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11화 (211/299)

211화

제58화. 리더 모임(3)

스케줄을 마치자마자 이연은 리더 미션을 연습하기 위해 아이비제이 트윙클 소속사를 찾았다.

국내에서 가장 잘나간다고 손꼽히는 아이비제이가 속한 엔터테인먼트사라 그런지, 벡스가 속한 소속사 못지않은 규모와 시설을 완비했다.

이곳을 찾은 모두가 다 감탄을 삼켰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여길 또 오게 될 줄은 몰랐네.”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에 미랑은 남몰래 작은 한숨을 삼켰다.

바로 근처에 있던 이연은 다른 리더들과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는 미랑의 모습이 이해되었다.

미랑의 과거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예전에 이 안무 연습실에서 연습하셨어요?”

“어. 자주는 아니었지만, 여기도 꽤 사용했었어. 그때하고 거의 안 변했네.”

익숙한 인테리어 때문인지 일부러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옛 기억이 절로 고개를 추켜올렸다.

미랑이 추억 아닌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다른 걸 그룹 리더들은 스트레칭을 하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원래는 회의 시간을 가진 다음에 선곡을 뭐로 할지부터 정하는 게 순서인데.

리더 미션은 달랐다.

이번 미션을 위해서 특별히 심사 위원을 맡기로 한 오용하 프로듀서가 직접 그녀들에게 곡을 제공했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오리지널곡.

이곳에 오기 전에 각 그룹의 리더들은 오용하 프로듀서한테서 전달받은 곡을 여러 차례 듣고 왔다.

노래가 꽤 좋았다.

경연 프로그램에 1회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만큼 퀄리티가 상당했다.

오 프로듀서가 아껴뒀던 비장의 무기를 선물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안무도 얼추 시안이 나왔다.

덕분에 그녀들은 기나긴 회의 단계는 건너뛰고, 바로 실전으로 돌입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은 편했다.

문제가 있다면.

“저희, 아직 파트 분할 안 했는데…….”

앤서가 카메라가 돌기 전에 샤이걸스 리더답게 소심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오리지널곡이 있고. 안무도 시안이 나왔고. 이런 상태에서 바로 연습에 돌입하기에는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

보컬 파트에 따라서 안무 포지션을 나눠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혜원이 직접 설명했다.

“조금 있다가 촬영 시작하면, 선배님께서 오셔서 설명하실 거라고 했으니까 기다리면 돼.”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어떤 설명이 있을지. 일단은 얌전히 들어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습실에서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낯선 연습실에 일렬로 서서 민주린을 기다리고 있던 리더들.

그녀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민주린은 짧은 말로 소감을 읊었다.

“굉장히 낯선 모습이네요. 매번 그룹원들끼리 모여 있는 장면만 보다가, 이렇게 리더들만 따로 모아서 같은 팀을 이루게 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분들은 어때요?”

말해 무엇 할까.

그녀들 또한 민주린보다 더 낯설면 낯설었지, 덜한 느낌은 아니었다.

“오용하 프로듀서님이 주신 곡은 다들 들으셨을 테니까. 오늘은 파트 분배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각 그룹의 리더들이 모인 자리다.

그렇다 보니 파트 분배에 있어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룹별로 파트를 나눈다면 리더가 알아서 정리를 해준다거나. 아니면 팀원들끼리 상의해서 정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 팀이니까.

하지만 이번 리더 그룹은 한 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서로 라이벌 관계이기도 한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서로가 눈에 가장 많이 띌 수 있는 파트를 욕심낼 게 뻔하다.

그녀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길 수도 있지만, 선배의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인해 후배들이 제대로 의견을 표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린이 중심 역할을 맡기 위해 이렇게 파트 분배부터 참여하기로 했다.

리더들도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민주린이 나서준다면 교통정리가 잘될 테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각자 자리를 잡고서 가사지와 악보가 적힌 종이를 넘겨받았다.

“한번 보시고, 여러분들이 맡고 싶은 파트별로 지원받아 볼게요.”

가장 치열한 부분은 역시 메인보컬 파트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다 메인보컬을 노리진 않을 것이다.

미랑 같은 경우가 이에 속한다.

MAYO에서 래퍼 포지션을 맡고 있기 때문에 굳이 메인보컬에 욕심을 낼 생각은 없었다.

괜히 자신 있게 나섰다가 삑사리라도 내면. 그러면 오히려 메인보컬을 맡은 것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설지. 분량 욕심보다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연도 그럴 생각이었다.

리더들 중에서 메인보컬 포지션까지 맡고 있는 사람은 다 합해서 셋.

여기에 이연은 혜원까지 더할 생각이었기에 넷으로 보고 있었다.

원래 아이비제이 트윙클에서 메인보컬을 맡는 멤버는 혜원이 아닌 미수다.

그러나 혜원의 보컬 능력은 미수와 거의 비등하다는 평가가 자자했기에 그녀도 충분히 메인보컬 자리를 노릴 수 있다고 예상된다.

그래서 이연은 아예 계산하기 편하게 혜원까지 경쟁자 라인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메인 파트에 지원할지 어떨지는 봐야 알겠지만.’

그녀가 요주의 인물이라는 건 변함없었다.

“먼저 랩 파트부터 정해볼까요?”

민주린도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걸 그룹 멤버 출신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식으로 조율해 가면서 파트 분배를 할지 잘 아는 모습이었다.

가장 정하기 쉬운 랩 파트가 첫 번째 타자로 등판했다.

