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58화 (258/299)

258화

제72화. 아운대(4)

음방 녹화 때보다도 몇 배는 많은 아이돌들이 참여하다 보니 현장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날씨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야외 경기장에서 가지는 녹화였기 때문에 오늘 날씨 상태에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겨우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거였다.

물론 출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은 넓은 공간에 칸막이만 따로 쳐진 열악한 대기실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사이, 경기장 쪽에서 다수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메이크업 상태를 재차 확인한 우미가 귀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팬분들, 벌써 입장 시작했나 봐.”

50여 개가 넘는 아이돌 팀이 참가하다 보니 그만큼 팬들 역시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제한 없이 팬들을 받고 있는 건 아니었다.

가수팀별로 각자 응원할 팬들을 따로 정원에 맞게 모집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있었다.

시우가 자신이 들었던 작년 아운대 이야기를 해줬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자기가 응원하는 가수팀 말고 전혀 관심도 없는 가수팀 쪽에 지원한대요. 그러고 현장에 와선 다른 가수 응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리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아, 그거? 나도 들었어. 인기 많은 선배님들 쪽으로 지원하면 경쟁이 심하니까 그랬다던데.”

무명에 가까운 가수팀은 그만큼 응원하러 오는 팬들도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현장 관람을 두고 경쟁을 벌일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한 셈이었다.

유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신 화를 냈다.

“그러면 그 선배님들은 응원하는 팬들도 없이 녹화해야 하는 거잖아요.”

“뭐…… 그렇지?”

“너무하네요.”

이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직접 보기 위해서 온갖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쯤 되니 비아의 머릿속에 걱정 하나가 스쳤다.

“설마 우리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니야?”

벌써 세 번째 앨범을 준비 중인 하니엘이지만, 데뷔 기간으로 따지면 아직 신인급에 속한다.

시우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될까 봐 덜컥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연은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딱 잘라 말했다.

“괜찮아. 이번에는 제작진이 확실하게 검증한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우리들은 경기에만 집중하면 돼. 외부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마.”

목표는 최소 한 종목 이상 우승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잡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편이 좋다.

슬슬 준비가 다 끝나갈 때쯤.

스피커를 통해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에 아운대 녹화가 시작될 예정이니 참가하시는 분들은 입장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녹화에 참여하는 아이돌들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이런 식으로 방송을 통해 순서를 전달해야 했다.

사전 미팅 당시 어떤 식으로 촬영이 진행되는지 대충 안내를 받았던 아이돌들은 안내 방송에 맞춰 하나둘씩 장소를 이동했다.

경기장 안으로 향하는 복도.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각 그룹들이 순서에 맞춰서 정렬했다.

백팀을 대표하는 가수팀은 이견 없이 벡스로 선정되었다.

가장 선배 그룹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번 아운대 참가팀 중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아직 입장도 안 했는데 관중석에서는 벌써부터 벡스를 연호하는 팬들의 환호성이 가장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여솜이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벡스 선배님들이시네.”

뒤에 서 있던 비아가 부러움을 드러내며 물었다.

“언니들. 우리는 언제쯤 저렇게 될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는 여솜과 달리 이연은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면서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조만간이야.”

하니엘은 지금도 충분히 잘해왔다.

이대로만 가면, 이연은 빠른 시일 내에 아이비제이를 제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벡스를 넘어서 세계로 진출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하니엘의 존재를 많이 드러내야 한다.

아운대에 참가하기로 한 계기 중 하나 또한 이와 연결되어 있다.

경기장 쪽에서 다시 한번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참가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방송에 따라 벡스, 그리고 청팀 대표이자 작년 MVP 그룹으로 선정된 보이그룹, 캐리 원이 나란히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들의 등장에 벌써부터 현장은 난리가 났다.

넓은 경기장이 마치 살아 있는 거대한 생물처럼 크게 들썩였다.

점점 자신들의 차례가 다가오자, 이연과 함께 맨 앞에 나란히 선 우미가 본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어떻게 해. 심장 떨려…….”

너무 긴장해서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한편, 이연은 이런 경기장에서 시합에 나서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예전에 기사 역할 연습한다고 기마 대회까지 나가고 그랬었는데.’

그쪽으로 재능이 있었던 모양인지, 루웰 시절의 이연은 현역 기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마 대회에 참가해서 3등이라는 특출한 성적을 거둔 적이 있었다.

그때 음유시인 관두고 그쪽으로 진출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진지한 제안이 많이 들어왔었다.

그럼에도 이연은 무수히 들어오는 러브콜들을 전부 거절했다.

그녀는 전장이 아닌 무대에 서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니엘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한쪽에서 그녀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아가 이연을 툭툭 치면서 소리가 들린 방향을 가리켰다.

“언니! 저기 봐봐! 우리 팬들 있어!”

“없을 리가 없지.”

