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48화 (248/299)

248화

제69화. beyond(1)

비아가 곡의 장르와 콘셉트를 정해준 덕분에 더딜 것으로 예상되었던 아이디어 회의는 쭉쭉 진행될 수 있었다.

진세혁 프로듀서가 뭔가 생각이 있는 모양인지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가락을 탁, 탁 튕겼다.

“오케이. 알았어. 그러면 일단 내가 곡 한번 생각해 볼 테니까 그동안 너희도 숙소에서 미니앨범 어떻게 할지 고민 좀 해봐.”

“네, 그렇게 할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찐 프로님!”

마치 기나긴 학교 수업을 끝낸 학생들처럼, 하니엘 멤버들은 해방감을 느끼면서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다른 멤버들을 따라 회의실을 나서려고 하던 이연을 향해 진세혁 프로듀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연아!”

“네, 프로듀서님.”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표정이었으나.

“……아니, 됐다. 나중에 말해줄게. 미안해.”

괜히 신경 쓰이게만 만들 뿐이었다.

재촉해 봤자 진세혁 프로듀서가 말해줄 거 같지도 않고.

이연은 알겠다고 하면서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앨범 때문에 그랬나?’

차에 올라타면서도 이연은 그가 아주 잠깐 보여줬던 망설임의 정체가 무엇이었을지 계속해서 추측했다.

그러나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뭐,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지금으로선 나중에 말해주겠다는 진세혁 프로듀서의 말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 곡도, 안무도 나오지 않았기에 하니엘 멤버들이 크게 할 만한 일은 없었다.

요즘 방영되는 티비 예능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서 컴백을 대비한 방송 감각을 키우는 게 전부였다.

아니, 하나 더 있었다.

“얘들아, 운동 가야지!”

숙소를 방문한 박도수 매니저의 외침에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있던 멤버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누가 봐도 다들 운동 가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박도수 매니저가 이걸 가만히 보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5분 내로 집합합니다. 알겠습니까아-!”

종종 튀어나오는 박도수 매니저의 군대 어투에 멤버들은 기겁을 했다.

참고로 박도수 매니저는 현역 시절, 훈련소에서 조교 일을 하면서 군생활을 보냈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억압을 주기에 충분했다.

박도수 매니저의 외침에 따라 멤버들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곧장 옷을 갈아입었다.

가장 먼저 준비를 끝낸 사람은 바로 이연이었다.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숙소 근처에 위치한 헬스장으로 이동한 멤버들.

오늘은 컴백 활동에 앞서서 새롭게 PT 일정에 들어가기 위해 담당 트레이너들과 만나는 첫 시간이다.

하니엘이 데뷔할 때부터 그녀들의 몸매 관리를 주로 맡았던 트레이너가 개인적인 사유로 관두고, 새로운 얼굴이 합류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양슬비 트레이너라고 해요.”

양 트레이너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자, 멤버들이 그녀를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티비에 나오신 분 맞으시죠? 그…… 연아, 우리가 저번에 봤던 예능 프로그램 있잖아. 김한도 선배님 나오셨던 거.”

“막무가내 녀석들?”

“맞아, 그거. 거기 나오셨잖아요.”

양슬비 트레이너가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얼굴을 비치는 유명 여성 트레이너였다.

그만큼 실력도 있는 사람이다.

양슬비 말고도 앞으로 하니엘을 책임질 여러 트레이너들이 있었지만.

방송 활동 때문에 그런지 양 트레이너의 존재는 이들 안에서도 유독 빛나 보였다.

그렇게 가볍게 자기소개만 하고 끝날 줄 알았지만.

“자, 오늘부터 바로 PT 시작해 볼까요?”

“네?”

멤버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가득했었는데.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PT 타임을 가지게 되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그러나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단 한 사람. 이연만이 ‘네’라고 대답하면서 바로 운동 준비를 서둘렀다.

“뭐 하고 있어? 트레이너님이 PT 시작하자고 하시잖아.”

“…….”

멤버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연 때문에 이런 의심이 들었다.

혹시 연이가 트레이너 쌤들하고 같이 자신들을 속이기 위해 몰래 짠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근처를 둘러봐도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나온 의심일 뿐.

이런다고 눈앞의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헬스를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 리샤가 마지못해 이연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후딱 끝내고, 숙소에 가서 쉬자. 알았지?”

멤버들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했다.

* * *

한창 걸파이트 시즌 2 녹화에 참여할 때에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이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서일까. 이연은 요즘 자기 자신이 굉장히 나태해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비시즌이라 할지라도 너무 한없이 늘어지면 안 된다.

그러면 다시 시즌에 돌입했을 때,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헬스장에서 몸을 제대로 푼 이연은 다 죽어가는 멤버들과 다르게 이제야 좀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운동 좋아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리샤조차도 이연의 이런 반응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안 피곤해?”

“오늘은 겨우 몸풀기 정도밖에 안 했는데, 뭘.”

2시간 동안 이어진 PT를 몸풀기로 표현하는 이연의 태도에 리샤는 감탄을 삼켰다.

