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제77화. 천사 리더(4)
이연이 다시 회의실로 돌아오자, 홍류현 실장이 그녀에게 확인차 물었다.
“이야기는 다 끝났어?”
“네.”
“솔림이, 뭐 때문에 왔대?”
“어제 중간점검 때 파트부터 다시 분배해서 연습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언했었거든요. 그거 때문에 저한테 구체적으로 의견을 묻고 싶어서 왔대요.”
이야기를 들은 비아가 감탄을 흘렸다.
“그 최솔림이라는 사람, 엄청 열심이네. 방송에서 시키는 거 아니면 보통은 선배한테 직접 찾아와서 이거 묻고 저거 묻고. 이러기 쉽지 않잖아.”
여솜이 비아의 말에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그만큼 많이 절박하다는 뜻 아닐까? 왜, 우리들도 SSS 촬영할 때 데뷔하고 싶어서 하루하루가 절박했었잖아.”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가고 그랬었다.
아마 최솔림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연이는 이번에 심사 위원까지 맡고 있으니까. 그래서 연이 의견을 안 들어볼 수가 없었겠지.”
“듣고 보니 여솜 언니 말이 정확하네.”
비아가 기지개를 쭉 켰다.
“어휴! SSS 생각하니까 머리 아프네. 그때 진짜 너무 긴장해서 심장이 터질 거 같고 그랬는데.”
막내의 투정에 맏언니 우미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들도 다 똑같아.”
지금 이렇게 일곱 명이 모여서 데뷔한 것 자체가 우미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앨범을 꺼내서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게 지금 필요한 일은 아니다.
이연이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찾아 착석하며 홍류현 실장을 재촉했다.
“시간이 지체됐으니까 회의 얼른 시작하죠, 실장님.”
이제 다시 일할 시간이다.
* * *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SSS 시즌 2 2라운드 첫 번째 미션 평가 시간이 찾아왔다.
이연은 다른 특별 심사 위원들과 같은 대기실을 사용하면서 오늘 있을 연습생들의 세트 리스트를 살폈다.
미랑이 이연의 바로 뒤로 접근해 오면서 말했다.
“동서남북 팀이 가장 마지막이네?”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했나 봐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순서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선 오히려 마지막이 안 좋게 작용하는 때가 있다.
오늘은 과연 어떤 경우에 속할지.
이건 이연도 알 수 없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이연과 미랑, 그리고 혜원은 심사 위원석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정면에는 연습생들이 무대를 펼칠 스튜디오가.
중간에는 다른 연습생들이 앉아서 대기하며 다른 팀의 무대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뒤에 이연이 앉을 심사 위원석이 위치했다.
오채일 대표가 이연에게 오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먼저 예상을 물었다.
“누가 1위 할 거 같아?”
“오늘 잘하는 팀이 1위 하지 않을까요.”
당연한 대답에 오채일 대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같은 심사 위원석에 자리 잡은 나현아 트레이너가 뻘쭘해하는 오 대표를 보면서 웃음을 삼켰다.
“우문현답이네요.”
“어흠!”
오채일 대표가 헛기침을 하면서 무안함을 쫓아 보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강의찬의 소개와 함께 첫 번째 팀이 무대에 올랐다.
최솔림의 뒤를 이어 1라운드 투표 2위를 차지했던 조이주 연습생이 속한 팀, ‘노력 100퍼센트’ 멤버들이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노력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 100퍼센트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생기발랄한 목소리 속에 긴장감이 가득 묻어 있음이 느껴졌다.
미랑은 그녀들을 엄마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애기들, 많이 긴장했나 봐.”
“그러게요.”
아직 공연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그녀들의 긴장감이 심사 위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강의찬은 무대를 시작하기 전에 그녀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싶었는지 일부러 농담을 건넸다.
“긴장하지 마시고요. 김장도 하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
“…….”
“…….”
썰렁한 농담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강의찬은 뒤늦게 알아차리고 말았다.
“자, 자! 그럼 이쯤에서 바로 노력 100퍼센트 팀 무대를 보도록 할까요. 준비해 주세요!”
분위기가 더 싸해지기 전에 강의찬이 급하게 멘트를 마무리 지었다.
혜원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도망치듯 무대를 내려가는 강의찬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저 오빠는 다 좋은 유머 감각이 너무 올드해서 탈이야.”
이연은 직접 말로 반응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의견에 깊게 공감했다.
약간의 트러블(?)이 있긴 했었지만. 그런 것치곤 노력 100퍼센트 팀의 무대는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엔딩 포즈를 끝으로 무사히 2라운드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한 노력 100퍼센트 팀을 향해 강의찬이 다시 마이크를 들고 접근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노력 100퍼센트 팀이 커버한 곡이 MAYO의 ‘Red Gun’이었죠?”
“네!”
“이쯤에서 미랑 씨의 의견을 안 들어볼 수가 없겠네요. 미랑 씨. 원곡을 불렀던 가수로서 후배들의 커버 무대, 어떻게 보셨습니까?”
조이주를 비롯해서 노력 100퍼센트 멤버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인해 다시 얼어붙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미랑은 고생한 후배들을 다정한 말로 보듬었다.
“너무 잘했어요. 중간점검 때보다도 2배…… 아니, 5배는 잘한 거 같아요. 다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그제야 후배들의 표정이 안도로 물들었다.
