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제55화. 게스트 미션(1)
게스트를 데려와서 무대를 꾸미면 된다.
굉장히 간단한 미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연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수행했던 미션 중에서 가장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그리고 또 가장 불공평한 미션이기도 했다.
이연처럼 눈치 빠른 아이돌들은 알고 있었다.
게스트 미션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 있는 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아이비제이 트윙클이었다.
유키가 안심하는 비아와 리샤를 향해 쓴소리를 가했다.
“지금 그렇게 한가할 소리나 하고 있을 때예요? 아이비제이 선배님들이 있잖아요.”
“선배님들이 왜?”
리샤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비아도 그녀와 같은 반응을 취했다.
연달아 한숨을 내쉰 유키가 왜 그 많고 많은 팀들 가운데에서 하필이면 아이비제이를 언급했는지, 직접 설명에 들어갔다.
“지현 선배님 친오빠분이 누군지 아시죠?”
“그야 강의찬 선배님이시잖아. 벡스의…… 아!!!”
그제야 눈치챘다.
아이비제이의 지현과 벡스의 의찬. 두 사람은 친남매 관계다.
다시 말해서.
“아이비제이 선배님들은 벡스 선배님 데려오실 거잖아요.”
그러면 어떤 게스트들을 데려와도 묻힐 수밖에 없다.
벡스는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보이 그룹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유명한 팀이니까.
음원도 냈다 하면 1위는 기본으로 찍고 시작한다.
그룹 앨범이든, 솔로 앨범이든.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무조건.
그 정도로 벡스의 인기는 가히 절대적이다.
팬덤 규모도 글로벌급이다.
벡스 멤버가 출연했다 하면 시청률은 2배에서 3배로 뻥튀기된다.
아이비제이 트윙클한테는 이런 치트키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연은 여태껏 진행했던 미션 중에서 이번이 제일 불공평한 미션이라고 생각했던 거였다.
“그럼 우리, 어떻게 해?”
리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유키에게 물었다.
그러자 유키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요. X된 거지.”
아이돌 입에서 나오기에 부적절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한창 촬영 중인데도 유키의 가면 안의 모습이 튀어나올 만큼 게스트 미션은 아이비제이 트윙클을 제외한 다른 그룹들에게 있어서 잔혹한 미션이었다.
그래도 딱히 해결 방안은 없었다.
아예 아이비제이 트윙클을 1위로 염두에 두고 다른 걸 그룹들과 마음 편히 순위 경쟁을 벌이면서 2위라도 노려볼 것인지.
아니면 무의미한 저항이라도 해볼 것인지.
선택은 각 그룹의 몫이다.
* * *
미션이 공개되고 제비뽑기를 통해서 무대 순서까지 모두 정하고 나서야 2라운드 첫 번째 녹화가 모두 끝났다.
대기실로 향하던 길에 MAYO의 미랑이 마치 이연에게 자신의 한탄을 들어달라는 건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2라운드 첫 번째 미션부터 뭔가 의욕이 팍 꺾이지 않니?”
노골적인 미랑의 말에 이연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렸다.
“그러게요. 설마 제작진이 이런 미션을 준비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게스트를 데려오는 걸 허용해 줄 때가 있을 거라고 봤었다.
그런데 이 게스트라는 요소를 아예 미션으로 전면에 박아버릴 줄은 몰랐다.
이게 이연이 범한 약간의 계산 착오였다.
“어떻게 하냐, 우리.”
“글쎄요.”
이연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하면서 애매모호한 대답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미랑은 직감했다.
“하니엘은 해결책이 있나 보네.”
이연이 이렇게 반응하면, 대부분은 이미 대안을 마련해 뒀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
MAYO가 하니엘과 호흡을 맞춘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그 짧은 기간을 통해 미랑은 이연이라는 사람이 어떤 아이인지 대충 파악했다.
물론 완벽하게는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이연은 표면적인 부분일 뿐.
아직도 미랑이 모르는 이연의 비밀이 매우 많다.
“뭔데? 이 언니한테만 슬쩍 알려주면 안 돼?”
“저희도 회의해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해야 해서, 아직은 뭐라고 확실히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잘 피해가네.”
미련이 많이 남는 모양인지, 미랑은 이연을 떠나보낸 뒤에도 한동안 입맛을 다셨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는 반응이었는데.
지금의 미랑은 이연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 * *
하니엘은 여타 다른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에서 벡스의 강의찬을 데려올 게 뻔한데.
이에 버금가는 게스트가 있을지. 이것부터 먼저 이야기를 나눠봐야 했다.
워낙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오채일 대표도 이 회의에 참가했다.
“상대가 벡스 멤버라…… 굉장히 어렵게 됐네.”
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기 때문에 벡스라는 그룹이 지닌 브랜드 파워가 얼마나 강한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아이비제이 이상 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 그룹.
아쉽게도 LC 엔터테인먼트에는 벡스의 상대가 될 법한 소속 아티스트들이 없었다.
홍류현 실장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어차피 2라운드 마지막 미션도 아니고. 첫 번째 미션이니까요. 이번에는 깔끔하게 1등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기에는 베네핏이 너무 아깝잖아. 저번에 보니까 SSS 때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베네핏이 세던데.”
