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04화 (204/299)

204화

제57화. 시골 식당(1)

벡스 내전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았던 2라운드 첫 대결.

그 주인공은 예상치도 못하게 샤이걸스가 차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나 하니엘, 그리고 강의찬과 이은솔. 모두가 다 샤이걸스의 1위 소식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충분히 잘했어. 샤이걸스도.”

녹화가 끝나자마자 이은솔이 샤이걸스의 무대에 대한 소감을 짧게 드러냈다.

그러나 하니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이은솔을 데려왔는데. 원했던 1위 자리를 다른 팀에게 내줘서 그런 거였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어쩌면, 둘 중에 한 팀만 벡스 멤버를 데려왔더라면 심사위원들에게 훨씬 더 주목받았을지도 모른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평가하는 일이다 보니 이 주목도와 관심이 점수를 매기는 일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면 샤이걸스가 아니라 아이비제이 트윙클, 하니엘. 둘 중에 한 팀이 1위를 차지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연은 굳이 이것까지 따지진 않기로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결과는 나왔다.

과거의 일로 후회를 일삼아봤자 아쉬움만 커질 뿐이다.

그리고 아직 2라운드 미션은 2개가 더 남았다.

여기서 1위를 차지하면 된다.

‘베네핏은 이번에도 2라운드 마지막 미션을 앞두고 있을 때 공개하겠다고 했었지.’

이번에는 또 어떤 혜택이 주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했다.

다른 팀들에게도 고생했다는 말을 남기고서 대기실로 돌아가려고 하던 순간.

“이연 씨.”

누군가가 이연을 불러 세웠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혜원이었다.

그녀가 먼저 이연에게 다가가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무대 잘 봤어요. 준비 열심히 하신 거 같더라고요. 제 마음속에선 하니엘이 1등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도 선배님들 무대 보면서 많이 놀라고 많이 배웠습니다.”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혜원이 먼저 이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손동작이었다.

선배가 먼저 권유하는데. 후배 입장에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연은 혜원의 작은 손을 마주 잡았다.

“나중에 또 좋은 경쟁 펼쳐 봐요.”

“네, 선배님.”

짧게 악수를 마치고 다시 본인이 속한 멤버들과 함께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연은 방금 전 그녀와 맞잡았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 있던 거 같은데.’

착각은 아니었다.

무슨 의미가 담긴 악수였을지.

이연은 당장 그녀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 * *

베네핏을 바로 눈앞에서 놓친 건 아쉽지만, 그래도 박도수 매니저는 멤버들을 다독이면서 말했다.

“2위도 잘한 거야.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알았지?”

유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희 중에서 실망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매니저님.”

“그, 그래?”

“네. 어차피 기회는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멤버들은 두 번의 경연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실력뿐만 아니라 멘탈적인 면도 같이 성장했다.

의외로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멤버들 덕분에 오히려 박도수 매니저가 더 당황할 정도였다.

그래도 풀 죽어 있는 것보다는 지금의 모습이 더 낫다.

숙소로 그녀들을 바래다준 박도수 매니저는 회사로 돌아가기 전에 이연만 따로 불렀다.

“여솜이는?”

“화장실 갔어요.”

“그래? 그러면 네가 나중에 여솜이한테 전해주면 되겠네.”

어떤 이야기 때문에 그런지 이연의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저번에 너한테 말했던 그거, 기억나지?”

“어떤 거요?”

“‘시골식당’ 출연 건 말이야.”

“추용석 PD님이 연출하시는 프로그램이요?”

“맞아, 그거.”

시골식당.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외진 시골로 들어가서 그곳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임시 식당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크게 웃기는 요소도 없고. 잔잔한 콘셉트로 꾸며지는 힐링 예능 프로그램인데, 자극적인 맛에 지친 시청자들로부터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시청률도 꽤 높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에 하니엘 멤버가 출연하면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출연 여부를 두고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멤버들 전체가 다 출연할 수는 없고. ‘근무 중 이상 무’ 여군 특집 때처럼 소수의 멤버만 출연하기로 했다.

그쪽에서 원하는 숫자는 두 명.

그 기회가 이연과 여솜에게 주어졌다.

“출연할지 말지 오늘까지 고민해 보겠다고 했잖아.”

“네, 그랬죠.”

걸파이트 무대를 준비하느라 결정을 잠깐 뒤로 미뤘었다.

“어때. 결정했어?”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렇게 답했다.

“출연할게요. 여솜이도 저하고 같이 나가고 싶다고 했어요.”

“오케이, 알았어.”

“그런데 저 말고 또 누구 출연해요?”

시골식당은 고정 출연자가 없다.

매 에피소드마다 출연진이 달라진다.

지금 정해진 출연자는 이연 한 명뿐.

“나머지는 협의 중이라고 하니까, 정해지는 대로 너한테 알려줄게.”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오늘 고생했고. 내일은 일정 없으니까 애들하고 같이 푹 쉬어. 그럼 난 간다.”

매니저를 배웅해 주고 난 이후에 이연은 다시 숙소로 복귀했다.

그사이, 리샤는 알몸 차림으로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멤버의 나체 상태를 보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리샤에게 물었다.

“옷 좀 입고 돌아다닐래?”

“바로 샤워하려고 그러는 거야.”

나체족은 리샤뿐만이 아니었다.

비아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거실로 나와 리샤를 찾았다.

“언니! 샴푸 챙겼어?”

“잠깐만 기다려 봐. 지금 찾고 있으니까.”

