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제76화. SSS 시즌 2(1)
연습생부터 차근차근 아이돌이 되기 위한 단계를 밟아온 이연은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일에 굉장히 익숙했다.
상대가 심사 위원이든, 방송국 관계자든, 업계 대선배든, 대중들이든 간에 그녀와 하니엘 멤버들은 늘 평가를 받는 입장이었다.
걸파이트 시즌 2에서 같은 경쟁팀을 평가하는 기회가 있긴 했지만, 그건 이벤트성에 가까운 거였으니까 논외로 치는 게 낫다.
그래서 오채일 대표가 특별 심사 위원으로 참가할 수 있겠냐는 말을 했을 당시, 이연은 의외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녀 말고도 많은 후보들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저인가요?”
“하필…… 이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좀 있고. 처음 제작진하고 SSS 시즌 2 미팅을 가질 때부터 너를 어느 쪽이든 등장시켜 보자는 아이디어는 줄곧 나왔었어. 원래는 제작진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던 대안이 MC였거든.”
“저한테 MC 자리를 맡긴다고요?”
“어, 맞아. 근데 개인적으로 우리…… 아니, 솔직하게 말할게. 내 입장에서는 MC보단 일회성으로 심사 위원을 한번 맡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오채일 대표가 좀 더 자신의 생각을 보강해서 이연에게 설명을 들려줬다.
“촬영이 바로 다음 주부터 들어갈 예정인데. 마침 하니엘 앨범 활동 기간하고 딱 겹치기도 하고. 그리고 이번에 너희한테 커다란 목표가 하나 있잖아.”
“네, 그렇죠.”
컴백 직전에 의견이 나온 게 하나 있었다.
바로 하니엘의 단독 콘서트다.
막 첫 번째 앨범을 발표했을 당시에는 콘서트를 하기엔 곡 수가 너무 적으니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정도 곡이 쌓였고. 그리고 단독 콘서트를 열 만큼의 충분한 인지도와 역량이 갖춰졌다.
단독 콘서트를 기점으로 점점 해외 무대에도 한 번씩 오를 예정이다.
앞으로 더 바빠질 텐데. 장기 프로젝트인 SSS 시즌 2의 MC 자리를 이연에게 맡기는 건 제작진이나 소속사나 이연 본인이나. 셋 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LC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목적은 하니엘을 띄우는 것이다.
SSS 시즌 2에 출연할 LC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들의 성공적인 데뷔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하니엘의 활동 영역을 줄여가면서까지 SSS 시즌 2에 사활을 걸 필요가 없었다.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많지 않고 말이다.
오히려 하니엘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는 위험부담만 늘어날 뿐이다.
이연은 오채일 대표의 판단에 공감했다.
“저도 대표님 생각이 맞는 거 같아요.”
“그렇지?”
“네.”
이연이 공감을 표하자, 오채일 대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자신이 멋대로 이연의 입장을 대변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었기에 이런 반응이 나온 거였다.
“특별 심사 위원이라고 말씀하셨죠?”
이번에는 홍류현 실장이 대신 말을 이었다.
“그렇지. 네가 SSS 출신이니까 잘 알겠지만, 그 프로그램은 고정적으로 심사 위원분들이 내정되어 있잖아. 여기에 추가로 매 라운드마다 필요에 따라서 특별 심사 위원들을 모셔서 연습생들 무대를 평가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기억하지?”
“네. 물론이죠.”
이연이 SSS에 직접 출연할 당시에도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이연이 맡을 심사 위원 역할이 바로 이런 형태다.
“제작진하고 몇 번 상의를 해봤는데. 1라운드는 특별 심사 위원 제도 없이 그냥 가기로 했고. 2라운드에는 아예 통째로 특별 심사 위원들하고 같이 평가를 내리는 식으로 진행하면 어떠냐고 하더라.”
오채일 대표가 추가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일회성으로 끝나면, 그 무대만 보고 평가를 내려야 하는 거니까 깊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아예 한 라운드 내내 심사할 기회를 주자, 이거지.”
“SSS도 세 번의 라운드로 구성되는 거 맞죠?”
“그렇지.”
1라운드, 2라운드. 그리고 파이널 라운드.
각 라운드별로 총 세 번의 미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1라운드 1차 미션은 개인별로 진행될 거고. 2차 미션부터 유닛을 정해서 무대를 준비할 거야. 연이, 네가 맡아야 할 건 2라운드 1, 2, 3차 미션 평가. 간단하지?”
말로만 하면 어려운 일이 뭐가 있을까.
사실 평가라는 것 자체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대중들이 보는 시선과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면, 오히려 반감을 사서 역으로 공격을 당할 수가 있다.
자신의 이름과 커리어를 걸고,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난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채일 대표는 이연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한번 생각해 보고, 하고 싶지 않다면 거절해도 돼. 우리도 너한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으니까.”
그전에 이연은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었다.
“멤버 전체가 아니라. 저 혼자서 특별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는 거죠?”
홍류현 실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답했다.
“그렇지. 너 말고도 다른 특별 심사 위원들도 몇몇 섭외하기로 예정되어 있거든. 그렇다 보니 그룹 단위로 우르르 몰려오면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대표로 너만 심사 위원으로 부르기로 한 거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연은 여기에 대해 큰 이견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연이라면 몰라도, 하니엘 멤버들은 아직 누군가를 평가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니까.
