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제67화. 피날레(5)
현장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화면 쪽으로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연도 이번만큼은 결과를 예상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 세계로 넘어온 이후 처음으로 바짝 긴장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화면 정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팀명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퍼엉-! 하는 폭죽 소리가 들렸다.
[1위. 하니엘]
선명하게 보이는 하니엘이라는 글자가 이연에게 깊은 안도를 선물했다.
한편, 뒤늦게 결과를 확인한 하니엘 멤버들이 이연을 중심으로 뭉쳤다.
“연아, 우리가 우승했어!”
“진짜야? 진짜 우리가 우승한 거 맞지?”
“다들 진짜 고생 많았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쁨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반면, 2위로 이번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많이 아쉬울 텐데도 불구하고 하니엘에게 진심 어린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다른 선배 그룹들도 하니엘에게 아낌없이 축하 메시지를 건넸다.
이 중에서도 특히 MAYO의 미랑과 원더존의 채미가 마치 자기 일처럼 크게 기뻐해 줬다.
“잘했어, 연아. 무대 보자마자 너희가 우승할 거 같더라.”
“하여간 진짜. 놀랍다니까, 놀라워.”
그녀들의 뒤를 이어서 혜원도 이연을 따로 축하해 줬다.
“축하드려요, 이연 씨.”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이에요.”
“저요? 제가 특별히 이연 씨한테 뭔가를 해준 건 없는데…….”
이연은 혜원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배님께서 계신 덕분에 저희도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었던 계기.
바로 강력한 라이벌의 존재 때문이었다.
혜원과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이연에게 계속해서 경각심을 심어주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SSS 때보다 걸파이트 시즌 2가 더 힘들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혜원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준 사실에 고마워했다.
혜원 역시 이연과 마주보며 웃었다.
“저도 이연 씨 덕분에 오랜만에 신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다음 날 새벽에 스케줄이 있어도 늦은 시간까지 연습하던 그 시기.
신인으로서 치열하게 일했던 당시의 기분을 설마 걸파이트를 통해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만약 권이연이 없었더라면.
과연 혜원이 이런 기분을 다시 느끼는 날이 생겼을까?
혜원은 아마 없을 거라고 보고 있었다.
혜원이 먼저 이연에게 팔을 펼치며 품을 내어줬다.
스킨십에 민감한 이연이었기에 살짝 망설임이 들었지만.
이내 걸음을 앞으로 옮기면서 혜원과 짧은 포옹을 나눴다.
“고생했어요, 이연 씨.”
“선배님도 고생하셨어요.”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이 걸파이트 시즌 2에서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막내 그룹의 반란.
그러나 이 반란은 나비의 날갯짓에서 끝나지 않고 커다란 태풍이 되어 대한민국 전체를 휩쓸었다.
하니엘 멤버들이 경쟁 팀들과 짧게나마 회포를 푸는 사이.
민주린이 그녀들에게 걸파이트 시즌 2 우승 트로피를 건넸다.
“연아. 이거 받아.”
민주린이 대표로 이연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이연이 멤버들에게 손짓했다.
“다 같이 손 모아서 위로 들어 올리자.”
마치 스포츠 리그에서 우승한 팀들처럼.
이연의 제안에 따라 멤버들이 손을 뻗어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객석에서 그녀들을 향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연의 어머니는 눈물을 참으면서 그동안 고생했을 딸을 바라봤다.
권민준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누나, 축하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양우섭과 김정아도 기뻐하는 하니엘 멤버들을 보면서 박수를 쳤다.
“조만간 이연 씨하고 광고 계약 하나 더 해야겠네.”
김정아의 말에 양우섭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야죠. 이제 우승까지 했으니까. 앞으로 이연 씨 주가가 더 올라갈 겁니다.”
선풍적인 열풍을 이끌었던 경연 프로그램에서 대단한 선배 그룹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하니엘.
연예계에 한동안 그녀들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사실은 안 봐도 뻔했다.
* * *
걸파이트 시즌 2 우승에 누구보다도 기뻐한 사람은 바로 LC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었다.
특히 오채일 대표가 제일 신이 나 있었다.
“오늘은 다이어트니 뭐니 하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먹어! 내가 살 테니까!”
“감사합니다, 대표님!”
“우리 대표님, 최고! 사랑해요!”
하니엘 멤버들이 오채일 대표에게 무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눈앞에 가득 놓인 먹거리들을 향해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특히 리샤의 경우에는 바쁘다는 표현을 넘어서 다급해 보일 정도였다.
무대에 서기 전에 평소처럼 막 먹었다가 괜히 얹히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그래서 새벽 내내 쫄쫄 굶다시피 있었다.
먹으면 힘이 잘 안 나지만, 속이 불편한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래도 리샤의 이런 노력이 통해서 천만다행이었다.
한편, 나현아 트레이너는 이연이 인이어를 빼는 장면을 보자마자 그게 퍼포먼스가 아니라 사고였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이 표정 보고 딱 눈치챘지. 근데 그쪽 음향팀, 혹시 너희한테 뭐 원수라도 진 거 아니지? 저번에 스튜디오 녹화 때에도 반주 실수로 나왔었다면서.”
