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제65화. Free(2)
마지막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고.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녀들은 곧장 LC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이제는 숙소 다음으로 익숙해져 버린 공간이 된 안무 연습실을 찾은 7명의 아이돌.
가장 먼저 메이크업을 지우고 편안한 복장으로 안무 연습실에 발을 들인 이연은 은서해로부터 약간 늦은 축하의 말을 듣게 되었다.
“1위 축하해. 나도 가서 직접 보고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바쁜 일이 생긴 탓에 은서해는 오늘 그녀들과 함께하지 못했었다.
하니엘의 백댄서로 활동 중인 퍼플피플 크루가 은서해의 몫까지 대신 축하를 해줬으니까. 이연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 아주 많이요.”
음방 1위는 언제든 할 자신이 있다.
이연은 이 포부와 자신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녀의 말에 은서해는 작게 웃으면서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사이, 다른 하니엘 멤버들도 속속들이 준비를 마치고 안무 연습실에 등장했다.
모든 멤버들이 다 모이자.
본격적으로 파이널 라운드 2차 팀 미션에 관한 이야기가 은서해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흘러나왔다.
“미션 내용이…… ‘Free’라고 했었지?”
“네.”
은서해가 처음 이러한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이게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알아듣지 못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미션 내용이 단어의 뜻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여솜이 이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줬다.
“하고 싶은 곡, 하고 싶은 안무. 마음대로 골라서 무대를 펼치면 된다고 했어요.”
이게 2차 팀 미션 내용의 전부였다.
걸파이트 시즌 2 미션들을 진행하면서 자유라는 내용을 내걸었던 미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르 불문. 내용도 불문.
모든 것을 멤버들의 재량에 맡기기로 한 거였다.
은서해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녀는 자유 미션이 한 번쯤은 나올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미션이 마지막 팀 미션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자유 대결로 걸파이트 시즌 2의 마지막을 장식하면 그것만큼 공평한 결승 무대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글로벌 미션 때만큼의 파장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
바로 어제, 글로벌 미션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이연은 미랑이 했던 제작진을 향한 멘트가 편집되어 나갈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의외로 이 멘트는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제작진도 글로벌 미션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겠다는 태도를 취한 셈이었다.
시청자들에게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그래도 반성은 하고 있으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자유 대결을 미리 끌어온 것도 없지 않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결승 무대는 어떤 테마를 꺼내려는 걸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건 나중의 일일 뿐.
일단은 눈앞의 미션부터 먼저 잘 해결해야 한다.
이번 미션은 하니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파이널 라운드 베네핏을 획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은서해가 손뼉을 짝짝! 소리가 나게 두세 차례 마주쳤다.
“자, 시간 없으니까 연습부터 얼른 시작하자. 곡은 어떤 거 한다고 했었지?”
“‘Sunlight’요.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거예요.”
멤버들과 어떤 노래를 선곡할지 장시간 회의한 끝에 아이비제이의 노래를 고르게 되었다.
라이벌 팀으로 경쟁 중인 아이비제이 트윙클을 의식해서 일부러 그녀들의 본가 그룹 노래를 선곡한 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이비제이 그룹의 노래들이 커버하기가 참 좋은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4세대 걸 그룹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니까.
이런 이유에서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은 아이비제이의 3집 타이틀곡이었던 ‘Sunlight’를 골랐다.
하니엘 멤버들 중에서도 아이비제이를 동경하고 좋아하는 인원들이 여럿 되니까.
게다가 그녀들의 무대를 자주 모니터링하기도 했고.
커버 무대를 삼기에는 참 좋은 모델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또 하나 더. 아주 중요한 선곡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은서해가 ‘Sunlight’의 안무를 직접 고안했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안무를 직접 짰으니까. 그만큼 ‘Sunlight’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은서해도 이번 무대에 대해서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 자유 미션에서 일등 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나만 믿고 따라오도록 해. 알았지?”
“네!”
트레이너님만 믿겠다는 듯이 눈빛을 반짝이는 멤버들.
그러나 정작 이연은 다른 걸 더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하니엘이 무슨 곡을 택했는지보다는 다른 팀이 어떤 무대를 준비할지.
오히려 이쪽에 더 무게감이 실렸다.
특히.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겠지.’
이번에도 혜원이 어떤 만반의 준비를 해올지.
이연은 기대와 걱정이 앞섰다.
* * *
자유 미션 무대까지 이제 3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
기간이 다가올수록 이연은 의문점이 하나 들었다.
원하는 곡과 안무를 택해서 무대를 꾸미면 된다고 했는데.
제작진은 정작 중요한 걸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 미션은 누가 평가할 것인지.
그리고 어디서 무대를 가지게 될지.
여전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1차 때처럼 외국인 청중평가단을 꾸리진 않을 테고.’
이연은 고민을 떠안은 채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제작진이 준비한 PPL 음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전처럼 그녀가 음료를 마시려고 할 때마다 카메라맨들은 이연 쪽으로 앵글을 고정시키느라 바빴다.
