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제74화. 세 번째 앨범(3)
이연에게 완벽을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십중팔구 이렇게 답할 것이다.
노력이라고.
뭐든 노력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다.
누구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유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재능을 타고난 이연조차도 여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노력하고 연습했다.
그래서 그녀가 전 대륙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칭송받는 자리까지 오르게 된 거였다.
결국 답은 노력 하나밖에 없다.
특히나 이연이 추구하는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무조건 노력이 전제로 들어가야 한다.
하니엘의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인 ‘beyond’ 무대 역시 그녀의, 그녀들의 이런 노력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도 숙소가 아닌 안무 연습실로 가서 열심히 무대를 준비했던 그녀들.
이 노력은 생방송 쇼케이스 현장에서 제대로 진가를 발휘했다.
연습할 때보다도 더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사람들에게 ‘하니엘이 돌아왔다!’라고 당당하게 선포했다.
엔딩 포즈를 위해 멤버들이 이연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꽃을 형상화하는 것처럼 모인 그녀들.
4세대를 대표하는 아이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조명이 없어도 무대가 절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마무리 포즈를 취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새어 나왔다.
기자들조차 카메라에서 손을 떼고 박수를 칠 정도로 매력이 가득했던 무대였다.
노래가 잦아들고, 다시 조명빛이 그녀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무대로 올라온 이은솔이 객석에 앉은 이들에게 다시 한번 호응을 요청했다.
“좋은 무대 보여준 하니엘 여러분들에게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멤버들은 작게 허리를 숙이면서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창 달아올랐던 현장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을 때쯤, 멤버들이 스태프들이 가져온 스탠딩 의자에 착석했다.
이은솔이 이연에게 타이틀곡에 관한 질문을 건넸다.
“‘beyond’라는 곡 속에 담긴 뜻 같은 게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넘고 새로운 나를 팬 여러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beyond’라고 지었습니다.”
“작사도 이연 씨가 하신 거죠?”
“네, 맞아요.”
“정말 재능이 많으시군요. 작곡에 작사까지…….”
뿐만 아니라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게다가 미모까지.
말 그대로 완성형 아이돌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존재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몸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중간에 성별이 바뀐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실망보다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그런 흔한 기회가 아니니까.
그리고 적응하고 나니까 여자 아이돌이 더 나은 점도 여러 개 있었다.
그래서 이연은 지금 자신의 상황이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 자신의 위치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내는 일을.
* * *
1시간이 조금 넘는 컴백 쇼케이스가 마침내 모두 끝났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쇼케이스가 끝난 다음 날. 그녀들은 컴백 이전에 미리 잡아둔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차에 올라탔다.
늘 타고 다니던 차였지만, 오늘은 느낌이 제법 달랐다.
컴백한 이후라서…… 라는 이유도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게 하나 더 있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가장 먼저 그녀들을 반긴 것은 바로 새 차 특유의 내부 냄새였다.
리샤가 신이 난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면서 운전석에 앉아 있는 박도수 매니저에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이번에 새로 뽑았다는 그 차예요?”
“맞아. 어때. 괜찮지? 최고 트림에 풀옵이라서 엄청 좋아. 위에 선루프도 달려 있고.”
이전 차량에는 선루프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차를 뽑을 때에는 뒷좌석에 앉는 멤버들이 답답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선루프까지 옵션으로 집어넣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편의 기능들도 들어가 있었다.
에어컨도 시원하고. 오디오도 차 뒷열까지 전부 다 설치되어 있어서 이동 중에 음악을 들을 때에도 만족스러운 사운드를 접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전처럼 동일하게 2열 좌측에 자리를 잡은 이연은 앞으로 타고 다닐 차량 내부가 어떤지를 꼼꼼히 살폈다.
멤버들만큼이나…… 아니, 멤버들 이상으로 더 신이 난 사람은 박도수 매니저였다.
“이전 차는 크루즈 기능도 없어서 고속도로 탈 때마다 힘들어 죽을 뻔했는데. 역시 차는 좋고 봐야 한다니까. 이거 봐. 오토 홀드 기능도 들어 있다고.”
맨 뒷좌석에 앉은 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토 홀드가 뭐예요?”
“신호 정지할 때 브레이크 잠겼다가 엑셀 밟으면 다시 자동으로 브레이크 풀어주는 기능인데, 안전 때문이라도 있는 게 좋지. 내가 실장님한테 이 기능 있는 차면 좋다고 말했는데, 전부 다 들어주시더라.”
홍류현 실장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LC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걸 그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하니엘이라고 답할 테니까.
그녀들에게 그만한 대우와 투자를 하는 건 당연했다.
“출발할 테니까 안전벨트 잘 매고. 알았지.”
“네-”
학생들을 인솔하는 선생처럼 신신당부를 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
오랜만이라 그런지 멤버들은 오늘따라 이 길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주차장에서 내리는 순간.
저 멀리서 다수의 사람들이 줄을 선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하니엘이라는 건 금방 밝혀졌다.
