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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90화 (289/299)

290화

제83화. 어려운 결심(2)

주방에서 능숙하게 요리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은솔은 꽤나 놀랐다.

예전부터 이연이 요리를 곧잘 하는 편이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식당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것도 꽤나 어울렸다.

“이 가게는 어떻게 빌린 거야?”

“제 친구가 이곳 사장님이거든요.”

“진짜? 아까 알아보니까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던데. 여기 사장님, 굉장히 젊은 분이셨구나.”

이연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이은솔이 먹을 걸 열심히 준비하는 이연.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은솔은 오늘 아침부터 열심히 외출 준비를 한 보람을 느꼈다.

지금의 이 장면은 그 어떤 채널에서도 볼 수 없다.

오직 이은솔만 시청할 수 있다.

메뉴가 뭔지는 굳이 안 물어봐도 알 것 같았다.

안심 스테이크, 매쉬드 포테이토, 연어 샐러드, 그리고 해물이 잔뜩 들어간 크림 파스타까지.

이곳이 양식 가게라서 그런지 이연이 준비하는 점심도 여기에 맞췄다.

“다 됐어요, 선배님.”

이연이 직접 서빙까지 맡으려고 하자, 이은솔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도왔다.

“옮기는 건 도와줘도 되지?”

이연은 어색한 미소를 띠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은솔이 그녀를 돕기 위해 몇 차례나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었지만, 이연한테서 ‘앉아 계셔도 돼요’라는 말만 듣고 말았다.

오늘은 이은솔에게 보답하기로 한 날이니까.

그런데 정작 그에게 도움을 받으면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음식 준비만큼은 이연이 혼자서 도맡으려고 했다.

이연이 손수 만든 음식들이 하나하나씩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다.

맛은 과연 어떨까?

수많은 음식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입맛을 단련해 온 이은솔이 직접 판정에 들어갔다.

스테이크 조각에 매쉬드 포테이토를 살짝 얹어 맛을 봤다.

한참을 우물거리던 이은솔은 만족하는 표정으로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스테이크 중에서 가장 훌륭해.”

“그 정도까진 아닐 거예요.”

“아니야,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하는 말이야. 나중에 가게 하나 차려도 되겠는데?”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선배님.”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행복한 일은 자신의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다.

이은솔은 마치 며칠 굶은 사람처럼 빠른 속도로 이연이 준비한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카메라도 없고.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을 다수의 스태프들도 없다.

오롯이 이연과 단둘뿐이다.

이 점 또한 이은솔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이연도 이은솔과 같은 기분이었다.

“저 연습생일 때만 하더라도 선배님하고 이렇게 단둘이 불 꺼진 식당에서 밥 먹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도 그래.”

시간상으로는 그렇게 오래 흐른 건 아니다.

그럼에도 뭐랄까.

이연과 이은솔. 두 사람은 마치 5년, 10년을 알고 지내온 인연처럼 서로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왜일까?

그 이유에 대해 이연은 이렇게 생각했다.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많은 것들을 경험해서 그런 게 아닐까.

연예인은 예능이라는 목적하에, 혹은 드라마나 영화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여러 차례 겪을 수 있다.

그걸 이은솔과 몇 차례 같이 하다 보니 서로 동지애가 생겼다.

물론 이은솔이 품은 감정은 동지애 이상의 것이지만, 아직 이연 앞에서 직접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냈던 적은 없었다.

식사를 마치자, 이연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디저트 가져올게요.”

“디저트도 준비했어?”

“네. 예전에 우미 언니하고 여솜이가 대전으로 촬영 간 적 있었거든요. 그때 망고맛 아이스크림 사 왔었는데, 선배님한테도 꼭 맛보게 하고 싶었어요.”

안 그래도 기름진 걸 먹어서 속을 달래줄 게 필요했는데.

딱 어울리는 디저트를 가져온 이연 덕분에 이은솔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전히 앞치마를 착용한 채 홀과 주방을 종종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는 이연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보였다.

이은솔이 앞치마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제는 그거 벗는 게 어때?”

“아…… 죄송해요. 아직도 걸치고 있는지 몰랐어요.”

낯선 환경에서, 그것도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요리를 하려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이은솔은 이연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한편으로는 행복했다.

“콘서트 준비는 잘되고 있어?”

“네. 첫 콘서트라서 그런지 멤버들도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어요.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고요.”

“장소 듣자마자 오 대표님이 너희 콘서트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계신지 알겠더라. 거기 스카이돔, 장소 잡기도 꽤 어렵거든. 우리도 거기서 몇 번 콘서트 해봐서 아는데. 아마 회사가 고생 좀 했을 거야.”

이연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들도 이은솔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이연이 음악적으로 대단한 재능을 품고 있다 할지라도, 다른 세계에서 가수 활동을 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모르는 게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에 이은솔이 이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이연은 콘서트 장소 섭외에 관해서 거의 모른 채로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이전 곡들 다시 안무 맞춰보려고 하니까 힘들지 않아?”

“저는 괜찮은데, 멤버들은 가끔 그렇게 보일 때가 있어요.”

