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제82화. 첫 단독 콘서트(3)
하니엘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점점 영향력을 뻗혀가고 있을 때.
아직까지는 그래도 벡스를 넘어설 만한 k-pop 스타는 없었다.
이번에 발표한 신곡 역시 각국의 음원 차트에서 줄 세우기에 나서며 대한민국 가요계에 또 다른 획을 그었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기삿거리가 된다.
벡스의 멤버 중 한 명인 이은솔도 마찬가지였다.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이은솔은 잠시 회사를 찾았다.
그의 올해 하반기 로드맵을 어떻게 잡을지 회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방향을 설정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 뼈대를 정해야 살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벡스의 소속사에서 일하고 있는 실장이 피곤함에 가득 담긴 이은솔의 표정을 보자마자 짧게 웃었다.
“빨리 끝내줄 테니까 표정 풀어.”
“정말이죠?”
“어. 대표님하고 대충 어떻게 할지 이야기 마무리 짓고 왔으니까. 너는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하고, 영 아니다 싶으면 솔직하게 말해주기만 하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벡스라는 그룹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인지도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업계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벡스는 소속사 대표가 아무것도 없던 연예 기획사 시절 당시부터 직접 운전하면서 업어 키운 보이 그룹이었기 때문에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보니 스케줄을 정할 때, 멤버들의 의사가 생각보다 많이 반영되는 편이었다.
대표를 포함해서 회사 중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는 의외의 인물도 섞여 있었다.
“어? 뭐야. 넌 왜 왔냐?”
강의찬이 태연한 표정으로 이은솔의 옆에 앉으며 답했다.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많이 남길래. 그래서 대표님한테 나도 회의 들어가면 안 되냐고 졸랐지.”
“니 일정 회의도 아니면서.”
“야. 우리는 가족이잖아. 안 그렇습니까, 대표님?”
대표가 강의찬의 주장에 허허 웃었다.
짧게 한숨을 내쉰 이은솔은 마음대로 하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이은솔의 입에서 또 한 번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쉴 틈이 없겠네요.”
24시간 1분 1초 단위로 스케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소속사 대표가 약간의 불만을 드러내는 이은솔에게 생각을 물었다.
“9, 10월은 뺄까?”
“네, 뭐…… 그때는 좀 쉬는 게 좋겠어요. 안 그래도 올해는 아예 날 잡고 몇 달 쉴까 생각했었거든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대신에 11월부터는 벡스 완전체 활동 기간이랑 겹치니까, 이때는 못 쉬어.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두 달 정도 쉬면 충분할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그 두 달 동안은 아무런 일정 안 잡는 걸로 하고…….”
이때, 중간에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그, LC 엔터테인먼트에서 아까 연락이 왔었는데요.”
“무슨 연락?”
“9월 중순에 콘서트 하나 기획하고 있다고, 거기에 게스트로 출연해 줄 수 있겠냐고 그러더라고요.”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안 돼. 게스트로 나가는 일도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괜히 어설프게 나갔다가 그날 콘서트 망쳐 버리면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안무 준비에 일정 조율까지. 여러 수고가 든다.
게다가 9월 중순은 방금 언급된 것처럼 이은솔의 재정비 기간에 딱 걸린다.
대표가 허락할 리 없었다.
한편, 이은솔은 콘서트라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겼다.
현재 LC 엔터테인먼트에서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는 가수 팀이 누가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딱 한 팀밖에 없었다.
“혹시 그 콘서트, 하니엘 말씀하시는 거죠? 네?”
“뭐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직 하니엘의 첫 단독 콘서트에 관한 기사도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디서 전해 들었거나. 이러지 않는 이상, 콘서트의 주인공이 하니엘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는 게 불가능하다.
이은솔의 즉각적인 반응에 강의찬이 웃음을 삼켰다.
“하여간 이연 씨에 관한 거라면 모르는 게 없네. 도사야, 도사.”
이은솔이 눈을 흘기면서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어흠!
한 차례 헛기침을 뱉은 이은솔은 하니엘 측으로부터 정식으로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는 말에 금세 태도를 달리했다.
“저, 그거 나가겠습니다.”
“방금 9월 달은 쉴 거라고 했잖아.”
대표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가한 관계자들 모두가 말을 바꾼 이은솔의 태도에 당황했다.
이은솔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아야 이 연예계가 더 따스해지지 않겠습니까.”
“그야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저는 괜찮으니까 게스트로 꼭 나가게 해주세요. 제 앨범 작업할 때보다도 더 열심히 준비할 테니까요.”
“아니, 그러면 안 되잖아. 우리 앨범에 더 신경 쓰라고, 요 녀석아.”
이상하리만치 의욕이 넘치는 이은솔의 모습에 대표는 마지못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내친김에 이은솔은 마침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강의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도 같이 출연할 거지?”
“나도?”
“친구 한번 도와줘라. 의찬아.”
강의찬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괜히 회의 참가하겠다고 했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 * *
오늘도 안무 연습실에서 콘서트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하니엘 멤버들.
중간에 박도수 매니저가 잠시 그녀들을 찾았다.
“길게 이야기할 건 아니고. 저번에 이연이가 그…… 이은솔 씨 이야기했었잖아.”