짧은 고민 끝에 이연이 바로 답변을 내놓았다.
“알겠습니다. 할게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결정에 오히려 오채일 대표와 홍류현 실장이 헛숨을 삼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엇, 진짜로?”
“여기서 바로 결정해도 돼?”
“네. 다음 주부터 바로 촬영 들어갈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시간이 여유롭게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기왕 할 거면 빨리빨리 결정하는 게 좋겠죠.”
게다가 SSS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SSS, 그리고 걸파이트 시즌 2까지. 서바이벌 오디션의 수혜를 톡톡히 본 하니엘 입장에선 비록 참가자가 아닐지라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는 것이 득이 될 것이다.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메리트가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류에 출연하는 게 많이 익숙하기도 하고.
딱히 어려울 건 없었다.
그리고 이연은 한번쯤 누군가를 평가하는 자리에 앉아보고 싶기도 했다.
‘재미있어 보이네.’
한번쯤 이런 경험도 필요한 법이다.
* * *
숙소로 돌아온 이연은 멤버들에게 SSS 시즌 2 제작 여부와 함께 자신이 2라운드 한정 특별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는 일까지 전부 알려줬다.
이미 제작 발표까지 다 나갔다 보니 굳이 멤버들에게 숨길 이유가 없었다.
대신.
“내가 2라운드에 심사 위원으로 출연할 거라는 사실만 숨겨주면 돼.”
“걱정하지 마. 언니. 나, 입 무거운 거 알지? 믿고 맡기라고!”
비아가 싱긋 웃으면서 자신의 입술에 지퍼를 걸어 잠그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모습에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밖으로 흘려 버렸다.
“네가 가장 불안한데.”
“너무해, 언니!”
“농담이야.”
그래도 입단속은 잘 시켜두는 게 낫다.
이 와중에 우미는 이연의 일정에 대해 걱정했다.
“괜찮겠어? 우리, 안 그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여기에 SSS 출연까지 맡기로 하면 더 정신없을 텐데.”
“어차피 2라운드 촬영이 바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다음 달부터라고 했으니까 그때쯤이면 여유가 생기겠지.”
앨범 활동 시작하고 한 달 정도 지나면, 슬슬 마무리에 들어갈 시점이었기에 크게 부담은 안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바쁜 건 변함없다.
그래도 이연은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심사 위원이라는 자리에 앉아서 연습생들을 평가하는 일을.
리샤가 사 온 감자칩 하나를 입안에 털어 넣은 유키가 SSS 시즌 2에 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저희 소속사 연습생들 대상으로 촬영하는 거죠?”
“어. 그렇다고 들었어. 혹시 연습생들 중에 아는 애들 있어?”
“아니요. 저하고 SSS 같이 출연했던 애들이나 언니 정도밖에 없는데. 지금은 다들 각자 데뷔 준비로 바쁘니까요. 아! 혹시 SSS 시즌 2에 출연할지도 모르겠네요.”
SSS에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신 연습생들이 재도전의 기회를 붙잡으려 할 수도 있다.
이연은 오채일 대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SSS 시즌 1 탈락자 몇몇이 시즌 2에 나가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면, 회사는 딱히 말라진 않겠다고 했다.
아예 생짜 연습생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것보다 이전에 한 번이라도 주목받은 적이 있는 연습생이 나오는 게 조금이라도 더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유키의 추측에 여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여솜은 권이연 팀에 합류하기 전에 연을 맺었던 팀원들과 각별한 사이로 지냈었기 때문이다.
결승전 때에도 여솜과 같은 팀이었던 사랑의 요정들 멤버들이 와서 직접 그녀를 축하하기도 했고.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을 것이다.
“애들한테 한번 연락해 봐야겠네.”
여솜이 급하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았다.
중간에 시우가 이연에게 물었다.
“언니는 따로 연락해서 물어볼 만한 지인 있어요?”
“나는 지금 너희들 말고는 다 얼굴하고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일 뿐이어서. 따로 연락하고 그럴 만큼 깊은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은 없었어.”
비아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이연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언니, 한 명 있잖아.”
“누구.”
“정말로 모르겠어?”
이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비아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아가 오랜만에 어느 한 여자의 이름을 언급했다.
“절혜 언니 있잖아. 진절혜.”
SSS 초창기 때 이연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시청률을 견인했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이연이 하니엘로 데뷔하고 난 이후, 단 한 번도 진절혜와 관련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설령 그녀의 개인 번호를 알고 있다 할지라도 먼저 연락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기에 그냥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비아 덕분에 오랜만에 진절혜의 이름을 접했다.
“글쎄. 요즘은 뭐 하면서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네.”
“그 언니, 소문으로는 어디 다른 소속사로 이전해서 가수 준비하고 있다고 그런 거 같던데.”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니까.”
생각해 보니 진절혜는 이미 LC 엔터테인먼트를 나갔다.
그러면 SSS 시즌 2에 출연할 일도 없다.
LC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이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자격 요건이니까.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진절혜라는 이름을 되뇐 이연은 그녀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볼 생각은 없지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진 않았다.
스쳐 지나간 악연 정도로만 여겨도 충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