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66화 (265/299)

266화

제75화. 권이연 선생님(1)

전이은과의 토크 프로그램 촬영이 끝난 직후, 하니엘 멤버들은 곧장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우미가 박도수 매니저에게 주행거리에 대해 물었다.

“지금까지 몇 킬로 달리신 거예요?”

“천오백 정도. 왜?”

“이거, 차 뽑은 지 얼마나 되셨다고 했죠?”

“어제지.”

“이틀 만에 천오백…… 이 차도 오래는 못 가겠네요.”

우미의 솔직한 말에 박도수 매니저는 쓴 미소로 일관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워낙 멤버들 스케줄이 바쁘다 보니 박도수 매니저의 대부분의 업무는 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지방 행사 같은 일정이 잡히면 그날은 아예 운전만 할 각오를 굳혀두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할 정도였다.

그나마 오늘은 서울, 경기권만 왔다 갔다 하면 되는 날이라서 다행이지만.

내일부터는 스케줄 지옥이 펼쳐질 예정이다.

물론 운전하는 박도수 매니저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멤버들 역시 고충이다.

그래도 한가한 것보다 이렇게 바쁜 게 더 좋다.

그만큼 인기 가수팀이라는 것을 뜻하니까 말이다.

“‘학교 종이 땡땡땡’ 촬영도 지방에서 하는 거 알지? 당일치기라서 아마 밤늦게 서울로 돌아올 테니까 잘 수 있을 때 푹 자둬. 알았지?”

“네, 알겠어요.”

앨범 준비하면서 충분히 쉬었으니까.

이제 다시 달릴 시간이다.

* * *

한 주를 정신없이 보낸 멤버들은 예능 프로그램 ‘학교 종이 땡땡땡’을 촬영하기 위해 충북 청주로 향했다.

이동하는 와중에 이연은 오늘 자신들이 출연할 프로그램 대본을 다시 한번 정독했다.

‘학교 종이 땡땡땡’은 유명 샐럽들이 실제 학교를 방문해서 일일 강사 역할을 맡아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로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의 학교에서 촬영이 진행되었지만. 장소가 너무 서울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으면 신선도도 떨어지고.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지방에 있는 학교로 가서 촬영을 할 때가 있었다.

하니엘이 출연하는 편이 딱 이런 경우에 속했다.

멤버들에게 있어서 청주란 도시는 낯설지 않았다.

대학 행사를 목적으로 이곳에 두어 번 정도 와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 종이 땡땡땡’을 연출하고 있는 PD가 조용히 스태프들, 출연자들을 모았다.

“애들 한창 수업 중이니까 최대한 조용히 이동할게요. 아셨죠?”

“네.”

학생들은 아직 자신들이 있는 이 학교에 하니엘이 일일 강사로 온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다.

이전 프로그램도 이렇게 몰카 방식으로 진행되곤 했었다.

‘연출인 줄 알았는데.’

이연은 이게 진짜일 줄은 예상 못 했었다.

그러나 다수의 장비들을 가지고 학생들 몰래 움직인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오디오 스태프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무거운 가방을 떨어뜨리려고 하던 순간.

이연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빠르게 마법을 발동했다.

분명 퍽! 하고 큰 소리가 났어야 하는데.

묵음 처리가 된 것처럼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PD가 스태프를 향해 찌릿 노려봤다.

스태프가 고개를 연달아 숙이면서 행동으로 죄송하다는 것을 열심히 어필했다.

그렇게 제작진은 무사히 시청각실까지 이동하는 데에 성공했다.

시청각실에서 임시 본부를 만들어 각 현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었다.

PD가 하니엘 멤버들을 소집했다.

“먼저 수업 들어가실 분들이 우미 씨하고 유키 씨죠?”

“네.”

“다음 쉬는 시간 끝나고 바로 투입하실 거니까 준비해 주세요.”

우미와 유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그녀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많이 감돌고 있었다.

우미가 깊은 호흡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터질 거 같아.”

“저도요.”

웬만하면 잘 긴장하지 않는 유키도 목소리가 살짝 떨릴 정도였다.

학생들이 과연 자신들을 잘 받아줄지.

짜잔! 하고 등장했는데 ‘누구세요?’ 같은 반응이 튀어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연이 우미와 유키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나섰다.

“가서 자신 있게 하고 오면 돼. 오면서 외워둔 것들 잊어버리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자신감이 중요하다.

특히나 무언가를 알려주는 입장에서는 이 자신감이라는 게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경험과 지식을 풀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과연 학생들이 그걸 배우고 싶어 할까?

천만에. 그럴 리가 없다.

교단에 서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믿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유의미한 수업을 만들어갈 수 있다.

스태프가 신호를 주자, 마침내 우미와 유키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남은 멤버들은 시청각실에 남아 두 멤버의 수업 내용을 지켜볼 예정이다.

가장 먼저 우미가 3학년 1반에 입장했다.

그녀의 등장에 고등학생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교실이 일순간 패닉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이었다.

이내 ‘학교 종이 땡땡땡’ 촬영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교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당연하게도 10대들 사이에서 하니엘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다.

