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50화 (250/299)

250화

제69화. beyond(3)

이연은 SSS 프로그램 녹화에 참여할 때부터 여솜의 실력을 눈여겨봤었다.

그래서 그녀가 이연의 팀에 합류했을 당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든든함을 느꼈다.

보컬, 댄스, 그리고 비주얼까지.

어느 분야든 여솜은 평균치 이상의 능력을 늘 보여줬다.

미니앨범 타이틀곡, ‘beyond’ 레코딩에서도 여솜의 진가가 그대로 발휘되었다.

“비참했던 나를 지울래~ Forget it, Don't remember~ 지금의 난 달라~”

높은 음역대를 요구하는 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여솜의 목소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위로 뻗어 나갔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그녀의 고음에 이연과 진세혁 프로듀서는 동시에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세혁 프로듀서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흘렸다.

“잘하네, 여솜이.”

칭찬을 받은 건 여솜인데. 정작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건 이연이었다.

역시. SSS 때부터 여솜과 같은 팀이 되기를 잘했다.

이런 생각이 레코딩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진세혁 프로듀서가 이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권이연 작곡가님은 어때?”

여솜의 마지막 파트 녹음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걸로 가시죠.”

“오케이. 고생했어, 여솜아.”

진세혁 프로듀서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나서야 여솜은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긴장을 제법 많이 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맹활약을 펼치고 돌아온 여솜.

멤버들은 뜨거운 박수로 그녀의 복귀를 환영했다.

“너무 잘했어, 여솜 언니!”

“뭐야, 오늘 왜 이렇게 잘해?”

“우리 몰래 득음이라도 한 거야?”

사람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막다른 길에 몰리면 절망하거나. 아니면 각성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여솜은 다행히도 후자였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레코딩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실시간으로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는 역시 이연의 공이 컸다.

“연이가 피드백을 워낙 정확하게 주니까. 그것만 주의했을 뿐인데 훨씬 나아지더라고.”

고생한 이연을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하는 사탕발림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느꼈기에 하는 말이었다.

한편, 비슷한 파트를 소화했던 여솜의 모습을 부스 밖에서 그대로 지켜봤던 리샤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연은 리샤에게 재차 물었다.

“시간 좀 더 필요해?”

리샤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 할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거 같아.”

열심히 하는 여솜의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이연과 더불어서 같은 동갑내기다.

이번 앨범은 동갑내기즈가 소위 하드캐리를 해야 하는 포지션이었기에 리샤가 좀 더 힘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부스에 들어서는 그녀.

시우가 결의를 굳힌 언니의 모습에 한마디를 보탰다.

“녹음하러 가는 게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는 장수를 보는 거 같아요.”

이에 대해 이연은 약간의 농담이 가미된 어투로 말했다.

“연예계라는 게 뭐, 소리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으니까.”

하니엘 멤버들보다 훨씬 오랜 세월동안 이 업계에 몸담고 있었던 진세혁 프로듀서는 이연의 말에 공감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마침내 마이크 앞에 선 리샤가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준비 완료되었다는 수신호와 함께.

첫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헤드셋을 붙잡은 리샤는 눈을 감고 노래에 최대한 집중했다.

“바뀐 나를 봐. Look at me. Tell me. 이제 너 따위는 날 막지 못해~”

이연은 ‘beyond’ 레코딩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멤버들에게 공통적으로 부탁했던 게 있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달라진 나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처럼, 자신감 있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리샤가 처음 녹음할 때 가장 부족했던 것은 보컬 실력도, 기교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감이다.

제법 난이도가 있는 곡이었기에 자신이 과연 이 곡을 잘 소화하고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하다 보니 그녀는 이연이 처음에 요구했던 자신감을 제대로 표출해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한번 각오를 다지고 레코딩에 참여한 리샤는 아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연과 진세혁 프로듀서의 입꼬리가 동시에 위로 향했다.

“아까보다 훨씬 나아진 거 같네요.”

“그러게. 지금이 듣기 더 좋네.”

매우 성공적이다.

* * *

녹음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퍼포먼스. 즉, 단체 안무다.

은서해가 자신들의 크루와 함께 짠 안무 시안들을 담은 영상을 하니엘 멤버들에게 공유했다.

시안은 총 3개.

이 중에서 멤버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쪽은 첫 번째 영상이었다.

이연도 첫 번째로 본 영상 쪽에 손을 들었다.

대신에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후렴 파트에서 나오는 포인트 안무가 약한 거 같아서요. 사람들 기억 속에 더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안무로 바꿨으면 좋겠어요.”

“지금 거는 밋밋하다는 거지?”

“네.”

눈치 볼 것 없이 솔직하게 말해주는 편이 오히려 좋다.

지금 안무 그대로 퍼포먼스를 짰다간 음방 1위는커녕 그대로 묻혀 버리기만 할 것이다.

은서해도 이연의 주장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알았어. 애들하고 같이 논의해 볼게.”

“저희도 아이디어 떠오르는 거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그래준다면 나야 좋지. 나머지 안무들은 어때?”

“다른 파트들은 괜찮아요. 오늘부터 바로 연습하면 될 거 같아요.”

오늘부터라는 말에 멤버들이 기겁을 했다.

