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제72화. 아운대(5)
리샤의 파죽지세는 결승 진출 확정까지 계속 이어졌다.
결승전에 진출한 사람은 총 넷.
백팀 셋, 청팀 하나로 구성되었다.
보기에는 백팀이 아주 유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중계석이 보기에는 오히려 청팀이 우승할 확률이 커 보였다.
하나 남은 청팀 인원이 바로.
“시영 선수! 또 텐입니다! 벌써 몇 연속입니까?”
“초반부터 엄청난 기세로 백팀 선수들을 따돌리네요!”
“점수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백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네요!”
중계진의 말대로다.
쐈다 하면 텐, 텐, 텐이니까 백팀 선수들 입장에선 목이 탈 수밖에 없었다.
양궁 경기장을 지키고 있던 여솜이 기도하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막내 멤버들은 리샤와 백팀 선배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다른 그룹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에 나섰다.
다음, 리샤의 차례.
피융! 소리와 함께 중계진의 외침도 커졌다.
“텐입니다! 리샤 선수, 시영 선수 뒤를 바짝 따라가네요!”
“그나마 시영 선수를 견제할 사람이 리샤 선수인 거 같습니다만…… 어렵네요. 지금부터 리샤 선수가 한 발도 놓치지 않고 전부 텐을 맞히고, 여기에 더해서 시영 선수가 잠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역전 가능성이 있을 텐데.”
“어려운 조건이네요.”
해설위원의 말대로다.
두 가지 조건이 전부 맞물려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은 화살은 각각 3발씩.
시영의 차례가 되었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활시위를 당기는 그녀의 손끝이 흔들렸다.
동시에 이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시 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5점!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시영 선수, 많이 긴장했나요?”
“청팀, 기회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역전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리샤가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시영이 실수했을 때 따라잡아야 한다.
이때가 아니면 앞으로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리샤에게 주어진 세 발 중 한 발이 포물선을 그렸다.
또다시 텐.
중계진뿐만 아니라 관중석에서 감탄과 탄식이 뒤섞였다.
이제 점수 차이는 고작 3점.
리샤가 처음 활을 잡고 연습할 당시에는 헛발이 많았는데.
각성이라도 한 모양인지 놀라운 활약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한 번의 흔들림이 낳은 여진 때문일까.
시영은 이번에도 실수를 저질렀다.
“8점입니다! 시영 선수! 방금 전의 실수는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게 나을 텐데요!”
“이래서 스포츠라는 게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잘 하다가도 페이스를 잃는 순간, 그 뒤의 경기가 엉망이 되어버리거든요.”
연달아 텐을 성공시키던 시영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반면 리샤는 이번에도 중앙에 화살을 꽂아 넣으면서 동점을 만들어냈다.
이제 각 선수들에게 남은 화살은 한 발뿐이다.
단 한 발. 여기에 양궁 우승팀이 정해진다.
이연을 제외한 하니엘 멤버들 전체가 다 손을 모았다.
비아가 이연을 찰싹찰싹 때렸다.
“언니, 뭐 하고 있어! 언니도 와서 리샤 언니 우승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해!”
“우승은 하늘이 점지해 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가는 거야.”
“어휴. 저 언니는 왜 이렇게 현실적이야.”
모두가 잔뜩 들뜨고 긴장한 상황인데도 이연만 유일하게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앞서 백팀 두 선수의 차례가 끝났다.
둘 다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시영과 리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은 덜 받고 있었다.
그래도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두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시영이 자리에 들어선 순간, 현장 분위기가 마치 도서관처럼 정숙 상태가 되었다.
셋업 이후에 이어지는 드로잉.
슈팅과 함께 시영이 쏜 마지막 화살이 공기를 갈랐다.
툭!
“9점입니다!”
“종이 한 장 차이네요! 아쉽습니다!”
“여기서 리샤 선수가 텐을 맞히면 역전입니다, 역전!”
이연은 호들갑을 떠는 중계진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벌써부터 저렇게 잔뜩 흥분한 채로 외치면 오히려 리샤에게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괜히 저것 때문에 긴장해서 실수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담이라는 두 글자가 리샤의 가녀린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샤는 다시 한번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채 활을 들어 올렸다.
셋업.
활을 수직으로, 어깨는 수평을 유지하면서 자세를 취했다.
여러 번의 실전 경험 덕분인지 이제 자세는 거의 프로에 가까웠다.
중요한 순간.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머리 위로 꽹과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이연의 시선에 포착되었다.
한 남자가 일부러 리샤의 집중력을 흩뜨리기 위해서 방해하려는 행동을 보였다.
‘청팀 팬인가 보네.’
이연의 주변에 마나가 일렁였다.
사람들 몰래 마나 덩어리를 발사했다.
날아든 마나 덩어리는 남자의 양팔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어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남자는 크게 당황했다.
그사이.
리샤의 마지막 슈팅이 펼쳐졌다.
핑―!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면서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한 발.
리샤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녁 한가운데만을 노렸다.
결과는…….
“텐! 텐입니다!”
“리샤 선수, 초반과 달리 후반에는 연달아 텐을 성공시키면서 결국 우승까지 거머쥐게 되네요!”
“하니엘의 리샤 선수! 기막힌 역전의 드라마를 완성시켰습니다!”
설마 했는데. 우승까지 달성하자 리샤 본인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니엘 멤버들은 경기장으로 뛰어가 그녀를 와락 안아줬다.
