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에필로그
시간이 흘러.
하니엘은 어느새 데뷔 3년 차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제도 어김없이 숙소에서 멤버들과 같이 하루를 보낸 이연은 광고 촬영을 위해 혼자서 아침부터 일찍 움직여야 했다.
촬영감독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네, 좋습니다! 지금 그 표정 그대로!”
찰칵!
“몸만 약간 왼쪽으로 틀어주실 수 있을까요? 오! 그 각도 괜찮네요.”
또 한 번 찰칵!
셔터 누르는 소리가 한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른 새벽부터 이어진 촬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으면서 끝까지 촬영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강철 체력에 스태프들조차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
“이연 씨, 진짜 대단하시네요.”
“다른 스타분들은 2시간쯤 지나면 힘들어서 쉬었다가 다시 하고. 또 쉬고. 이게 계속 반복되는데. 이연 씨는 오히려 더 해도 괜찮다고 하니까 저희가 먼저 지칠 뻔했어요.”
이연은 스태프들의 말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프로니까요.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하죠.”
게다가 이다음, 멤버들과 다 같이 라디오에 출연해야 하는 일정이 잡혀 있어서 최대한 빨리 촬영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이연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예정보다 30분 이른 시간에 모든 광고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곧바로 차를 타고 이동한 이연은 방송국으로 향했다.
박도수 매니저가 앞장서 걸어가며 이연에게 물었다.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 난 잠깐 카페 들러서 커피라도 사 갈게. 너는 먼저 가 있어도 돼. 스튜디오는 어디인지 알지? 지난주에 우리가 라디오 촬영했던 거기.”
“네, 알고 있어요.”
“오케이. 아, 너는 뭐 마실래?”
“전 아메리카노요.”
“오케이. 멤버들한테는 내가 톡으로 물어봐야겠다. 그럼 이따가 보자.”
박도수 매니저를 먼저 보낸 이연은 혼자서 스튜디오를 향해 걸어갔다.
스튜디오 안에 들어서자, 하니엘 멤버들과 최공예 코디. 그리고 작년부터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서브 매니저로 활동 중인 도현욱이 이연을 반겼다.
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연의 주변을 살폈다.
“매니저님은? 커피 사러 가신 거야?”
“어. 아까 너희한테 뭐 마실지 톡 보낸다고 했는데. 확인 안 했어?”
“어머, 몰랐네.”
그제야 멤버들이 뒤늦게 톡방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오늘 라디오 진행을 맡은 여배우, 강라은이 그녀들 앞에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희, 오늘 처음 뵙는 거죠?”
“네, 맞아요!”
멤버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하니엘이 아이비제이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 그룹이라고 불리는 반면, 강라은은 대중들 사이에서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로 인정받고 있었다.
아이돌 못지않은 빼어난 미모와 압도적인 연기 재능을 겸비한 강라은.
이연은 왠지 그녀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분명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녹음이 시작되기에 앞서서 하니엘 멤버들과 강라은은 서로 모여 대본을 확인했다.
방송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그녀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부스 안으로 이동했다.
부스 밖에서 PD가 신호를 줬다.
3, 2, 1.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들을 다루는 강라은의 이슈 포커싱.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진행을 맡은 배우 강라은입니다.”
보이는 라디오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강라은은 일부러 카메라와 시선을 맞춰 인사를 건네는 행동을 취했다.
“오늘은 굉장히 특별한 분들을 모셨는데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분들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장안의 화제죠?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걸 그룹, 하니엘을 소개합니다! 어서 오세요!”
“둘, 셋!”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천사, 하니엘입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온 단체 인사를 펼쳤다.
강라은은 에너지 넘치는 후배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하니엘 여러분들이 오시니까 스튜디오도 화사해지는 거 같네요. 꽃밭에 온 기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여기가 꽃밭이라면, 선배님이 가장 예쁜 꽃이지 않을까요?”
리샤의 접대 멘트에 강라은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봤는데, 이번에 위클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소감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어느 분이 말씀해 주실까요?”
“이런 건 저희 리더가 전문이거든요.”
“맞아, 맞아.”
이미 대본에도 이연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연은 거부감 없이 입을 열어 머릿속에서 미리 생각해 둔 소감을 읊었다.
“늘 저희 편이 되어 응원해 주시는 팬 여러분들에게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팬 여러분들의 지지와 성원이 없었더라면, 저희가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걸 그룹 최초로 위클 어워드 후보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시상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할 테니, 끝까지 응원 부탁드릴게요.”
“잘 부탁드려요!”
멤버들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연의 소감에 조금씩 힘을 보탰다.
이제 데뷔 3년 차라서 그런 걸까.
단 한 번의 불협화음도 없이 꾸준하게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온 하니엘이라서 그런 걸까.
대본에 없어도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위클 어워드 말고도 하나 더 축하할 일이 있다고 하던데요.”
강라은이 운을 띄우자, 이번에는 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멘트를 이어받았다.