“레코딩 막 끝났는데…….”

비아가 소심하게 반기를 들어봤지만.

“아직 해도 안 저물었잖아.”

권이연이라는 최종보스를 쓰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 * *

은서해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름 여러 아이돌들의 안무를 담당한 베테랑이다.

다년간의 경험 중에서도 하니엘, 특히 이연은 굉장히 특별한 축에 속했다.

한번 본 안무를 금세 외운 것도 모자라서, 자신과 함께 활동 중인 댄스 크루들보다도 더 잘하기까지 하니까.

보는 입장에선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너무 압도적으로 잘하니까 본의 아니게 다른 멤버들이 뒤쳐져 보이는 오해를 받곤 했다.

멤버들의 습득 능력도 평균적으로 봤을 때에는 상당히 빠른 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거울을 보면서 안무 연습에 집중하던 이연이 유키와 시우를 지목했다.

“‘Forget it, Don't remember’ 나올 때 왼쪽, 오른쪽으로 빠지는 타이밍이 안 맞아. 이 부분만 다시 해볼게.”

이연은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피드백을 준다.

처음에 멤버들은 이런 디테일한 것까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크게 티도 안 나는 거 같고.

오히려 시간 낭비, 체력 낭비처럼 보이곤 했었는데.

막상 무대에 선 자신들의 모습을 모니터링해 보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보인다.

한 무대를 수백, 수천, 수만 명이 본다고 생각하면, 이연처럼 작은 거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

이연은 그밖에 다른 멤버들의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개선 방향까지 잡아줬다.

알아서 척척 해내는 이연을 보면서 은서해는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월급 도둑이 된 기분이네.”

댄스 트레이너가 해야 할 일을 이연이 알아서 다 하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잘못한 것도 없음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 * *

한창 앨범 준비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컴백일자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속의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연습에 박차를 가하는 그녀들.

오늘도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는 줄 알았으나.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은 내일부터 하자.”

이연의 말에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론 예정되어 있던 연습 시간을 넘기기는 했지만, 평소 이연이라면 여기서 2시간은 더 연습하고 숙소로 복귀하자고 말했을 거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이른 연습 종료 선언에 멤버들은 ‘우리 리더가 어디 아픈가?’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우미가 중간에 손뼉을 한 차례 짝! 마주치면서 뭔가를 깨달은 듯 외쳤다.

“오늘 ‘시들지 않는 너’ 1화 방영하는 날이잖아! 깜빡했네.”

“어머, 맞다!”

이연이 참여한 윤성준 PD의 드라마가 오늘 사람들 앞에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연은 비록 처음부터 등장하진 않지만, 대신에 그녀의 목소리는 등장할 예정이다.

이연이 부른 OST, ‘이슬비’가 1화 중간에 삽입곡으로 흘러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노래를 부른 가수니까. 당연히 직접 들어보고 싶을 것이다.

멤버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전부 다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비아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면서 이연을 불렀다.

“언니, 여기 앉아.”

“난 구석이 좋은데.”

비아가 앉으라고 한 곳은 센터 중에서도 센터 위치였다.

“오늘은 언니가 주인공이니까. 가운데로 와서 앉아야지.”

따지고 보면 주인공은 주연배우인 정우재라고 할 수 있지만, 하니엘 멤버들에게 있어선 이연이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이연은 마지못해 비아와 멤버들이 마련해 준 센터 자리에 앉았다.

저녁 10시 정각에 맞춰서 ‘시들지 않는 너’ 오프닝 화면이 송출되었다.

먹을 것도 앞에 가져다 두고, 그러고 싶었으나. 컴백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야식을 금지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맹물과 차만 들이켜며 드라마에 집중해야 했다.

대본을 봤을 때부터 이연은 잘 짜여진 시놉시스라고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녀의 예상대로, 결과물 또한 준수하게 잘 나왔다.

삽입곡으로 이연이 부른 OST곡이 흘러나오는 장면은 1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련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정우재와 여배우.

하니엘 멤버들의 입에서 동시에 ‘꺄악!’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서 키스신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언니. 아직 드라마 1화라고, 1화. 벌써부터 무슨 키스신이야.”

여자들이 일곱이나 모여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까 지방방송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이연에게는 유독 길게만 느껴졌던 1시간의 시간이 모두 흘렀다.

“이제 들어가서 자자. 내일은 아침부터 연습해야 하니까.”

이연의 주도하에 멤버들은 억지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 * *

드라마가 송출되기 시작한 지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늘도 멤버들과 안무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연을 향해 박도수 매니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여, 연아! 큰일이다, 큰일!”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이연은 혹시 자신과 관련해서 이상한 루머 기사라도 유포되었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박도수 매니저가 들고 온 소식은 그와 상반된 거였다.

“너, 오늘 음원차트 순위 안 봤지?”

“네.”

“이거 봐봐!”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 있다고 알려진 음원 플랫폼 순위를 확인한 순간.

이연과 함께 박도수 매니저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멤버들이 경악했다.

“연이가 부른 삽입곡이…… 지금 1위예요?”

“어머머, 축하해! 연아!”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그녀의 생애 첫 솔로곡 1위 업적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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