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제82화. 첫 단독 콘서트(2)
하니엘의 첫 단독 콘서트와 관련해서 여러 차례 미팅을 진행하는 동안, 여러 관계자들은 이연의 기획 능력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채일 대표뿐만 아니라 하니엘 단독 콘서트 준비를 총괄하게 된 공연 기획자, 무대 감독 등.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들조차 이연의 안목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디서 보고 들은 걸 그대로 미팅 때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 회의 시간 때마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무대 감독이 진심으로 놀란 모양인지 감탄사를 흘렸다.
“아니, 어떻게 여기서 리프팅을 활용할 생각을 다 했어? 생각도 못 했네.”
“조명도 그렇고. 확실히 이연이 말한 대로 세팅해 두면 무대 보는 맛이 더 살아날 거 같긴 하네요.”
“우리가 오히려 이연이한테 돈 주고 공연 기획, 연출에 대해서 배워야겠는데?”
그녀의 공연 관련 지식들은 이 나라…… 아니, 이 세계의 것들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이들 입장에선 이연의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굉장히 특이하고 재미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오채일 대표도 전문가 집단과 같은 생각이었다.
“오케이. 그럼 5번 무대도 이연이 거 아이디어로 갑시다.”
“예, 대표님.”
“어디 보자. 이제 세트 리스트 쪽으로 다시 넘어가서…… 마지막 곡을 어떤 걸로 할까?”
가수들과 함께 여러 차례 콘서트를 기획해 왔던 오채일 대표는 곡 세트 리스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번이 두 개 있었다.
콘서트의 시작을 알릴 첫 곡.
그리고 끝을 장식할 마지막 곡이다.
첫 곡은 하니엘의 데뷔곡이기도 한 ‘HUG’로 결정되었다.
시작과 데뷔. 이 두 단어가 지닌 의미가 서로 잘 부합된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이연도, 그리고 그동안 회의에 참가했던 다수의 관계자들 역시 이에 동의했다.
문제는 마지막 곡이다.
“‘Tug of war’는 어때요? 마지막은 뭔가 신나게 장식하면 좋을 거 같은데.”
“그것보다 저는 연이가 불렀던 솔로곡을 하니엘 단체 버전으로 새로 레코딩해서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데…….”
“발라드로 가자고요?”
“네. 신나는 곡도 좋지만, 관객들에게 마지막 여운을 남기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하니엘 곡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다 댄스곡이잖아요? 콘서트 내내 들썩이다가 마지막에 가서 잔잔한 발라드로 마무리. 이게 템포 조절 측면에선 더 좋지 않을까요?”
“나 트레이너님 말도 일리가 있네요.”
곡 순서는 무대 연출 못지않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어떤 곡들이 몇 번째 순서에 배치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콘서트의 분위기와 흐름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모두가 다 세트 리스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는 중이었다.
오채일 대표가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콘서트의 주인공, 당사자들의 생각이다.
회의 참가자들 역시 멤버들의 아이디어가 궁금했다.
이연이 대표로 이들에게 답했다.
“‘beyond’가 좋을 거 같습니다.”
멤버들은 이연의 말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끼리는 이미 마지막 곡을 beyond로 하자고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린 듯했다.
오채일 대표나 다른 회의 참가자들도 특별히 이견은 없었다.
beyond는 하니엘에게 있어서 많은 상징을 가지는 곡이기 때문이다.
여태껏 하니엘이라는 그룹으로 발표했던 곡 중에 가장 높은 성적을 보여준 곡이기도 하고. beyond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일본 활동도 개시할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이 곡은 이연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연의 음악적 취향이 거의 완벽하게 반영된 곡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그 나라의 정서나 문화 등을 고려해서 억지로 노래 일부를 바꿔야 하는 점 등이 빈번하게 있었는데.
beyond의 경우에는 그게 아니니까.
이연이 생각하는 완벽한 무대라는 조건에 가장 잘 부합되는 곡이기도 했기에 이 곡을 피날레로 선정하고 싶었다.
회의 참가자들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는 소리가 이연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잠시 후.
오채일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beyond’로 갑시다.”
회사의 수장이 이렇게 먼저 주장을 하는데. 대놓고 안 된다고 반기를 들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엔 없었다.
곡뿐만 아니라 무대 연출 쪽도 대부분 이연의 아이디어를 채용하기로 했다.
무대감독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왠지 제가 월급 루팡이 된 기분이네요.”
아이돌의 리더가 너무 유능해서 오는 색다른 부작용이었다.
* * *
회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이연은 곧장 티비 앞으로 향했다.
멤버들은 이연의 이런 행동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밖에서 외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씻는 것부터 하던 이연이, 오늘은 옷을 갈아입는 것도 뒤로 미룬 채로 티비부터 먼저 트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이 바로 SSS 시즌 2 2라운드 시청자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결과가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우미가 이연의 옆에 자리를 잡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이연은 애매모호한 대답을 흘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그게 무슨 소리야?”
“결과는 알고 있어. 근데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래.”
“누구한테 들었는데?”
“듣진 않았고. 아까 솔림이 잠깐 만났었는데, 표정 보니까 얘가 자기 속마음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고. 얼굴에 그대로 다 드러나 있어.”
“아하.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멤버들 중에서도 비아나 리샤처럼 속내를 감추는 게 어색한 사람들이 있다.