“저요!”

미랑이 지원에 나섰다.

사실 이 부분은 어려울 게 없었다.

왜냐하면 랩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미랑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랩 파트는 미랑 씨로 가죠.”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모두 이견이 없었다.

이다음은 서브보컬들의 차례다.

같은 서브보컬 포지션이라 할지라도 인기 있는 파트가 있고 인기 없는 파트가 있다.

초영과 리브, 앤서, 그리고 윤채미. 네 사람은 알아서 서브보컬 포지션으로 빠졌다.

어설프게 메인 파트에 도전했다가 피를 보느니, 차라리 차순위를 노리겠다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가장 비중이 없는 파트와, 그리고 가장 비중이 높은 메인보컬 파트. 이렇게 두 가지만 남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은 이연과 혜원.

두 사람이었다.

미랑이 이연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배님, 독하네’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연과 혜원의 대결에 황 PD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시청률 각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태프들도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거 같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민주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두 분 다 메인보컬 파트에 지원하시는 건가요?”

꾸준히 원탑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그룹 계의 절대강자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샛별의 대결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연과 혜원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그 순간.

혜원의 입꼬리가 위로 향했다.

의미심장한 그녀의 미소에 이연은 속으로 의문부호를 띄웠다.

왜 웃는 거지?

그녀의 미소 뒤에는 이런 의도가 감춰져 있었다.

“아니요. 저는 남은 서브 파트로 가려고요.”

혜원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이연은 분명 혜원과 자신이 메인보컬 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파트 전쟁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혜원도 꽤나 자존심이 높은 성격이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민주린이 확인차 혜원에게 다시 물었다.

“메인 파트는 지원 안 하실 건가요?”

“네. 물론 욕심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포기하려고요.”

“혹시 이유가 뭔가요?”

민주린도 이연 못지않게 혜원이 대결을 왜 피하기로 했는지가 궁금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곡의 완성도를 생각한다면 이연 씨처럼 고음에서도 안정적인 음색을 뽐낼 수 있는 보컬이 필요하다고 봐서요. 게다가 라이브로 무대를 소화해야 하니까요. 그러면 이연 씨가 메인 파트를 맞는 게 맞죠.”

개인 욕심을 앞세우기 이전에 무대 전체의 평가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 혜원은 일부러 이연에게 양보 아닌 양보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연이 메인 보컬 자리를 손쉽게 차지하긴 했지만.

‘기분이 굉장히 찝찝한데.’

영 기쁘지만은 않았다.

* * *

생각보다 훨씬 빨리 파트가 정해졌다.

덕분에 그녀들은 바로 연습에 돌입할 수 있었다.

먼저 보컬 파트부터.

미랑의 랩 이후에 이연의 후렴구 파트가 이어졌다.

“애써 지우려 해도, 너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아~”

혜원이 말했던 대로, 이연의 보컬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음이 꽤 높은데도 불구하고 시원스럽게 위로 잘 뻗어가는 그녀의 목소리에 연습생들은 소리 없는 감탄을 흘렸다.

보컬 담당 트레이너도 크게 놀랐다.

“처음 불러본 것치고는 굉장히 잘 부르네요. 대신에 바이브는 너무 과하게 안 넣으면 좋겠어요. 끝에만 살짝, 여운을 남긴다는 느낌으로만 넣어주세요. 그렇게만 하면 완벽할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랑 씨는 좀 더 파워풀하게 내뱉는다는 느낌으로. 뭔지 아시죠?”

미랑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답했다.

“네. 제 전공이에요.”

“좋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나머지 파트도 들어보면서 피드백 들어갈게요.”

각 그룹의 리더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이 맡은 파트를 열창했다.

다들 수준급의 실력들을 가졌다 보니 보컬 트레이너 입장에선 크게 지적할 만한 문제점이 없었다.

보컬 연습이 끝나고 바로 안무 연습에 돌입했다.

원래는 레코딩이 끝나고, 그 노래를 바탕으로 안무 연습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만.

바로 다음 주에 녹화를 해야 했기에 최대한 당길 수 있는 건 다 당겨서 진행해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보컬과 안무, 두 개를 동시에 연습하게 되었다.

댄스 트레이너가 나와서 리더들에게 짧은 브리핑을 펼쳤다.

“오늘은 구분 동작만 몇 개 해보고, 다음부터 동작들을 쭉 이어서 연습해 보겠습니다. 먼저 댄서들의 시범부터 보고 넘어갈게요.”

댄서들이 각 리더의 이름이 적힌 옷을 입고 등장했다.

레코딩 전이기 때문에 시범은 가이드곡으로 대체되었다.

흥겨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면서 댄서들의 안무도 갈수록 격해졌다.

이미 영상으로 시안을 보긴 했지만.

‘직접 보니까 난이도가 꽤 있네.’

이연은 몰래 다른 리더들의 표정을 살폈다.

바로 옆에 앉은 윤채미는 ‘난 죽었다’ 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댄스 장르에 자신이 없는 샤이걸스, 앤서도 윤채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겁먹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안무를 눈에 익혀두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3분이 조금 넘는 무대가 모두 끝났다.

댄서 트레이너가 자신들과 같이 활동하는 댄서들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앉아 있는 리더들에게 말했다.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어때요. 잘 따라 할 수 있을 거 같나요?”

그룹의 리더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모아 동시에 외쳤다.

“아니요!”

이연 혼자서 ‘네’라고 말하려다가 중간에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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