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00화 (200/299)

200화

제55화. 게스트 미션(2)

안 된다.

딱 잘라서 말하는 나영수 대표의 말에 이은솔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도 나 대표가 이렇게 대답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같은 그룹 멤버들끼리 내전을 펼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이연의 스타일상, 나 대표가 이런 식으로 단호하게 나올 거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이연은 머리가 굉장히 뛰어난 여자다.

적어도 이은솔이 봐온 이연은 그랬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나 대표의 뜻은 잘 알았으니.

이제 그를 어떻게 회유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이연은 우선 나영수 대표에게 확인할 게 있었다.

“강의찬 선배님은 걸파이트 출연하시는 거, 확정된 건가요?”

“네. 의찬이하고 지현이 일이니까요. 가족 일이라는데, 제가 반대할 이유는 없죠.”

맞는 말이다.

이연도 이에 버금가는 이유를 내놓아야 이은솔을 데려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은솔 선배님을 저희 쪽에 붙여주신다면, 벡스 선배님들도 얻어가시는 게 많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저는 단점밖에 안 보이던데.”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게스트 미션이 방송에 나갈 시기는 이은솔 선배님의 컴백 시기와 겹칩니다. 선배님의 이번 뮤직비디오에는 저도 특별 출연했고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은솔 선배님하고 저하고 예전에 관찰 예능에서 보여줬던 케미를 보고 싶어 합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커플링이라고 보는 게 좋겠네요.”

이연은 자신이 남자와 이런 식으로 엮이는 걸 상당히 안 좋아한다.

그래도 대중들이 그렇게 보고 있는 것까지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이연은 현실을 직시하고, 그리고 오히려 이것을 이번 게스트 미션에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이은솔 선배님하고 저하고. 같이 무대에 서면 그만큼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거예요. 이은솔 선배님이 곧 공개하실 솔로 앨범 홍보에도 도움이 많이 될 거고요.”

“음…….”

듣고 보니 아예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었다.

소비층이 원하는 것이 뭔지 파악하고 그걸 충족시켜 줘야 그만큼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다.

이연이 주장할 근거가 아직 하나 더 남았다.

“벡스 선배님들끼리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다른 무대로 서로 내전을 벌인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같은 그룹이니까. 그래서 서로 경쟁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특별하다.

“강의찬, 이은솔 선배님이 내전을 벌인다고 한다면, 큰 화제 몰이가 될 거예요.”

여태껏 본 적 없는 구도니까.

벡스 팬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영수 대표는 이연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설득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듣고 보니 구구절절 맞는 말들뿐이었다.

나영수 대표조차도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그림.

그 그림을 이연은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이것이 나영수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전에.

부족한 게 있었다.

“가장 중요한 요건이 빠졌네요.”

“어떤 건가요?”

이연이 묻자, 나영수 대표의 시선이 옆에 앉은 이은솔에게 향했다.

“본인의 생각입니다.”

이은솔이 출연하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 이것부터 먼저 확인하는 게 옳다.

나영수 대표는 벡스가 무명 가수팀이던 시절 때부터 로드 매니저를 포함해서 온갖 잡무를 담당하며 그들을 열심히 키워왔다.

그렇다 보니 벡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일을 진행하더라도 무조건 벡스 멤버의 뜻을 물어보고, 그다음에 결정하는 편이었다.

이은솔은 고민하지 않았다.

“당연히 출연해야죠.”

마음에 두는 여자가 이렇게 자기 소속사 대표까지 만나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데.

이제 와서 이은솔이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다.

아주 잠깐의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이연의 작전은 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

* * *

걸파이트 시즌 2 게스트 미션을 이행하기 전에 각자 어떤 게스트들을 섭외했는지 밝히고 소개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 녹화는 특이하게 평소의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날씨도 좋고.

불어오는 바람도 이제는 조금씩 완연한 봄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민주린이 마이크를 들고서 야외무대로 올라오는 계단 쪽을 가리켰다.

“각 팀과 함께 호흡을 맞출 게스트분들이 저기, 저쪽에서부터 올라올 겁니다. 누가, 어떤 팀과 협업하게 되었는지는 그때 가서 공개될 거니까 여러분들은 그전까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셔도 됩니다.”

서로 누구를 게스트로 데려오기로 했는지 아직 다 공개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녹화를 통해서 이 궁금증이 말끔해 해결될 것이다.

모두의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민주린이 첫 번째 게스트를 소개했다.

“나와주세요!”

그녀의 외침과 함께 클래식 음악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클래식?”

“이쪽과 관련된 분 아니야?”

아이돌들이 제각각 추론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여성이 손을 번쩍 들면서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이들 앞에 섰다.

황채린.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다.

그녀를 보자마자 이연은 어느 팀이 섭외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샤이걸스 팀이겠네.’

그녀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했다.

황채린은 다른 아이돌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에 샤이걸스 팀이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 좋네.’

예전부터 이연은 샤이걸스 멤버들이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마다 보여주는 독특한 발상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꼭 가수 팀만 게스트로 섭외하라는 법은 없다.

황채린처럼 자신의 팀 컬러에 맞는다면, 굳이 가수가 아니어도 게스트로 섭외할 수 있다.

제작진이 게스트에 제한을 둔 건 ‘한 팀이어야 한다’라는 것밖에 없으니까.

