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제58화. 리더 모임(1)
2집 앨범 발매를 통해 계속해서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하니엘.
며칠 동안 해남에 가서 시골 식당 촬영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이연과 여솜은 그 어느 방송 스케줄 때보다도 소감이 남달랐다.
“어서 와, 얘들아!”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니?”
“어이구, 울 애기들. 고생했어!”
멤버들이 두 사람의 귀환을 격하게 반겨줬다.
지난번에 이연과 시우가 군대 예능에 출연했다가 복귀했을 때에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보통은 녹화라고 하면 몇 시간이면 끝나는데, 이렇게 아예 기간을 잡고 오래 촬영하는 스케줄은 드물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은 이연과 여솜의 복귀 사실을 내 일처럼 크게 기뻐했다.
비아가 언니들의 복귀에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물었다.
“녹화는 어땠어?”
“별일 없이 잘 끝났어. 연이가 엄청 활약했지.”
“역시. 믿고 보는 우리 리더님!”
못 본 사이에 권이연교 신도가 한 명 더 늘어난 거 같았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려고 준비하려던 찰나에, 박도수 매니저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이연을 불러 세웠다.
“연아. 이것만 듣고 가. 걸파이트 참가팀 리더들만 따로 모여서 녹화하기로 한 거 있었잖아. 그거, 이번 주 목요일에 하기로 했으니까 알아둬.”
“이번 주 목요일이면…… 이틀 후네요?”
“어. 많이 피곤할 텐데, 미안해.”
“괜찮아요.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걸파이트 제작진이 자체적으로 특별 편성한 특집편, 이름하여 ‘리더들의 수다’ 녹화가 목요일에 진행되기로 확정되었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걸파이트 시즌 2가 이전 시즌보다도 더한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하면서 급하게 코너를 계획하게 되었다.
덕분에 황이전 PD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느라 바빴다.
박도수 매니저가 현관 앞에 벗어뒀던 자신의 신발을 다시 찾으면서 말했다.
“그럼 연이하고 여솜이는 편히 쉬고. 리샤하고 우미, 시우는 조금 있다가 저녁때 내가 데리러 올 테니까 준비해 둬. 알았지?”
“네!”
이연만 바쁜 게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도 열심히 앨범 홍보를 위해서 두 발로 뛰는 중이었다.
정신없이 차 있는 하니엘의 스케줄.
이연은 빼곡한 스케줄표를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한가한 것보단 바쁜 게 좋지.’
당연한 말이었다.
* * *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에게 미리 이야기했던 ‘리더들의 수다’ 촬영일이 다가왔다.
하니엘에서는 이연 혼자만 출연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넓은 차량을 혼자서 독점하게 되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좌회전 신호에 따라 운전대를 돌리면서 말했다.
“아까 그쪽 작가한테 슬쩍 들었는데. 리더들의 수다 녹화할 때 2라운드 마지막 미션에 관한 힌트가 슬쩍 나올 수도 있대.”
“벌써요?”
아직 2라운드 2차 미션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 3차 미션에 대한 힌트를 언급한다고 하니까 약간의 혼란이 생겼다.
“2라운드는 1라운드 때와는 다르게 엄청 호화스럽게 준비하고 있나 봐.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아서 그런지 투자도 많이 받은 거 같고. 황이전 PD 성격이 원래 그래. 많이 받으면, 그만큼 자기 프로그램에 많이 투자하는 사람이거든. 예전부터 그랬어.”
출연자 입장에선 좋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과연 제작진이 이번에는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
이연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없었다.
‘오늘 녹화 진행하다 보면 뭔가 알아차리겠지.’
박도수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이연은 먼저 도착한 미랑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머. 왔어?”
먼저 메이크업을 받은 미랑이 근처에 잠시 놓아둔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집어 들면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면서 봤는데. 아직 저희 말고는 도착 안 한 거 같더라고요. 선배님은 언제 오신 거예요?”
“나? 한…… 30분 전쯤일걸?”
“엄청 일찍 오셨네요.”
“앞에 녹화가 하나 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숙소 들어갔다 나오기에는 애매하고. 그래서 그냥 일찍 온 거야. 맞다. 시골 식당 촬영하고 왔다면서?”
“네, 맞아요.”
미랑의 눈빛에 부러움이 한가득 담겼다.
“좋겠다. 나도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요즘 힐링이 필요하신가 보네요.”
“그렇지, 뭐.”
치열한 가요계 속에서 경쟁, 경쟁, 그리고 또 경쟁하며 살다 보면 지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랑은 가끔 도심을 벗어나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물론 이연은 쉬러 갔다 온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촬영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미랑이 생각하는 휴식의 종류와 많이 달랐다.
그래도 미랑은 이연이 마냥 부러웠다.
“활동 기간 끝나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봐.”
“그것도 나쁘지 않죠.”
“언니 손 잡고 같이 갈래?”
갑작스러운 여행 제안에 이연은 머쓱한 반응을 보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때 가면 갑자기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미랑이 짧게 혀를 차면서 아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쉽게 안 넘어오네, 우리 이연이.”
두 사람이 수다를 떠는 사이, 또 다른 그룹의 리더가 그녀들이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샤이걸스 리더, 앤서였다.
앤서를 보자마자 미랑이 박수를 보냈다.
“1위님 오셨네.”
“그,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선배님. 부담스러워요.”
