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53화 (253/299)

253화

제71화. EXIT(1)

이연의 솔로 활동은 갑작스럽게 정해진 거였기에 컴백 이후 가지는 앨범 활동 기간처럼 오랫동안 지속할 순 없었다.

그리고 솔로 활동에 집중하겠다고 미니 앨범 작업에 대충 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연 본인도 그걸 원치 않았다.

물론 이연도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슬비’의 인기는 이연의 실력만으로 따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드라마의 인기가 차지하는 지분이 상당히 많았다.

음원 차트를 휩쓸다시피 했던 ‘이슬비’의 영향력도 점차 시들시들해지는 중이었다.

오늘, 그리고 내일. 딱 이틀에 잡혀 있는 스케줄만 소화하고 마무리를 짓기로 이야기를 끝냈다.

내일은 언론사와의 간단한 인터뷰만 하면 끝나는데.

“오늘이 문제일 거야.”

박도수 매니저가 좌회전 신호를 받자마자 운전대를 돌리며 말했다.

오늘 이연이 출연하기로 한 프로그램은 방탈출이라는 아이템을 활용한 ‘EXIT’라는 예능 프로였다.

시즌 3까지 제작될 정도로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그러나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방탈출을 테마로 꾸며진 특별 스튜디오에서 탈출할 때까지 촬영이 계속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짧게 끝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하루 종일이 될 수도 있다.

“2주 전에 녹화 몇 시간 만에 끝났다고 했죠?”

“18시간 걸렸다고 했었나? 그때 출연진이고 제작진이고 다 난리도 아니었대. 유일하게 딱 한 사람만 멀쩡했다고 하더라.”

이연은 그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PD님이죠?”

“맞아.”

EXIT의 연출을 맡고 있는 사람은 홍지홍 PD로, 녹화 시간을 길게 가지기로 악명이 자자한 사람이다.

그만큼 그가 만든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편이다. 이렇다 보니 출연진, 제작진과는 반대로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생 좀 하더라도 시청률이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PD니까.

그래서 고생할 걸 빤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연예인들은 꽤 많다.

저 멀리 방송국이 보이기 시작하자,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에게 오늘의 예상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지난주처럼 18시간 걸릴 거 같아? 아니면 그 이상으로 녹화해서 신기록 갱신?”

대본을 덮은 이연은 짧은 말로 각오를 드러냈다.

“2시간 안에 끝낼게요.”

오늘의 이연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신감이 가득 묻어나왔다.

* * *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이연은 스튜디오의 스케일에 놀랐다.

방송으로 봤을 때에는 몰랐는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규모가 컸다.

‘홍지홍 PD, 이 사람. 방송에 진심이네.’

현장만 봐도 홍 PD가 자신의 프로그램에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회당 제작비가 얼마나 소요되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이연이 왔다는 소식에 홍지홍 PD가 버선발로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잘 오셨습니다, 이연 씨. 오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괜찮다고 답한 이연은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면서 PD 앞에서 열정을 드러냈다.

홍지홍 PD는 촬영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연도 그걸 알기에 일부러 의욕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홍지홍 PD는 이연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넸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지나서 대기실로 향한 이연의 눈앞에 자신과 같이 출연하게 된 게스트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혜원 선배님.”

“안녕, 연아.”

먼저 와서 메이크업을 전부 마친 혜원이 이연을 반겼다.

“채미는 아직 안 왔어요?”

“이제 막 도착했대. 아마 지금쯤 현장에 오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들이 있는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느, 늦어서 죄, 죄송합니다!”

뛰어온 모양인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채미를 보면서 혜원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안 뛰어와도 됐는데. 아직 촬영 시작하려면 한참 멀었고. 그리고 1분밖에 안 늦었잖아. 이 정도면 다들 귀엽게 봐줄 거야.”

혜원이 많이 초조했을 채미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달래줬다.

오늘 게스트로 참가하게 된 사람들은 이연과 혜원, 그리고 채미. 이렇게 셋이다.

게스트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EXIT 녹화는 걸파이트 시즌 2 특집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걸파이트가 끝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그룹들의 인기는 여전했다.

덕분에 이런 식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에 같이 섭외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연과 나란히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대본을 체크하던 채미가 갑자기 ‘윽!’ 하는 소리를 냈다.

메이크업 담당은 괜히 자기 때문에 그런 줄 알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채미가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면서 대본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해명했다.

“막 퍼즐 같은 거 풀고 그래야 한다는데…… 연아, 넌 이런 거 잘해?”

“어느 정도.”

그녀는 무대뿐만 아니라 학구열도 높은 편이었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연기력도 풍부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실제로 학술회에도 참가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조차도 이연의…… 아니, 루웰의 지식과 연구에 감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채미는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시험에 시 자만 나와도 머리가 아파 오는 그녀인데. 퍼즐이라든지 숫자 암기, 계산. 이런 건 당연히 싫어했다.

“선배님은 어떠세요?”

화두가 혜원에게 향했다.

대기실 안쪽에 멀찍이 떨어져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혜원은 ‘음…….’ 하는 고뇌의 소리를 흘렸다.

