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56화 (256/299)

256화

제72화. 아운대(2)

아운대 백팀 3차 단체 미팅을 위해 이연은 PD와 제작진 몇몇이 모여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50여 개가 넘는 아이돌 그룹이 참가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보니, 이 모든 그룹 멤버들을 한자리에 모아 미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서로 시간 조율하기도 힘들고.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각 팀의 의견을 취합해서 리더만 대표로 참가해 미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연이 홍류현 실장, 그리고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이 자리에 오게 된 거였다.

1차, 2차에서 다른 그룹의 리더들과 먼저 만남을 가진 제작진의 표정은 벌써부터 피곤함에 찌들어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미팅의 연속이다.

이연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물을 조용히 들이켜면서 제작진의 눈가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을 관찰했다.

‘원래 사람 만나는 일이 가장 피곤한 법이지.’

이연도 한창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다닐 때 제작진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심정이 어떤지 공감이 간다.

이연을 필두로 오늘 미팅에 참가하게 될 각 그룹의 리더들이 속속들이 도착해 자리를 채웠다.

오늘은 7개의 그룹이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니엘과 깊은 인연이 있는 샤이걸스, CDP도 백팀 3차 미팅 자리에 참석했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인물이 회의실에 도착하자마자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다.

제작진은 괜찮다, 신경 쓸 거 없다 하는 말을 흘리면서 그를 최대한 배려하려 했다.

다른 그룹들과는 사뭇 다른 대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벡스면 인정이지.’

이번 아운대의 시청률을 견인할 최고 인기 보이 그룹, 벡스 님께서 오셨는데. 황제 대접은 당연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아운대를 총괄하게 된 최석 PD가 물음표를 띄웠다.

“제운 씨는요?”

벡스의 리더 대신 강의찬이 미팅에 참석했다.

강의찬은 어쩌다가 자기가 오게 되었는지 설명에 나섰다.

“형이 오늘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해서요. 그래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그래요? 많이 아프신가요?”

“아니요. 약간 몸살기 정도만 있는 거 같아요. 하루 푹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예전부터 그랬거든요.”

사실 리더든 아니든. 벡스 멤버가 미팅에 참석했다는 것만 하더라도 큰 의미가 있다.

강의찬의 등장에 후배 아이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강의찬이 싱긋 웃으면서 먼저 안부를 물었다.

“잘 지냈지?”

“네. 선배님은요?”

“나야 뭐, 늘 그렇듯 정신없지.”

하니엘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새 앨범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운이 없으면 벡스와 컴백 시기가 맞물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이연은 크게 주눅 들지 않았다.

첫 데뷔 앨범 발표 때에는 자신들이 한참 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가 벡스여도 괜찮다.

누가 와도 해볼 만한 싸움이다.

그만큼 하니엘이 많이 성장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운대에서는 서로 라이벌이 아니라 같은 백팀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 PD가 다시 텐션을 끌어올리려는 듯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자! 일단은 아운대가 어떻게 진행될지 여러분들한테 먼저 브리핑 한번 끝내고, 그다음에 어느 팀이 어떤 종목에 출전할지 의견을 종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인들이 원하는 종목에 못 나가게 되었다고 해도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고요. 아셨죠?”

“네!”

세상일 모두가 다 자신의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다.

특히나 연예계는 더 그렇다.

가끔은 원치 않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아운대 종목 가지고 크게 희비가 엇갈릴 것 같진 않았다.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최석 PD가 가장 먼저 이연을 가리켰다.

“이연 씨가 먼저 도착하셨으니까. 출전을 희망하시는 종목 말씀해 보시겠어요?”

이연은 머릿속으로 멤버들이 희망했던 종목을 종합해 떠올랐다.

“여자 릴레이입니다.”

달리기가 가장 무난해 보였다.

최석 PD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추가로 물었다.

“릴레이 계주는 5인이서 한 팀인데. 그럼 2명이 남잖아요. 남은 두 분은 누구인가요?”

“한 명은 저고, 다른 한 명은 리샤입니다.”

“네?”

최석 PD가 순간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뒤늦게 자신의 이런 모습이 이연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빠르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잠깐 납득이 안 돼서요. 제가 알기론 이연 씨하고 리샤 씨가 가장 운동신경이 좋은 걸로 기억하는데. 정작 두 분이 빠지시네요?”

“저희 말고도 다른 멤버들도 달리기에 자신이 있다고 해서요.”

그래서 이연은 다섯 멤버들을 우선적으로 릴레이로 밀어줄 생각이었다.

“그럼 리샤 씨하고 이연 씨는요?”

“리샤는 양궁으로 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사실 아직도 고민 중이에요.”

다 잘할 자신이 없어서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어딜 가든 우승할 자신이 넘쳐났기에 본의 아니게 선택 장애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때, 강의찬이 갑자기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그럼 남녀 릴레이 계주 나가는 건 어때?”

“제가요?”

“어. 계주는 다른 그룹 아이돌들끼리 연합팀 형성해서 나갈 수 있잖아. 우리 쪽에서도 나하고 은솔이, 둘이서 남녀 릴레이 계주 나갈 거거든.”