체인지 미션이 특히 그랬다.
원하는 그룹의 노래를 먼저 고를 수 있게 해주고. 여기에 더해서 자신이 그 노래를 독점할 수 있는 방어권까지 줬다.
만약 2라운드도 1라운드 마지막 미션 때와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앞으로 베네핏은 무조건 챙겨두는 게 좋아 보였다.
베네핏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1차 미션과 2차 미션뿐.
단 두 번밖에 없는 기회 중 한 번을 얌전히 포기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다못해 필사의 저항이라도 해봐야 한다.
“연예계도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거니까. 해볼 수 있을 만큼은 해봐야지.”
오채일 대표는 자신이 섭외할 수 있는 가수팀 중 가장 인지도가 있는 팀들을 골라서 머릿속 명단에 기입해 두기 시작했다.
홍류현 실장도, 그리고 박도수 매니저와 다른 직원들도.
오채일 대표처럼 차선책이 될 수 있는 가수팀을 떠올리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박도수 매니저가 멤버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는 사람 없어?”
“저희는 뭐…….”
멤버들은 말끝을 흐리면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제 고작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신인 걸 그룹이다 보니 인맥이 그렇게까지 넓은 편이 아니었다.
모두가 망설일 때.
이연이 마치 자신들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처럼 과감하게 의견을 내비쳤다.
“저희도 똑같은 수로 맞대응하죠.”
“똑같은 수라면, 설마…….”
“네.”
이연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같은 벡스 멤버를 게스트로 모셔오면, 아이비제이 선배님들하고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이름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작전이다.
홍류현 실장은 이연이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은솔 씨 생각하고 있는 거지?”
“네.”
하니엘, 그중에서도 이연과 특별히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는 그.
얼마 전에도 이연이 이은솔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선배님께서 자기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하셨어요.”
“이은솔 씨라.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모두가 이연의 작전대로 가자고 의견을 모으려고 하던 순간, 오채일 대표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건 힘들 거다.”
홍류현 실장이 오채일 대표의 말에 약간의 반론을 펼쳤다.
“연이하고 은솔 씨하고 친해서, 아마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그건 나도 알아. 아는데.”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소속사에서 과연 벡스 멤버를 걸파이트에 둘이나 내보내려고 할까? 그것도 같은 팀도 아니고. 멤버 둘이 각자 찢어져서 서로 경쟁을 펼쳐야 하는데.”
벡스 멤버들끼리 굳이 나가서 서로 갉아먹는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한 팀에게만 벡스 멤버를 몰아주고 말지.
“1승 1패를 택할지. 아니면 확실한 1승 하나만을 챙겨갈지. 내가 만약 벡스 소속사 대표라면, 후자를 고르겠어.”
엔터테인먼트 운영진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오채일 대표의 말에도 일리가 있음을 알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사실 맞다.
걸파이트 말고 차라리 이은솔을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게 그들에게는 더 득이 될 테니까.
이연도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가 있었다.
“제가 가서 직접 설득하겠습니다.”
“누구를?”
“그쪽 소속사 대표님을요.”
직원들이 크게 당황했다.
상대는 그 유명한 벡스 소속사 대표다.
이연을 만나줄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담판을 짓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주장이 직원들에게는 황당무계한 말로만 들렸다.
그러나 오채일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알았다. 그럼 내가 자리 한번 마련해 보마.”
“예?”
“대표님, 지, 진심이십니까?”
직원들의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오채일 대표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잖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게 좋다고.”
오채일 역시 이연과 마찬가지로 승부수를 띄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 * *
이은솔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으로 인해 잠시 혼란에 휩싸였다.
어쩌다가 자신의 소속사 대표와 오채일 대표, 그리고 권이연까지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게 되었는지.
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채일 대표가 먼저 이은솔의 소속사 대표인 나영수에게 술을 권했다.
“한잔하시겠습니까? 선배님.”
“그럴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후배님이 주는 술을 마셔보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나영수 대표와 오채일 대표, 두 사람은 같은 대학을 나온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같은 학과에 재학한 건 아니지만, 동문이라는 이유에서 오채일 대표가 나 대표에게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오 대표가 이연에게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보겠다고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선후배 사이니까 가능했던 거구나.’
오 대표가 인맥이 넓다는 건 이연도 잘 알지만. 이번 일을 통해 새삼 놀랐다.
한편, 나영수 대표의 시선이 이연에게 향했다.
“오 대표한테 들었습니다. 이연 씨가 먼저 저를 보고 싶다고 했다던데.”
“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건지 들어볼까요.”
분위기도 적당히 무르익었겠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이연이 이은솔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이은솔 선배님을 걸파이트 무대에 게스트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같이 무대를 꾸미고 싶다.
이런 뜻이었다.
나영수 대표도 이미 게스트 미션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다.
이미 강의찬의 여동생, 강지현한테서 자신의 오빠를 게스트로 보내달라고 헬프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거였군요.”
오채일 대표가 건넨 술잔을 입에 대려 했던 나영수 대표는 도중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건 힘들겠네요.”
이연의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