“고생했어, 리샤 언니!”
“으휴, 내 새끼! 너무 잘했어!”
“나, 우승한 거 맞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인지 리샤가 멤버들에게 자신의 우승 여부를 재차 물었다.
천천히 걸어온 이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축하해, 리샤.”
그녀의 활약 덕분에 시작부터 백팀이 한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 * *
결승전에서 리샤와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던 셰리드의 시영도 리샤의 우승을 축하해 줬다.
하니엘의 우승 덕분에 시작부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 백팀.
그러나 양궁과 마찬가지로 오전에 편성되어 있던 e스포츠 부문에서는 청팀이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금세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상태가 되어버렸다.
오전 종목들이 모두 끝나고.
참가자들은 쉬는 시간 겸 점심 식사 타임을 가졌다.
청팀, 백팀으로 나뉘어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식사할 때에는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모여 시간을 보냈다.
멤버들과 같이 밥을 먹던 이연은 바로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캐리 원 쪽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e스포츠에서 청팀의 우승을 견인했던 멤버가 캐리 원에 소속되어 있었다.
남자 양궁 부문에서도 캐리 원 멤버 한 명이 결승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해냈다.
‘저 팀은 일 년 내내 아운대만 준비하나.’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 잘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멤버들도 12명이나 되어서 그런지 다양한 종목에서 고루고루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년 MVP 팀은 역시 남달랐다.
먼저 식사를 마친 유키가 MVP 제도에 대해 언급했다.
“리샤 언니가 양궁 우승했으니까 저희도 MVP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운대 MVP 선정 기준은 캐리 원처럼 팀의 성적에 얼마나 크게 기여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유키가 살짝 기대심을 드러냈지만, 이연은 ‘글쎄’라는 반응을 보였다.
“릴레이에서 최소 결승 무대까지는 밟아야 가능성이 있겠지.”
오전보다는 오후에 더 많은 종목들이 배치되어 있다.
오전에 잠잠했던 그룹이 오후에 갑자기 위로 치고 올라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이비제이나 MAYO 멤버들은 전부 오후 종목들 쪽에 참가 등록이 되어 있었다.
여성 부문 종목들 쪽에선 이 두 그룹을 빼놓고 말할 수 없었기에 이연은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식사를 끝낸 이연은 계주 경기를 앞두고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에 돌입했다.
그녀의 유연한 몸풀기 동작에 주변 아이돌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이연이 몸 푸는 것만 해도 비범함이 느껴졌다.
한창 스트레칭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이은솔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붙였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나쁘지 않아요. 선배님은요?”
“나? 어제 늦게 자서 그런지 좀 피곤하긴 한데. 뭐, 괜찮겠지.”
잠을 잘못 자서 그런 걸까. 이은솔은 자신의 어깨를 스스로 토닥였다.
이연이 이은솔에게 빈 의자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제가 안마라도 해드릴까요?”
“응? 아니야, 괜찮아. 그냥 어깨 근육이 뭉쳐서 그런 거니까.”
“그러면 더더욱 안마받으셔야겠네요. 여기 앉으세요, 선배님.”
이은솔은 이연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괜찮을지 말지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그러나 망설임만으로는 이연의 고집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연이 하라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실례할게요, 선배님.”
“마음껏 실례해도 돼.”
안마는 힘, 그리고 전문적인 스킬이 필요하다.
이연의 가녀린 팔로는 뭉친 근육을 완벽하게 풀어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크게 기대가 되진 않았다.
그러나 이건 이은솔의 착각이었다.
이연이 살짝 힘을 주자.
“……억!”
이은솔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괜찮으세요, 선배님?”
“어, 어! 괘, 괜찮아. 악력이 장난이 아니네.”
이연은 그저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작년에 길거리에서 진행했던 커플 게임에서도 그랬지만, 이연의 근력은 이은솔보다도 더 뛰어났다.
물론 순수하게 근력이 강해서 이런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마법의 힘이다.
엄지 끝으로 이은솔의 어깨 위쪽 부분을 강하게 압박했다.
처음에는 아프다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보다는 시원함이 밀려왔다.
“어때요, 선배님? 불편하신 곳은 없죠?”
“어. 전혀. 고마워. 덕분에 몸이 좀 가벼워진 거 같아.”
안마의 효험을 자랑하기 위함인지 이은솔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예전에 안마 배운 적 있어?”
“네. 잠깐이지만요. 나중에 또 필요하시면 언제든 해드릴게요. 그럼 힘내요, 선배님.”
안마도 안마지만.
이은솔에겐 이연의 ‘힘내요’라는 이 말이 더 큰 힘을 선물했다.
* * *
점심시간이 끝나고.
하니엘 멤버들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여자 릴레이 경기가 준비되었다.
리샤의 우승 덕분인지, 카메라맨들이 유독 하니엘의 모습을 유독 많이 잡기 시작했다.
주목도가 한꺼번에 올라간 건 좋지만.
반대로 부작용도 있었다.
“으아…… 언니, 저기 봐. 저 카메라도 우리 찍고 있어.”
비아가 우미와 팔짱을 끼면서 지레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연예인이 관심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운대 촬영에서는 유독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비아처럼 직접적으로 말만 안 했지, 릴레이 경기에 참가하는 다른 하니엘 멤버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연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걱정이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