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71화 (270/299)

271화

제77화. 천사 리더(1)

오늘도 하니엘 멤버들은 새벽부터 일찌감치 음방 출연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세 번째 앨범을 발표한 이후 연달아 서는 방송 무대.

처음에는 많이 긴장도 되고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모양인지 멤버들의 표정엔 여유마저 느껴졌다.

무대를 마치고 오늘 녹화에 참여했던 모든 가수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 중에는 앨범 활동 마지막 주간에 돌입한 아이비제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주 1위 후보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공개해 주세요!”

화면 왼쪽 자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비제이가 차지했다.

오른쪽 예약석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앨범 활동에 돌입한 하니엘의 것이었다.

4세대를 대표하는 기존 강자와 신흥 강자의 대결.

오늘의 승자는…….

“하니엘입니다! 축하합니다!”

펑! 펑-!

사방에서 폭죽이 터졌다.

빼곡하게 흩날리는 꽃가루들을 해치면서 하니엘은 무대 한가운데로 자리를 옮겼다.

대표로 마이크를 쥔 이연이 1위 수상 소감을 밝혔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저희 하니엘을 많이 응원해 주시고, 또 사랑해 주신 덕분에 이런 분에 넘치는 상을 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전진하는 하니엘이 될 테니,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이연답게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아이비제이 멤버들한테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혜원과 이연. 두 그룹의 리더가 진한 포옹을 나눴다.

“축하해, 연아.”

감사하다고 대답하는 이연이었지만, 내심 미안함도 있었다.

자신들이 아니었다면 아이비제이가 1위로 깔끔하게 이번 앨범 활동을 마무리 지었을지도 모르니까.

그 생각이 표정에 그대로 반영이 된 거였다.

혜원이 이연이 이런 속내를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연예계는 운도 운이지만 기본적으로 실력이 밑바탕 되어 있지 않으면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없어. 너희가 우리보다 잘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니까 우리한테 미안해하지 마.”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천만에. 아무튼 다시 한번 1위 축하해.”

걸파이트 시즌 2 녹화 당시에는 혜원이 껄끄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마냥 싫은 건 아니었다.

진절혜처럼 뒤가 구린 수단을 동원한 것도 아니고.

제작진이 정해놓은 테두리 내에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팀이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을 사용해서 경쟁을 펼친 거니까.

그리고 이연이 이 세계로 넘어온 이후, 지금까지 상대했던 타 그룹 소속 아이돌 중에서 혜원이 가장 강력한 상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녀의 존재 덕분에 이연도 오랜만에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무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진심 어린 축하까지 해주니. 오히려 혜원과 아이비제이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졌다.

앙코르 무대를 꾸미기 위해 하니엘만 남겨두고 남은 가수팀과 MC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누구는 눈물을 흘리고, 또 누구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를 냈다.

반응은 각각 달랐지만, 1위를 수상해서 기쁘다는 마음만큼은 같았다.

타이틀곡 ‘beyond’는 발매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데뷔 앨범, 그리고 2집 앨범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1위에 올라서게 된 하니엘.

사람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아이비제이의 왕좌를 하니엘이 넘겨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존하는 걸 그룹 중에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팀은 오직 하나.

하니엘, 자기 자신밖에 없다.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더 화려하고 유명해져야 한다.

이제부터는 이런 마음으로 무대에 서야 한다.

이연은 지금의 이런 상황이 기쁘면서 한편으론 난감했다.

‘이제 가장 어려운 상대하고 경쟁해야 되네.’

이연은 아이비제이보다 어제의 하니엘이 더 힘든 상대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녀가 원하는 완벽한 무대에 서기 위해선, 자신이 걸어온 행적 그 이상의 결과를 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 * *

세 번째 타이틀곡이 소위 대박을 치면서 하니엘 멤버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이연 앞에선 절대로 힘들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녀들의 바쁜 정도가 10점 만점 중 7점이라면, 이연은 10점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연은 카메라 앞에 서면 절대로 피곤한 티를 내지 않았다.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스케줄을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곧장 다음 일정을 위해 움직일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매니저님 벌써 도착했다고 하시니까 나도 슬슬 가볼게.”

이연과 달리 겨우 자유 시간을 보장받게 된 멤버들은 숙소에서 그녀를 배웅해 줬다.

우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연에게 재차 물었다.

“괜찮겠어? 오늘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

“잠은 차로 이동하면서 자면 돼. 그리고 이 정도는 옛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옛날?”

이연이 말하는 ‘옛날’이란 표현은 그녀가 음유시인으로 이름을 날릴 때를 가리키는 거였다.

그러나 우미는 이연의 이런 속사정을 전혀 모른다.

불과 작년에 데뷔했을 뿐인데. 우미는 자신들의 활동 이력이 옛날이라고 말할 정도로 오래되었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연은 우미가 더 깊은 의문에 빠지기 전에 먼저 숙소를 나섰다.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아침부터 고생했을 텐데. 늦은 시간까지 일 시켜서 미안.”