남녀 릴레이는 남자 멤버 셋에 여자 멤버 셋이 필요하다.

요즘 아이돌 그룹은 혼성이 거의 없는 추세다. 그렇다 보니 남녀 릴레이 계주는 연합팀 출전이 거의 필수였다.

게다가 아운대 종목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점수가 걸려 있기도 하다.

남녀 릴레이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이연이 나가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 종목이다.

최 PD도 강의찬의 의견에 찬성했다.

“괜찮네요. 이연 씨, 남녀 릴레이 나가보시죠.”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일단 그걸로 희망해 볼게요.”

이연은 말하면서 최 PD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뭐 때문에 그리 신이 난 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이연의 이름을 출전 명단에 적어 넣었다.

최 PD가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이연은 얼추 알 것 같았다.

이연, 그리고 이은솔. 이 둘의 조합을 아운대에서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두 사람에 관한 떡밥이 심심치 않게 수면 위로 드러났었는데.

최근에 윤성준 PD의 드라마를 통해서 이연과 이은솔 조합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 다시 증명되었다.

최 PD는 이 치트키를 아운대에서도 그대로 활용하고 싶었다.

쓰잘데기없이 또 오해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점도 있었다.

‘이러면 나는 남녀 릴레이 계주엔 무조건 출전할 수 있겠네.’

이은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들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다.

아직 최종 조율 단계가 남아 있으니까.

일단은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만 하고 넘기기로 했다.

* * *

미팅을 마치고 이연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복도로 나섰다.

박도수 매니저가 홍류현 실장과 함께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누군가가 통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남자의 목소리였다.

“선배님?”

강의찬의 목소리에 이연은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러나 강의찬은 이연이 부르는 걸 못 들은 모양인지 통화에만 열중했다.

“그래. 네 바람대로 해줬으니까 나한테 고마워해라. 뭐,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이연이가 남녀 릴레이에 나간다고 해서 다행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안 될 뻔했다니까. 최 PD님도 적극적으로 도와줬으니까. 나중에 만나면 감사하다고 말해. 알았어. 이따가 숙소에서 보자.”

통화를 마치자마자 강의찬의 어깨가 위로 크게 들썩였다.

“이, 이연아!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어?”

“‘네 바람대로 해줬으니까’라고 말하실 때부터요.”

“아…… 중요한 것만 쏙쏙 골라서 들었네.”

강의찬의 통화 내용을 통해서 이연은 그가 자신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남녀 릴레이로 보내려고 했었음을 알아차렸다.

“누군가한테 부탁이라도 받은 건가요?”

“아니, 뭐…… 그러니까 그게…….”

수상하리만치 말끝을 흐렸다.

너무 이상하다 싶으면 이연이 남녀 릴레이에 출전하는 걸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결국 강의찬은 이연에게 사실대로 말해주기로 했다.

“은솔이가 너하고 같은 종목에 나가고 싶다고 부탁해서. 그래서 그랬던 거야.”

“이은솔 선배님이요?”

“어.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절대로.”

그건 이연도 잘 안다.

이연이 연습생 시절 때부터 봐온 이은솔은 분명 괜찮은 사람이자 선배다.

물론 그는 이연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감정까지 품고 있었지만, 아직 이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 내가 사과할게.”

“아니에요, 선배님. 오히려 이은솔 선배님이 저하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기뻐요.”

“그, 그래? 정말로?”

“네. 남녀 릴레이는 서로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니까요. 그날 처음 얼굴 보는 사람하고 같이 팀을 꾸리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더 아는 사람이 있는 게 좋잖아요.”

이연은 어떻게 하면 더 우승 확률을 높일 수 있을지. 이에 대한 측면에서 분석적으로 말을 한 거였다.

그러나 강의찬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이연은 몰라도.

“은솔이는 그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닌 거 같던데.”

이은솔은 이연의 이런 생각과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

“네?”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줘. 아무튼 서로 잘해보자. 알았지?”

이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빠른 걸음으로 장소를 이탈하는 강의찬.

이연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아운대 촬영까지 1주일이 남은 상황.

하니엘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를 통해 본인들의 희망했던 1지망 종목들에 전부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미하고 여솜이, 시우, 유키, 그리고 비아까지. 이렇게 다섯은 여자 릴레이 나가기로 했고. 리샤는 양궁, 그리고 이연은 남녀 릴레이 계주. 맞지?”

“네!”

“양궁은 어차피 혼자서 하는 거니까 상관은 없는데. 연이는 같이 계주 나가는 사람들하고 연습 좀 해야 하지 않아?”

이연이 최종적으로 누가누가 확정되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다시금 명단을 살폈다.

“남자 멤버는 의찬 씨하고 은솔 씨, 서운 씨. 그리고 여자 멤버는 인지 씨하고 앤서 씨. 그리고 너.”

“서운 선배님 빼고는 다 아는 분들이네요.”

특히 CDP의 인지, 그리고 샤이걸스의 리더 앤서와는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회사에 연락해서 서로 연락처 교환하게끔 할 테니까 시간 한번 맞춰보도록 해. 알았지?”

“네.”

아운대에서 가장 많은 점수가 걸려 있는 종목인 만큼 이연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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