“이번에 저희가 처음으로 월드 투어 콘서트를 열기로 했거든요. 첫 투어는 미국으로 정해졌어요.”
“좋네요. 미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는 가수가 흔치 않은데. 이미 티켓도 다 팔렸다면서요?”
“네. 예매 페이지 열리자마자 다 나갔다고 들었어요.”
“어때요. 평소에도 인기를 많이 실감하시나요?”
강라은의 질문에 여솜과 시우가 차례로 답했다.
“네. 저는 엄마가 주변에서 딸내미 사인 좀 받아달라고 요청 들어왔다는 말 들을 때마다 실감하곤 해요.”
“저도 여솜 언니하고 비슷해요. 대신에 저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지만요.”
자식 자랑은 부모에게 있어서 패시브 같은 거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어떤가요?”
유키를 겨냥한 질문이었다.
이에 응하듯 유키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콜라보 상품도 나올 때마다 품절이고. 저는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인기를 많이 끄는 거 같더라고요.”
“하니엘 열풍은 전 세계 공통 현상이네요. 저희도 계속해서 하니엘 여러분들의 활약을 응원할 테니까요, 앞으로도 더 힘내주세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대선배의 응원에 하니엘은 몸 둘 바를 몰랐다.
* * *
위클 어워드 시상식, 그리고 월드 투어의 첫 시작을 알릴 미국 콘서트 일정 등을 소화하기 위해 하니엘은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여러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난 뒤라서 그런지, 멤버들은 출발하기 전부터 피곤함에 휩싸였다.
그러나 몸이 피곤할 뿐이지, 마음까지 피곤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대표 걸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미국행에 오른 만큼, 대중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고 돌아오겠다는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연 역시 멤버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밟아본 적 없는 무대.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첫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머릿속으로 미국에서의 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하기로 했다.
‘먼저 위클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하고. 5일 동안 콘서트 준비하면 되겠네.’
콘서트 준비에 몰두하기 위해 위클 어워드를 제외하고 모든 스케줄을 빼둔 상태였다.
방송도 좋지만, 하니엘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서 찾아오는 팬들을 만족시킬 만한 무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보니 어느새 미국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로 이동해서 하룻밤 잠을 청한 그녀들은 오후 2시에 호텔을 나서 위클 어워드 시상식 현장으로 향했다.
티비에서만 보던 유명 팝 스타들을 여기저기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낯선 환경 앞에서 하니엘 멤버들은 금세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이연은 당당했다.
“어깨 펴. 우리들도 여기에 정식으로 초청받고 온 거니까.”
이연 덕분에 멤버들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 * *
시상식 현장에 참가한 그녀들.
발표가 거듭될수록, 긴장감은 더욱 상승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싶을 무렵.
Album of the Year 차례가 되었다.
위클 어워드 본상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부문이기도 했다.
“올해의 앨범상 주인공을 발표하겠습니다!”
“수상 앨범은 바로……!”
시간이 잠시 멈춘 것처럼 현장이 정적에 휩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주인공이 밝혀졌다.
“하니엘, ‘move forward’입니다!”
“Congratulations!”
하니엘이 최근에 발표한 앨범, ‘move forward’가 Album of the Year 부문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멤버들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시상대에 올라섰다.
소감은 이번에도 그렇듯 이연이 대표로 맡았다.
“저희 앨범을 사랑해 주신 모든 팬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 자리에 오기까지 큰 도움을 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는 저희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따로 드릴게요. Thank you very much!”
이연의 언어 정도면 소감 전체를 영어로 소화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한국말을 하다가 마지막만 영어로 꾸몄다.
한국 걸 그룹 최초로 시상대에 오른 거니까. 소감도 한국말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녀들.
오늘 밤은 하니엘 멤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하루가 되었다.
* * *
위클 어워드에서 대한민국 가요계에 커다란 획을 그은 하니엘.
그녀들은 또 한 번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위해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하니엘이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지는 날이다.
이 순간을 위해 멤버들은 끊임없이 연습을 거듭해 왔다.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입장이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대기실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에 따라 멤버들의 심장도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스태프가 하니엘 멤버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을 방문했다.
“5분 뒤에 시작할 테니까 준비해 주세요!”
“네!”
서울에서 열렸던 단독 콘서트 이후. 그보다 더 큰 스케일로 다시 한번 무대에 서게 된 그녀들은 긴장감을 뿌리치면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이때.
이연이 그녀들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았다.
“파이팅 하고 가자.”
이연이 먼저 파이팅을 제안한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멤버들은 고개를 힘 있게 끄덕이면서 이연을 따라 손을 모았다.
“하나, 둘, 셋!”
“하니엘, 파이팅-!”
기운찬 그녀들의 외침에 따라 스태프들의 응원 박수가 쏟아졌다.
계단에 들어선 이연은 인이어 위치를 재조정한 뒤에 가장 먼저 무대를 향해 걸음을 뗐다.
여태껏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무대를 찾기 위해.
이연의 노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