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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06화 (206/299)

206화

제57화. 시골 식당(3)

이연은 방송 경력이 긴 편이 아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웬만한 방송인들이 겪었을 법한 스케줄을 소화한 덕분에 추 PD의 간단한 의도 정도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왕 말이 나온 거.

추 PD가 조금 전, 출연진에게 따스한 밥상을 대접했던 할머니를 다시 모셨다.

“이분이 이번에 건강이 좀 안 좋으셔서, 한 2주 정도 식당 문을 닫을 예정이시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촬영 장소로 잠깐 빌리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어디 아프신 거예요?”

여솜의 얼굴이 걱정으로 가득 물들었다.

할머니가 별거 아니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냥 자식들이 호들갑 떠는 거여. 나, 아직 멀쩡한데. 자꾸만 쉬라고 하도 잔소리를 하니까 억지로 쉬기로 했지.”

고령의 나이니까. 아무래도 자식들 입장에선 어머니가 조금만 아프다 하더라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연자들이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동안, 이연은 할머니의 주변에 맴도는 기의 흐름에 주목했다.

“할머니.”

침묵을 지키던 이연이 할머니에게 넌지시 말했다.

“병원 가시면 갑상선 쪽 검사 꼭 받아보세요.”

“갑상선은 왜?”

“제가 아는 증상들하고 비슷한 게 보여서요.”

물론 거짓말이다.

이연은 아주 약간의 의학적 지식만 있을 뿐, 눈으로 보자마자 갑상선 쪽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바로 지적할 만큼 뛰어난 안목은 없다.

대신에 마법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연이 의심되는 신체 부위를 알려줬으니까 구체적인 병명과 치료 방법은 의사가 알아서 진행해 줄 것이다.

손녀뻘 되는 귀여운 아가씨가 말해주니까, 할머니도 가급적이면 귀담아들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와 헤어지기 직전에 출연자들은 소화시킬 틈도 없이 가게 업무 인수인계받기에 나섰다.

기본적인 것들을 전부 전달받은 뒤에 다 같이 할머니를 배웅했다.

다시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정우재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뭐부터 하지?”

당연하게도 그는 식당을 직접 운영해 본 경험 같은 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쭉 배우로 활동했으니까.

다른 멤버들도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 중에서 유독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장 선배인 우승현이었다.

“우선은 메뉴부터 정하고, 주방 일하고 홀 담당 나누고. 그렇게 하자. 식당 일은 분업해서 진행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선배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여기 가게 사장님 같으세요.”

이은솔은 웃자고 가볍게 던져본 말이었지만, 우승현의 대답은 진지했다.

“가게 사장은 아니더라도, 식당 일을 오래 도운 적은 있었거든. 우리 엄마가 뼈해장국 가게 사장님이셨어.”

“엇, 진짜요?”

그냥 던져본 말인데.

설마 스트라이크존에 꽂힐 줄은 몰랐다.

“나 한창 배우 일 없을 때에는 엄마 가게에 가서 일하고 그랬어. 돈도 못 버는데.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덜 눈치 보이지.”

지금이야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만큼 인기 있는 여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도 여타 다른 배우들처럼 무명의 아픔을 겪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과 경험이 설마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은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선배님, 그럼 요리도 잘하시겠네요?”

“나름? 너희는 어때?”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과 자신 없는 사람부터 구분 짓기로 했다.

여솜과 이연, 그리고 이은솔. 셋 다 할 줄 안다는 쪽에 섰다.

유일하게 정우재만 요리와 친분을 쌓지 못했다.

“그러면 우재는 고정으로 홀 담당 들어가고. 나하고 은솔이, 그리고 여솜이. 이렇게 셋이 주방 맡자. 연이는 우재 혼자 홀 담당하려면 많이 힘들 테니까 그쪽으로 빠지고. 아까 연이가 보니까 어르신들한테 잘하는 느낌이 들어서 주방보다는 홀에 있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어때?”

네 사람은 우승현의 의견에 바로 찬성했다.

차라리 이렇게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이 한 명 있는 게 훨씬 났다.

그래서 이연은 일부러 대선배의 의견을 경청했다.

‘홀 담당이면…….’

곳곳에 보이는 낡은 흔적들.

그래도 할머니가 혼자서 나름 고군분투하며 가게를 관리한 거 같긴 하지만.

이연이 보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역시.

‘식당 주변에 있는 벌레들은 무조건 없애야겠네.’

아예 씨를 말려 버릴 생각이다.

* * *

청소하는 척하면서 이연은 근처에 해충 박멸 마법진들을 조금씩 그려뒀다.

지금의 가족들과 예전에 살던 곳에서 벌레 때문에 한동안 고역을 치렀던 이연.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오래된 구축 건물도 그런데.

시골은 얼마나 더 심할까.

바로 옆에 있는 풀숲만 돌아다녀도 곤충들의 사교 모임을 바로 직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놈들이 가게 근처엔 얼씬도 못 하도록 철저하게 마법진을 그려뒀다.

잠시 밖으로 나온 이은솔이 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 뭔가를 하고 있는 이연에게 관심을 보였다.

“연아. 뭐 하고 있어?”

“근처 좀 둘러보고 있었어요. 선배님은요?”

“나? 선배님이 장 볼 거 적어주겠다고 하셔서. 그거 기다리는 중이야.”

“혼자서 가시는 거예요?”

“뭐, 그렇지 않을까? 다들 정신없는 거 같은데.”

