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64화 (263/299)

264화

제73화. 세 번째 앨범(2)

이연이 바라는 완벽한 무대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당연하게도 우선은 곡이 좋아야 한다.

관객들뿐만 아니라 이연의 마음에도 쏙 드는 곡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까지 하니엘이 발표했던 곡들은 뭔가 1~2퍼센트가 늘 부족한 느낌을 받았었다.

어쩔 수 없다. 이연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곡이 아니니까.

아무리 진세혁 프로듀서가 유능한 작곡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긴 어렵다.

특히 음악적 기준이 매우 높은 이연을 만족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직접 하는 게 낫지.’

그래서 이연에게 이번에 작곡 기회가 주어졌을 때, 속으로 내심 기뻤다.

그녀가 원하는 완벽한 무대의 첫 번째 조건을 완성시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

두 번째 조건인 퍼포먼스도 어느 정도 타협을 볼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는 갖춰졌다.

준비 단계만 봤을 때, 이번 앨범이 완벽한 무대를 완성시키기 위한 조건들이 가장 많이 갖춰진 경우였다.

이렇다 보니 이연 입장에선 기대감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이제 나머지 조건들만 클리어하면 된다.

모든 조건들이 갖춰진 무대에 섰을 때.

그녀는 전생에서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새로운 길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중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우미가 이연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연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하고 있어?”

“그냥…… 이것저것.”

자신의 전생과 관련된 이유다 보니 직접적으로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그렇듯 대충 둘러대기 식으로 답했다.

기왕 현장에 온 김에 무대뿐만 아니라 대기실도 한번 쭉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물리적으로 공간이 넓어진 건 아니지만, 인테리어가 깔끔하게 싹 바뀌어서 그런지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진 듯한 느낌이었다.

‘공사 잘했네.’

이 정도면 이연이 봐도 합격이다.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에게 다가와서 의견을 물었다.

“어때. 괜찮지?”

“네. 돈 많이 쓴 거 같아요.”

“리모델링하고 너희가 첫 번째로 쓰는 거라고 하니까 이것도 의미가 있지.”

“리모델링은 두 달 전에 끝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아예 사용이 안 되었던 거예요?”

“뭐…… 내부 사정이 있었나 봐. 아무튼 우리 입장에서는 좋지. 새 거 쓰는 거잖아.”

“그렇긴 하죠.”

이래저래 타이밍이 좋긴 했다.

‘앨범이 잘 풀리려고 그러나.’

이번 일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소소하게 좋은 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게 과연 컴백 쇼케이스에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이연은 슬쩍 궁금해졌다.

* * *

컴백 쇼케이스까지 앞으로 D-1.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멤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짙어지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이미 수백 번 넘게 연습한 안무 동작에도 쓸데없이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

은서해가 큰 목소리로 ‘그만!’이라 외치면서 그녀들에게 충고했다.

“지금 너무 긴장하고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동작도 뻣뻣해지고. 표정도 마찬가지야. 팬들한테 웃는 모습 보여줘야지, 카메라 앞에서 팍 인상 쓰고 있으면 안 되잖아. 그렇지?”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미안해할 상대는 내가 아니라 너희 무대를 봐줄 팬들이야. 팬들한테 실망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들의 일이잖아. 그게 아이돌이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녀들이 무대 위에 서 있을 때만큼은 모두가 다 행복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멤버들은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여러 차례 흘렸다.

늦은 시간까지 계속 연습이 이어졌다.

그러나 내일의 일도 생각해야 했기에 날짜를 넘기면서까지 연습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시간에 마무리를 짓고 나서야 멤버들은 겨우 숙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차에 앉은 멤버들의 입에서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연습하고 가고 싶은데.”

비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건 절대로 흔치 않다.

컴백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이연이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 비아와 눈을 마주쳤다.

“괜찮아. 지금까지 계속 잘해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푹 쉬어. 저번에도 말했지? 컨디션 관리를…….”

이때 비아가 이연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대사를 가로챘다.

“컨디션 관리를 잘하는 것도 아이돌로서 중요한 일이다. 맞지?”

“정답.”

성대모사는 전혀 비슷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연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은 정확히 맞혔다.

멤버들은 이제 이연이 세세하게 피드백하고 잡아주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했다.

가끔은 이연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활약상을 보일 때도 있었다.

이연이 늘 머릿속에 그렸던 하니엘이라는 그룹이 세 번째 앨범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었다.

물론 아직 판단은 이르다.

컴백 쇼케이스를 마치고. 하니엘의 무대가 대중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 지까지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무대의 마침표를 찍는 건 가수의 노래도, 춤도 아닌 팬들의 호응이다.

훌륭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그때 가 봐야 안다.

* * *

하니엘의 컴백 기사를 다루기 위해 수많은 기자들이 현장을 찾았다.

