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01화 (201/299)

201화

제56화. 치열한 승부(1)

새롭게 게스트 자격으로 하니엘 멤버들의 연습에 합류하게 된 이은솔은 이 상황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SSS 때 이후로 이렇게 같이 무대를 준비하려는 건 오랜만이네.”

“네, 선배님!”

이은솔이 말한 SSS 녹화 덕분에 멤버들은 알고 있었다.

이은솔이 연습 때 얼마나 엄격하고 진지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미 한 차례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은솔이 먼저 나서서 의도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군기가 잡혀 있었다.

그는 멤버들을 향해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다.

“누가 보면 내가 평소에도 너희들한테 막 모질게 대하고, 그런 사람인 줄 알겠다.”

물론 그건 아니지만, 연습 때 유독 엄격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은솔하고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다는 경험이 이번 무대를 준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곡은 정했어?”

“아직 안 정했어요.”

“이제부터 상의하면서 정하려고 하는데…… 선배님은 어떤 곡이 좋으세요?”

멤버들이 이은솔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이은솔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자신보다 멤버들의 의견을 우선시하라는 말을 들려줬다.

“나는 어디까지나 게스트 신분이니까. 이 무대는 너희 무대야. 그러니까 너희가 원하는 곡을 고르고, 내가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렇지, 연아?”

이연에게 말머리가 돌아갔다.

잠자코 있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은솔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남자 목소리가 피처링으로 들어간 곡을 고르는 게 좋아. 그래야 선배님하고 파트 분배할 때 편하니까.”

“맞다. 그래야겠네.”

“역시 우리 리더님이셔.”

이연이 매번 나서서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덕분에 하니엘의 회의는 늘 어긋남 없이 제 방향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다.

이연을 보면서 이은솔은 나영수 대표가 했던 말들을 머릿속에 여러 차례 떠올렸다.

나중에 크게 성장할 여자라고.

친해질 수 있을 때 미리미리 친분을 다져두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조언했었다.

이은솔은 본인이 좋아하는 여자의 가치를 인정받은 거 같아서 괜히 자기 일처럼 기분이 좋았다.

히죽이죽 웃는 이은솔을 보면서 이연은 의아함을 드러냈다.

“선배님. 왜 그러세요?”

“어? 잠깐 딴생각하고 있었어. 미안.”

회의 시간에는 회의 내용에 집중하는 게 좋다.

이은솔도 잘 아는 건데.

그런데도 이연하고 엮이기만 하면 평소처럼 판단이 잘 서질 않아서 문제였다.

* * *

MAYO와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날.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미랑은 화장실에서 혜원, 지현과 마주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지현이 미랑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뭐야, 언니. 우리들끼리 있을 때에는 말 편하게 하기로 해놓고선.”

“혹시 모르니까요.”

지현도 미랑과 예전에 같은 연습생 시절을 보냈기에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혜원과 지현 사이에 비어 있는 세면대를 차지한 미랑.

그녀가 바로 어제 있었던 걸파이트 시즌 2 녹화 촬영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설마 하니엘에서 이은솔 선배님을 데려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선배님들도 많이 놀라셨던 거 같은데.”

그 일만 생각하면 지현은 한숨부터 먼저 나왔다.

“말도 마, 언니. 은솔 오빠 나올 때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고. 아니, 우리 오빠도 그렇고, 은솔 오빠도 그렇고. 둘 다 진짜 너무하다니까.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해줄 수가 있지?”

“PD님이 비밀로 하라고 했으니까요.”

당시에 강의찬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미랑이었다.

누군가가 스포일러를 한 탓에 벌써 기사로도 다 공개된 상태였다.

덕분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가요계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 관심이 엄청 뜨겁더라고요. 벡스 내전은 처음 보는 거라면서, 누가 이길지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엄청 난리던데요.”

혜원은 말없이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이렇게 말을 아끼는 혜원의 모습을 미랑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딱 한 번 봤던 기억이 난다.

안무 연습을 하기로 한 날, 팀원 한 명이 연락도 없이 무단으로 연습을 빼먹었을 때 혜원은 지금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말수가 급격히 없어지고 표정이 굳는다.

물론 카메라 앞에 서면 다시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돌아오겠지만.

무대 뒤에서까지 항상 밝은 척 연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는 것으로 볼일을 마무리 지은 혜원이 화장실을 떠나기 전에 미랑에게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래도 우리가 이길 거야. 이번에는 1라운드 때하곤 다를 테니까.”

이 말만을 남긴 채 혜원은 미련 없이 복도로 향했다.

지현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어깨를 한 차례 으쓱였다.

“미랑 언니, 그럼 조금 있다가 촬영장에서 봐.”

“네, 선배님.”

아이비제이 트윙클 멤버들이 모두 사라지자.

미랑의 입꼬리가 위로 스윽 향했다.

오늘따라 이연이 은인처럼 고맙게 느껴졌다.

* * *

곡도 정해졌고.

이제부터는 연습에 매진하기만 하면 된다.

컴백으로 인해 스케줄표가 가득 차 있어도 하니엘 멤버들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늘도 녹화를 마치고 저녁 10시에 안무 연습실에 모여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중간에 우미가 이연에게 물었다.

“이은솔 선배님도 정말 오신대?”

“어. 아까 매니저님이 이은솔 선배님도 방금 녹화 끝났다고, 차 타고 바로 이쪽으로 넘어오겠다는 연락 왔다고 그랬어.”

“선배님도 대단하시네. 많이 피곤하실 텐데.”

