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39화 (239/299)

239화

제67화. 피날레(2)

파이널 라운드 팀 미션 녹화가 시작되기 5분 전.

겨우 현장에 도착한 권민준은 주형운, 양인박,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급하게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지정석은 따로 없지만, 각 팀별 관계자들이 앉는 구역은 정해져 있었다.

“하니엘은 어디지?”

권민준이 친구들과 함께 두리번거리면서 좌석을 찾으려고 할 때였다.

“민준아!”

아는 형의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어? 우섭이 형!”

SSS에 이어서 이번에도 동생의 무대를 직접 관람하기 위해 양우섭이 현장을 찾아왔다.

양우섭 역시 하니엘을 응원하는 지인 자격으로 이곳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양우섭이 있는 곳이 곧 하니엘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앉아야 할 장소라는 뜻이기도 했다.

양우섭 덕분에 권민준 일행은 쉽게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형.”

“그러게. 간만이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양우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권이연의 어머니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역시 양우섭을 보면서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잘생겨진 거 같네.”

“그런가요? 평소랑 똑같은 거 같은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고, 게다가 능력까지 좋으니까. 어머니들 입장에선 예뻐 보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양우섭은 권이연 가족들이 이사할 때 가전제품까지 새 제품들로 싹 바꿔줬던 은인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양우섭과의 재회가 기쁘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오늘의 양우섭은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계신 분은 누구니?”

이연의 어머니가 양우섭의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을 힐긋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 저희 어머니십니다.”

어머니라는 말에 권민준이 헉 소리를 냈다.

“형 어머님이시라면…….”

현 YN그룹 회장의 아내다.

사모님 중에서도 사모님이라 불리는 사람이 바로 근처에 있을 줄은 몰랐는지, 권민준 일행은 크게 당황했다.

이연의 어머니 역시 갑작스러운 만남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한편, 김정아가 뒤늦게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우섭아. 이분들은?”

“이연 씨 가족들입니다. 이쪽은 민준이라고, 이연 씨 남동생이고요. 옆에는 민준이 친구들, 그리고 이분은…….”

이연의 어머니를 소개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김정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풀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연 양 어머니 되시죠?”

“네? 아…… 네. 맞아요.”

“어머나, 세상에! 이연 양 미모가 어디서 나왔나 싶었는데. 어머니 미모를 쏙 빼닮으셨네. 어쩜 이렇게 예쁘세요? 피부도 너무 고우시다. 특별히 관리받으시는 거라도 있나요? 있으면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아니요. 그런 건 없는데…….”

이연의 어머니는 미용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때문에 김정아는 더 크게 놀랐다.

“타고났네, 타고났어. 너무 부러워요.”

김정아는 이연의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서로 더 가까워질 텐데. 저희, 친하게 지내봐요. 알았죠?”

“그, 그래요. 근데 가까워질 거라는 게 무슨 뜻인지…….”

“그런 게 있어요.”

호호 웃는 김정아와 달리, 양우섭은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싸 쥐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타이밍 좋게 곧 촬영이 시작될 거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김정아와 이연의 어머니 사이를 겨우 떨어뜨리는 데에 성공한 양우섭은 그제야 안도하면서 무사히 자리에 앉았다.

반면, 김정아는 아들의 이런 태도가 굉장히 못마땅했다.

“가서 이연 양 어머니한테 점수도 좀 따고 그래야지, 뭐하고 있어.”

“저하고 이연 씨,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제발 좀 가만히 계세요.”

“어머나? 너, 어디 가서 그런 여자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절대로 아니야. 이럴 때 확 붙잡아야지.”

김정아의 잔소리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양우섭은 처음으로 동생의 무대를 보러 온 자신의 결정에 후회했다.

아니, 어머니를 같이 데려온 일을 후회해야 했다.

* * *

프로그램 시작 신호와 함께 익숙한 반주가 깔리면서 조명들이 번쩍번쩍 빛을 냈다.

이에 따라 무대를 보러 온 사람들의 리액션도 커졌다.

민주린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에 먼저 올라섰다.

“시청자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국내 최정상 걸그룹을 가리는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걸파이트 시즌 2 진행을 맡은 민주린입니다. 안녕하세요!”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민주린의 인사에 환호로 보답했다.

파이널 라운드는 녹화가 아닌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걸파이트 시즌 2 최초 생방송 무대였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바짝 긴장하면서 민주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민주린도 이들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방송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방송 중에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항상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무대를 보시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에게 투표 방식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 투표는 실시간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걸그룹들의 무대를 모두 관람한 뒤, 아래에 나가는 번호로 응원하는 팀을 적어 문자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현장에 와 계신 분들도 참여 가능하니까 잊지 말고 투표해 주세요. 아셨죠?”

“네-!”

“좋습니다. 그럼 첫 번째 무대부터 바로 만나보실까요? 나와 주세요!”

제비뽑기를 통해서 첫 번째 타자를 맡게 된 가을소녀 팀이 무대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들이 등장하자, 가을소녀를 응원하는 객석 쪽은 난리가 났다.

