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제64화. 글로벌 미션(2)
리샤에 이어서 유키까지 동원해서 외국인 관객들을 조사해 본 결과.
2편의 특집편 중에서 둘 다 미국인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33퍼센트, 31퍼센트라…….”
이다음으로 많은 외국 국적은 일본인이었다.
퍼센티지가 미국 국적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지만, 두 개의 특집편 다 20퍼센트대를 유지하면서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님을 재차 어필했다.
‘영어, 아니면 일본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좋아 보이네.’
결과대로라면 영어가 답이긴 하다.
게다가 영어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이기도 하니까.
실제로 미국인뿐만 아니라 서양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은 전부 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관객들이었다.
서양인들만 놓고 본다면,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늘어난다.
이런 걸 본다면 영어가 정배라고 할 수 있지만, 변수는 늘 염두에 두는 편이 좋다.
“연아. 어떻게 할래?”
우미가 이연에게 최종 결정에 대해 물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이연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일단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매니저님하고 코디님이 얼마나 정보를 모아 오는지 들어보고, 그다음에 결정하자.”
어차피 데드라인은 내일까지로 잡아뒀으니까.
오늘 당장 급하게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멤버들은 이연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들어가서 자. 그리고 리샤하고, 유키.”
이연이 두 사람을 부르면서 옅은 미소를 보냈다.
“오늘 고생 많았어. 고마워.”
리샤와 유키는 별거 아니라면서 어깨를 한 차례 으쓱했다.
“팀을 위한 일이니까.”
“맞아요. 저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언니.”
“그래, 알았어.”
이연은 각자 방으로 돌아가는 팀원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까지 줄곧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걸 당연하게 여겼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그룹이니까.
앞으로는 좀 더 팀원들을 믿고 의지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동료들을 신뢰하는 것.
어쩌면 이것 또한 이연이 바라는 ‘완벽한 무대’를 위한 필수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됨과 동시에 각 그룹별로 새로운 프로필 사진을 홈페이지와 걸파이트 채널에 업로드하기 위한 촬영이 시작되었다.
어제 녹화를 마치고 단 하루 만에 다시 현장에 모이게 된 아이돌들.
하니엘은 아이비제이 트윙클, 그리고 MAYO와 함께 같은 오전 시간대에 포함되었다.
촬영감독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다음 차례를 불렀다.
“각 그룹 리더님들 모셔볼게요! 의상 다 입으셨으면 바로 스튜디오로 올라와 주세요!”
“네!”
가장 먼저 이연이 무대에 올랐다.
아직 미랑은 힐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사이, 혜원이 이연의 옆에 나란히 섰다.
밝은 조명 빛 아래에서 혜원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바라보면서 이연에게 슬며시 말을 걸었다.
“다들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
“그러게요.”
이연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혜원이 먼저 이연에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이젠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촬영하는 동안 서로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눴다.
그래서 이연은 혜원이 일부러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혜원의 목적은 단순히 그녀의 안부를 묻는 게 아니었다.
“하니엘은 어떤 언어로 개사하기로 했나요?”
“…….”
갑자기 하니엘의 동태를 살피려는 혜원의 모습에 이연은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다.
라이벌에게 떠보듯 물어보면서 속내를 파악하려는 행동은 혜원의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파이널 라운드니까 작전을 바꾸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
경계심을 유지하면서 이연은 이번에도 감정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톤으로 답했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영어, 아니면 일본어. 이 둘 중에 하나겠죠?”
아이비제이 트윙클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지적했다.
이연은 ‘글쎄요’라는 애매한 대답을 흘렸다.
이때였다.
혜원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영어로 하세요.”
“네?”
“영어요. 이번 외국인 청중평가단은 미국인을 포함해서 서양인들의 비중이 거의 절반이 넘을 거예요. 그러니까 영어로 개사하는 게 훨씬 유리해요.”
“그걸 어떻게…….”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그녀.
어쩌면 이연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혜원은 거짓말로 상대방을 회유하는 성격 또한 아니다.
이연은 그녀가 지닌 정보의 출처가 궁금했다.
혜원의 목소리가 한 단계 줄어들었다.
“저희 소속사 대표님이 몰래 입수한 정보니까 믿으셔도 돼요.”
“…….”
그건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걸 저한테 알려주시나요?”
서로 경쟁하는 사이인 데다가 하니엘은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가장 큰 라이벌이다.
혜원 본인도 인터뷰에서 MAYO보다도 하니엘이 더 큰 위협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녀가 먼저 이런 고급 정보를 이연에게 들려준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혜원은 이렇게 답했다.
“서로 공정한 무대에서 경쟁을 펼치고 싶으니까요. 그래야 승리하는 보람이 더 있지 않을까요?”
자신감이 묻어 나오는 말이었다.
이연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미랑이 허겁지겁 스튜디오로 올라오는 탓에 미처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랑의 합류로 인해 다시 시작된 프로필 촬영.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것과 달리, 이연의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했다.
* * *
프로필 촬영이 끝나자마자 이연은 박도수 매니저와 최공예 코디에게 혹시 성과가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관해서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전혀.”