지난번에 이연이 특정 업체의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송출된 이후, 매출이 다섯 배 넘게 뛰어올랐다.
타 기업이 권이연 효과를 톡톡히 보는 모습을 목격해서일까.
그들도 다음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잔뜩 안달이 난 상태였다.
관계자들도 손을 꼼지락하면서 이연이 자신들의 음료를 마셔줬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었다.
이연의 손이 어느 탄산수 음료 앞에 멈췄다.
그것을 집어 든 순간, 업체 관계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 없는 기쁨을 표출했다.
이연의 사소한 선택 한 번에 따라 관계자들은 울고 웃고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이연에게 나머지 음료들까지 다 마셔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히려 제작비를 대고 있는 업체들이 출연자의 눈치를 보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연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다음 미션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슬쩍. 황 PD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뭐가 그리 바쁜지, 하니엘이 연습하는 과정을 촬영하는 내내 작가진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유 미션 때문에 그런 거겠지?’
마법을 이용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중간에 은서해가 다시 연습 시작하자고 말하는 탓에 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아까 B파트에서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 있더라고. 그쪽 안무만 수정하고 다시 한번 쭉 맞춰보자. 오케이?”
“네!”
“좋아. 음악 틀어주세요.”
‘Sunlight’ 노래가 흘러나오자, 하니엘 멤버들은 그동안 은서해의 지도하에 연습했던 안무 동작을 마음껏 뽐냈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부터 줄곧 선배들의 영상을 보면서 따라 연습하기도 했었기에 동작을 익히는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안무를 그대로 따라 하는 건 쉬운데. 기존의 안무에서 하니엘만의 특색과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퍼포먼스를 따로 고안해 내야 한다.
연습을 끝내고 다시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사이, 은서해는 멤버들을 모아서 하니엘만이 어필할 수 있는 특별한 퍼포먼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의견을 구했다.
“내 눈치 볼 거 없이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 이런 걸로 화 안 내는 사람이라는 건 너희들도 잘 알잖니. 그렇지?”
“네.”
이때, 여솜과 비아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
둘 다 아이비제이를 좋아하는 팬들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좀 더 깊이가 있는 의견을 들려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여솜부터.”
“1절 후렴구 막 들어갈 때 펼치는 단체 퍼포먼스 있잖아요.”
“기상 안무?”
“네, 그거요.”
아침에 막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을 춤으로 형상화한 동작이다.
“무대에 누웠다가 일어나야 하잖아요. 예전부터 느꼈던 건데, 이 안무만 너무 눈에 거슬리더라고요.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전 동작들하고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이질적이어서 동작들 간의 연결성을 끊어버린다.
이런 뜻으로 한 말이었다.
비아도 여솜과 같은 의견이었다.
“아이비제이 팬들 사이에서도 기상 안무로 말이 많았었어요. 꼭 저기서 저 퍼포먼스가 들어가야 했나? 하고 말이에요. 제가 팬 사이트 눈팅 엄청 하면서 봤어요.”
가수로서가 아니라. 팬으로서의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어떤 의견보다도 굉장히 중요하다.
소비문화를 이끄는 건 전문가도, 같은 아이돌도 아닌 팬들이니까.
팬들의 입맛이 어떤 건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안무를 만든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은서해가 먼저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고 했었으니까. 그래서 여솜과 비아는 가감 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은서해도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팀 내부에서도 기상 안무로 의견이 갈렸었어. 그래도 그때는 컴백 일자가 얼마 안 남아서 그냥 넘어가긴 했었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고쳐야겠지.”
커버곡 무대를 준비할 때, 원곡의 단점까지 그대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장점만 가져오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따로 수정하면 된다.
아이돌이니까.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는 걸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알았어. 그럼 기상 안무를 빼고, 그 자리에 다른 퍼포먼스 안무를 넣어보자.”
은서해의 말에 모두가 알겠다고 답했다.
* * *
오늘 이연은 개인 스케줄로 인해 박도수 매니저와 따로 방송국을 찾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스케줄은 아니었기에 금방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갈 예정이었다.
도중에 이연은 MAYO의 아야와 마주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머, 여긴 웬일이야?”
“스케줄이 있어서요. 선배님은요?”
“나? 우리 팀 리더가 갑자기 몸살감기에 걸려서 그 스케줄 대신 채우려고 왔지.”
MAYO는 인원수가 적은 편에 속하지만, 그만큼 멤버들끼리 사이가 굉장히 돈독했다.
이연이 힘내라는 말을 건네자, 아야가 쓴 미소로 답했다.
“그보다 이야기 들었어.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곡으로 준비하고 있다면서?”
“네. 맞아요.”
MAYO는 걸파이트 참가팀 말고 다른 팀의 곡을 택했다고 알고 있었다.
자유 미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야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선배님들이 무슨 곡으로 연습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아니요. 아직 못 들었어요. 선배님은 알고 계신가요?”
“나도 어제 들어서 알게 된 건데…….”
아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정보는 이연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너희 그룹 걸로 준비하고 있다던데?”
“…….”
이번에도 혜원이 뭔가 수를 쓴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