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20화 (220/299)

220화

제61화. 드라마(3)

2라운드의 마지막 미션 녹화가 있는 당일.

걸파이트에 참가하는 아이돌들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무대를 준비해야 했다.

웬만한 음악방송 프로그램보다도 걸파이트 시청률이 훨씬 잘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준비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오랜만에 청중평가단들 앞에서 선보이는 무대인 만큼 기합을 단단히 넣을 필요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 어떻게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지. 이런 것에 의해서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미션의 경우에는 총 8개의 팀이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었기에 준비 과정이 평소보다도 더 오래 걸렸다.

이연과 리샤는 멤버들과 헤어지기 전에 무대 힘내라는 짧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에는 그룹별로 대기실을 쓰는 게 아니라, 팀별로 흩어져서 대기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하니엘 멤버들은 오늘 하루만 예외적으로 녹화가 진행될 동안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인지 비아가 멤버들과 헤어지기 직전에 손을 모았다.

“파이팅 외치고 가, 언니들.”

“그럴까?”

비아의 제안에 따라 하니엘 멤버들이 각자 손을 뻗었다.

우렁차게 울리는 파이팅 구호.

이 모습에 다른 멤버들도 영향을 받은 모양인지 각기 각오를 다지는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댄스 2팀’이라 적힌 대기실 문을 연 이연과 리샤.

먼저 와 있던 원더존의 채미와 하영이 그녀들을 맞이했다.

“어서 와.”

“밖에서 들으니까 파이팅 소리 엄청 크던데?”

목소리만 들어도 이연과 리샤의 컨디션이 최고조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보다 더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있었다.

댄스 2팀의 센터, 인지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후배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지를 반겼다.

인지가 그녀들을 보면서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저희, 1주일 넘게 같이 한 팀처럼 연습한 사이인데. 너무 깍듯하게 선배님 대하는 것처럼 안 해주셔도 돼요. 편하게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내요.”

“그래도 저희가 어떻게 먼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관계지만, 하니엘이나 원더존처럼 원래부터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가 먼저 그녀들에게 이런 말을 꺼낸 거였다.

“평소에 이연 씨하고 채미 씨가 친하게 지내는 거 볼 때마다 늘 부러웠거든요. 걸파이트 아니더라도 다른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게 될 텐데. 이번 기회에 우리 서로 친해져요. 어때요?”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와중에 리샤가 먼저 용기를 냈다.

“네! 좋아요. 언니도 저희한테 말 놓으세요. 그래야 저희도 더 편하게 언니를 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

리샤가 채미와 하영, 그리고 이연에게 동의를 구했다.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리샤의 말이 맞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인지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그러면 나도 말 편하게 할게.”

인지의 용기 덕분에 대기실 분위기가 한층 화기애애하게 바뀌었다.

뒤늦게 대기실을 방문한 미수는 바뀐 분위기를 바로 감지해 냈다.

“서로 말 편하게 하기로 했어요?”

“네, 선배님.”

“뭐야. 인지한테는 언니라고 하면서. 나도 그냥 언니라고 불러줘요. 어느 사람한테는 선배고 어느 사람한테는 언니로 부르면 복잡하기만 하고. 기왕이면 통일하는 게 좋잖아요.”

미수도 이 판에 슬쩍 끼고 싶은 모양인지 발을 걸쳤다.

아이러니하게 팀이 결성되고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나서야 가까워지게 된 댄스 2팀 멤버들.

그래도 이연은 이런 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팀원 간에 불화가 생기는 것보단 지금의 상황이 당연히 낫기 때문이었다.

여덟 개 팀 모두가 다 댄스 2팀처럼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건 아니었다.

비아가 속한 댄스 3팀의 경우에는 CDP와 가을소녀 팀 멤버들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한 탓에 연습 분위기가 굉장히 흉흉했다.

덕분에 비아는 댄스 3팀 대기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는 모습도 보였다.

팀 분위기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한다면, 비아의 반응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 팀도 순탄치만은 않았지.’

이연의 입가에 쓴 미소가 잠시 그려졌다.

혜원의 계략에 의해서 초기에는 인지를 중심으로 크게 흔들릴 뻔도 했지만.

이연이 각본을 맡은 드라마 덕분에 댄스 2팀은 그 어느 팀보다도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기세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 드라마의 끝이 과연 해피엔딩일지, 아니면 배드엔딩일지.

이건 잠시 후에 밝혀지게 될 것이다.

* * *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댄스 2팀.

같은 동작이라 할지라도 안무 연습실과 실전 무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대기실로 복귀하자마자 미수가 팀원들을 불러 모아서 리허설 때 부족했던 점들을 피드백해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대가 약간 좁으니까. 서로 위치 변경할 때 부딪치지 않도록 신경 써줘. 특히 채미하고 리샤, 아까 B파트 시작할 때 둘이 너무 가깝더라. 본 무대 시작할 때에는 서로 거리 유지해 줘.”

“네, 선배님!”

“그리고 인지는 너무 분위기 타려고 하지 말고. 무대에 서면 막 흥이 나는 건 나도 알지만, 이건 경연 무대니까. 끝까지 냉정하게. 알았지?”

“네!”

비록 서로 다른 팀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한배를 탄 입장이다.

이 배가 무사히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모든 멤버들이 협동해서 힘을 내야 한다.

그렇게 댄스 2팀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을 할 때.

