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제62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2)
‘기브 앤 테이크’의 원래 콘셉트는 게스트의 고민을 들어주고 이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것이다.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김운혁이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건넸다.
“혹시 요즘 고민거리 같은 거 있어요? 가수 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이라든지, 그런 거요.”
이전 질문들로 웃음 포인트들은 충분히 뽑아냈고.
이제부터는 진지한 파트로 넘어갈 차례다.
아이돌이니까. 고충이 없을 리가 없다.
이곳 ‘기브 앤 테이크’ 현장을 방문했던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그랬으니.
하니엘도 나름의 고민을 떠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우선 리샤 씨부터.”
“저는……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자꾸 소속사에서 앨범 활동 기간에는 잘 못 먹게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이돌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김운혁과 세라가 리샤의 편을 들어주듯 그녀를 대신해 소속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에이, 소속사가 나빴네!”
“맞아요. 아니, 지금 리샤 씨가 뺄 살이 어디 있다고. 저 허리 보세요. 제 허벅지보다도 얇은 거 같은데요?”
“오? 진짜. 한번 직접 비교해 볼래요?”
김운혁이 이번 기회에 호기심 해결하고 넘어가자는 식으로 말하자, 세라가 지금껏 보여줬던 그 어떤 표정보다도 살벌한 얼굴로 말했다.
“……그만하세요, 선배님.”
섬뜩한 그녀의 말에 김운혁은 헛기침을 하면서 다른 쪽으로 말머리를 틀었다.
“아, 아무튼! 제가 보기엔 리샤 씨, 충분히 많이 먹어도 될 거 같은데. 멤버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러나 그룹 내에서의 여론은 달랐다.
“아니요.”
“리샤는 먹는 거 자중할 필요가 있어요.”
김운혁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의 대답이 돌아왔다.
덕분에 그뿐만 아니라 세라조차도 당황하고 말았다.
“보통은 같은 그룹 멤버 편을 들어주곤 하던데…….”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리샤는 지나칠 정도로 많이 먹거든요.”
이연이 진심을 담아 말하자, 여솜도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세라가 혹시나 해서 리샤에게 물었다.
“햄최몇이에요?”
한때 유행했던 ‘햄버거 최대 몇 개까지 가능?’이라는 줄임말이었다.
햄버거 이야기가 나오자 리샤가 입맛을 다셨다.
“여덟 개까지 먹을 수 있어요. 컨디션 좋은 날에는 열 개도 가능해요.”
“여, 열 개요?”
믿기지가 않았다.
그럴 줄 알고 여솜이 준비한 영상이 있었다.
“이거, 저희 멤버가 찍은 영상인데. 리샤가 햄버거 10개 먹는 장면을 찍은 거예요.”
“우와…….”
“아니, 이렇게 먹는데 살이 안 쪄요?”
리샤는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만큼 운동을 많이 하거든요.”
“이러다가 몸 상할 거 같은데. 소속사에서 그만 먹으라고 말하는 게 이해가 되네요.”
고민 상담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쓴소리를 듣고 말았다.
리샤에 이어서 여솜의 차례.
“여솜 씨는요?”
“저는 세라 선배님처럼 앞으로도 계속 연예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방송이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세라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에 김운혁이 웃음을 삼켰다.
“세라 씨가 선배로서 조언 한번 해주시죠.”
“조언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닌데. 그냥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계속 기회가 찾아오더라고요. 여솜 씨도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응원할게요.”
여솜이 두 손을 모아 ‘감사합니다, 선배님’이라 답했다.
마지막으로 이연의 차례다.
“우리 이연 씨는 고민이 없을 거 같은데.”
김운혁의 추측과 달리, 이연은 아니라는 뜻을 비쳤다.
“저도 고민은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차원을 넘고 여자의 몸으로 들어와서라도 이루고 싶은 고민거리이자 꿈.
“완벽한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고민 내용을 접하자마자 김운혁과 세라의 말문이 턱 막혔다.
완벽한 무대.
그들에게 있어서 이 단어는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운혁이 세라를 가리켰다.
“이건 세라 씨가 답해주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네? 제가요?”
“저는 가수로서 무대에 서본 적이 없으니까요. 세라 씨가 선배 아닙니까.”
“선배님. 이럴 때만 꼭 저를…….”
뭐라 뭐라 더 불평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카메라 앞이라서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세라가 내놓은 대답은 이러했다.
“이연 씨라면 꼭 이루실 수 있을 거예요. 파, 파이팅!”
별로 큰 도움이 안 되는 상담사들이었다.
* * *
무사히 녹화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던 찰나였다.
“매니저님. 잠시만요.”
PD가 급하게 그를 찾았다.
갑작스레 호출을 받은 박도수 매니저는 갸웃하면서 그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짧은 대화를 끝낸 박도수 매니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멤버들이 있는 대기실을 찾았다.
개인 짐 정리를 모두 마친 멤버들이 그를 보자마자 차로 이동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숙소로 가실 거죠?”
“그전에 잠깐만.”
그가 이연을 따로 불렀다.
“연아. PD님이 너한테 할 이야기 있다는데.”
혹시 녹화가 잘못되어서 그런 걸까?
그것 때문에 이연을 따로 보자고 한 건 아니었다.