벡스가 한창 바쁠 때에 비하면, 지금의 스케줄은 이은솔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은솔의 솔로 앨범이 아직 공개되기 전이다 보니 지금은 그나마 일정이 널널한 편이었다.

그래서 연습에도 꾸준히 참가를 할 수 있는 거였다.

이연이 박도수 매니저에게 들은 그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은솔이 LC 엔터테인먼트의 안무 연습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연습 벌써 하고 있었어?”

“네. 앞부분만 저희끼리 잠깐 맞춰보고 있었어요.”

댄스 트레이너가 없어도 이연이 연습을 봐주면 안심이다.

이은솔도 SSS에서 이미 이연의 이런 면모를 여러 차례 접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안 쓰고 넘길 수 있었다.

연습에 몰입하기 위해 각자 포지션을 잡았다.

이은솔은 1절 후렴구가 끝나고 2절 도입부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니엘 멤버들과 대열을 짜서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등장하기 전까지. 앞의 파트들을 보면서 이은솔은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디를 보완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미리 저장해 뒀다가 나중에 연습이 한 차례 끝나면 이야기해 줬다.

“유키 동작이 너무 튀더라. 비아하고 다시 한번 팔 각도 잘 맞춰보고. 그리고 우미는 이연한테 센터 자리 양보하면서 뒤로 빠질 때 동작이 좀 부자연스러워. 몸을 뒤로 뺄 때에는 웨이브를 한다는 느낌으로 부드럽게. 그러면 동작이 훨씬 자연스러워질 거야.”

“네, 선배님!”

“알겠습니다!”

SSS 당시에 멤버들의 고칠 점들을 콕콕 집어주던 그 이은솔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이은솔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하니엘 멤버들의 실력이 그만큼 는 덕분이었다.

“연습생 시절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네. 연습 많이 했구나.”

성장했다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

가수는 자신의 무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한 무대이기 때문에 안 좋은 점들도 다 좋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은솔이나 은서해 같은 사람들이 제3자의 위치에서 그녀들의 무대를 객관적으로 봐줄 필요가 있다.

지금의 이은솔이 보기에는.

“조금만 더 다듬으면 되겠어. 내일부터는 라이브도 같이 겸해서 해보자. 알았지?”

“네!”

게스트에서 어느새 선배이자 트레이너 위치에 서게 된 이은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자꾸만 눈에 띄는 것들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이런 걸 이야기해 줘야 하니엘 멤버들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수정할 수 있다.

1절 파트가 끝나고. 2절 파트 연습에 돌입했다.

그동안 수많은 무대에 섰던 이은솔답게 새로운 동작과 대열에도 금세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연을 제외한 하니엘 멤버들은 능숙하게 하니엘 그룹 속에 녹아드는 이은솔을 보면서 감탄을 삼켰다.

역시 대선배님은 다르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1시간가량을 더 연습에 매진한 끝에 드디어 쉬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멤버들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땀방울들도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연습실에 있던 스태프들이 수건을 챙겨서 그녀들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여기, 음료도 있으니까 필요하신 분들 가져가서 마시면 됩니다.”

“네.”

마침 이연은 목이 마른 상태였다.

멤버들과 함께 각자 마실 음료들을 챙겼다.

이연의 픽은 파란색 스포츠 음료였다.

뚜껑을 돌려 따려고 했는데. 손에 물기가 묻어서인지 뚜껑이 계속해서 헛돌았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마나를 손끝에 모았다.

마법을 이용해 손에 남은 물기를 모두 증발시켰다.

‘이러려고 마법을 배운 게 아니었는데.’

자조 섞인 미소를 띠면서 다시 뚜껑을 붙잡으려고 하던 순간, 이은솔이 나섰다.

“내가 까줄게.”

괜찮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은솔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투둑.

뚜껑이 시원하게 돌아갔다.

“자, 여기.”

“감사합니다, 선배님.”

“따기 힘들면 진작 나한테 말을 하지. 이런 건 언제든 해줄 수 있는데.”

“물기만 닦아내면 해결되는 문제라서 일부러 말씀 안 드렸어요.”

“괜찮아.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언제든 선배 부려먹어도 돼.”

이은솔과 함께 LC 엔터테인먼트 안무 연습실을 찾은 벡스의 매니저가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뭐냐,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과도하게 친절하냐. 상대가 이연 씨라서 그런 거야? 어?”

“형은 조용히 좀 하세요.”

이연에게 사심을 품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곤란하다.

지금은 착한 선배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 * *

게스트 미션 날짜가 다가올수록 각 팀의 멤버들은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2라운드 첫 번째 팀 미션인 게스트 미션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은 스태프에게 오늘 누가 심사를 보게 될 것인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들었다.

“파트너 미션 때 와서 심사 봐주셨던 분들이 평가하실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블라인드 미션 때처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심사석에 앉혀서 평가하라고 시키면, 벡스 멤버가 속한 그룹 쪽으로 표가 몰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전문가 팀을 따로 꾸려서 보다 정확하게 점수를 매겨 순위를 정할 예정이었다.

무대의상으로 갈아입은 멤버들은 녹화 시작 전에 손을 모았다.

비아가 이은솔에게도 파이팅 구호를 외칠 것을 제안했다.

“선배님도 빨리 오세요.”

“알았어. 잠깐만.”

이은솔의 손이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하나, 둘, 셋!”

“파이팅!”

“파이팅-!”

하니엘, 이은솔 연합 팀의 우렁찬 목소리가 대기실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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