“잘할 자신은 없는데. 싫어하진 않는 정도?”

채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동지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이연은 혜원의 반응을 다르게 해석했다.

약한 척하는 거다.

걸파이트 시즌 2에서 자주 봤던 혜원의 모습이었기에 이연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늘 녹화, 재미있겠네.’

이연은 벌써부터 기대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 * *

EXIT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는 남자 여섯이 먼저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이 중 한 명인 정우재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형, 동생들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공포 특집 같지 않나요?”

“그, 그러게.”

“아…… 망했네. 나, 이런 거 진짜 싫어하는데.”

여섯 명의 남자들 전부 다 공포물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

그나마 정우재가 용기를 좀 내는 편이었기에 본의 아니게 손전등을 들고 앞장서서 걸었다.

촬영은 스튜디오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EXIT는 출연진들 앞에 스태프들이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방향으로 촬영이 진행된다.

덕분에 무인 카메라 활용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여기에도 카메라, 저기에도 카메라.

그러나 정작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분위기가 더 싸늘하게 다가왔다.

“…….”

“…….”

정적만 흘렀다.

바닥에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짙게 깔렸다.

이때, 정우재의 옆에서 걷던 남자 출연진 한 명이 ‘으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덕분에 같이 가던 출연진 모두가 다 기겁했다.

“뭐, 뭔데!”

“귀, 귀신이라도 봤어?”

처음 비명을 질렀던 남자가 바닥에 엎드린 채 자신의 왼쪽 발을 만졌다.

“갑자기 바닥이 쑥! 하고 꺼졌어요!”

정우재가 사실 확인을 위해 남자가 빠졌다고 주장하는 위치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밀었다.

유독 그곳만 바닥이 물렁물렁했다.

“스펀지네, 이거.”

어쩐지. 발아래에 연기를 깔아둔 이유가 있었다.

육안으로 바닥을 살피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정우재가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엎어진 출연진을 부축하는 사이.

출연진 중 최연장자인 코미디언, 서호명이 다급하게 정우재를 불렀다.

“야야, 우재야! 저기 저 근처에 뭐 있는 거 같은데?”

“저기요?”

“오, 오른쪽으로 길 꺾이는 부분 있잖아! 아까 뭔가 지나가는 걸 내가 봤다고!”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고래고래 외쳤다.

안 그래도 목소리가 큰 사람인데. 놀란 감정까지 들어가니까 배는 더 커졌다.

“호명이 형이 가서 확인해 보시는 건 어때요?”

“뭐? 내, 내가?”

다른 동생들도 서호명의 커다란 등을 앞으로 떠밀기 시작했다.

“맞아요, 형!”

“오늘은 형이 활약하신다고 했잖아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밀지 마!”

동생들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왁!”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오더니 일부러 서호명을 놀래키려는 듯이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서호명의 커다란 덩치가 알아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 반응이 웃긴 모양인지, 서호명을 놀래킨 장본인들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죄송해요, 선배님. 이렇게 크게 놀라실 줄은 몰랐어요.”

“혜, 혜원이니……?”

“네, 맞아요.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잘 지내셨죠?”

혜원을 필두로 그녀와 함께 뒤에서 대기 중이던 이연과 채미도 출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우재는 특히 이연의 모습에 놀랐다.

“연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저도 오늘 출연하기로 해서요.”

녹화에 들어가기 전까지 홍지홍 PD는 고정 출연진들에게 게스트가 누군지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최대한 출연자들의 리얼한 반응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그녀들의 등장에 EXIT 고정 출연자들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서호명이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MC답게 진행을 이끌어갔다.

“일단 한 명씩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아이비제이 리더, 혜원입니다.”

“원더존의 채미예요.”

“하니엘에서 리더 겸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이연입니다.”

아이돌들답게 언제 어디서 자기소개를 부탁해도 바로바로 멘트가 튀어나왔다.

고정 출연진들이야 이미 그녀들이 누군지 다 알고 있지만, 시청자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서호명은 이 와중에도 일부러 그녀들에게 자신들을 소개할 기회를 줬다.

짧은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고.

“일단은 이 미로부터 빠져나가자. 우리 프로그램은 봤지?”

서호명의 물음에 그와 친한 오빠, 동생으로 지내는 혜원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탈출하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근데 어디로 가면 돼요?”

“그걸 이제부터 우리가 찾아내야지.”

스태프들은 일절 힌트를 주지 않는다.

알아서 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이연이 먼저 앞장서면서 선두를 자처했다.

“어차피 외길이니까, 우선은 이 길 쭉 따라서 이동해 보죠. 제가 먼저 갈게요.”

스산한 분위기 때문에 고정 출연자들은 네가 먼저 가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차례를 미뤘는데.

이연은 그런 거 없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서호명은 사내대장부 같아 보이는 이연의 호쾌한 행동에 감탄했다.

“이연 씨, 대단한 여자네. 우리 여섯 명보다 훨씬 나은데?”

그러자 정우재의 입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게요.”

마치 이미 권이연이 어떤 여자인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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