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95화 (294/299)

295화

제84화. 완벽한 무대(2)

넓게만 느껴졌던 리프 스카이돔 콘서트 현장이 어느 순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만석이다.

아주 잠깐 복도를 통해서 밖의 풍경을 확인하고 온 비아와 유키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대기실로 돌아와 언니들에게 외쳤다.

“지금 밖에 난리 난 거, 못 보셨죠?”

“언니들도 봤어야 했는데. 장난 아니야! 나, 태어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거 처음 봤어!”

다른 가수들 콘서트 현장에서도 이렇게까지 수많은 인파가 몰렸던 장면을 본 기억이 없었다.

심지어 그 주인공이 자신들이라고 하니까 비아는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 아닌 꿈처럼 느껴졌다.

“우미 언니도 보고 올래? 내가 사람들한테 안 들키고 몰래 보고 올 수 있는 장소 발견했는데.”

비아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우미는 고민 없이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괜찮아.”

“왜? 보고 오면 동기부여도 되고. 좋잖아.”

“오히려 더 떨릴 거 같아서 그래.”

비아나 유키처럼 긴장을 흥분으로 바꾸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미처럼 긴장에 더한 긴장을 느끼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다.

각자 성격이나 스타일이 다르니까.

이연은 머리끝까지 흥분한 비아와 유키를 향해 진정하라는 신호로 손짓을 펼쳤다.

“감독님이 오셔서 세트 리스트 다시 짚어주실 거라고 했으니까 앉아 있어.”

두 사람은 이연의 말대로 얌전히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기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니엘의 첫 단독 콘서트를 총괄하게 된 무대감독이 대기실에 들어와 이연이 말한 대로 세트 리스트에 대해 언급했다.

“첫 곡은 ‘HUG’로 갈 겁니다. 등장은 백댄서들 따로, 하니엘 따로. 이렇게 나뉘는 거 알고 있죠?”

“네!”

“백댄서들은 미리 무대로 올라가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멤버 분들은 무대 아래에서 시간 되면 리프팅으로 올라갈 거예요. 반주 나오면, 리허설 때 맞췄던 동선 그대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그전에 혹시 모르니까 음향 체크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진행할 거고요.”

걸파이트 시즌 2 때 음향 사고를 반복해서 당했던 게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이연은 음향 쪽에 특히 더 신경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연에게 있어서 오늘의 무대는 걸파이트 시즌 2 파이널 때보다도 중요하니까. 그만큼 꼼꼼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이건 이연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이다.

기사가 여럿 나올 정도로 많은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하니엘의 콘서트가, 고작 음향 트러블로 인해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자명한 일이었기에 스태프들은 하니엘 멤버들보다도 더 긴장한 상태로 콘서트 준비에 임하는 중이었다.

“중간에 이연 씨 솔로곡 있죠? 채린 씨가 연주할 피아노 설치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때 퍼플피플 팀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거죠?”

“예. 맞습니다.”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하는 동안 관객들에게 아무것도 안 하고 텅 빈 무대만 보여줄 수는 없다.

그래서 은서해 트레이너가 이끄는 퍼플피플 크루가 하니엘의 히트곡들을 리믹스한 곡으로 짧게 댄스 공연을 펼치기로 했다.

하니엘의 모든 안무들을 담당한 사람이 은서해다 보니 팬들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연을 보여줄 거라고 관계자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짧은 브리핑을 마친 뒤, 무대감독은 스태프들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콘서트 시작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전에 최공예 코디가 멤버들을 불렀다.

“시작하기 전에 단체 사진 한번 찍어야지. 얼른 모여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멤버들이 최공예의 손짓에 따라 한자리에 모였다.

리샤가 또 한 사람을 추가로 불렀다.

“매니저님도 일로 오세요.”

“난 괜찮아. 내가 사진 찍어줄 테니까 잘 서봐.”

근처에 있던 다른 스태프가 박도수 매니저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사진은 제가 찍어드릴게요. 매니저님도 같이 찍으세요.”

하니엘이 데뷔할 때부터. 아니, 데뷔하기 전부터 함께 해왔던 사람이 바로 박도수 매니저다.

회사 관계자들 중에서 그녀들에 대해 잘 알고,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 붙어 있던 박도수 매니저가 단체 사진에서 홀로 빠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박도수 매니저가 어정쩡하게 자세를 잡자, 멤버들이 웃으면서 그의 긴장을 풀어줬다.

“매니저님, 표정이 그게 뭐예요!”

“여권 증명사진 찍을 때에도 그렇게는 안 할 거예요. 좀 웃어보세요.”

“이, 이렇게?”

박도수 매니저가 어설프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직책이 매니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카메라와 친한 건 아니었다.

그의 역할은 카메라 뒤에서 연예인을 서포트하는 것이다.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거의 없다.

이렇다 보니 표정이 절로 경직되었다.

하니엘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의 이런 모습에 또 한 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매니저의 희생 덕분에 그녀들의 얼굴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소리가 끝나자마자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결과물을 확인했다.

다들 잘 나왔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박도수 매니저만 빼고.

그렇다고 다시 재정비를 하고 사진을 찍기에는 시간이 없었기에 그냥 이대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쉬워하는 박도수 매니저를 위해서 여솜이 다음을 기약하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콘서트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사진 한 번 더 찍어요. 그때는 꼭 자연스럽게 웃으셔야 해요. 아셨죠?”