우미가 다행이라는 한숨을 삼키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많이 놀라셨죠?

-네-!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국어 수업을 진행하게 된 양우미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시청각실에 남은 멤버들은 침착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우미를 모니터를 통해 지켜봤다.

비아가 맏언니의 의젓한 모습에 감탄사를 흘렸다.

“우미 언니, 엄청 불안해했던 것치고는 잘하는데?”

“언니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잖아.”

리샤의 말대로였다.

반면, 우미와 다르게 일본어 수업을 맡게 된 유키는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제, 제가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억지로 등 떠밀려서 발표했다가 애들한테 놀림받았던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마, 말을 잘 못해도 이해해 주세요. 아, 아셨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유키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 사람 다 많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지면서 안정감을 되찾아갔다.

앨범만 세 번이나 발표한, 나름 방송 경력을 쌓아온 아이돌 그룹이니까. 낯선 예능 환경이라 할지라도 카메라가 있으면 금세 적응할 수 있다.

우미와 유키가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PD가 이다음에 투입될 멤버들의 명단을 재차 확인했다.

“다음은…… 여솜 씨하고 시우 씨, 맞죠?”

“네, PD님.”

“여솜 씨는 한 30분 뒤에 음악실로 가시면 되고, 시우 씨는 미술실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각각 음악과 미술 과목을 맡고 있기에 우미, 유키처럼 일반 교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수업을 가지기로 했다.

그 전에 스태프들이 미리 음악실, 미술실을 찾아 세팅을 시작했다.

슬슬 다음 주자들이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비아가 먼저 장소를 이동하는 두 사람에게 응원을 건넸다.

“파이팅! 힘내, 여솜 언니! 시우도!”

두 사람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네 명의 멤버가 자리를 비웠을 때, PD가 남은 세 사람에게 확인차 물었다.

“세 분은 체육 맡기로 하신 거죠?”

“네.”

“의외네요. 저는 여솜 씨 말고 이연 씨가 음악 과목 맡을 줄 알았는데.”

이번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인 ‘beyond’가 음원 차트 줄 세우기에 나서면서 덩달아 이연의 작곡, 작사 능력이 대중들에게 널리 퍼졌다.

음악적 소양이 다분하니까. 그래서 PD는 권이연이 당연히 음악 과목 담당으로 나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비아, 리샤와 같이 체육 수업을 맡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이연이 직접 PD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간만에 몸 좀 풀고 싶어서요.”

평소에도 안무 연습으로 자주 몸을 움직이는 편이긴 하지만.

결국 그것도 다 일이니까.

그래서 촬영을 이용해서 오랜만에 사리사욕을 채울 생각이었다.

* * *

여솜, 시우 차례까지 끝나고 난 뒤에 그녀들은 점심 식사를 가지기 위해서 학교 내 식당을 찾았다.

그녀들의 등장에 학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워낙 열기가 뜨거웠기에 학교가 아니라 작은 콘서트 현장에 온 걸로 착각할 뻔했다.

식당 내부에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멤버들은 스태프들이 미리 준비해 둔 구석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식판은 어디 있어?”

“저기. 저쪽에서 식판 들고 밥 받아오면 될 거 같은데.”

멤버들이 우르르 식판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앞에 서 있던 남학생들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그녀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여학생들 역시 동경하는 아이돌을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다는 눈빛을 발사했다.

여기저기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식판을 들고 일렬로 나란히 줄을 선 멤버들.

배식을 맡은 아주머니가 이연의 식판 위로 반찬을 덜어주면서 말했다.

“우리 아들이 이연 씨 엄청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아드님한테도 계속 응원해 달라고 전해주세요.”

녹화 중에도 팬 서비스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받은 뒤에 멤버들은 다시 배정받은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녀들의 안내를 맡은 젊은 여선생이 학교 식당에 대한 자랑거리를 늘어놓았다.

“우리 학교가 밥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먹어보면 알게 되실 거예요.”

먼저 국물과 반찬 몇 개를 맛본 이연은 선생이 왜 이토록 자신 있게 말을 했었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제가 여기 학생이었으면 매일매일 먹으러 오고 싶을 정도에요.”

“그렇죠? 밥 때문에 다른 학교로 옮겨 가는 거 싫어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실 정도라니까요.”

맛있는 점심 식사 덕분에 아침부터 줄곧 이어지던 긴장과 부담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낸 멤버들은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에 나섰다.

그녀들이 가는 곳 어디든 학생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사진, 사인 요청이 쇄도했다.

혈기 왕성한 10대 청소년들이다 보니 부탁하는 것도 에너지가 넘쳤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은 채 학생들의 요구를 전부 받아줬다.

그렇게 정신없이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시청각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비아가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힘들어……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이연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의자에 축 늘어져 있는 비아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거나 받아.”

이연이 건넨 물건을 보자마자 비아의 얼굴은 더욱 울상이 되었다.

그녀가 비아에게 건네준 건 다름 아닌 체육복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미 언니하고 과목 바꾸지 말걸.”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래봤자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얌전히 현실에 순응하고 옷이나 갈아입으러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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