스태프가 대기실에 와서 30분 뒤에 촬영 시작될 거라고 미리 이야기를 흘려줬다.

핫팩 하나를 양손에 꼭 쥔 채미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심장 떨려 죽을 거 같아.”

원더존의 무대보다 이번 무대가 더 떨리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낯선 팀원들과 같이 만드는 무대니까. 그래서 평소보다 더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연이 채미의 양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서 그녀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연습 때 충분히 잘했으니까. 하던 대로만 하면 돼.”

“그렇겠지? 응?”

“어. 내가 보장할게.”

이연은 불안해하는 멤버들 대신 이렇게 확신을 준다.

팀원들을 다독이고 안심시켜 주는 역할은 늘 이연이 맡곤 했었다.

하니엘이 아닌 다른 팀에서도 그녀의 이런 면모는 여전히 빛났다.

미수가 이연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좋은 리더네. 이연이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혜원 언니 보는 거 같아.”

“저는 다른 선배님들이 오히려 혜원 선배님을 자주 챙겨주시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혜원 언니가 평소에는 덤벙거려도, 무대 오르기 전만 되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거든.”

무대 위뿐만이 아니라 대기실에서도 혜원은 리더로서 착실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비제이 멤버들 모두가 혜원을 믿고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연은 아직 혜원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의 존재가 신기하게 느껴지곤 했다.

언젠가는 이연이 쓰러뜨려야 할 강적이기도 하니까.

마침 여솜과 유키가 혜원과 같은 보컬 2팀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번에 파트 미션 끝나면, 여솜이하고 유키한테 정보 얻은 거 좀 공유해 달라고 해야겠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이연이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 * *

무대를 펼칠 순서는 보컬 1팀을 시작으로 랩 1팀, 댄스 1팀. 그리고 다시 보컬 2팀부터. 이런 식으로 각 파트별로 로테이션이 돌아갈 예정이다.

랩 파트의 경우에는 2팀까지밖에 없기 때문에 보컬 3팀이 끝나면 댄스 3팀이 바로 무대에 올라서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차례씩 순서를 마치면, 오늘의 녹화가 모두 종료된다.

민주린이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 특별히 선정된 청중평가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모니터를 통해 무대 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리샤가 ‘어?’ 하는 소리를 냈다.

“이연아. 저기 저쪽에 앉아 있는 사람, 네 남동생 아니야?”

카메라가 객석을 비출 때, 리샤가 구석 쪽을 가리키면서 이연에게 물었다.

응원 도구들을 들고서 주형운, 양인박과 함께 들뜬 표정으로 서 있는 권민준의 모습이 보였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이거 당첨됐다는 말을 듣긴 했었어.”

“네 동생하고 동생 친구들, 운 엄청 좋네. SSS 때에도 거의 신청만 하면 당첨이지 않았어?”

“복권에 쓸 운을 여기다가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굳이 안 와도 되는데.

이연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리샤는 그녀와 정반대였다.

“왜. 가족들이 응원 와주면 좋잖아. 나는 부럽기만 한데.”

리샤는 가족들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무대를 보러 올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늘 이렇게 멤버들의 가족들이 응원을 올 때마다 부러움을 드러내곤 했다.

이연은 씁쓸해하는 리샤의 손을 잡아줬다.

“못 오시더라도 응원하는 마음은 다 똑같을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해보자.”

“고마워, 연아. 근데 너, 많이 달라졌네.”

“내가?”

“이거 말이야, 이거.”

리샤가 자신의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이연의 왼손을 가리켰다.

“예전에 손잡는 거 엄청 낯설어했잖아.”

근데 요즘은 이연이 먼저 스킨십을 시도할 때가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냥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들이었다.

“이런 건 안 하는 게 낫겠지?”

“아니, 난 오히려 좋으니까 마구마구 해줘.”

리샤의 말에 이연은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그사이, 무대는 빠르게 준비되었다.

민주린이 청중평가단을 향해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를 팀을 소개했다.

-먼저 보컬 1팀부터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이전보다 무대에 오를 팀이 더 많아지다 보니까 녹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서는 무대 1팀.

이 팀에서 주목해 봐야 할 사람은 샤이걸스 센터, 예희라고 할 수 있었다.

‘샤이걸스 소속이니까. 보컬은 믿고 들어도 되겠지.’

샤이걸스 멤버들 한 명 한 명이 다 보컬 특화라도 봐도 무방했다.

대중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그녀들의 보컬 능력은 아이돌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국내 최상위급이라고 평가할 정도니까.

이연의 예상대로, 예희의 주도하에 보컬 1팀의 안정적인 무대가 펼쳐졌다.

많이 긴장하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예희는 안정적인 고음을 뽐내면서 사람들의 귀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미수도 예희의 보컬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희 씨가 참 잘해. 언제 봐도 탐나는 능력이야.”

아이비제이 메인 보컬조차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천상의 목소리로 파트 미션의 첫 포문을 열어준 예희와 보컬 1팀.

그녀들의 무대를 본 이연의 소감은 이러했다.

‘보컬 1팀 쪽 점수는 샤이걸스 쪽으로 몰리겠네.’

예희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는 팀원이 없었다.

듣는 사람들은 너무 좋은 무대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같은 팀원들은 아니겠지.’

동료면서 동시에 라이벌이니까.

물론 이건 댄스 2팀도 마찬가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