그녀들의 출근길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플래시 공격.
가장 먼저 앞장선 사람은 리더 이연이었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한 여성 스태프가 카메라 바깥 범위에서 이연에게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곳에 서면 된다는 뜻이었다.
이연이 먼저 서서 기준이 되어준 덕분에 다른 멤버들은 쉽게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이연을 중심으로 각각 좌, 우측에 선 멤버들.
이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둘, 셋.”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천사, 하니엘입니다!”
데뷔 때부터 쭉 지켜온 그룹 소개 멘트에 현장의 열기가 다시 한번 달아올랐다.
날씨도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의 열띤 호응이 유독 뜨겁게 느껴졌다.
이 와중에 멤버들은 메이크업이 땀으로 인해 번지거나 지워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기자들의 요구에 따라 출근길 포토타임을 끝낸 멤버들은 미리 준비해 둔 손 선풍기로 열을 식히면서 걸음을 옮겼다.
오늘 그녀들이 출연할 프로그램은 ‘전이은의 에스코트’라는 토크 프로였다.
타이틀에 맞게 전이은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하니엘 입장에선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전이은은 그녀들에게 있어서 대선배였기 때문이다.
민주린보다도 선배였기에 긴장의 끈을 놓쳐선 절대로 안 된다.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대본을 체크하고 있던 전이은이 그녀들을 반겼다.
“어머, 왔어?”
“안녕하세요, 선배님!”
멤버들이 그녀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전이은과 하니엘이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SSS, 그리고 걸파이트 시즌 2에도 그녀가 심사 위원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들이 가수 대 가수로 만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우리 프로그램 분위기가 어떤지는 다들 알고 있지?”
“네!”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친한 언니하고 대화하러 왔다고 생각하면서 녹화하면 돼. 여기 PD님하고 작가님들도 다 착한 사람들이니까.”
확실히 인상만 봐도 그렇게 느껴지긴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정말로 내 집 안방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방송은 방송이니까.
신호와 함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리 마련되어 있던 의자를 하나둘씩 채워가는 멤버들을 보면서 전이은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최근까지는 솔로 가수분, 배우분들만 모셔서 스튜디오가 이렇게까지 꽉 찰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오랜만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왁자지껄하고 좋네요.”
멤버들은 애써 긴장감을 감추며 웃었다.
쇼케이스 바로 다음 날에 가지는 촬영이다 보니 컴백 무대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저도 어제 하니엘 분들의 무대를 생방송으로 봤었는데…… 굉장하더라고요. 하니엘이 원래부터 걸 그룹들 중에서 안무를 빡세게 하기로 잘 알려져 있잖아요.”
“네. 그렇죠.”
“이번에도 어려운 동작들이 상당히 많이 보이던데. 저 안무들을 소화하면서 라이브까지 가능하다는 모습을 보고서 ‘와, 대단하다’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만약에 저보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전 못 할 거 같아요.”
하니엘 멤버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전이은의 말을 부정했다.
“선배님이 저희보다 훨씬 더 잘하실 거예요.”
“맞아요, 선배님.”
빤히 보이는 칭찬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전이은의 얼굴에 미소 꽃이 만개했다.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아이돌이 출연했다 하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코너가 있다.
“하니엘 여러분들의 무대를 이곳에서 직접 보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자, 지금부터 채널 고정해 주세요. 아셨죠?”
전이은이 카메라를 보면서 강조하는 동안, 멤버들은 컴백 쇼케이스 때처럼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정식 무대가 아니라 토크 프로그램 스튜디오에서 안무를 펼쳐야 하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바로 공간 문제다.
뒤쪽을 슬쩍 바라본 이연이 한 걸음 앞으로 위치를 옮겼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안무를 시작하면, 뒷열에 있는 시우와 유키가 공간이 넉넉지 않을 거 같기 때문이었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멤버들은 어제보다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안무를 소화하기 시작했다.
어제의 경우에는 생방송이어서 실수를 저질러도 그대로 송출되지만, 녹화는 편집의 힘을 빌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부담감이 많이 없었다.
3분여 동안의 짧은 무대를 끝내자, 전이은과 스태프들이 그녀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시 토크를 위해 출연자들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전이은이 소감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봤던 인상적인 장면을 언급했다.
“무대 시작하기 전에 이연 씨가 한 걸음 살짝 앞으로 나오는 거 봤어요. 멤버들 공간 만들어주려고 일부러 자리 옮기신 거죠?”
“아, 네. 맞습니다, 선배님.”
“그거 보고 이연 씨가 왜 이 그룹의 리더를 맡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겠더라고요.”
멤버들도 전이은의 말에 깊게 공감했다.
“맞아요, 선배님.”
“연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희도 없었을 거예요.”
이연은 본인의 칭찬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전이은의 예리한 눈썰미에 감탄을 삼켰다.
역시.
오랫동안 쌓아온 가수로서의 짬은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