을 누르면, 자신이 원하는 맵에 떨어질 수 있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데?”
“여기서 총이나 아이템 같은 거 파밍하면 돼. 다른 플레이어 만났다 싶으면 바로 죽이면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네가 파밍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마지막까지 생존하면 네가 1등으로 우승하는 거야. 어때, 간단하지?”
결국 아이템을 구해서 끝까지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방식 자체는 굉장히 간단하다.
하지만 플레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맵이 점점 좁아지거든. 이거 피해서 움직여야 되니까 어떤 길로 이동할지도 잘 선택해야 해. 간혹 보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숨어 있다가 저격해서 죽이는 유저들도 있거든.”
“어렵네.”
“근데 몇 번 해보다 보면 금방 감이 잡힐 거야. 너는 머리 좋으니까. 어쩌면 나보다 더 높은 등급까지 올라갈 수 있을걸?”
피지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수 싸움이다.
두뇌 플레이나 게임 센스가 따라주지 않으면 100명 중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건 꽤나 어렵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몇 번 플레이하던 이연의 머릿속에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이거는 모바일로만 할 수 있는 거야?”
“아니. PC도 가능해. 근데 모바일 버전은 최근에 업데이트되었어.”
“그래? ……아, 죽었네.”
게임에 집중했어야 했는데. 여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니 타 플레이어에게 그대로 저격을 당해버렸다.
죽었다는 이연의 말에 여솜이 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몇 등인데?”
이연은 ‘슈팅 스타’를 거의 플레이해보지 않았다.
높아봤자 90등 정도 하지 않았을까. 여솜은 그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2등 했어. 마지막에 숨어 있는 걸 내가 못 봤네.”
“……어? 자, 잠깐만. 2등이라고?”
“응.”
아무리 초보자들만 모인 방이라고 해도, 단번에 2등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100명이 매칭되는 게임이다 보니 그중에 10명 정도는 고수가 늘 끼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연은 지금이 거의 첫 플레이나 다름없다.
말 그대로 2등도 굉장히 잘한 셈이었다.
게임 결과를 나타내는 창을 보고 나서야 여솜은 이연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이연이 게임을 해보면 잘할 거 같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연아. 너, 이러다가 프로게이머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것뿐이야.”
과연 정말로 운일까?
여솜은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난생처음으로 게임 관련 행사장에 와본 이연은 여러 차례 눈을 의심했다.
가장 놀란 것은 행사 규모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행사장도 굉장히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장 안도 모자라 아직까지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게임사들 역시 부스를 차려 사람들을 맞이했다.
속으로 크게 놀라는 이연과 달리, 여솜은 예상했던 그대로라는 듯이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많이 올 거 같았는데. 역시나였네.”
“오늘 무슨 날이야?”
하니엘 말고도 엄청 유명한 게스트들이 몇몇 더 온다고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여솜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이연의 추측을 부정했다.
“이 게임 행사는 매년 열리는데, 열릴 때마다 사람들 엄청 몰려.”
“그래? 신기하네.”
이연은 게임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다 보니 행사에 관한 것 역시 문외한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경험 덕분에 이연의 머릿속 세계관이 한층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태프가 이연, 여솜이 있는 대기실을 찾았다.
“10분 뒤에 이벤트 시작할 테니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전에 이연은 물로 가볍게 목을 축인 뒤에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용모를 다시금 살폈다.
게임 콘셉트에 어울리게 의상도 나름 밀리터리 룩으로 꾸미고 와 봤는데. 사람들이 과연 좋게 봐줄지 어떨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이연과 여솜이 무대로 향하는 계단에 들어섰다.
MC가 관객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의 게스트! 이연 씨와 여솜 씨를 보셔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이연과 여솜이 게스트 자격으로 무대에 오르자,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행사장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조차 큰 박수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쳐다볼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하니엘의 이연.”
“여솜입니다. 반갑습니다!”
두 여신의 등장에 사람들의 환호성 또한 배로 커졌다.
MC가 먼저 여솜에게 물었다.
“여솜 씨는 평소에도 게임을 즐겨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같은 동료인 이연 씨가 콜라보 캐릭터로 출시되잖아요. 어떻게 보시나요?”
“너무 좋죠! 모델링 공개되자마자 ‘이건 무조건 사야 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른 업데이트되었으면 좋겠어요.”
“개발진이 열심히 힘내주실 겁니다. 이연 씨는요? 본인의 캐릭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연도 여솜과 비슷한 소감을 펼쳤다.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이따가 이연 씨가 직접 본인의 캐릭터를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해 볼 텐데. 자신 있으신가요?”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해볼 테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좋습니다! 그럼 자리로 이동해 주세요!”
먼저 게임을 플레이해 보고. 그다음 토크를 이어가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이연과 여솜.
두 여성의 시점이 양쪽 모니터에 펼쳐졌다.
게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우와……!”
“저, 저게 뭐야?”
이연의 플레이 화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