하니엘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하니유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신청한 모든 하니유들이 다 이곳에 올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대표로 응원을 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관중석을 지키는 하니유들은 평소보다도 더 뜨거운 열기를 뽐냈다.

그렇게 아운대에 참가하는 모든 아이돌들이 청팀, 백팀 구분에 맞춰서 나란히 줄을 섰다.

순서에 맞춰서 아이돌 운동 대회 개회식이 진행되었다.

축하 무대는 하니엘과 오래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민주린과 가수, 배우 두 분야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보이는 민예설이 맡았다.

이후 벡스, 캐리 원 리더가 각각 나와 페어플레이를 다지는 선서문을 낭독했다.

다른 아이돌들 역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선서문 끝부분만 복명복창했다.

모든 개회식 순서를 마무리 지은 뒤, 가수팀들은 각자의 진영을 나타내는 청팀 백팀 본부로 흩어졌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백팀’이라 크게 적혀 있는 천막 아래로 향한 아이돌들.

비아는 자리에 오자마자 수분부터 먼저 보충했다.

긴장해서 그런지 개회식이 진행되는 내내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었기 때문이다.

비아와 마찬가지로 아운대에 참가하는 몇몇 아이돌들 역시 벌써부터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물통을 하나씩 손에 들었다.

이 중에서 가장 긴장하고 있을 사람은 단연 리샤를 포함한 양궁 참가자들이었다.

―양궁에 참가하는 아이돌은 지금 양궁 경기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리샤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갔다 올게.”

그녀의 얼굴에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화이팅!”

“언니, 알지? 무조건 우승하는 거야!”

리샤의 얼굴에 쓴 미소가 번졌다.

당연히 그녀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번 아운대는 참가 명단만 봐도 우승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운대에 출연했던 역대 아이돌 참가자들 중에서 상위권에 자주 들락날락했던 가수팀이 가득 포진되어 있었다.

양궁도 마찬가지다.

여자 양궁 부문에선 여성 4인조 그룹, 셰리드의 메인보컬인 시영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고 있었다.

작년에도 시영이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선보이면서 단독 1위 자리에 올랐다.

청팀의 에이스라고 볼 수 있었다.

막상 리샤가 혼자서 양궁장으로 이동하려니까 덜컥 겁이 났다.

멤버들 역시 리샤를 혼자 보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오전에는 리샤의 경기밖에 없으니까.

리샤를 위해서 응원전을 나서기로 한 멤버들은 다 같이 양궁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현장에는 그녀들뿐만 아니라 양궁 경기에 참가하는 아이돌들, 그리고 하니엘처럼 각자 속한 멤버를 응원하기 위해 다수의 걸 그룹들이 자리를 잡았다.

CDP, 가을소녀 등 하니엘에게도 익숙한 그룹들도 보였다.

예선 1차전.

첫 그룹으로 편성된 리샤는 연습 경기를 가졌던 날 이후, 오랜만에 활을 잡았다.

후우.

그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무대에 설 때보다도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카메라가 응원에 나선 걸 그룹들을 비췄다.

아이돌들은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셰리드, 이번에도 우승 가자!”

“언니야! 예선은 반드시 통과해야 돼! 알았지?”

“리샤 언니, 힘내! 우리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응원전은 따로 점수에 가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참가한 아이돌들은 마치 자기가 경기에 참가한 것 마냥 몰입하면서 치열한 응원 싸움을 펼쳤다.

경쟁의 세계에 선후배 같은 건 없다.

상하 관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건 오직 실력에 따른 과정과 결과뿐.

마침내 예선 1차전이 시작되었다.

화살 끝을 현에 건 리샤가 있는 힘껏 드로잉 자세를 취했다.

너무 긴장해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자세는 흔들림이 없었다.

잠시 호흡을 멈추고 온 신경을 과녁에 집중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화살이 빠른 속도로 리샤의 손을 떠났다.

첫 화살임에도 불구하고.

―텐!

과녁이 정중앙에 꽂혔다.

하니엘 멤버들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언니!”

“잘했어! 나이스!”

기뻐하는 멤버들과 달리, 리샤의 표정은 침착했다.

지금의 이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다시 차례가 돌고, 또 한 번 리샤의 순서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첫 번째 시도만큼 점수를 높게 가져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같은 예선 그룹에 속한 그 어떤 아이돌들보다 독보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리샤의 경기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시영은 같은 그룹에 속한 멤버들을 찾았다.

쟤, 잘하지 않아?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우승 후보가 관심을 보일 정도라는 건 나름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연은 걱정이 들었다.

리샤는 이런 무대가 처음이다.

지금이야 침착하게 잘 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번 흐름을 잃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 텐데.’

그렇다고 이연이 그녀를 대신해서 경기에 참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잘할 거라고 믿어보는 수밖에 없겠네.’

그녀를 믿고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연은 왠지 모르게 예감이 좋았다.

리샤가 양궁 대회에서 대형사고 한번 제대로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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