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26화 (226/299)

226화

제64화. 글로벌 미션(1)

민주린은 이연과 하니엘이 SSS에 참가할 때부터 줄곧 봐왔었던, 의지가 되는 선배다.

사석에서 만나면 이제는 서로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걸파이트 무대 위에서는 민주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많은 긴장과 신경이 쓰였다.

민주린의 말에 의해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될지. 방향성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린이 정한 건 아니다.

제작진이 사전에 정해준 것을 민주린이 대리인 자격으로 대신 전달해 주는 역할에 불과하다.

머릿속으로 민주린 탓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선배님이 마이크를 쥐실 때마다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어.”

여솜이 아주 작은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하니엘 멤버들에게 속삭였다.

여솜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낀 모양인지, 멤버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니엘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이런 두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주린은 큐시트를 보면서 계속 멘트를 이어나갔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여러분들. 드디어 파이널 라운드에 돌입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대표로 혜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파이널 라운드라고 특별히 뭔가 마음가짐이 달라지진 않는 거 같아요. 늘 그렇듯,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범적인 답변이었다.

1위를 차지한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인터뷰가 끝났으니.

‘이다음은 우리겠네.’

이연의 추측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주린이 하니엘을 가리켰다.

“하니엘 분들은 느낌이 어떤가요? 선배분들하고 여러 차례 경합을 해오면서 1위도 한번 하셨고. 감회가 남다를 거 같은데.”

아이비제이 트윙클에서 리더가 마이크를 잡았듯이, 하니엘 역시 이연이 대표를 맡았다.

“지금까지는 몸풀기에 불과했다고 봅니다. 파이널 라운드가 본선 무대인 만큼, 저희가 1위를 했었다는 영광은 잠시 머릿속에서 지우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위를 향해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특별히 대본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연은 막힘없이 멘트를 이어나갔다.

이때, 민주린이 재미있는 추가 질문을 꺼냈다.

“지난번에 ‘기브 앤 테이크’에 여솜 씨하고 리샤 씨하고. 이렇게 세 분이 출연하셨더라고요.”

“보셨군요, 선배님.”

“네. 하니엘 나온다고 하니까 안 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때 보니까 우승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던데. 지금도 여전히 그 마음 그대로인가요?”

선배들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당당하게 답했다.

“네.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상, 당연히 우승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연의 대답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그룹은 MAYO였다.

미랑이 마이크를 들고서 장난스러운 어투로 이연의 포부를 방해했다.

“1위 자리, 쉽게 안 내어줄 겁니다.”

“물론 각오하고 있습니다.”

불꽃 튀기는 MAYO와 하니엘의 신경전에 카메라 감독들은 덩달아 바빠졌다.

이런 자극적인 맛이 있어야 황 PD도 편집하는 재미가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이연과 미랑은 일부러 가벼운 설전을 나누게 되었다.

이연에게 자극을 받아서인지, 다른 그룹들 역시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고 우승을 노리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하위권에 머물던 팀들의 의욕이 특히나 더 강했다.

마지막 승자가 결국 최후의 승리자로 기록될 거니까.

그래서 이연은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나 MAYO뿐만 아니라 경쟁팀 모두를 다 라이벌로 보고 더욱 철저하게 무대 준비에 임할 생각이었다.

오프닝 토크를 마친 뒤.

참가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차례가 돌아왔다.

“파이널 라운드, 첫 번째 팀 미션 내용을 바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주린의 멘트에 맞춰서 화면에 커다란 글자가 새겨졌다.

[글로벌 미션]

글로벌이라는 단어에 참가자들은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로벌?”

“우리, 해외에 나가서 무대 펼쳐야 하는 거야?”

“에이, 그럴 리가.”

“그게 아니면 왜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쓴 건데?”

여기저기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자세한 설명은 이번에도 민주린이 담당했다.

“k-pop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여러분들의 무대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과연 통할지, 이것을 시험해 보는 미션이 될 겁니다.”

취지는 굉장히 심플했다.

문제는 미션 내용이다.

“여러분들은 본인들의 노래를 이용해서 무대를 펼치시게 될 겁니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조건이라는 말에 참가자들의 작은 귀가 쫑긋했다.

조건부의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황당한 내용이기도 했다.

“한국어 이외의 다른 나라 언어로 새롭게 가사를 바꾸셔서 무대를 꾸미셔야 합니다. 왜 이런 조건을 걸었냐 하면, 여러분들의 무대를 평가하게 될 분들이 바로 외국인들이거든요.”

외국 관객들한테 평가를 받는다.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평가 방식이었다.

‘그래서 글로벌 미션이라고 타이틀을 붙인 거였네.’

이제야 이연은 제작진의 의도가 뭔지 완벽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와중에 MAYO의 아야가 손을 들었다.

“선배님! ‘한국어 이외의 다른 나라 언어’라고 한다면, 반드시 영어로 개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요?”

“네. 영어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일본어도 괜찮고, 중국어도 괜찮고. 청중평가단으로 오실 외국인분들의 국적이 다양하거든요.”

관객들의 국적은 어느 한 나라에 치중되지 않는다. 이 말이었다.

미국인이 몇 명이나 될지. 일본인이 몇 명이나 될지. 이 비율도 굉장히 중요하다.