“혹시 거절하셨어요?”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가 말하기를 주저하는 모습에 불안감을 느꼈다.
“아니, 하겠다고 했어.”
“정말이에요?”
“어. 근데 변수가 하나 생겼는데.”
박도수 매니저가 왜 갑작스럽게 멤버들을 찾아왔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의찬 씨도 같이 출연하겠다고 하더라.”
“예? 강의찬 선배님도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매니저님?”
박도수 매니저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이런 걸로 니들한테 왜 거짓말을 하냐.”
하니엘의 첫 단독 콘서트는 LC 엔터테인먼트에서 사활을 걸고 준비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단순히 멤버들을 놀리자는 목적 하나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은솔뿐만 아니라 강의찬까지 같이 출연하겠다는 소식은 이연조차 예상 못 한 거였다.
“강의찬 선배님이 먼저 출연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아무튼 둘 다 나올 수 있다고 들었어. 너희는 어때? 괜찮지?”
하니엘 멤버들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냐며 박도수 매니저의 제안을 크게 반겼다.
“저희야 좋죠!”
“이은솔 선배님 나와주시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강의찬 선배님까지 오신다면 더 기쁜 일 아닌가요?”
벡스 멤버가 한 명도 아닌 두 명이나 올 수 있다니까. 이들 입장에선 당연히 호재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연은 어쩌다가 강의찬까지 콘서트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은솔이 강의찬을 열심히 꼬드겼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니, 확실하다.
‘나중에 고맙다고 연락해야겠네.’
이은솔은 이연에게 있어서 늘 치트키 같은 존재로 활약했다.
매번 그에게 도움만 받으면 미안하니까.
이번에는 이연이 이은솔에게 보답의 뜻으로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매니저님.”
“어. 왜?”
“혹시 이은솔 선배님에 대해 아는 거 있나요? 좋아하는 음식이라든지. 아니면 취미 같은 거요.”
“갑자기?”
“맨입으로 출연해 달라고 부탁하기에는 좀 그러니까요.”
이연은 그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했을 뿐인데.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지,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이연은 그녀들이 왜 이런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
“이상한 오해 하지 마.”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의 얼굴에 가득 깃든 미소는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 * *
LC 엔터테인먼트 내부에 위치한 안무 연습실에선 다양한 소속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위해 열심히 준비에 임하고 있었다.
이 중에는 SSS 시즌 2 파이널 무대 진출을 확정 지은 최솔림과 동서남북 팀들도 있었다.
“윤아야, 송연아.”
최솔림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두 사람을 불렀다.
“마실 거 다 떨어졌는데. 우리가 가서 사 오자.”
“알았어.”
“어디서 사 오게? 회사 매점?”
한송연의 물음에 최솔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은 내가 할게. 너희는 마실 거 같이 옮겨주기만 하면 돼.”
“됐어. 왜 너 혼자 계산하려고 해.”
“리더로서 애들한테 작게나마 뭔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우리, 2라운드 시청자 투표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회식할 틈도 없이 바로 3라운드 준비 들어갔잖아. 원래 내가 밥이라도 사주려고 했었는데. 이럴 때라도 사야지.”
다들 연습생인데다가 학생 신분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돈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보내주는 용돈이 전부다.
그러나 워낙 바쁜 탓에 이 돈을 쓰고 다닐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
강제로 저축에 성공한 최솔림이 두 사람을 재촉했다.
“얼른 갔다 오자.”
1층에 있는 매점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녀들의 앞에 때마침 이연이 나타났다.
그녀를 보자마자 세 여성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밤도 늦었는데. 어디 가는 거야?”
숙소로 돌아가려는 행색으로 보이지 않아서 물어본 거였다.
“매점에 잠깐 들르려고요. 선배님은요?”
“잠깐 이은솔 선배님하고 통화 좀 하려고.”
이은솔의 이름에 연습생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벡스의 이은솔 선배님이요?”
“어. 이번에 우리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와주기로 하셨거든. 너희도 들었지?”
“아니요. 저희는 아이비제이 선배님만 들었어요.”
원래는 MAYO가 게스트로 나오고 싶어 했지만, 해외 콘서트가 잡혀 버린 탓에 아이비제이에게 기회를 넘기고 말았다.
아이비제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게스트 출연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이비제이에 벡스. 이렇게 호화스러운 게스트 라인업에 과연 SSS 시즌 2 우승팀이 껴도 될지. 연습생들은 벌써부터 몸 둘 바를 몰랐다.
이연은 그녀들의 반응을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부담감은 우승하고 난 다음에 가지도록 해.”
“그, 그렇죠! 선배님 말씀이 맞네요.”
연습생들과 잠깐 더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던 때였다.
이연의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선배님이 전화 거셨네.”
이연이 먼저 하려고 했는데. 이은솔이 한발 더 빨랐다.
“슬슬 가볼게.”
“네. 들어가세요, 선배님!”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이연의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
잠깐 연습생들 쪽으로 다시 몸을 돌린 이연이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강조를 했다.
“이은솔 선배님하고 원래부터 가끔 이렇게 통화 주고받았어. 그러니까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지 마. 알았지?”
“네? 네. 알겠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선배님.”
“…….”
자기가 말하고도 민망해졌는지, 이연은 빠른 걸음으로 장소를 벗어났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