샤이걸스가 꺼낸 게스트 카드가 이에 반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피아니스트라면, 발라드를 주무기로 삼는 샤이걸스와 찰떡궁합을 자랑할 것이다.

샤이걸스만 가수가 아닌 사람을 게스트로 섭외한 게 아니었다.

CDP가 데려온 게스트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저희는 언빌리버블입니다!”

계단을 빠르게 오른 여러 명의 젊은 여성들이 힙한 복장을 선보이면서 자신을 ‘언빌리버블 팀’이라고 소개했다.

시우가 옆에 앉은 이연에게 조용히 물었다.

“언니, 혹시 언빌리버블이라는 그룹, 들어본 적 있어요?”

“어. 가수는 아니고, 댄서분들이야.”

걸스 힙합 분야 쪽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댄스 크루다.

피아니스트에 이어 댄스 크루까지. 방송 초반부터 다양한 게스트들이 무대에 올랐다.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이다음 게스트는 아이돌들 모두가 다 아는 유명 밴드 그룹, 큐컴블이었다.

민주린이 밴드 멤버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큐컴블은 어느 팀의 게스트 자격으로 이곳에 나왔나요?”

“저희는 원더존 후배님들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원더존 멤버들이 목이 터져라 ‘선배님!’을 외쳤다.

둘이 서로 같은 소속사니까.

이렇게 팀을 꾸리는 게 어색해 보이진 않았다.

다음으로 게스트들 중에서 유일한 외국인이 등장했다.

다이나 럼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유명 팝 가수가 이곳 대한민국 예능 현장을 찾았다.

누구의 게스트로 왔나 묻자, 다이나 럼블이 MAYO를 가리켰다.

“MAYO! My friend!”

“I love you, 다이나!”

MAYO 멤버들과 다이나 럼블이 강한 포옹을 나눴다.

뒤이어 이번에는 다수의 남자 멤버들이 무대에 섰다.

총 12명으로 구성된 보이 그룹, 원 스텝.

하니엘과도 만난 적이 있는 선배 아이돌들이었다.

그들은 가을소녀와 한 팀을 맺기로 했다.

가을소녀 멤버들도 원 스텝과 마찬가지로 12명이다.

두 팀이 한자리에 모이니, 총 24명의 압도적인 인원수가 완성되었다.

“이제 단 두 팀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아이비제이 트윙클과 하니엘.

아이비제이 트윙클이야 어차피 누가 게스트로 나올지 빤히 예상되기 때문에 일부러 제작진이 순서를 뒤로 배치한 거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하니엘은 아니다.

그녀들 역시 벡스 멤버급 게스트를 데려왔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자, 그럼 아이비제이 트윙클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게스트분,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민주린의 지시에 따라 벡스의 인기 멤버 중 한 명인 강의찬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촬영 현장 전체가 뒤집어질 정도였다.

미국에서 넘어온 다이나 럼블도 강의찬을 보면서 크게 환호했다.

미국 쪽에서도 벡스는 현지 가수들 뺨칠 정도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하이라이트는 끝나지 않았다.

더 큰 게 남았다.

“마지막으로 하니엘 게스트분, 나와주세요!”

베일에 싸여 있던 마지막 게스트의 정체가 공개된 순간.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녕하세요. 이은솔입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좀처럼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혜원조차도 이은솔의 등장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은솔이 게스트 미션에 합류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본인을 제외하고 하니엘 멤버들, 그리고 강의찬뿐이었다.

다른 출연자들은 벡스 멤버가 둘이나, 그것도 서로 다른 팀을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는 사실을 일절 알지 못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민주린은 잠시 자신의 멘트를 까먹어 버렸다.

“그러니까, 저기…… 은솔 씨는 하니엘 게스트로 오신 거 맞죠?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아니라요.”

“네, 맞습니다.”

“설마 여기서 벡스 내전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거, 방송에 나가면 무조건 대박 각이다.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민주린은 슬쩍 황이전 PD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벡스 멤버 한 명만 출연시키는 것만으로도 대박인데, 둘이나 나오게 되었으니 행복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지현이 자신의 오빠 강의찬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면서 물었다.

“오빠는 은솔 오빠가 나온다는 거 알고 있었어?”

“어. 당연히 알지. 같은 멤버니까.”

“근데 왜 우리한테는 말 안 했어!”

“PD님이 누구를 게스트로 섭외했는지, 오늘 공개되기 전까지 비밀 유지해 달라고 했다면서.”

“그건 그렇지만…….”

강의찬은 PD의 부탁을 충실히 이행한 죄밖에 없었다.

오빠에 대한 원성을 속으로 삭이는 여동생과 달리, 혜원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럼에도 강의찬은 혜원이 여전히 크게 동요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권이연이라고 했지? 이연 씨, 머리 좋은 건 알고 있었는데. 행동력도 대박이더라. 은솔이 게스트로 데려오고 싶다고 우리 회사 대표님 직접 만나러 왔었대.”

“……그래요?”

“어. 이연 씨 설득이 제대로 먹혔나 봐. 식사 끝나고 나서 대표님이 나한테 말해줬는데. 이연 씨,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대한민국 가요계 다 씹어 먹고 다닐 만한 스타로 성장할 거 같대. 난 우리 회사 대표님이 누군가를 그렇게 칭찬하는 거, 본 기억이 없는데. 하여튼 대단하더라.”

“…….”

혜원은 끝까지 말을 아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이 고민만으로도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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