아무래도 자기 나라 언어가 더 친숙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서 외국인 청중평가단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국적의 언어로 개사를 하는 편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것까지 다 오픈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복불복이네.’

이연은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 * *

무대라는 건 100퍼센트 실력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 운도 따라줘야 한다.

그러나 이건 운이 가져가는 비중이 너무 큰 편이었다.

녹화를 마치고 바로 연습에 돌입하기 위해 회사로 향하는 이연의 머릿속은 글로벌 미션에 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멤버들도 이연과 같은 상태였다.

그래도 우미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래도 외국인 멤버들이 좀 있는 편이니까. 선배님들에 비하면 낫지 않을까?”

아이비제이 트윙클만 하더라도 세 명 전원이 다 한국인이다.

그러나 이연은 멤버의 다국적이 딱히 큰 이점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었다.

“결국 발음의 차이밖에 안 나니까. 그리고 요즘은 아이돌 데뷔 과정에서 보는 부분 중에 영어 발음도 포함되어 있잖아? 적어도 영어 발음이 뭉개져서 가사 전달이 안 될 일은 없겠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우리에게는 유키도 있잖아?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로 개사하면, 우리가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그랬다가 막상 일본인 비중이 제일 적으면?”

“…….”

우미는 이 이상 이연의 말에 반론을 가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이 옳기 때문이었다.

돌고 돌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거다.

“나라별 비중이 어떻게 될 지부터 먼저 알아내야 해.”

제작진은 대동할 외국인 평가단의 총인원수도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전부 베일에 싸여 있다.

그래서 더 예측하기가 힘들다.

일단은 어느 나라 언어로 개사할지. 이것부터 먼저 정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었다.

“어차피 우리 노래로 하라고 했으니까. 안무는 이미 다 나와 있고. 나중에 언어만 바꿔서 레코딩만 따로 하면 되니까, 연습 시간은 많이 단축시킬 수 있을 거야.”

이연은 이 시간적 여유를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일단 내일까지 영어로 할지, 아니면 다른 나라 언어로 할지 각자 생각해 보자. 연습은 그 이후부터 해도 늦지 않으니까. 알았지?”

“응!”

“저도 한번 고민해 볼게요, 언니.”

이연은 멤버들뿐만 아니라 박도수 매니저와 최공예 코디에게도 SOS를 요청했다.

“두 분도 혹시 들리는 소문이나 정보 같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알았어.”

“그렇게 할게.”

결국 이 미션은 정보 싸움이다.

외국인 평가단에 관한 정보를 누가, 얼마나 많이 얻어내느냐.

여기에 따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갈리게 될 것이다.

* * *

하루 정도는 개사할 언어를 고르는 데에 시간을 투자해도 괜찮다.

이연은 이렇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갈피가 잘 안 잡히네.’

이연은 방에서 황이전 PD가 그동안 연출했었던 가요 관련 프로그램들을 싹 다 모니터링했다.

경연 프로그램 여부를 떠나서 노래와 연관되어 있다 싶으면 가릴 것 없이 전부 다.

이 중에서 외국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무대를 꾸몄던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국적까지 세세하게 나온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한 비율을 계산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려고 해도 무용지물이었다.

‘하긴. 어떤 할 일 없는 사람이 이런 것까지 다 알아볼 생각을 하겠어?’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손을 뗀 이연은 안경을 벗고서 거실로 나섰다.

이리저리 몸을 돌리면서 장시간 앉아 있던 탓에 굳은 몸을 풀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연과 마찬가지로 다른 멤버들 역시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중간에 이연처럼 잠시 쉬기 위해 거실로 나온 비아와 리샤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르겠어.”

“단서조차 안 보이는데.”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 하지만, 바다에 모든 종류의 자원과 생물들이 다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찾고 찾아보려 했지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비아가 이연의 옆에 털썩 앉으면서 그녀에게 성과를 물었다.

“연이 언니는 뭐 알아낸 거 있어?”

“황 PD님이 예전에 연출했던 프로그램들 돌려봤는데…… 외국인 평가단만 초대했던 특집편이 딱 두 편 있는데, 개개인의 국적까진 못 알아보겠어.”

이연이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 할지라도, 이런 구분까지는 힘들다.

이때, 비아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리샤 언니가 보면 적어도 미국인은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유키까지 동원하면 일본인도 분류 가능할 테고.”

순간 이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언어로 개사하라고 해봤자 사실 선택지가 폭넓은 건 아니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딱 여기서 끝난다.

포르투갈어나 독일어로 바꿔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비아의 말에 강한 설득력을 느낀 이연은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하면서 자신의 태블릿 PC를 가져왔다.

아까 봤던 외국인 특집편 영상을 재생시키고서 리샤를 앞에 앉혔다.

“미국인이 몇 명이나 있는지 구별해 낼 수 있어?”

“잠깐만…… 아, 이 남자, 딱 봐도 미국 사람이네. 옆에 앉은 여자도.”

이연과 비아가 보기에는 다 같은 서양인으로밖에 안 보였지만.

리샤는 달랐다.

같은 인종이라 할지라도 나라별로 특징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렇다 보니 리샤의 눈에는 미국인이 누군지, 정확하게 보일 것이다.

이연은 외국인 멤버들을 데리고 있다는 이점이 크게 없을 거라고 했던 자신의 추측을 정정하기로 했다.

동시에 깨달았다.

글로벌 미션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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