“나중에 아운대 나가면 연이가 다 쓸어버리는 거 아니야?”

아이돌 운동대회의 줄임말로, 명절 때만 되면 특별 편성되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아이돌들이 나와서 각종 체육대회 종목들을 통해 우승팀을 가린다.

참가하는 아이돌들에게 너무 무리한 일정을 요구하는 둥, 이전부터 꾸준히 자잘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계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기 때문에 방송국에서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터져도 계속해서 프로그램이 편성되고 있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운대 일정이 잡혀 있었다.

작년에는 애매한 데뷔 시기로 인해 아운대에 참석하지 못했던 하니엘.

이번에는 마침 미니앨범 활동 시기에 아운대 일정이 겹쳐 있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참가 의사를 비쳤다.

제작진에서도 걸파이트 시즌 2 우승팀이 직접 출연하겠다고 먼저 말을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연은 아운대를 향해 강력한 결의를 드러냈다.

“아운대 나가서 종목당 최소 우승 세 번 정도는 해줘야지. 그래야 그 많은 팀들 사이에서 한 번이라도 더 주목받을 수 있을 테니까.”

카메라 앞에 서는 이상, 어떤 곳이든 무대가 된다.

아운대라 해도 마찬가지다.

샘솟는 야욕을 드러내는 리더를 보면서 리샤와 멤버들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번 활동 기간에도 고생 꽤나 하겠다고.

* * *

하니엘 멤버들은 오늘도 연습을 위해서 소속사를 찾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거의 다 되어가는 와중에도 아직 그녀들의 신곡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상하네.’

이연은 계속해서 늦어지는 진세혁 프로듀서의 소식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진세혁 프로듀서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곡을 뽑아내는 속도다.

방향만 정해지면 바로바로 곡을 뽑아낼 줄 아는 게 그의 특출한 능력인데.

이번에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더뎌진 진세혁 프로듀서의 작업 속도에 의문을 표했다.

안무 연습실에서 몸을 풀던 여솜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설마 찐 프로님, 슬럼프 오신 건 아니겠지?”

“하필이면 우리가 막 컴백 준비해야 할 타이밍에?”

최악의 순간이다.

지금 그녀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곡이다.

최대한 빨리 앨범을 발표해서 활동에 들어가야 걸파이트 시즌 2에서 가져온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정규앨범도 포기하고 일부러 빨리 낼 수 있는 미니앨범으로 작업하기로 한 거였다.

그런데 막상 진세혁 프로듀서가 슬럼프에 빠졌다고 한다면.

이 계획 자체가 무산된다.

이런 상황은 곤란하다.

결국 이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가 가서 한번 물어보고 올게.”

언제쯤 곡을 받을 수 있을지. 대략적인 마감 시기라도 잡아두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연이 행동에 나서기 전에 먼저 안무 연습실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막 나가려던 이연과 딱 마주친 진세혁 프로듀서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우왓, 깜짝이야! 노, 놀랐잖아!”

반면 이연은 갑작스럽게 진세혁 프로듀서와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안 그래도 프로듀서님 찾아뵈려고 했었는데. 타이밍이 딱 맞았네요.”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던 진세혁 프로듀서가 이연과 비슷한 말을 꺼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네?”

이연이 물음표를 띄울 때.

진세혁 프로듀서의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남자가 안무 연습실을 찾아왔다.

“마침 다들 와 있었구만.”

오채일 대표를 보자마자 멤버들이 벌떡 기상했다.

연습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것 같은 낌새는 아니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옆 회의실 비어 있으니까, 그쪽으로 와.”

멤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답했다.

먼저 자리를 비운 오채일 대표와 진세혁 프로듀서를 보면서 그녀들은 한동안 ‘왜 그러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우리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아니, 전혀.”

모르면 가서 들어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연을 필두로 멤버들의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 * *

오채일 대표가 진세혁 프로듀서에게 눈짓을 했다.

“제가 말할까요, 대표님?”

“자네가 프로듀싱 맡고 있으니까.”

짧게 고개를 끄덕인 진세혁 프로듀서가 멤버들을 갑자기 소집한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 미니앨범 타이틀 곡 말이야. 연이한테 작곡하고 작사 맡겨볼까 하는데.”

멤버들의 시선이 이연에게 쏠렸다.

이연이 자신을 가리키면서 재차 물었다.

“저한테 곡을 맡기신다고요? 전부 다?”

“전부는 아니고. 믹싱이나 마스터링, 이런 건 내가 맡아서 할 거니까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이연은 SSS 녹화 때부터 작곡과 작사에 크나큰 소질을 보였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그녀에게 타이틀곡을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내부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왔었다.

일주일 내내 진세혁 프로듀서한테서 연락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연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네. 해볼게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리고 이연도 작곡, 작사 분야에 욕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 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대신에 이연은 다른 궁금증이 들었다.

“대표님이 조만간 저한테 말해주실 거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이건가요?”

“누가. 박 매니저가 그래?”

“네.”

“아…… 그거하고는 다른 거야. 아직 논의가 안 끝났으니까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린 줄 알았었는데.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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