“딱히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이연이 보기엔 그냥 실수다.
차라리 진절혜가 걸파이트에 참가하고 있었더라면 합리적 의심이라도 생겼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까.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걸로 생각하는 게 훨씬 편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니엘이 우승을 차지했으니까.
과정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해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
오채일 대표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아무튼 고생했으니까 내일은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푹 쉬어! 스케줄도 없을 거잖아.”
앨범 활동 기간이 끝났으니까.
그러나 홍류현 실장의 생각은 달랐다.
“대표님. 한창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걸파이트 시즌 2에 당당히 우승했으니까.
온갖 프로그램에서 하니엘을 출연시키기 위해 섭외 요청이 쇄도할 텐데. 앨범 활동 기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 기회들을 전부 다 쳐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하니엘 멤버들도 홍 실장과 같은 생각이었다.
“방송 출연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도 홍 실장님 말대로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
“맞아요. 노를 저어야 하는 게 아니라 모터를 달고 가야죠!”
멤버들의 의지가 매우 강력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어왔을 때 열심히 달려야 한다.
오채일 대표도 이에 동의했다.
다만.
“전체가 다 동의해야지. 쉬고 싶은 멤버들도 있을 테니까.”
유키나 리샤 같은 경우에는 집이 멀다 보니까 앨범 활동 기간이 끝난 틈을 이용해서 일본이나 미국으로 넘어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수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데뷔할 때부터 코리아가 저의 나라였어요.”
리샤의 당찬 말에 모두의 입에서 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느새 제2의 조국으로 자리 잡게 된 한국.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리샤에게 있어서 한국은 가수라는 꿈을 이루게 만들어준 나라니까.
유키도 리샤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저도 올해는 한국에만 계속 있으려고요. 이미 가족들한테도 이야기해 뒀어요.”
두 외국인 멤버가 열의를 활활 불태워서 그런 걸까.
나머지 멤버들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못 먹어도 Go!를 외쳤다.
오채일 대표의 시선이 이연에게 향했다.
하니엘의 핵심 멤버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이연의 의견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이는 어떻게 할래?”
멤버들 중에서 아직 의견을 표출하지 않은 사람은 이연뿐이었다.
그녀 역시 멤버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스케줄 마구 잡아주셔도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니엘의 다음 활동 일정이 빠르게 정해졌다.
* * *
스케줄을 바로 잡아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 만에 바로 방송 일정들로 꽉 채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3~4일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재정비할 시간을 가지기로 합의를 본 하니엘 멤버들.
이연도 오랜만에 어머니와 동생의 얼굴을 보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갑자기 파방!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이 이연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파티 폭죽을 터뜨린 거였다.
“축하해, 누나!”
“우리 딸, 너무 고생 많았어. 일로 와. 엄마가 안아줄게.”
자랑스러운 딸을 힘 있게 꼬옥 안아주는 어머니.
이연은 이런 상황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
미리 케이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권민준이 틀어져 있는 티비를 가리켰다.
“어느 채널을 돌려도 누나 이야기밖에 없더라.”
“그래?”
케이블뿐만 아니라 공중파에서도 이연과 하니엘의 우승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인터넷 쪽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생방송 당일에는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들이 온통 하니엘로 도배가 될 정도였으니까.
이 중에서도 사람들은 특히 이연에게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
하니엘이라는 신인 그룹을 우승 반열에 올려놓은 주역.
연예계 전체가 현재 권이연을 주목하는 중이었다.
“누나, 이번에 광고 제의도 엄청 들어오고 있다면서?”
“그렇지, 뭐.”
YN전자를 비롯해서 각종 의류, 화장품 업체 등등. 말로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입이 아플 정도였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전부 기사화되어 나갈 정도였다.
이연이 짧게 주어진 휴가를 이용해서 본가를 찾기로 했다는 소식도 이미 기사로 나간 상태였다.
이연의 어머니가 딸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케이크를 먹던 권민준이 갑자기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자 당황해하면서 물었다.
“왜 그래, 엄마.”
“그냥…… 우리 딸이 너무 기특해서. 늘 부족한 엄마 밑에서 아빠 없이도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
이연은 손을 뻗어 직접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어머니 딸로 태어나서 힘들거나 괴롭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었으니까요.”
실제로 루웰이 권이연의 몸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어머니와 관련된 그녀의 기억 속에는 미안함과 행복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루웰은 그녀를 대신해서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연의 이런 말은 오히려 어머니의 눈물을 더 쏟아내게 만드는 역효과만 낳았다.
권민준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휴지 가져올게.”
그사이 이연은 말없이 어머니의 등을 감쌌다.
작고 가녀린 등.
그럼에도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눈을 뜨고 새벽일을 나서야 했다.
모든 것들을 아이들에게 양보하면서 매번 자신을 희생해 왔다.
이연은 지난날 동안 반복되었던 어머니의 희생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고생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는 제가 효도하면서 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연이 먼저 어머니의 손을 잡아줬다.
그제야 비로소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깃들었다.
이 미소를 보기 위해서라도.
이연은 가수로서 계속 성장해 가야 한다.
성공해야 할 이유가 오늘, 하나 더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