이연은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PD가 있는 현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곳에는 PD뿐만 아니라 방금 전 하니엘 동갑내기 멤버들과 같이 녹화를 했었던 김운혁, 세라도 서 있었다.
“어, 이연 씨 왔네.”
“이쪽이에요.”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속에서 세 사람이 이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PD가 먼저 이연을 부른 이유에 대해 말했다.
“다음 주 녹화 때 세라 씨가 해외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우게 되어서요. 세라 씨 빈자리를 이연 씨에게 잠깐 맡기고 싶은데, 어떤가요?”
“저한테요?”
“예.”
이연은 PD의 제안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녹화 때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서 크게 웃겼던 적도 없고.
오히려 한없이 진지한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D는 다른 사람이 아닌 이연을 마음에 들어 했다.
“어차피 재미있는 포인트는 운혁 씨가 충분히 뽑아내니까, 오히려 이연 씨가 옆에서 진지함을 담당하면 밸런스가 잘 맞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이런 이유를 떠나서 이연이 출연하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
웹 예능도 마찬가지다.
이연이 출연했던 편수만 유독 조회 수가 높았다.
제작진이 이걸 모를 리 없었다.
흥행 보증 수표 같은 존재인데, 마침 이렇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일찌감치 이연에게 출연 제의를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김운혁도 예전부터 이연과 같이 녹화하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PD가 먼저 이연을 출연시키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PD가 고민하는 이연에게 물었다.
“생각할 시간 좀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래 끌 것 없이 이연은 이 자리에서 곧장 답변을 들려주기로 했다.
“출연할게요. 다음 주라고 하셨죠?”
“네. 날짜하고 시간은 저희가 이연 씨에게 맞추겠습니다. 운혁 씨도, 괜찮죠?”
김운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급하게 정해진 일정이지만, 그래도 이연은 크게 부담이 없었다.
촬영을 직접 해보니까 현장 분위기가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녹화 시간이 짧다는 거였다.
길어봤자 2시간 남짓.
게다가 ‘기브 앤 테이크’는 웹 예능 중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었기 때문에 다시 출연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도중에 이연은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다음 주 게스트는 정해졌나요?”
“예. 이연 씨하고도 연관이 깊은 그룹입니다.”
이연의 머릿속에 커다란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연관이 깊은 그룹이라면.
“설마. 걸파이트에 출연하고 있는 참가팀 중 하나는 아니겠죠?”
PD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꽃피었다.
“정확하시네요. 다음 주에는 원더존 편 찍기로 했습니다.”
원더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연은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이었으면 많이 곤란할 뻔했는데.’
그나마 이연과 친한 그룹이 나온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 * *
지난주에 게스트로 나왔었던 이연이 오늘은 김운혁의 맞은편이 아닌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 김운혁이 하니엘 편에서 선보였던 짧은 상황극을 다시 펼쳤다.
“엇? 직원이 새로 들어왔나?”
대본에 없는 상황극이 펼쳐지자, 이연은 살짝 지끈해진 머릿속을 진정시켰다.
그렇다고 여기서 정색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은 받아주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권이연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손님으로 왔었던 분 같은데.”
“네. 제가 마음에 드셨는지 여기 상담소 대표님께서 저를 알바생으로 잠깐 고용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능숙하게 상황극을 받아낸 이연은 얼른 게스트나 불러달라고 그에게 눈짓을 보냈다.
20분 약간 안 되는 짧은 웹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시간을 오래 끌 수가 없었다.
김운혁은 이연이 원하는 대로 오늘의 게스트를 자리로 모셨다.
“둘, 셋.”
“안녕하세요! 원더존입니다!”
채미와 하영, 그리고 시연. 총 세 명의 원더존 멤버들이 ‘기브 앤 테이크’ 현장을 찾았다.
이연과 같은 댄스 2팀 소속이었던 채미와 하영이 특히나 이연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했다.
김운혁은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를 선보이면서 세 사람에게 물었다.
“세 분이 아는 사이예요?”
“네! 친한 친구예요.”
채미가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첫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안심되고 기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되신 거예요?”
“얼마 전에 걸파이트라는 프로그램에서 같은 프로젝트 그룹으로 무대를 준비한 적이 있었거든요.”
“아! 그 유명한 댄스 2팀!”
“네, 맞아요!”
원더존의 채미와 하영이 오늘의 게스트로 초대받게 된 이유 또한 댄스 2팀의 인기 덕분이었다.
파트 미션 방송이 나가고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댄스 2팀이 펼쳤던 무대 영상 조회 수는 아직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걸파이트를 즐겨 보는 팬들 사이에서도 댄스 2팀으로 따로 그룹 활동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이연의 의도대로 댄스 2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통했다.
김운혁이 이연과 원더존 멤버들을 한 번씩 쭉 훑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나 빼고 다 걸파이트 참가자들이네요?”
“네, 맞아요, 선배님.”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서 걸파이트 이야기 엄청 나오겠는데요?”
원더존 멤버들이 김운혁의 말에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 와중에 이연은 큐시트를 힐긋 내려다봤다.
빼곡하게 적혀 있는 질문들.
대부분은 걸파이트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이것만 봐도 제작진의 의도가 뭔지 이연은 쉽게 알 수 있었다.
“PD님께서도 그걸 바라고 계신 거 같은데요.”
너무나도 솔직한 이연의 멘트 때문인지, PD의 사레들린 기침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