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41화 (241/299)

241화

제67화. 피날레(4)

방금 전까지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서 있던 무대 위에 하니엘이 올랐다.

사람들은 이전 선배 그룹들 때 못지않은 뜨거운 환호성으로 그녀들을 환영했다.

마지막 무대라서 관객들 기운이 많이 빠져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추측이 무색할 정도로 열정과 의욕이 넘쳤다.

이 중에서도 권민준 일행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하니엘 파이팅―!”

“누님, 이대로 우승까지 가요!”

“하니엘, 절대 우승해!!!”

어찌나 응원하는 목소리가 큰지, 카메라맨들조차 그들에게 앵글을 안 맞추고는 못 배길 정도의 수준이었다.

민주린이 권민준 일행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가족분들이신 거 같은데. 어느 멤버 응원하러 오셨나요?”

권민준 일행이 동시에 입을 모아 큰 소리로 외쳤다.

“이연 누나요!”

덩달아 지목받게 된 이연은 왠지 모를 수치심과 창피함이 밀려왔다.

자신을 응원해 주는 건 물론 기쁘고 좋은 일이다.

그만큼 힘도 되고.

부담스러운 무대일수록 본인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권이연이 모를 리 없는데.

그럼에도 이런 감정들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이연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민주린이 이연의 가족들을 주시했다.

자세히 보니 SSS에서 본 적 있는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걸파이트에서 SSS 같은 타 프로그램을 언급할 수는 없었기에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그 옆에 잘생기신 분도 계시네요.”

민주린의 멘트에 따라 카메라가 권민준의 옆에 앉아 있는 양우섭에게 향했다.

양우섭과 김정아가 나란히 화면에 비치자, 몇몇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YN전자 부사장과 상무이사가 이곳에 나와 있는데. 이런 반응들이 튀어나오는 건 당연했다.

물론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양우미였다.

“엄마까지…….”

방금 전까지 무대에 대한 긴장감으로 굳어 있던 얼굴에 당혹감이 더해졌다.

반면, 김정아는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여유로움을 보였다.

어차피 우미가 YN그룹 관계자라는 건 이미 기사를 통해 다 나간 사실이고.

하니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 리가 없는 사실이었기에 딱히 숨길 것도 없었다.

김정아가 팔꿈치로 아들의 옆구리를 깊숙하게 푹 찌르면서 너도 손 흔들라고 압박을 넣었다.

양우섭은 억지 미소를 띠면서 엄마의 말대로 따라 움직였다.

두 모자의 모습에 양우미의 한숨은 이연보다 더욱 깊어져만 갔다.

“무대 시작하기 전에 팬 여러분들에게 각오 한 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멤버들이 시선이 이연에게 쏠렸다.

평소의 이연이라면 멤버들에게도 간혹 마이크를 넘기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테지만.

오늘은 중요한 무대니까.

게다가 멤버들 모두가 다 워낙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 탓에 이번만큼은 이연이 얌전히 마이크를 들기로 했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저희 무대 보시면서 같이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객석에서 가벼운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민주린이 퇴장하고.

무대 위에는 하니엘 멤버들만 오롯이 남게 되었다.

각자의 위치에 선 멤버들은 반주가 흘러나오기 전에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와중에 이연은 인이어가 제대로 부착되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인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박자에 맞추려고 했는데.

어긋난 타이밍에 반주가 흘러나왔다.

‘뭐지?’

이연은 순간 크게 당황했지만, 이것이 사고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계속해서 인이어에 귀를 기울여 봤는데.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인이어 쪽이 반 박자 빠른 거 같은데.’

그러나 이연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침착하게 안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내 인이어 쪽에만 문제가 있는 건가?’

만약에 하니엘 멤버들이 지금의 이연처럼 똑같은 트러블을 겪고 있다면 분명 표정에서부터 당황하는 게 보였을 것이다.

그것도 문제지만. 박자가 틀어져 있다 보니까 안무 맞추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나마 이연이니까 티가 안 나게 공연을 소화하고 있는 거지, 다른 멤버가 이 7분의 1 확률에 걸렸다면…….

‘상상하고 싶지가 않네.’

첫 번째 후렴구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그래도 나름 괜찮다.

이연의 보컬 파트가 적은 편이니까.

중요한 건 후렴구부터다.

이때는 이연이 중간에 섞자고 했던 ‘HUG’의 랩 파트가 들어간다.

일반 보컬도 그렇지만, 랩은 특히나 박자감이 중요시된다.

먼저 시우가 랩 파트의 포문을 열었다.

갑자기 1집 타이틀곡이 선보여지자 사람들은 놀라면서 한편으론 깜짝 반전에 더욱 큰 호응을 보냈다.

시우에 이어 리샤의 턴이 끝났다.

이제 이연의 차례.

‘이대로는 안 되겠어.’

자칫 무대를 망쳐 버릴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툭.

중간에 랩을 소화하던 이연은 결국 인이어를 빼버렸다.

가수가 중간에 인이어를 귀에서 빼는 경우는 지금처럼 음향 문제가 있거나, 인이어가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거나. 혹은 가수가 현장감을 좀 더 접하고 싶기 위한 것 등등이 있다.

이연이 인이어를 빼버리는 순간.