“제작진분들, 정보 새어 나가는 거에 엄청 민감해하시더라고. 나 아는 의상팀 언니 살살 굴려가면서 아는 거 있으면 말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자기도 들은 바가 전혀 없대. 글로벌 미션 준비 현황은 PD님하고 조연출님, 그리고 작가님 몇 명만 알고 있다고 하더라.”
소득이 없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쉽게 지우지 못했다.
이번에는 역으로 박도수 매니저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우미가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들을 요약해서 알려줬다.
“일본어하고 영어하고. 둘 중에 하나로 압축해서 고민 중이에요.”
“리샤하고 유키 따라서 가기로 한 거야?”
“아니요. 연이가 황 PD님이 예전에 연출했던 프로그램 영상 몇 개 찾아냈는데, 그거 토대로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린 거예요. 오늘 정하기로 했는데…….”
모두의 시선이 이연에게 쏠렸다.
팀원들은 이연의 선택에 따르기로 이미 결심을 굳혔다.
이연이 어떤 대답을 내놓느냐.
여기에 따라 오늘부터 시작될 무대 준비의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이연은 마침내 결론에 도달했다.
“영어로 가죠.”
혜원이 건넨 도전에 응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언어 선택은 완료했고.
이제 선곡만 남았다.
곡은 하니엘의 데뷔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HUG’로 정했다.
영어로 개사하기에는 2집 타이틀곡보다 HUG가 더 편하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찐프로 역시 HUG 쪽에 손을 들어줬다.
곡까지 다 정하니, 나머지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레코딩을 위해 한 명씩 순서대로 부스에 들어갔다.
가사는 영어로 바뀌었지만, 노래 자체가 바뀐 건 아니었기 때문에 레코딩이 크게 어렵진 않았다.
영어 발음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열등생인 비아가 조금 시간이 걸렸을 뿐. 나머지는 칭찬과 함께 별 탈 없이 레코딩을 마쳤다.
바로 연습실로 향한 뒤에 안무 연습에 돌입했다.
안무는 레코딩 때보다도 더 편했다.
따로 개사 같은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똑같은 퍼포먼스만 보여줄 수는 없었다.
파이널 라운드 1차 팀 미션에 걸맞은 새로운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잠깐만.”
연습을 중지시킨 이연은 멤버들을 불러 모으고서 새로운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노래 가사만 바꾸면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 안무도 약간 바꿔보는 건 어때?”
멤버들이 반응하기 전에 댄스 트레이너를 전담하고 있는 은서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연이 말대로 하는 게 좋긴 할 거야. 다른 그룹 트레이너들은 어떻게 하는지 슬쩍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쪽도 기존 안무에서 약간 덧붙이거나 아니면 퍼포먼스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더라고.”
그녀들 역시 변화를 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거였다.
같이 경쟁하는 팀들이 그렇다는데.
하니엘도 무조건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전히 안무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기존의 안무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가기 때문에 아예 새로 배우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연이 얼마나 더 욕심을 내느냐.
여기에 따라 갈리게 될 것이다.
멤버들 입장에선 천만다행히도 이연은 그렇게까지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포인트가 될 만한 안무를 더 추가하거나.
아니면 약간 대열을 바꾸는 정도 선에서 그쳤다.
“이렇게 바꾸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들한텐 큰 변화를 느끼게 해줄 수 있으니까.”
남은 연습 시간까지 고려해서 효율성 있는 방향을 잡은 거였다.
비아는 이연의 이런 방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또. 안무 많이 바뀌어서 녹화 전날까지 밤새워 가면서 계속 연습하는 줄 알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연은 비아의 말이 오히려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습은 네가 말한 것처럼 할 건데?”
“……?”
연습성애자 이연의 모습은 여전했다.
* * *
마침내 찾아온 파이널 라운드 첫 팀 미션.
이연이 직접 다른 그룹들의 동태를 살펴본 결과.
“일곱 개 팀 중에서 다섯 개 팀이 영어로 준비했고. 나머지 두 팀은 일본어로 가기로 했나 봐.”
“일본어 팀은 어디어디인데?”
“가을소녀 선배님들하고 CDP 선배님들.”
공교롭게도 많은 멤버 수를 보유하기로 1, 2위를 다투고 있는 그룹들이 전부 다 일본어를 택했다.
MAYO는 분석 여부를 떠나서 처음부터 아예 영어로 노선을 잡았을 것이다. 해외 활동을 할 때에도 영어로만 구성된 곡을 많이 발표하고 그랬으니까.
샤이걸스와 원더존도 일본어보다는 영어가 친숙했던 모양인지 그쪽으로 노선을 잡았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굳이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
이연에게 외국인 청중평가단에 관한 정보를 흘려준 게 혜원이었으니까.
하니엘에게 영어로 하라고 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일본어로 무대를 준비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무대에 올라서기 전에 이연이 확인해야 할 일이 남았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이연은 대기실을 빠르게 나선 뒤에 곧장 자신에게 투명화 마법을 걸었다.
과연 혜원의 말대로 영어권에 익숙한 외국인들의 비중이 더 많을지.
정답을 맞춰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