응원 도구들을 꺼내서 각자 응원하는 가을소녀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리더 초영이 마이크를 들고 멤버들과 신호를 맞췄다.

“둘, 셋.”

“안녕하세요! 가을소녀입니다!”

12명의 멤버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했다.

민주린이 초영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초영 씨. 오늘 왜 이렇게 긴장했어요?”

“티 많이 나나요?”

“네. 가까이서 보니까 더 그래 보여요.”

방송으로는 어떻게 나갈지 모르지만, 민주린이 보기에는 초영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까지도 전부 다 보일 정도였다.

가을소녀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오랜 기간 동안 아이돌 활동을 이어온 베테랑 그룹이다.

가을소녀 멤버들은 지금 심장이 터질 것처럼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민주린은 가을소녀 멤버들의 이런 모습을 난생처음 봤다.

“멤버들 전부 다 긴장 많이 되시나 봐요.”

민주린의 말에 멤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을 푸는 마법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아쉽게도 가을소녀 멤버들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오늘 어떤 무대 준비하셨나요?”

“저희가 최근에 발표했던 5집 타이틀곡 ‘S.T.’를 재해석해서 여러분들에게 새롭게 선보이려고요.”

“‘S.T.’가 이번에 팬 여러분들한테 사랑을 굉장히 많이 받았잖아요. 음원 순위도 좋고.”

잠깐이지만, 가을소녀에게 오랜만에 음원 순위 1위의 영광을 안겼던 곡이기도 했다.

걸파이트 시즌 2의 인기에 힘입은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걸 다 떠나서 노래 자체도 괜찮았다.

그래서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었던 거였다.

“무대 시작하기 전에 각오 한 마디 해주세요.”

“이번에 저희가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가을소녀의 무대, 지금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가을소녀 멤버들이 자신의 위치를 찾아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분위기를 깨우듯, 흥겨운 반주가 스튜디오를 빠르게 채워가기 시작했다.

* * *

이연은 멤버들과 같이 대기실에서 숨을 죽인 채 가을소녀의 ‘S.T.’ 무대를 지켜봤다.

시우가 자신도 모르게 무대에 대한 소감을 흘렸다.

“선배님들, 이번에 준비 단단히 하셨나 봐요.”

얼굴 표정만 봐도 기합이 제대로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긴장감이 남아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무대를 펼치려고 하는 모습 자체는 경쟁 상대라 할지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가을소녀도 확실히 잘하는 팀이네.’

이연은 본인의 긴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면서 가을소녀가 보여주는 무대에 집중했다.

걸파이트 내에서는 워낙 쟁쟁한 팀들과 경쟁을 벌이는 탓에 하위권에 머무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따지고 보면 기본기가 굉장히 탄탄한 팀이기도 하다.

아이돌이라는 단어를 정석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그룹이기도 하고.

이런 면에서 본다면, 가을소녀도 만만치 않은 라이벌 팀이다.

생방송인 데다가 첫 번째 무대를 맡아서 엄청 긴장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소녀 멤버들은 실수 없이 자신들이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을 120퍼센트 보여주며 무대를 마무리 지었다.

카메라 감독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12명의 멤버들을 한 명 한 명씩 클로즈업해서 보여줬다.

마지막 엔딩 요정은 초영이 담당했다.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

그러나 눈가에는 마지막 무대에 대한 아쉬움인지, 기쁨인지 모를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결국 초영이 먼저 눈물을 터뜨렸다.

리더의 이런 모습에 멤버들 몇몇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도 팬들을 향한 마무리 인사는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가을소녀였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초영의 눈물에 우미와 여솜, 그리고 비아도 눈가가 살짝 젖어들었다.

“고생하셨어요, 선배님.”

작게 박수를 치면서 가을소녀 멤버들에게 수고의 의미를 담은 마음을 보냈다.

걸파이트 시즌 2 참가팀 모두가 다 경쟁 팀이면서 동시에 같은 무대에서 활동하는 동료다.

마지막 무대를 봐서 그런 걸까. 경쟁심보다는 동료애가 더 크게 느껴졌다.

이연도 가을소녀들의 무대를 보고 나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먹먹함을 느꼈다.

가을소녀의 무대가 끝나고.

다음,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설 팀이 공개되었다.

-원더존 여러분들을 모셔보겠습니다! 이번에도 큰 박수 부탁드릴게요!

원더존은 걸파이트 시즌 2 녹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하니엘과 가장 친분 있었던 그룹이었다.

그래서인지 무대 위에서 잔뜩 긴장한 원더존 멤버들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기 자신이 무대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든 채미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한숨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이런 반응에 민주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응원을 건넸다.

-긴장하지 마세요. 심호흡 한번 하시고, 천천히.

민주린의 주도하에 채미뿐만 아니라 원더존 전 멤버들이 다 같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대선배의 조언이 효과가 있었는지, 채미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우주를 누비는 아이돌! 원더존입니다!

그룹을 소개하는 인사말에도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기합이 넘친다. 이런 뜻이 아니었다.

‘너무 긴장해서 목소리 힘 조절이 안 되는 거겠지.’

그녀들이 만족할 만한 무대를 펼칠 수 있기를.

이연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원더존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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