우와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랩 파트가 끝난 뒤.

이연은 곧장 보컬로 바통을 이었다.

너와 나 사이의 줄다리기.

내가 줄을 당기면

나에게 와줘 honey.

come over here.

더 이상의 줄다리기는 hate.

시작부터 약간 출발이 꼬이긴 했지만.

이연의 보컬은 여전히 시원스러웠다.

귀가 정화되는 듯한 느낌.

동시에 이연의 압도적인 미모와 비주얼이 사람들의 눈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인이어 탈착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한 이연.

악수라고 생각했던 것이 신의 한 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 * *

카메라 감독이 무대 위로 올라와 엔딩 포즈를 취하는 하니엘 멤버들을 포커싱했다.

마무리를 담당한 이연은 입꼬리만 위로 살짝 올리면서 자신들의 무대를 봐준 팬들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뒤이어 멤버들은 일렬로 나란히 서서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어려웠던 공연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온 멤버들.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그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단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 긴장해서…… 내가 방금 전에 뭘 했는지도 모르겠어.”

“나도.”

“우리, 실수한 거 없겠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멤버들을 대신해서 이연이 자체 평가를 내렸다.

“연습할 때보다 훨씬 잘했어.”

이연이 돌아다니면서 한 명 한 명씩 직접 멤버들을 위로했다.

이연은 공연 평가에 대해선 냉철하게 의견을 들려주는 성격이다.

특히 본인들 무대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야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잘 알기에 멤버들은 이연의 ‘잘했다’라는 말에 믿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비아가 이연에게 줄곧 물으려고 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근데 연이 언니. 중간에 인이어는 왜 뺀 거야?”

“퍼포먼스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었어?”

이연은 리샤의 추측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자가 안 맞아서.”

이연의 말을 접수한 음향팀 스태프들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그제야 스태프들은 이연의 인이어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이전 PD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음향팀을 소환했다.

“중요한 무대에서 이런 거 하나 제대로 체크 못 하고. 뭐 하자는 거야, 어?”

“죄, 죄송합니다!”

음향감독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니엘에게 벌써 두 번째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으니까.

이연을 대신해서 황이전 PD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 뒤, 황 PD가 모든 스태프들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이연 씨. 이건 명백히 저희 쪽 실수입니다. 이걸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아니요. 괜찮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다고 표를 몇백 장 더 가산해서 계산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음향 쪽에 문제가 있었다 할지라도 뭔가를 요구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그래서 이연은 지금 당장 보답을 요구하는 대신에 이번 일을 그들에게 마음의 빚으로 남겨두게끔 하기로 했다.

“다음에 같이 작업하게 되면, 그때는 잘 부탁드릴게요.”

잘 부탁한다.

스태프들은 오늘따라 이연의 이 말이 상당히 섬뜩하게 들렸다.

* * *

최종 순위 발표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걸 그룹 참가팀들이 스튜디오에 올라섰다.

스태프가 민주린에게 작은 봉투를 넘겼다.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민주린의 표정에 큰 변화가 스쳤다.

이연과 모든 참가자들은 민주린의 이런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당장 알 방법이 없었다.

결과를 들어봐야 안다.

“먼저 7위 팀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참가팀뿐만 모두의 시선이 대형 화면으로 향했다.

마지막 성적표를 받게 된 아이돌들은 너도 나도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7위가 공개되자, 여기저기서 아쉬움을 가득 담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7위는 가을소녀 팀이 차지했습니다.”

가을소녀 멤버들은 좀처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는 멤버들도 다수 보였다.

마지막까지 분투했지만, 그녀들 입장에서는 미련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는 순위였다.

6위는 원더존. 그녀들 역시 가을소녀와 같은 분위기였다.

5위를 차지한 CDP까지 발표되자, 민주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첫 번째로 무대를 펼쳤던 팀들 역순으로 순위가 매겨졌네요?”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민주린의 말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다음 역시 민주린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했다.

“4위는 샤이걸스입니다.”

그러자 MAYO 팀원들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정말로 무대 순서대로 순위가 정해지고 있다면.

3위는 MAYO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순위 발표에 의도치 않게 또 하나의 볼거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3위 발표하겠습니다! 3위는 바로……!”

대형 화면에 3위를 차지한 팀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동시에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취했다.

[3위. MAYO]

역순의 징크스가 3위까지 그대로 이어지게 된 거였다.

한편. 우승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에 실패한 MAYO 멤버들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허탈함과 아쉬움, 그 밖에 여러 감정들이 마음속에 소용돌이쳤다.

그래도 최대한 속마음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생방송 중이니까.

“자! 역순의 징크스가 1, 2위 발표에도 이어지게 될까요?”

모두의 귀추가 주목되었다.

황이전 PD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의도한 연출도 아닌데.

알아서 드라마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만약 역순의 징크스대로라면 하니엘이 우승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상대는 걸파이트 시즌 2에서 줄곧 강한 모습을 보였던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다.

신인 그룹이 4세대 걸 그룹의 대표 주자를 누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연과 혜원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이연과 혜원.

하니엘과 아이비제이 트윙클.

이 중에 승자가 있다.

“걸파이트 시즌 2! 1위를 지금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민주린의 힘찬 외침과 함께.

마침내 화면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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