거의 미니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MC는 이은솔이 맡기로 했다.

이전에 그녀들의 쇼케이스 무대 진행자 역할을 맡기로 했다가 스케줄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던 일이 계속 마음에 쓰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이은솔이 어떻게 해서든 MC를 맡겠다고 먼저 강력하게 의지를 드러냈다.

쇼케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이은솔은 하니엘 멤버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을 먼저 찾았다.

똑똑 소리와 함께 안에서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문을 연 순간, 이은솔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은 멤버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특히 이은솔의 시선과 함께 마음까지 앗아가 버린 존재가 있었다.

바로 권이연이었다.

흰색 하이힐에 펄이 들어간 검은색 바탕의 짧은 치마. 시원하게 배와 어깨를 드러낸 상의 차림에 이은솔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라는 건 사람을 참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계절이라고.

너무 멍하니 서 있기만 하면 그것도 문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은솔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들…… 어때? 컨디션은 괜찮지?”

비아가 장난기가 가득 담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저희는 괜찮은데, 오히려 선배님이 더 많이 긴장하신 거 같은데요.”

“그, 그렇게 보여?”

따지고 보면 긴장 때문이 아니라 이연의 존재감 때문에 그런 거였다.

그래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온 거니까.

이 목적에 걸맞은 행동을 취하기 위해 재차 입을 열었다.

“평소 무대처럼 너무 떨지 말고 침착하게 하면 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리허설 때만큼만 하자. 알았지?”

“네, 선배님.”

“그래. 그럼 나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이따가 보자.”

대기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이은솔은 이연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대가 아닌 곳에 서 있어도 빛이 나는 존재.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와중에 이은솔은 비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배가 더 긴장한 거 같다고.

“그 말이 맞나 봐.”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 * *

하니엘의 컴백 쇼케이스 방송이 마침내 막을 열었다.

이은솔이 무대에 올라서면서 포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가수 이은솔입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의 사랑하는 후배, 하니엘의 세 번째 앨범 쇼케이스 현장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현장에 있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생방송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 대표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제가 먼저 하니엘 여러분들의 무대를 봤었거든요. 단언컨대 이번 곡은 지금까지 하니엘이 선보였던 무대들 중에서 최고가 될 겁니다. 그럼 무대를 보기 전에 먼저 멤버들부터 소개해 보도록 할까요? 여러분, 큰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이은솔의 멘트에 따라 무대로 향하는 계단에서 대기 중이던 하니엘 멤버들이 한 명 한 명씩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그녀들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을 나타내듯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이은솔이 자기소개를 부탁한다면서 멤버들에게 멘트를 넘겼다.

우미를 시작으로 자기소개가 쭉 이어졌다.

마지막을 담당한 사람은 이연이었다.

“안녕하세요. 하니엘에서 리더 겸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이연입니다. 이렇게 세 번째 앨범을 통해서 다시 한번 여러분들 앞에 설 수 있게 되어 정말로 기쁩니다. 이번에도 열심히 활동할 테니까 계속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연의 마무리 소개가 끝난 이후에 다시 이은솔이 말을 이었다.

“이연 씨가 마이크를 든 김에 이번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에 대한 설명도 같이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타이틀곡은 ‘beyond’입니다. 단어 그대로 한계를 넘고 싶다는 의미에서 이번 곡을 만들었는데요.”

“아, 이연 씨가 직접 작곡을 맡으신 건가요?”

“네, 맞아요.”

물론 이은솔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아예 모른다.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연이 작곡을 맡았음을 알려주기 위해 상황극을 펼쳤다.

이연이 곡을 작곡했다는 정보가 공개되자 기자들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기자들을 위해서 이은솔은 이연에게 추가로 질문을 건넸다.

“작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네. SSS에 출연할 때에도 오리지널 곡을 만든 적은 있었는데, 데뷔 후에 제 손으로 타이틀곡을 써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미 여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연 씨의 작곡 능력은 프로급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직 그분들에 비할 바는 아니고요. 대신에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은솔의 입가에 흐뭇해하는 미소가 번졌다.

“이연 씨가 저렇게 애교 있는 목소리로 귀엽게 봐달라고 하면 무조건이죠. 안 그렇습니까?”

무대에 올라와 있는 멤버들뿐만 아니라 기자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당연한 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연은 ‘제가 언제 애교 있는 목소리로……’라고 태클을 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일단 무대를 보고 난 다음에 다시 토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의 준비는 다 끝나셨을까요?”

“네!”

“좋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다시 뵙도록 하죠.”

스태프들이 무대로 올라와서 멤버들이 앉았던 의자를 치웠다.

각 포지션별로 위치에 선 멤버들.

여기저기서 긴장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불이 꺼지고.

타이틀곡 반주가 흘러나오자, 이번에도 센터를 맡은 이연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시작으로 하니엘의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 최초로 공개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