주방 쪽이든 홀이든. 각자 맡은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이연이 굽혔던 무릎을 다시 펴면서 말했다.

“그럼 저하고 같이 가요.”

“일 다 끝났어?”

“네.”

끝내도 한참 전에 끝냈다.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이연은 좀 더 촘촘하게 마법진을 새겨 넣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어서, 다음은 뭘 해야 되나 고민하던 찰나에 이은솔이 장보기라는 새로운 미션을 가지고 등장했다.

이연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은솔 입장에서도 혼자보다는 이연과 같이 가는 게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그럼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봐. 선배님한테 사 올 거 뭔지 확인만 하고 올 테니까.”

“네, 선배님.”

이은솔이 자리를 비운 동안, 이연은 스태프들에게 이은솔과 같이 시내까지 나가서 장 보고 오겠다는 말을 전했다.

추 PD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분만 나가시는 거, 맞죠?”

“네.”

뭐랄까.

묘하게 기뻐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추 PD도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람이다 보니 이연과 이은솔 커플링이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었던 사실을 알고 있다.

권이연과 이은솔이 나오는 투 샷을 최대한 카메라에 담는 게 목표였는데.

그 목표가 벌써부터 성사되어서 그런지 표정이 밝을 수밖에 없었다.

운전은 이번에도 이은솔이 맡았다.

정우재 대신에 보조석에 자리를 잡은 이연은 안전벨트를 매기 전에 잠시 몸을 뒤척였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한 거라도 있어?”

“머리카락이 낀 거 같아요.”

머리 길이가 워낙 길다 보니, 가끔씩 이런 식으로 어딘가에 낄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 이런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잠깐만 있어봐.”

이은솔이 안전벨트를 풀고서 이연 쪽으로 몸을 숙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연의 달콤한 향기가 이은솔의 후각을 자극했다.

“시트 뒤쪽에 몇 가닥 껴 있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은솔이 시트 머리 받침대를 분리했다.

그제야 이연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친절하시네요.”

“이 정도 가지고 뭘. 머리카락은 괜찮지?”

“네.”

시트에 껴 있던 머리카락을 살폈다.

다시 머리 정돈에 나선 이연이 끈으로 머리를 묶으면서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단발로 자를 걸 그랬어요.”

“단발로?”

“네. 그게 더 편할 거 같아서요. 선배님은 어때요? 저, 지금이 어울리나요? 아니면 단발이 어울려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고민 끝에 이은솔이 내놓은 대답은 이러했다.

“어느 머리든, 넌 다 예뻐.”

진심이 많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이연은 카메라가 바로 앞에 부착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그냥 자기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 줄로 알고 가볍게 넘겼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비록 이은솔의 마음이 그녀에게 다 전해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나름 만족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씩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옛날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거였다.

* * *

시골이라 그런지 장 볼 수 있는 마트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제일 큰 곳에 도착한 두 사람은 우승현이 적어준 것들을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정육점 앞에 선 이연은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안에 진열되어 있는 고기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장님. 오겹살, 지금 세일하고 있는 거 맞죠?”

“네! 지금 사면 특별히 30퍼센트 싸게 드릴게요.”

“그럼 이걸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내분이 고기 보는 눈이 있으시네. 그렇죠?”

아내라는 말에 이은솔은 헛숨을 삼켰다.

“저희, 부부 아니에요.”

“예? 최근에 결혼하셨다는 그 배우 부부 아니세요?”

나이가 좀 있는 사장이라 그런지, 이연과 이은솔이 누군지 잘 모르는 듯했다.

촬영을 나온 연예인. 그리고 젊은 남녀. 이 두 가지 요소만 보고서 혼자 멋대로 착각해 버렸다.

“다른 분입니다. 저희는 가수예요.”

“아,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티비는 잘 안 보는지라…….”

부부라고 오해받는 것은 정육점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생선을 파는 코너에서도 이 오해는 그대로 전염되었다.

아주머니가 이은솔, 이연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엄마 미소를 지었다.

“새색시가 어쩜 이리 예쁘대! 남편도 훤칠하고 잘 생겼네!”

“하하하…….”

마트에 오고 나서 몇 번이나 부부로 오해를 받았는지 세기도 힘들 정도였다.

뒤에 카메라가 따라다니지 않았더라면, 부부 아니냐는 소리를 더 많이 듣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젊은 남녀가 사이좋게 장바구니를 들고 장 보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 이런 오해를 받는 것도 당연하긴 하다.

그럼에도 이연은 어르신들의 착각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오직 신선한 음식 재료들을 고르는 데에만 집중했다.

이은솔은 그녀의 이런 반응이 다행이면서 한편으로는 내심 아쉬웠다.

“연이는 괜찮나 보네.”

“어떤 거요?”

“우리가 부부로 오인받는 거에 대해서.”

이연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감자 꾸러미를 들며 이리저리 확인했다.

그러면서 대답을 이어나갔다.

“성격 나쁘고, 인성 안 좋고. 그런 사람하고 엮이면 당연히 싫을 텐데. 선배님 같은 좋은 분이라면 크게 상관없을 거 같아서요.”

남자와 엮이는 일은 싫다.

하지만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이연이 원래 남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성적으로 봤을 때, 이은솔은 상당히 괜찮은 남자다.

돈 잘 벌고, 노래 잘하고, 유명하고, 그리고 착하고.

만약에 이연이 태생부터 여자였더라면, 오히려 지금처럼 오해받는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느낀 이은솔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건 이은솔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연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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