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제66화. 여정의 끝자락(1)
파이널 무대를 앞둔 마지막 미션의 결과.
베네핏을 얻을 수 있는 막차에 어떤 팀이 올라탈 수 있을지. 막 공개되었다.
결과를 확인하자, 하니엘과 원더존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1위. 하니엘]
[2위. 원더존]
막내 그룹 대전에서 최후의 승자를 차지한 쪽은 초반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보였던 하니엘이었다.
혜원은 하니엘이 1위를 할 줄 알았던 모양인지 약간의 쓴 미소를 머금었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입장에선 이번 미션이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네핏을 차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셈이니까.
MAYO에 이어서 두 번째 파이널 라운드 팀 미션 우승팀이 된 하니엘.
민주린이 그녀들에게 1위를 차지한 소감이 어떤지를 물었다.
권이연은 들고 있던 마이크를 우미에게 넘겼다.
“언니가 말해.”
짧게 고개를 끄덕인 우미가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갑자기 야외에서 공연을 하게 될 줄 몰라 가지고…… 솔직히 많이 불안했거든요. 중간에 비도 오고. 관객분들에게 티가 얼마나 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미끄러지기도 해서 점수가 잘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말을 하기 전까지는 괜찮았으나, 중간부터 꾹 눌렀던 감정이 다시 북받쳐 오르는 모양인지 울먹이는 어투가 들렸다.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 이연은 몰래 작은 한숨을 삼켰다.
베네핏을 챙겨서 일단은 안심이다.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베네핏이 어떤 내용일지 아직 공개된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유리한 고점을 지킬 수 있으니까.
이것 때문에 다른 팀들도 사활을 걸고 열심히 무대를 준비했다.
문제는 모두가 다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결국 승자는 하니엘이 차지했다.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베네핏을 가지고 있다고, 다음 미션에서 반드시 1위가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줄 뿐이지, 필승 카드는 아니다.
이걸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2위 팀 소감도 안 들어보고 넘어갈 수 없겠죠.”
민주린의 멘트에 따라 원더존이 마이크를 들었다.
아쉽게 1위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리더 채미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 보였다.
“1위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저희는 오늘 무대에 매우 만족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이번 미션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스럽고 성숙한 그녀의 멘트에 다른 팀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원더존은 하니엘과 다르게 지금까지 쭉 하위권에만 맴돌던 팀 중 하나였다.
그랬던 원더존이 이번에 2위로 껑충 뛰어올랐으니. 다음 무대에 대한 기대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모든 참가팀들의 관심은 대망의 파이널 라운드 마지막 팀 미션으로 향했다.
다음에 따로 일정을 잡아 녹화를 할 때 공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파이널 미션 내용을 지금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참가팀들은 자유 미션을 마치고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바로 화면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전 미션들처럼 따로 타이틀이 없이 ‘파이널 미션’이라는 문구만 떠 있었다.
잠시 짧은 문구가 아래에 새겨졌다.
[여러분들이 최근에 발표했던 앨범 타이틀곡으로 무대를 꾸며주세요.]
일곱 개 팀 모두가 다 걸파이트 시즌 2를 녹화하면서 같이 컴백 활동도 병행했었다.
이 앨범 활동 기간에 발표했었던 타이틀곡으로 마지막 미션의 대미를 장식하라는 뜻이었다.
내용만 놓고 봤을 때에는 굉장히 심플했다.
자유 미션 때와 달리, 어느 곡으로 해야 할지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MAYO가 우승했던 글로벌 미션 때만큼 특정 팀에게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미션도 아니었다.
실력 대결.
이연은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미션 내용은 다들 확인하셨죠?”
“네!”
미션이 공개될 때마다 룰 숙지 때문에 매번 애를 먹었던 비아와 리샤도 이번에는 깔끔하게 이해를 마쳤다.
“그럼 바로 베네핏 사용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파이널 라운드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 걸까.
오늘 미션 내용 공개와 함께 베네핏까지 전부 오픈되었다.
“아까 이번 미션 내용 공개해 드린 거, 기억하고 계시죠?”
“네.”
“MAYO, 하니엘. 두 팀은 베네핏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최근 타이틀곡 말고 다른 노래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베네핏의 내용이었다.
노래에 국한되지 않고 좀 더 자유로운 무대를 꾸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메리트다.
이연의 예상대로, 걸파이트는 SSS에 비해서 확실히 베네핏의 중요성이 컸다.
아예 다음 미션의 판도를 바꿔 버릴 만큼 강력한 권한이다.
“두 팀, 상의할 시간이 필요하시겠죠?”
민주린의 물음에 MAYO 쪽에서 먼저 손을 들었다.
“저희는 필요 없습니다. 바로 결정했거든요.”
“어떻게 하기로 하셨나요?”
“다른 팀하고 동일하게 최근 곡 그대로 가겠습니다.”
패기 넘치는 대답이었다.
그녀들은 스스로 베네핏을 포기했다.
마음대로 곡을 고를 수 있다고 했으니까. MAYO의 선택은 제작진이 정한 규칙 내에서 크게 어긋날 게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하니엘은…….”
모든 이목이 하니엘에게 쏠렸다.