두 멤버를 보면서 이연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만약에 관찰 예능 촬영이라고 하고 있었다면, 대형사고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 * *

걸파이트 시즌 2와 같은 방송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인기 힐링 예능 프로그램, ‘시골식당’.

오늘 이연과 여솜은 제작진과 미팅을 가지기 위해 방송국을 찾았다.

이틀 전에 걸파이트 녹화로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오니까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처음에 이연은 걸파이트 녹화하러 가는 길인 줄 알았었다.

그 정도로 이곳이 굉장히 익숙했다.

그러나 오늘은 스튜디오가 아닌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덥수룩한 턱수염을 가진 남자가 이연과 여솜을 보자마자 자신을 소개했다.

“추용석 PD입니다. 요즘 스케줄 때문에 한창 바쁘실 텐데,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말씀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이연이 여솜의 몫까지 대신해서 소감을 전했다.

하니엘은 각종 프로그램에서 탐내는 예능계의 블루칩이다.

출연했다 하면 시청률 상승은 무조건 보장되니까.

PD 입장에서 하니엘은 무조건 데려오고 싶은 게스트이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하니엘이 걸파이트 1라운드 마지막 미션에서 우승하는 장면이 방송으로 송출된 덕분에 그녀들을 더 많은 곳에서 보고 싶다는 대중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추용석 PD도 하니엘 효과를 누리고 싶어 했다.

“저희 프로그램은 혹시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이 봤어요.”

“저도요.”

사실 매번 챙겨보진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번씩 보는 정도였다.

잘나가는 프로그램이니까. 요즘 예능 트렌드가 어떤지 분석하기 위해서 이연은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들은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시골식당’이었다.

“저희 프로그램을 보셨다고 하니까.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네요.”

대신에 이연은 다른 게 궁금했다.

“혹시 저희 말고 출연하실 분들은 확정 되었나요?”

“네. 이은솔 씨하고 정우재 씨, 그리고 우승현 씨. 이렇게 세 분이 이연 씨하고 같이 이번 편에 출연하시게 될 겁니다.”

이은솔과 정우재는 이연에게 낯이 익은 선배들이었다.

그러나 우승현은 처음이었다.

비록 친분은 없지만, 그녀가 누군지는 알고 있다.

아역 배우로 데뷔해서 40대 초의 나이까지 꾸준하게 연예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대선배.

자기관리가 철저한 덕분에 아직도 나이에 비해 빼어난 몸매와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배우 둘에 아이돌 가수 셋.

‘밸런스는 대충 맞네.’

일부러 이렇게 섭외한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한쪽으로만 직군이 치우쳐진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게다가 아는 얼굴이 여솜까지 해서 셋이나 있으니까.

낯선 녹화 현장이어도 마음은 편할 것 같다.

추용석 PD가 혹시나 해서 그녀들에게 물었다.

“이중에서 얼굴 보기 불편한 분이라도 계신가요?”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답했다.

“아니요.”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가끔 이렇게 팀을 짰는데, 서로 앙숙이었던 사람들끼리 걸려 버린 경우가 있거든요. 저도 그때 녹화 현장에 있었는데. 분위기가…… 어후. 다시 생각해도 몸이 떨리네요.”

당시 상황이 어땠을지, 이연도 대충 짐작이 간다.

그녀도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때, 원수지간처럼 사이가 안 좋았던 배우들과 같이 무대를 꾸며야 했었던 일을 겪어봤었다.

관객들은 몰랐을 테지만 이연은 그들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살기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이연도 여기서까지 그 경험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출연자들끼리의 케미도 중요한 법이니까.’

방송을 위해서라도 추용석 PD처럼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구체적인 녹화 일정과 장소 등을 고지받은 이연은 여솜과 함께 촬영 잘 부탁한다는 인사말을 끝으로 방송국을 나섰다.

운전석에 오른 박도수 매니저가 뒤에 탄 이연과 여솜에게 잊고 있었던 질문 하나를 꺼냈다.

“근데 너희는 요리 좀 하니?”

시골식당이라는 타이틀답게, 기본적인 요리 실력은 가지고 있는 편이 좋다.

먼저 여솜이 답했다.

“잘은 아니고요. 적당히?”

반대로 이연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웬만큼은 해요.”

자신감은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 * *

촬영은 대한민국 땅끝마을이라 불리는 해남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 앞에서 여솜은 ‘우와!’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바다를 보는 것도 오랜만인데.

여기에 시골 마을의 전경까지 어우러져 있으니 그야말로 그림이 따로 없었다.

스마트폰을 꺼내고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여솜이 한발 늦게 차에서 내린 이연에게 손짓했다.

“연아! 와서 같이 사진 찍자! 응?”

“알았어, 잠깐만.”

여솜과 달리 이연은 바다 지역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피부에 뭔가가 끈적끈적한 게 달라붙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게다가 바람도 거세서, 기껏 손질한 머리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여솜의 재촉에 따라 사이좋게 포즈를 취했다.

셋, 둘, 하나.

찰칵!

두 사람만의 추억이 담긴 셀카가 카메라 소리와 함께 완성되었다.

“예쁘게 잘 나왔네! 공기도 너무 좋고. 여기서 살고 싶다.”

여솜과 달리 이연은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기서 최소 3박 4일은 머물러야 하는데.

‘괜히 출연하겠다고 했나.’

바닷바람처럼 후회가 그녀를 향해 빠르게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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