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제82화. 첫 단독 콘서트(1)
일본 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하니엘 멤버들은 이제 다음 커다란 숙제라고 할 수 있는 첫 단독 콘서트 계획에 돌입했다.
지역이 서울 혹은 수도권으로 정해졌다는 것 말고는 아직 다른 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았고.
그래서 멤버들과 회사 관계자들이 서로 회의를 가지며 천천히 정해볼 생각이었다.
멤버들 중에서 유독 적극적인 사람이 있었다.
이연이 회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인쇄해 온 자료들을 돌렸다.
“단독 콘서트 열 장소 후보들을 몇 개 골라봤어요. 밑에 장소에 대한 정보들도 간단하게 기입해 뒀으니까 한 번씩 봐주세요.”
이연의 말에 큰 오류가 두 가지나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장소 후보들을 ‘몇 개’ 골라봤다고 말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몇 개 정도가 아니라 한 30여 군데 정도 되는 듯했다.
두 번째로 콘서트장 정보량도 간단하지가 않았다.
수용 인원뿐만 아니라 준공 허가 날짜, 최근에 받은 안전 점검 결과까지 디테일하게 나와 있었다.
오채일 대표가 헛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경매꾼들도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물건을 보러 다니진 않을 텐데.”
그만큼 이연의 의욕이 잔뜩 넘친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무대를 향한 이연의 열망은 이전에도 워낙 잘 알려져 있었지만, 단독 콘서트의 경우에는 특히나 더 심했다.
콘서트장 후보군들뿐만 아니라 연출, 기획 부문에 대한 이연의 사견까지 달려 있었다.
더 놀라운 건, 현역으로 활동 중인 공연 전문 기획자들이 봐도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구성들을 취하고 있다는 거였다.
오 대표 옆에 앉아 있던 회사 관계자가 이연이 준비한 자료를 빠르게 훑으며 혀를 내둘렀다.
“이연이가 공연 기획 쪽에도 소질이 있을 줄은 몰랐네.”
이연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답했다.
“다른 사람 콘서트도 아니고. 저희가 직접 올라가야 하는 콘서트니까요. 이 정도는 당연히 신경 써야죠.”
‘신경 쓴다’와 ‘잘한다’는 별개의 말이다.
이연은 이걸 둘 다 해내고 있으니, 이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몰랐던 이연의 능력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못하는 게 없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이연을 따라다니는 게 아니었다.
“세트 리스트는 프로듀서님, 다른 스태프분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조율해 봐야 할 거 같아서 일부러 넣진 않았습니다.”
오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어. 지금 네가 준 이 자료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빠질 거 같은데. 세트 리스트 안건까지 꺼내면 아마 오늘 잡은 회의 시간만으로는 다 감당 못 할 테니까.”
이연의 자제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한편, 홍류현 실장은 서울과 수도권에 이렇게 많은 콘서트 장소가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맨날 하던 곳에서만 하다 보니까. 그래서 정보가 많이 부족했었는데, 이연 덕분에 시야가 한층 넓어질 수 있었다.
오 대표가 회의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장소는 어디가 제일 좋을까?”
진세혁 프로듀서가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리프 스카이돔이 낫지 않을까요? 수용할 수 있는 인원도 많고. 그리고 이곳에서 콘서트도 여러 차례 열렸으니까요.”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리프 스카이돔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다.
성공한 가수들만이 설 수 있는 그런 무대이기 때문이다.
공간이 크고. 좌석도 워낙 많다 보니 웬만큼 인기 있는 가수가 아니고선 이곳에서 공연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적자만 날 게 뻔하니까.
LC 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도 리프 스카이돔 공연은 모험이 될 수도 있었다.
리프 스카이돔에서 콘서트를 주최해 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합동 공연도 아니고. 오롯이 하니엘 하나만을 보기 위해 얼마만큼의 팬들이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나현아 트레이너가 쓴 미소를 지었다.
“데뷔한 지 2년 차밖에 안 되는 아이돌 그룹이 리프 스카이돔에서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네요.”
“처음이지.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선 없었어.”
오채일 대표의 말에 진세혁 프로듀서와 홍류현 실장, 기타 회사 관계자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회사 입장에서 큰 손해만 보고 끝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채일 대표는 왠지 자신이 있었다.
하니엘이라면, 리프 스카이돔 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거라고 말이다.
“오케이. 여기로 가자. 홍 실장이 이쪽에 일정 어떻게 되는지 직접 연락하고 확인해 봐.”
“예, 알겠습니다.”
오 대표의 통 큰 결정에 회사 관계자들 또한 결심을 굳히기로 했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한번 판을 벌여보는 게 좋다.
괜히 간 보듯 찔끔찔끔 해보는 것보다 이게 오히려 오채일과 LC 엔터테인먼트 스타일에 부합된다.
날짜라든지 이연이 앞서 말했던 세트 리스트 등. 구체적인 것들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정할 수 없는 사항들이었다.
우선은 전체적인 것들 몇 개만 건드린 후, 회의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럼 여기까지 하자고. 슬슬 SSS 녹화 들어가야 해서. 나 트레이너도 가야지?”
“네, 대표님.”
이연과 달리 두 사람은 시즌 2에서도 고정 심사 위원 자격으로 계속 방송에 얼굴을 비치고 있었다.