“글쎄. 그때는 다른 의미로 못 웃을 거 같은데.”

“왜요?”

대답하기 애매한 모습을 보이는 박도수 매니저 대신 최공예 코디가 답했다.

“너희 콘서트 보면서 울지도 모르니까. 이 오빠가 은근히 심성이 여리거든.”

“쉬잇!”

박도수 매니저가 조용히 하라고 최공예 코디의 입을 막아보지만, 한번 흘린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멤버들은 작게 웃으면서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최공예 코디가 말한 것처럼 기쁨의 눈물을 흘릴 만큼 만족스러운 콘서트가 되기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바라고 있었다.

* * *

누나의 첫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권민준은 친구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린 탓에 제대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의외의 조력자가 나타난 덕분에 권민준의 이런 고민은 말끔히 해결되었다.

“민준아, 여기!”

양우섭이 오른손을 흔들면서 이쪽으로 오라고 어필했다.

워낙 키가 크고, 팔도 다리도 길어서 그런지 멀리서도 양우섭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여기 자리 많아. 와서 앉으면 돼.”

가족과 지인들만 앉을 수 있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권민준 일행은 크게 고생할 것 없이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역시 형밖에 없어요.”

“이런 걸 가지고 뭘.”

권민준의 친구들과도 짧은 인사를 나눈 양우섭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권이연의 어머니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게. 어머, 못 본 사이에 더 잘생겨졌네.”

“아, 아닙니다. 직원들은 저 볼 때마다 다크서클만 늘어난다고 막 놀리고 그러는 걸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후계자 교육과 더불어서 그에게 할당된 업무까지 동시에 소화하려고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양우섭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이연의 어머니가 양우미, 양우섭의 어머니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사모님은 잘 계시지?”

“예. 안 그래도 여기 콘서트 장에 오고 싶어 했는데, 며칠 전에 아버지하고 같이 미국으로 출장 가셨거든요. 이연 씨 보고 싶었는데 못 봐서 너무 아쉽다고 그러셨어요.”

김정아 부사장은 아직도 이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며느리로 꼭 데려 오겠다고 여전히 의지를 불태우는 중이었다.

양우섭도 어머니가 보이는 욕심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

요즘도 그와 이연을 자꾸만 엮으려고 노골적으로 행패(?)를 부리고 있는 중이니까.

양우섭은 한편으론 오히려 자신의 어머니가 이곳에 안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있었으면 이연의 어머니를 보자마자 분명 ‘사돈 오셨어요?’라고 물었을 게 뻔하니까.

양우섭이 이연의 어머니와 서로 근황을 묻는 동안, 권민준은 친구들과 같이 누나를 응원하기 위해 챙겨 온 도구들을 세팅했다.

양우섭의 관심이 덩달아 그들에게 쏠렸다.

“이건 뭐야?”

권민준 대신 주형운이 답했다.

“하니엘 데뷔 초 때 공식 팬 카페에서 팔았던 응원 굿즈들이에요. 첫 곡으로 ‘HUG’가 나온다고 했으니까, 첫 응원 도구는 이걸로 미리 세팅해 두려고요.”

“같은 응원 도구를 계속 사용하는 게 아니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각 곡마다 제각각 다른 사연들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 맞춰서 저희도 도구나 콜을 바꿔가야죠!”

양우섭 본인도 나름 하니엘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돌 박사이자 하니엘바라기인 주형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심지어 가짓수도 굉장히 많았다.

“이런 것도 팔았었나?”

양우섭이 못 보던 굿즈를 가리키며 묻자, 주형운은 신이 난 듯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건 2집 앨범 발매했을 때 같이 팔았던 한정 굿즈입니다. 가지고 있는 사람도 얼마 없을 걸요? 딱 500개만 팔았거든요. 지금은 프리미엄이 엄청 붙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사요.”

보물을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게 만지는 주형운의 모습을 보면서 양우섭은 자신의 부족함을 여실히 깨달았다.

“오늘 이 친구한테 많이 배워야겠네.”

양우섭의 말에 권민준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얘가 평소에는 조용한데. 아이돌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완전히 돌아가요.”

특히 하니엘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권민준도 주형운을 말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형운은 양우섭에게도 응원용 굿즈를 건네면서 그를 재촉했다.

“이제 곧 시작할 거니까 얼른 준비해 주세요. 인박이도 이거 받고. 아주머님! 아까 응원봉 하나 달라고 하셨죠?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 형운아.”

아이돌 문화와는 거리가 먼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의 어머니는 능숙하게 응원봉을 집어 들었다.

응원봉 불빛 나오는 순서까지 체크를 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한창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든든한 지원군이 합류했다.

“민준아!”

“혜영 누나! 그쪽으로 넘어오시면 돼요.”

“응, 알았어.”

이연의 중학교 동창 친구, 유혜영도 권민준 일행과 합류했다.

주형운 못지않게 능숙한 모습으로 응원 준비를 서두르는 유혜영.

양우섭 역시 뒤처질 수 없다는 기세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내의 불이 모두 꺼졌다.

이와 동시에 객석에서 기대에 가득 찬 함성 소리가 퍼졌다.

잠시 후, 하니엘의 역사적인 첫 단독 콘서트를 알리는 반주가 흘러나왔다.

이연을 응원하기 위해 온 이들 또한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시간이 마침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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