멤버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멤버들이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짧게 끄덕인 이연은 마이크를 들고서 입을 열었다.
“저희도 여기서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똑같은 조건에서 미션을 수행하겠습니다.”
이로서 마지막 미션 조건이 모두 갖춰졌다.
* * *
하니엘의 2집 타이틀곡은 Tug of war였다.
마지막 음방 녹화 때까지 계속 연습하고 연습했던 곡이었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건 다른 그룹들도 다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러 차례 보여줬던 무대였기에 오히려 더 골치가 아프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파이널 미션 무대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걸 고안해야 돼.”
똑같은 무대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절대 금물이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봤던 무대였기에 다른 특색이 없다면 기억에도 잘 남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질 만한 무대라는 건, 그만큼 사람들에게 표를 많이 얻어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뇌리에 남을 만한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틀을 완전히 박살 내는 형태를 취하면 안 된다.
어느 정도 틀은 갖추되, 새로운 걸 보여준다는 그 아슬아슬한 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펜대를 굴리던 여솜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네.”
비아와 리샤는 이미 한발 먼저 생각하기를 관둔 상태였다.
하니엘의 브레인 라인이라 할 수 있는 이연과 우미가 그나마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이연도 만만치 않은 모양인지, 쉽지 않다는 듯 고개를 자주 절레절레 움직였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커피를 사기 위해 잠시 나갔던 시우와 유키가 자리로 돌아왔다.
“언니들. 커피 가져왔어요.”
“이거 마시면서 하세요.”
“고마워, 얘들아.”
이연이 이 세계로 넘어온 뒤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커피 문화였다.
전생에서 먹었던 커피 음료는 엄청 달거나, 아니면 엄청 쓰거나. 굉장히 극단적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파는 커피 음료들은 종류와 맛들이 굉장히 다양했다.
이연은 주로 헤이즐넛 계열을 좋아했다.
빨대를 콕 찍은 뒤, 그 끝을 작은 입술로 물었다.
카페인을 공급받으면 아이디어가 금방 떠오를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준비 기간은 1주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시간에 대한 압박감 때문일까.
“아…… 머리 아파.”
끝까지 버티던 우미도 결국 GG를 쳤다.
일찌감치 생각하기를 포기한 비아가 잘 결정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우미를 다독였다.
“언니. 어차피 우리, 30분 뒤에 연습하러 가야 하잖아. 연습하다가 보면 뭐 좋은 생각이 떠오르겠지.”
“그럴까?”
기본 안무 연습은 계속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추가로 접목시키는 형태로 방향을 잡으면 되니까.
정확히 30분 뒤.
박도수 매니저의 차를 타고 온 최 코디가 숙소를 방문했다.
“차 아파트 입구에다 주차시켰으니까 지하 말고 1층으로 바로 내려와. 알았지?”
“네.”
“그리고 안무 연습실에 걸파이트 촬영팀 와 있으니까 너무 꼬질한 상태로 나오진 말고.”
멤버들도 알고 있었다.
이미 기초화장 정도는 다 해뒀기 때문에 그녀들은 거리낌 없이 외출 준비에 나섰다.
황사로부터 목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이연은 후드티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아래로 향하는 와중에도 이연의 머릿속은 새로운 퍼포먼스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연아.”
우미가 이연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안 내리고 뭐 해?”
그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있었다.
“미안.”
이연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일행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녀의 이런 모습이 우미에게는 꽤 낯설었다.
“예전에 오빠가 그랬는데, 생각이 잘 안 풀릴 때에는 오히려 머릿속을 비워보래.”
“비우라고?”
“응. 한번 비우고 나서 다시 차곡차곡 생각을 쌓다 보면, 어느새 자기가 바라던 작품이 완성되어 있을 거라고 그러더라. 어디까지나 우리 오빠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까. 참고하기만 해.”
그래도 이연이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동안 이연은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떠올리고, 그리고 해결해 오는 것에 집중해 왔었다.
그럼에도 항상 결과가 다 좋게 나온 건 아니었다.
걸파이트 시즌 2라는 여정의 끝자락을 앞두고 있으니까.
이쯤에서 한 번쯤 자신의 행적을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달리 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고마워, 언니.”
이연한테 고맙다는 말을 듣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잘 알기에 우미의 뿌듯함은 배가 되었다.
차에 오른 뒤, 그녀들은 숙소보다도 더 익숙해지기 시작한 안무 연습실로 걸음을 옮겼다.
미리 와 있던 은서해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일단은 너희들이 Tug of war 안무 잘 기억하고 있나 한번 합 맞춰보고 난 다음에 연습 시작할게. 오케이?”
리샤가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에이. 쌤. 몇 달 된 것도 아니고. 저희가 그걸 다 까먹을 리가 없잖아요.”
“너하고 비아는 왠지 그럴 거 같아.”
뼈를 때리는 은서해의 지적에 리샤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연습이 시작되려고 하기 직전.
조연출이 이연을 따로 불렀다.
“이연 씨. 양해 좀 구할 게 있어서 그런데요.”
“네, PD님.”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MAYO 쪽에서 하니엘이 연습하는 거 견학해도 되냐고 물어봐 달라고 그러더라고요.”
특이한 제안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