반면, 혜원은 미랑의 상냥한 평가에 약간의 불만을 드러냈다.
“큰 실수 몇 개 보였잖아. 그거는 지적 안 해?”
“굳이 지금 지적할 필요가 있나요, 선배님.”
“이럴 때 말해줘야 저 아이들도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하고 자각할 거잖아.”
“저만의 스타일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러니까 깊게 간섭하지 말아주실래요?”
또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이.
선후배 사이이긴 하지만, 한때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데뷔라는 목표를 바라봤던 관계였기에 서로에 대해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었다.
이런 사소한 신경전도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벌어지는 티키타카의 일종으로 받아들여도 충분했다.
노력 100퍼센트에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팀의 무대가 이어졌다.
그리고 네 번째, 아이비제이의 노래를 골랐던 팀의 무대가 끝났을 때.
혜원의 날카로운 일침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제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무대여서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선배의 독설에 연습생들은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옆에서 미랑이 다들 고생했는데 좀 더 부드럽게 대해줄 수 없냐고 눈치를 줬지만, 혜원은 이런 거에 아랑곳할 인물이 아니었다.
어느 부분이 부족했는지, 이런 것들을 신랄하게 꼬집어서 지적했다.
그래도 연습생들은 울지 않고 혜원의 피드백을 귀담아듣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네 번째 팀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가자, 미랑이 마이크를 내려놓으면서 혜원에게 핀잔을 줬다.
“그렇게까지 해서 후배 기죽일 필요가 있나요? 잔인한 선배님.”
“기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점을 알려주는 건데요? 후배님.”
또 말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이연이 일찌감치 나섰다.
“바로 다음 무대 시작한다고 하니까 집중해 주세요, 선배님들.”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 이연이 이렇게 말을 하니까 혜원과 미랑은 시선을 다시 무대로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다음은 개편된 동서남북 팀의 차례다.
강의찬이 최솔림에게 대표로 물었다.
“준비는 어땠나요? 만족합니까?”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그게 좀 아쉬워요.”
다른 연습생들도 다 같은 생각인지 단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나 가지고 1년 이상 질질 끌 수도 없으니까.
주어진 기간 내에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것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숙명이기도 했다.
“그럼 동서남북 팀의 무대,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다섯 번째 팀의 무대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찬은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멘트와 함께 조명이 일시적으로 꺼졌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연의 귀에 익숙한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니엘의 데뷔곡, HUG.
미랑이 오랜만에 듣는 HUG의 반주에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노래 진짜 간만에 듣네. 나 이거 처음 나왔을 때 거의 하루 종일 듣고 다녔는데.”
옆에서 혜원이 ‘내가 더 많이 들었거든?’이라고 하면서 경쟁심을 불태웠다.
조금 전까지의 이연이었더라면 당연히 말렸을 테지만.
지금은 후배들의 무대에 집중해야 했기에 철부지 선배들의 신경전에 잠시 관심을 껐다.
무대를 지켜보던 오채일 대표가 여러 차례 눈을 끔뻑였다.
“어? 파트가 달라졌네?”
나현아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연을 대신해 답했다.
“연이가 파트를 다시 짜는 게 나을 거 같다고 해서요. 그래서 바꿨다고 하네요. 지금 버전이 훨씬 낫지 않아요, 대표님?”
“그러게. 이전 버전은 뭐라고 해야 되나. 흐름이 중간에 뚝뚝 끊기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고 좋네.”
심사 위원들 역시 이연의 판단에 호평이었다.
동서남북 팀원들은 무대 위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자신들이 준비한 것 이상을 모두 보여줬다.
잔실수가 곳곳에 보이긴 했지만, 다른 팀들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편이었기에 용납 가능한 수준이었다.
마지막까지 연습생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퍼포먼스를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까지. 모든 게 공연의 일부다.
연습생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마지막 대열을 취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고 지쳐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무대를 조용히 지켜보던 오채일 대표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짝짝짝!
SSS 시즌 2 촬영이 시작된 이래에 오채일 대표가 연습생들의 무대가 끝나고 박수갈채를 보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의 모든 카메라들이 이런 오채일 대표의 리액션을 앵글에 담아내기 위해 각도를 틀었다.
오 대표를 시작으로 다른 심사 위원들 역시 동서남북 팀에게 잘했다는 뜻이 가득 담긴 박수를 보냈다.
혜원도, 미랑도.
그리고 이연도.
많이 힘들었지만, 존경하는 선배한테서 박수를 받았다는 사실 덕분인지 표정이 한결 편안해 졌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다.
박수 정도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서 언제든 칠 수 있는 거니까.
최솔림은 이연한테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들의 무대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강의찬이 무대 위로 올라와 동서남북 팀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이후에 앞의 팀들처럼 원곡을 불렀던 심사 위원에게 먼저 소감을 물었다.
“이연 씨는 이번 연습생들의 무대, 어떻게 보셨나요?”
최솔림과 연습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 긴장한 연습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연은 처음으로 미소라는 것을 지었다.
“열심히 준비한 티가 많이 나는 무대였습니다. 잘 봤어요.”
동서남북 팀원들은 이연의 한마디에 구름 위를 걷는 행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