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21화 (221/299)

221화

제61화. 드라마(4)

보컬 1팀의 무대가 끝나고.

뒤이어 랩 1팀이 무대에 올라섰다.

랩 1팀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역시.

“미랑 선배님이시겠지?”

“어? 미랑 선배님. 랩 1팀이었나?”

“응. 저기 봐봐.”

채미가 모니터에 비치는 미랑의 모습을 가리켰다.

미랑의 옆에는 지현이. 그리고 그 옆에는 시우가 서 있었다.

미랑 한 명만으로도 부족해서 아이비제이 트윙클 멤버까지 보이니, 리샤가 한마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시우가 연습 과정에서 엄청 투덜댔던 것도 이해가 가네.”

쟁쟁해도 너무 쟁쟁한 라이벌들이 하필이면 같은 그룹에 포진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시우는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혀 주눅 들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이연은 속으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신했다.

‘시우 정도는 되어야 맨정신으로 저 그룹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

이연의 예상대로, 셋을 제외한 나머지 랩 1팀 팀원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입꼬리는 억지로 위로 말아 올리고 있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이미 결과가 빤히 보이는데. 의욕이 날 리 없었다.

그러나 이건 안일한 태도다.

무대는 끝까지 해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바로 무대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우의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었다.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

시우의 눈빛에 이런 독기가 가득 어려 있었다.

무대가 펼쳐질 때, 시우의 승부욕은 오히려 더욱 활활 타올랐다.

-모두 내 rhythm에 올라타.

drive? 걱정 마.

면허증도 따뒀어, relax.

ride it, baby.

오늘은 내가 안전하게 모실게.

속사포로 이어지는 시우의 랩 향연에 관중들의 어깨는 크게 들썩였다.

시우는 랩에 대한 자신의 실력에 강한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랩으로 1인분조차 못 하는 자신의 모습은 시우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하고, 연습하고. 목이 갈라질 때까지 연습했다.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자신의 파트를 마치고 복귀하는 시우를 향해 같은 라이벌인 미랑과 지현조차도 리스펙하는 모습을 보였다.

관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시우! 연시우! 연시우!”

시우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그녀가 보여준 무대에 열광했다.

반응이 나쁘지 않다.

아니,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이연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좋다.

‘고점 한번 기대해 봐도 좋을 거 같은데?’

막내의 대활약을 직접 목격한 이연은 하니엘이 받을 수 있는 예상 평균 점수를 상향해서 잡기로 했다.

* * *

랩 1팀에 이어 댄스 1팀의 공연이 끝나고. 다시 보컬 2팀의 차례가 되었다.

보컬 2팀은 하니엘 팀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팀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댄스 2팀처럼 보컬 2팀에도 하니엘 멤버가 두 명이나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진운이 좋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하영이 놀라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보컬 2팀에 혜원 선배님 계셨구나.”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인물들 중에서 이연이 가장 경계하는 아이돌, 혜원이 보컬 2팀에 속해 있었다.

혜원을 중심으로 각각 오른쪽, 왼쪽에 여솜과 유키. 그리고 다른 그룹의 멤버들이 일렬로 나란히 섰다.

그녀들의 시선은 혜원에게 향했다.

혜원의 ‘둘, 셋’ 신호에 맞춰서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보컬 2팀.

이 팀의 센터는 혜원이 맡고 있었다.

그래서 단체 인사를 할 때에도 그녀의 신호에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저 중에서 가장 선배니까.’

그리고 보컬 능력도 이미 여러 차례 검증을 받았고.

팀 내에서도 혜원이 센터 겸 리더를 맡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유키는 속으로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마음속 외침이 팀원들 각자에게 닿을 리 없었다.

한편, 혜원이 등장하자 객석 분위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아이비제이에서도 가장 인기 많은 멤버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점수도 높게 받겠지.’

이걸 견제하기 위해 이연은 비밀 병기를 보컬 2팀에 심어뒀다.

바로 유키다.

무대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혜원의 시원스러운 보컬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유키 역시 자신만의 특색 있는 음색을 뽐내면서 관객들에게 어필했다.

무대 위 상황을 지켜보던 미수조차 같은 팀 멤버보다 유키를 칭찬할 정도였다.

“유키 씨, 노래 잘하네. 예전부터 알고 있긴 했었는데. 확실히 라이브로 들었을 때하고는 느낌이 많이 달라.”

유키는 이연이 인정하는 만능 플레이어다.

보컬, 랩, 댄스. 모든 분야에서 고루 실력을 갖춘 멤버였기에 활용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이연은 일부러 그녀를 보컬 쪽으로 보냈다.

유키의 목적은 하나다.

혜원이 받을 수 있는 점수의 최대치를 낮추는 것.

그러기 위해선 유키가 청중평가단의 마음을 어느 정도 자기 쪽으로 끌어와야 했다.

객석 반응을 보아하니, 이연은 이 작전이 잘 통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깜짝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을지.

이건 오늘 녹화가 끝난 다음에 알 수 있을 것이다.

* * *

랩 파트를 거쳐서 마침내 댄스 2팀의 차례가 돌아왔다.

무대에 올라서기 전에 이연은 인지와 팀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가 회의 때 드라마 이야기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녀의 물음에 팀원들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마지막 편이니까 열심히 해보죠.”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엔딩을 선사해야 한다.