“이게 앨범이 한두 개 쌓였을 때에는 괜찮은데. 두 자릿수에 육박하면 그때부터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지더라. 얼마 전에 캐리 원 애들, 생방송 무대에서 방송사고 터뜨렸잖아.”

“네. 생방송은 못 봤는데, 기사는 봤어요.”

멤버 중 한 명이 불과 1주일 전, 캐리 원의 초창기 곡 퍼포먼스를 선보이다가 안무 실수를 저질러서 기사가 몇 개 뜬 적이 있었다.

당시의 장면이 떠올랐는지, 이은솔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동안 그거, 인터넷에 계속 밈처럼 쓰일 거 같더라. 엊그제 연락해 보니까 ‘선배님, 쪽팔려 죽겠어요’라고 얼마나 하소연을 해댔는지 몰라.”

한 번의 실수가 영원히 기록으로 남아 인터넷에 떠돌 수 있다.

이래서 이연도 하니엘 멤버들에게 무대에 올라서기 전에 실수해도 티내면 절대로 안 된다고 늘 강조하곤 한다.

“어떤 사람이 인도 음악이랑 섞어서 실수하는 장면이랑 절묘하게 합성했던데. 그거 보니까 남 일 같지가 않더라.”

“다들 조심해야죠.”

대중들 앞에 서는 게 일이다 보니 이런 리스크는 언제든 감수해야 한다.

이연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쭉 아이돌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우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응, 언니. 아, 그 곡은 찐 프로님이 다시 믹싱해서 넘기겠다고 했어. 언니가 기억한 그거 맞아. 아니야,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 우리도 막 식사 끝냈으니까. 지금은 언니가 사준 그 아이스크림 먹고 있어.”

맞은편에서 이은솔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고마워, 우미야. 잘 먹을게.”

-네, 선배님! 맛있게 드시고 나중에 또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안 그래도 멤버들이 또 먹고 싶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대량 주문하려고 하거든요. 선배님 것도 같이 포함해서 주문할게요.

“그러면 나야 좋지. 알았어. 꼭 말해줄게.”

-네. 연이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요!

‘즐거운 시간’이라는 단어에 유독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과연 이은솔만의 착각일까.

그는 때아닌 고민이 들었다.

반면, 이연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 모양인지 이은솔에게 다음 일정에 대해 물었다.

“선배님. 음료 마실래요?”

“카페 가려고?”

“네. 저희 회사에 있는 카페가 좋을 거 같아서요. 거기라면 기자들도 못 들어올 테고. 그리고 회사 내에서 만나는 거니까 사람들이 크게 의심 안 할 거예요.”

“좋지.”

이연이 오늘을 위해서 나름의 루트를 짜온 노력이 보였다.

이은솔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운전은 걱정 말고 나한테 맡겨. 공주님처럼 안전하게 모시면서 다닐 테니까.”

이연은 공주라는 말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이은솔의 입을 통해 들으니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 * *

LC 엔터테인먼트 회사 내에 위치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오며 가며 만난 오채일 대표와 기타 회사 관계자들, 그리고 소속 아티스트들과도 추가로 인사를 나눴다.

기자들의 감시의 눈길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온전히 둘만의 시간에 집중하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이은솔이나 이연, 두 사람은 큰 불만이 없었다.

둘 다 워낙 잘 알려진 아이돌이다 보니 이렇게 근심 걱정 없이 마음껏 수다를 떠는 시간조차도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었다.

밤이 되기 전에 슬슬 돌아가야 했다.

“이제 가야겠네. 숙소까지 바래다줄까?”

“아니에요. 제가 따로 갈게요.”

“매니저님한테 연락하고 기다리고. 그래야 하잖아? 어차피 회사에서 숙소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바래다주겠다는 이은솔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연의 주장보다 이은솔의 말이 더 일리가 있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중간에 잠깐 멈춰서 이연만 내려주고 가면 그만이다.

이연과 함께 회사 주차장으로 향한 이은솔이 먼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런 뒤에 이연이 타기 쉽도록 차를 잠깐 앞으로 뺐다.

덕분에 이연은 옆 차 신경 쓸 것 없이 편하게 차 문을 열고 탑승할 수 있었다.

이은솔은 이런 사소한 배려가 돋보이는 남자였다.

그래서일까.

“선배님은 여자들한테 인기 많으시겠어요.”

“우리 좋아해 주는 팬들 성별을 따지고 보면 여성층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요. 선배님을 남자로 보시는 분들이 많을 거 같다는 뜻이었어요.”

이연이 먼저 이런 말을 꺼내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아니,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이미 좋아하는 여자 있어.”

“……그래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니엘의 숙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려주시면 돼요.”

이연의 말대로 이은솔은 비상 깜빡이를 켜고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차에서 내린 이연이 이은솔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바래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이은솔은 왠지 모를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꼈다.

이런 감정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용기로 바뀌었다.

“연아!”

“네.”

잠시 걸음을 멈춘 이연이 이은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주먹을 꽉 쥔 이은솔은 마침내 지금까지 꾹 눌러왔던 자신의 감정을 그녀에게 표출했다.

“내가 좋아한다던 그 사람. 너야.”

이연은 세상이 잠깐 멈춘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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