“뭐 어때. 쟁쟁한 라이벌들 다 꺾고 1등 한 건데. 당당해져도 돼.”
그러나 샤이걸스 멤버들은 팀명답게 미랑처럼 외향적인 성격들은 아니었다.
아직 샤이걸스가 1위를 차지한 분량이 방송에 나가진 않았다.
그랬기에 출연진이나 제작진 모두가 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도록 입조심에 유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은 바로 샤이걸스 멤버들이었다.
자신들이 1위를 했는데. 주변에 알리지 못하는 그 심정은 여러모로 힘들다.
“그날 소속사에서 파티 열어줬다면서?”
미랑이 들은 소문은 사실이었다.
“네, 맞아요. 대표님이 저희보다 더 기뻐하셨어요. 그날 먹고 싶은 거 다 사줄 테니까 말만 하라면서 저희를 계속 보채는데, 오히려 그게 더 부담스러워서 멤버들끼리 눈치 살피고 그랬어요.”
“어머, 눈치 볼 게 뭐 있니? 잘못한 것도 아니고 잘한 건데. 아이비제이, 하니엘, MAYO. 이 팀들 꺾고 1위 한 거면 파티 할 만하지. 안 그러니, 연아?”
이연은 말로 하기보다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형태로 미랑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2라운드 첫 베네핏 권한을 얻게 된 샤이걸스.
그러나 이번에도 여전히 어떤 베네핏이 주어지는 건지,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녹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2라운드 마지막 미션에 대한 힌트가 주어질 거라고 하니까. 베네핏에 관련된 내용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앤서의 뒤를 이어서 리브, 초영, 윤채미, 마지막으로 혜원까지.
모든 참가팀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대기실에 일곱 명의 아이돌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공기 자체가 화사해지는 그런 느낌이 가득했다.
그러나 마냥 화기애애한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가볍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지만, 속에는 견제라는 단어가 몰래 내포되어 있었다.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결과물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다 보니 서로가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여자들의 세계는 치열하네.’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들어서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해 보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을 무렵, 황이전 PD가 직접 그녀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을 찾았다.
“오늘 녹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간단하게 브리핑하겠습니다. 민주린 씨하고 특별 MC, 이렇게 둘이서 토크쇼 형태로 진행할 건데요. 사전 질문 이외에 다른 질문이 있을 수 있으니까 대답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해주시면 됩니다. 굳이 무리해서 안 해도 되는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PD님! 저, 질문 있습니다!”
윤채미가 기세 좋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마치 관등성명을 외치는 이등병의 모습 같았다.
“네, 채미 씨.”
“특별 MC라고 하면, 어느 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대본에도 ‘특별 MC’라고만 적혀 있을 뿐. 이름은 딱히 나와 있지 않았다.
“그건 녹화 시작하고 난 다음에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황이전 PD는 출연자들이 정말로 놀라는 장면을 보고 싶었기에 가끔 이런 서프라이즈 방식의 연출을 계획할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황이전 PD한테 계속 MC의 정체를 알려달라고 보챌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얌전히 수긍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10분 뒤에 바로 녹화 시작할 테니까 준비해 주세요.”
“네-!”
리더들의 기운찬 대답이 이어졌다.
* * *
걸파이트 시즌 2 특별편, 리더들의 수다 녹화는 그녀들에게 익숙한 걸파이트 스튜디오 내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뽐내는 스튜디오 덕분에 각 그룹의 리더들은 주변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특별편 녹화에 맞춰서 스튜디오를 약간 바꾸셨나 본데?”
“그러게요.”
“신경 많이 쓰셨네.”
그냥 기존에 사용하던 스튜디오를 그대로 놔둬도 상관없었을 텐데.
그만큼 제작진이 걸파이트 촬영에 진심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각 그룹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 의자를 찾아 앉았다.
이연의 바로 옆에는 공교롭게도 아이비제이 트윙클, 혜원이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네요. 잘 부탁해요, 이연 씨.”
“네, 선배님. 저도 녹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보통은 제일 선배 그룹과 제일 막내 그룹을 이렇게 옆에 붙여놓진 않는다.
제작진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이는 자리 배치였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걸파이트 시즌 2의 메인 MC인 민주린이 먼저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민주린과 마찬가지로 후배들 역시 벌떡 일어서면서 대선배를 향해 예를 표했다.
“2라운드 1차 미션 끝나고 처음 보는 거죠?”
“네, 선배님.”
“오늘은 본 방송과 다르게 약간 외전 느낌으로 가볍게 진행할 거니까 너무 긴장들 하지 마시고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셨죠?”
“네!”
알겠다는 대답과 달리, 그녀들의 목소리엔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편하게 하라고 해도 결국 녹화는 녹화다.
카메라 앞에선 데뷔 1년 차든 10년 차든. 긴장하는 건 똑같을 수밖에 없다.
“오늘 저하고 같이 토크를 진행할 특별 MC부터 소개할까 하는데요. 여러분들에게도 많이 익숙하신 분일 거예요. 나와주세요!”
민주린의 외침에 따라 또 한 명의 여성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SSS 전문가 평가 미션을 포함해서 걸파이트 시즌 2에 두 차례 심사 위원을 맡았던 여성 솔로 가수의 전설.
이븐이라는 별칭으로 활동 중인 전이은의 등장에 걸 그룹 리더들은 허리가 절로 숙여졌다.
아무래도 오늘 녹화는 민주린이 말했던 것과 다르게 편하게는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