팀원들과 함께 결의를 다지면서 위로 올라선 댄스 2팀 팀원들.

관객들의 환호성이 일제히 그녀들에게 쏟아졌다.

이미 앞에서 다섯 개 팀의 공연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팀들이 올라올 때마다 목소리 크기가 더욱 커졌다.

권민준과 그의 친구들 역시 이연의 등장에 더더욱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연 누나! 힘내세요!!!”

“권이연 파이팅-!”

응원전에서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짧게 토크 타임을 가진 뒤에 바로 공연에 돌입했다.

연습하던 대로 각자 위치에 선 팀원들.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기에 마음은 한결 편했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드럼 소리와 함께 팀원들이 동시에 각 방향으로 흩어졌다.

한 명만 타이밍이 어긋나도 금세 눈에 들어오는 군무였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다행히 실수 없이 오프닝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이제 시작이니까.’

레트로 풍의 음악에 맞춰서 멤버들은 준비했던 안무를 펼쳤다.

아크로바틱을 연상케 만드는 고난이도의 동작들도 몇 개 포진되어 있었다.

이런 안무 동작들은 주로 인지와 이연이 맡았다.

한창 신나는 분위기가 연출되던 중간에 갑자기 곡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성 보컬의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인지가 마치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의 표범처럼 자세를 낮추고 무대를 기었다.

색기 넘치는 인지의 표정에 관중들은 헛숨을 삼켰다.

원곡에는 이런 파트가 없었다.

포인트를 주기 위해 일부러 편곡을 가미한 거였다.

이것 또한 이연의 아이디어였다.

그녀의 예상대로, 관중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져갔다.

열 바퀴 연속으로 턴을 하면서 무대 가운데로 온 이연은 어지럼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바로 중심을 잡고 안무 동작을 이어나갔다.

댄스 2팀의 퍼포먼스는 놀랍다를 넘어서 경이롭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댄스 1팀에 비해서 확실히 달랐다.

완벽하게 마무리 동작까지 취하자, 카메라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멤버들의 얼굴을 담아내기 위해 거리를 좁혔다.

자연스럽게 엔딩 포즈를 취하는 멤버들과 달리 이연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나도 모르겠다.’

그냥 예전에 했던 것처럼 짧게 윙크를 선보였다.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아이돌의 숙명이니까.

그렇게 무사히 무대를 마친 팀원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기실로 복귀했다.

“살았다……!”

리샤가 기지개를 켜면서 그동안 어깨에 쌓였던 부담감을 모조리 털어내듯 외쳤다.

다른 팀원들 역시 리샤처럼 이제야 좀 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인지가 이연을 찾더니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인지의 행동에 이연은 크게 당황했지만, 점차 훌쩍이는 선배의 등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잘하셨어요.”

“……응. 고마워, 연아. 네가 없었으면 난 끝까지 못 해냈을 거야.”

엔딩 장면에 감동의 눈물은 여전히 단골손님이었다.

* * *

마지막으로 보컬 3팀과 댄스 3팀의 공연까지 모두 끝났다.

총 여덟 개의 팀이 준비한 무대가 전부 마무리된 뒤.

아이돌들은 미션 팀을 떠나 다시 친정 그룹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여솜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지금 든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들끼리 이렇게 뭉쳐 있으니까 왜 이렇게 어색하지?”

일주일이 그렇게까지 긴 기간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그녀들은 체감상 반년 이상 멤버들과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유키는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는 역시 우리 그룹이 제일 좋아요.”

비아가 옆에서 ‘나도’라고 말하면서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큰 산을 하나 넘었으니.

이제 무대 결과를 확인할 차례다.

민주린이 무대 위에 올라서면서 객석에 있는 참가자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 막 집계가 끝났다고 하니까 빠르게 결과 공개하도록 할게요. 먼저 7위 팀부터 보여주세요!”

7위는 아쉽게도 샤이걸스가 차지하게 되었다.

보컬에 올인한다는 전략을 세웠던 샤이걸스였지만, 오히려 그 전략이 독이 된 셈이었다.

6위는 원더존, 5위는 가을소녀가 이름을 올렸다.

“다음으로 4위 공개하겠습니다. 보여주세요!”

4위는 CDP. 5위와 꽤 격차를 벌린 점수를 선보였다.

“CDP의 경우에는 인지 씨가 점수를 많이 받으셨더라고요.”

인지가 하드캐리를 하긴 했지만, 다른 멤버들의 점수가 그것을 받쳐주지 못했다.

CDP 멤버들 중 몇몇은 눈물을 훔치면서 인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인지는 괜찮다면서 오히려 멤버들을 위로했다.

4위. 물론 아쉬운 성적이지만, 그래도 인지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었다.

“다음, 3위를 만나보시겠습니다.”

3위가 공개된 순간,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민주린이 직접 3위 팀을 언급했다.

“MAYO팀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비제이 트윙클과 하니엘, 이 두 개의 팀이 1위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는 뜻이 된다.

모두의 시선이 두 그룹으로 향했다.

2연속 우승의 하니엘이냐.

아니면 지금까지 꾸준하게 월등한 성적을 보여준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냐.

“1위, 공개해 주세요!”

민주린의 힘찬 외침에 따라 화면이 바뀌었다.

마침내 완성된 순위표를 확인했을 때.

이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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