“매니저님도 저하고 피차일반이니까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SSS의 촬영 시간은 딱히 정해진 게 없다.

연습생들이 밤낮을 지새우면서 연습하는 과정을 촬영해야 하고. 또 스튜디오에 모여서 미션을 정하고, 무대를 펼치는 장면도 카메라에 담아야 하고.

이렇다 보니 SSS 시즌 1 촬영 당시에는 출연진, 제작진. 모두가 다 고생길을 걸었다.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은 심사 위원으로서 처음으로 연습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날인 만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혜원, 미랑. 두 사람 다 심사 위원을 맡기에 충분한 역량과 이력을 쌓아온 사람들로 알려져 있지만.

이연은 그렇지 않으니까.

실력만 본다면 모두가 다 인정하지만, 활동 기간도 짧고. 그렇다 보니 아직은 이연이 심사 위원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연은 심사 위원으로서 확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다짐했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한 늦은 시간의 방송국.

그럼에도 SSS 시즌 2 스튜디오에는 여전히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이연은 사람들, 특히 연습생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연습실로 이동했다.

연습생들은 아직 이연과 혜원, 미랑이 2라운드 특별 심사 위원으로 출연할 거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들의 리얼한 반응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서 PD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런 건 시즌 1하고 크게 다르지 않네.’

그때도 서 PD식 서프라이즈 연출이 많았었다.

이게 생각보다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시즌 2 역시도 시즌 1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가기로 방향을 잡았다.

대기실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혜원과 미랑이 이연을 반겼다.

늦은 시간대라 그런지 그녀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미랑이 커피를 세 잔째 마시면서 이연에게 최근 방영된 SSS 시즌 1 1라운드 투표 결과에 관해 물었다.

“투표 결과 봤어?”

“네.”

“예상대로 그 최솔림이라는 연습생이 1위 했더라.”

미랑이 말한 대로, 최솔림은 2위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면서 당당하게 1라운드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출중한 실력과 비주얼, 그리고 팀원들을 챙기는 포용력까지.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미랑은 최솔림의 독주가 한동안 계속 이어질 거라고 보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

“결승 진출까지 문제없을 거 같던데. 연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연이 입을 열기 전에 혜원이 먼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나는 최솔림 양이 결승까진 못 갈 거 같던데.”

“……?”

순간 미랑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혜원을 응시했다.

“선배님도 투표 결과 보셨잖아요. 2위하고 2배 이상 차이가 벌어졌는데. 그러면 웬만하면 결승까진 무난하게 가지 않나요?”

지금까지 방영되었던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개 그랬다.

하지만 ‘반드시’는 아니었다.

혜원은 이연과 마찬가지로 미랑이 눈치채지 못한 걸 알아차렸다.

“그 최솔림이라는 연습생, 너무 착해.”

“예? 설마 착하니까 힘들 거라는 소리이신가요?”

“응. 맞아.”

이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랑은 오히려 더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반면, 이연은 역시 혜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랑이 혜원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스태프가 먼저 대기실을 찾았다.

“5분 뒤에 촬영 들어갈 예정이니 미리 이동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 얼른 가자.”

혜원이 먼저 대기실을 나섰다.

그러자 미랑이 칫, 하고 짧게 혀를 차면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혼자만 다 아는 척하고. 저런 면이 싫다니까.”

이연은 뒤에서 그저 소리 없이 웃을 뿐이었다.

* * *

1라운드를 통과한 23명의 연습생들이 제각각 살아남았다는 안도와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 불안감을 드러내며 스튜디오에서 대기했다.

2대 MC를 맡은 강의찬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등장했다는 건, 이제부터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될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1라운드에서 생존한 여러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아직 방심은 금물입니다. 이제부터 더 가혹한 미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강의찬의 말에 연습생들은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살았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아직 2라운드, 그리고 파이널 라운드. 이렇게 두 개의 라운드가 남아 있으니까.

“2라운드 시작에 앞서서 여러분들의 무대를 평가할 특별 심사 위원들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나와주세요!”

특별 심사 위원들은 한 명씩 공개될 예정이다.

가장 먼저 특별 심사 위원들 중 가장 막내인 이연이 등장했다.

막내이긴 하지만, SSS 초대 챔피언이라는 유일한 타이틀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녀의 등장에 연습생들은 경악했다.

“권이연 선배님……?”

“너무 예쁘세요, 선배님!”

후배들의 격렬한 반응에 이연은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녀를 시작으로 미랑, 혜원까지. 모든 특별 심사 위원들이 빠르게 공개되었다.

강의찬이 특별 심사 위원들에게 공통 질문을 건넸다.

“평가를 내릴 때 어떤 점들을 중점으로 보실 건지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혜원을 시작으로 미랑, 그리고 이연 순으로 돌아갔다.

혜원은 전체적인 안무 구성과 퍼포먼스를, 미랑은 얼마나 무대를 진심으로 즐기는지. 이런 것들을 보겠다고 알렸다.

마지막으로 이연의 차례가 다가왔다.

이연은 긴장한 연습생들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실력이 최우선입니다.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다운 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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