최솔림도 그중 한 명이었다.
연예인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솔직함이나 진실된 모습이라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이런 게 강점이 되기도 한다.
최솔림의 경우에는 이런 점들이 시청자들에게 강점으로 어필이 잘된 편에 속했다.
SSS 시즌 2 오프닝이 끝나자, 연습생들이 투표 결과를 듣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드는 장면이 펼쳐졌다.
잠시 흩어졌던 하니엘 멤버들도 어느새 자리로 돌아와 티비에 집중했다.
“얘들, 엄청 긴장했나 봐.”
“저 연습생은 벌써부터 울 거 같은 얼굴 하고 있네.”
“녹화 시작하게 전에 미리 울고 왔을 수도 있어. 비아처럼.”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갑자기 제 발이라도 저린 모양인지 비아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이연이 ‘쉿’ 하는 소리를 내면서 조용히 하라는 압박을 넣었다.
비아는 이연의 말이라면 금세 기가 죽는다.
이내 이연의 지시대로 입을 꾹 다문 채 티비에 다시 집중했다.
강의찬이 무대에 올라 연습생들에게 물었다.
-많이 긴장되시죠?
-네!
-심장이 터질 거 같아요!
이번 결과로 인해 다음 라운드 진출이냐, 탈락이냐가 결정될 테니까.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솔림도 동서남북 팀원들과 나란히 앉은 채 긴장한 얼굴로 강의찬이 서 있는 무대를 응시했다.
리샤가 신기한 걸 본 사람처럼 반응했다.
“최솔림 연습생이 저렇게 긴장한 거 난 처음 봐.”
늘 무대에서 자신감 있었던 것과 달리, 그녀의 지금 모습은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다.
최솔림은 무조건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이연이 궁금한 건 최솔림이 과연 몇 등으로 진출했을까, 이 부분이었다.
생존한 연습생들을 차례차례로 발표하다 보니 이제 남은 연습생은 단 둘밖에 없었다.
최솔림, 그리고 1라운드 때 아쉽게 1위 자리를 놓쳤던 조이주.
2등을 많이 해서 그런지 조이주에게는 본의 아니게 콩 라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번에 과연 조이주가 이 콩 라인의 저주에서 벗어나 1위를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최솔림의 2연속 1위 업적이 완성될 것인지.
이런 것들이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하니엘 멤버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다.
이연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정확히 3 대 3 대칭을 이루었다.
“연이 언니는 누가 1위 될 거 같아?”
시우의 물음에 이연은 지체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솔림이.”
이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순위가 공개되었다.
[1위. 최솔림]
[2위. 조이주]
동서남북 팀 전원이 최솔림을 안아주면서 1위 자리에 오른 걸 격하게 축하해 줬다.
조이주 역시 아쉬워하면서도 최솔림의 2관왕을 축하해 주는 대인배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군분투해 봤지만, 최솔림의 독주는 역시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
이로서 동서남북 팀 다섯 명 전원이 생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3라운드는 더 치열하겠지.’
이연은 SSS 녹화 당시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늘 같은 대답을 했었다.
3라운드의 모든 미션들이 만만치 않았다고.
물론 절체절명의 위기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고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방송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 때쯤에 리샤가 재미있는 제안을 꺼냈다.
“나중에 우리 콘서트에 SSS 시즌 2 우승팀도 부를까? 안 그래도 콘서트 와서 축하 무대 꾸며줄 게스트 팀 구하고 있는 중이잖아. 기왕이면 같은 회사 후배 그룹이 오면 홍보도 되고 좋을 거 같은데.”
이연과 멤버들의 시선이 리샤에게 쏠렸다.
그러자 리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별…… 로였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니, 생각보다 괜찮은데?”
“리샤 언니 머릿속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올 줄 몰라서 놀란 거야.”
비아의 직설 화법에 리샤가 화를 냈다.
“나도 할 때는 한다고!”
“오늘도 회의 시간 내내 입 잠그고 가만히 있었잖아.”
“그건……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리샤는 이런 식으로 한 번씩 이연조차 예상치 못한 유효타를 날리곤 한다.
이 한 방이 꽤 많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리샤의 의견을 적극 지지했다.
“다음 미팅 때 말해보자. 다른 사람들도 중간에 괜찮은 아이디어 있으면 언제든 우리한테 공유해 주고. 다 우리 콘서트를 위한 일이니까. 알았지?”
“응!”
“네, 알겠습니다. 대장님!”
오늘도 멤버들의 파이팅이 넘쳤다.
* * *
단독 콘서트의 모든 준비가 다 순탄치는 않았다.
게스트 팀 섭외 과정에 차질이 생긴 모양인지, 미팅 때 여기에 관해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여러 군데 연락을 돌려봤는데, 다들 어렵다고 하네요.”
오채일 대표의 손 위에서 풍차 돌리기를 당하고 있던 볼펜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섭외 요청할 만한 팀 또 없을까? 아까 이연이가 말했던 것처럼 SSS 시즌 2 우승팀 말고. 이번에는 외부에서 데려오고 싶은데. 너무 우리 소속사 가수만 데려다가 세우면 형평성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 나올 수 있으니까.”
마침 이연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하니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연이 부탁하면 뭐든 들어줄 거 같은 적극적인.
“이은솔 선배님한테 연락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