이연이 중간에 오채일 대표를 불러 세웠다.
“대표님.”
걸음을 멈춘 오채일 대표가 이연 쪽으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아직 할 말 남았어?”
“…….”
일순간 이연은 말문을 떼지 못했다.
사실 그에게 궁금했던 게 하나 있었다.
SSS 2라운드 시청자 투표 결과에 대해서였다.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녹화가 마침 어제 끝났다.
누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고, 누가 그 자리에서 떨어졌는지. 어제 이후로 모두 판가름 났을 것이다.
이연은 동서남북 팀 전체 멤버들이 무사히 3라운드까지 살아남았는지. 이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직접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이연은 일부러 말을 아끼기로 했다.
궁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매우 궁금하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프로그램 관계자가 아닌 이상, 함부로 이야기하고 다닐 수가 없다.
2라운드 3차 미션이 끝난 이후부터 이연과 특별 심사 위원들은 더 이상 SSS 시즌 2 관계자가 아니게 되었다.
물론 스태프라든지 오채일 대표, 나현아 트레이너한테 결과를 물어보면 이연에게 순순히 알려주긴 할 것이다.
그녀도 SSS와 깊은 연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연은 입이 가벼운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스타일이 아니라는 게 이미 여러 차례 검증이 되었기에 그녀한테만 먼저 슬쩍 말을 흘려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없던 걸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현아 트레이너와 달리, 오채일 대표는 이연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반응했다.
“원한다면 미리 말해줄 수도 있는데.”
“아니요. 그냥 방송으로 확인할게요.”
“애들이 먼저 너한테 연락 안 했어?”
“네. PD님이 방송 나가기 전까지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을 테니까요.”
연습생들은 그저 FM대로 서윤철 PD의 지시에 따르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연은 연습생들에게 직접 투표 결과를 묻는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괜히 물었다가 떨어진 연습생이라도 있으면 그 분위기를 어떻게 잘 수습할 방도가 없을 거 같았고.
탈락의 아픔은 아무리 이연이 어르고 달래더라도 당장 치유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음 주에 방송으로 나올 테니까.’
일주일가량 남은 이 기간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 * *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은 데뷔 앨범곡들을 포함해 여태껏 그녀들이 선보였던 모든 공연을 다시 처음부터 연습했다.
이 중에는 SSS 시즌 1 당시에 선보였던 오리지널곡들도 몇 개 섞여 있었다.
덕분에 멤버들은 오랜만에 추억 여행을 떠났다.
“와, 이거 연습할 때 연이 언니가 악마로 보였었는데.”
비아의 옛 회상에 우미와 리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다재다능이라는 팀명을 달고 있을 때부터 이연과 함께 연습을 해온 그녀들은 비아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나 정작 이연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납득하지 않았다.
“그 정도 연습량이면 많이 봐주면서 한 건데.”
“그게 봐준 거라고?”
“어.”
이연의 비하인드 멘트는 웬만한 공포영화 뺨칠 만큼 무섭게 다가왔다.
SSS 이야기가 나오자, 시우가 현재 절찬리에 방영 중인 SSS 시즌 2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언니들 중에서 투표 결과 미리 들은 사람 없어요?”
“2라운드 투표 말하는 거지?”
“네. 주변에서 저한테 혹시 아는 정보 없냐고 계속 물어봐서…… 저는 모른다고 하는데도 모를 리가 있냐고, 거짓말 그만하라고 그러더라고요. 언니들도 혹시 그런 경험 있나 싶어서요.”
연상 멤버들이 ‘없을 리가 있겠니?’라고 말하면서 시우의 고충에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연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
“나한테는 사람들이 안 물어보던데.”
“언니는…… 왠지 이해가 가네요.”
오히려 이연이 시우에게 ‘왜?’라고 되물었다.
따지고 보면 하니엘 멤버들 중에서 이연이 SSS 시즌 2에 가장 깊게 관여한 멤버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연이 이런 질문 공세를 받았어야 정상일 텐데.
정작 그녀의 지인들은 단 한 차례도 투표 결과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시우가 지인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언니는 결과를 알고 있어도 절대로 말 안 하시잖아요. 그런 스타일이니까요.”
이게 정답이었다.
아무리 보채도 서윤철 PD나 제작진이 절대로 외부로 발설하면 안 된다고 엠바고를 걸어버리면, 이연은 절대로 먼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워낙 잘 알고 있기에 이연 앞에서 SSS의 S자도 꺼내지 않았다.
SSS 시즌 2에 관해서 궁금한 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하니엘 멤버들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이연이 짝짝! 소리가 나도록 몇 차례 손뼉을 마주쳤다.
“5분까지 쉬었다가 다시 연습 시작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각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사이 이연은 부족한 이온음료를 충당하기 위해 휴게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휴게실 문을 열자, 먼저 와 있던 최솔림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최솔림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마치 이연에게 뭔가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연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림아.”
“네, 선배님.”
“내일 SSS 방송 나가기 전까지 표정 관리하면서 다니는 게 어때?”
“예?”
“얼굴에 티 다 나거든.”
원래는 방송을 통해서 그녀의 생존 유무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최솔림의 표정 때문에 의도한 것도 아닌데 강제로 스포일러를 당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