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97화 (197/299)

197화

제54화. 지원 요청(1)

컴백 이후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는 하니엘 멤버들.

여기에 가요 프로그램까지 주기적으로 참가해야 했기에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이제는 나름 두 번째 앨범을 내놓은 그룹이라서 그런 걸까.

대기실을 찾은 신인 걸 그룹들이 하니엘 멤버들을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스피닝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들!”

12명의 소녀들이 밝은 표정으로 하니엘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배 대접을 받아서 그런 걸까. 비아가 약간 우쭐해하는 눈빛으로 스피닝 멤버들에게 물었다.

“오늘 첫 데뷔 무대 가지시는 거예요?”

“네!”

“엄청 긴장되시겠다.”

“저희도 선배님들처럼 능숙하게 무대 펼치고 싶은데…… 선배님들 SSS에 출연하실 때부터 봤는데, 저는 처음엔 연습생 아닌 줄 알았어요!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후배들의 칭찬이 이어질수록 비아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에 이연은 어이가 없는 미소를 짓고 말았다.

다른 선배 그룹에게 인사하러 가기 위해 하니엘이 있는 대기실을 우르르 빠져나가는 스피닝 멤버들.

그러자 유키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딱 보니까 앞에서는 ‘선배님, 선배님♡’이라고 하면서 뒤에서는 무조건 험담 늘어놓을 스타일이네요.”

이연이 유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 같은 줄 아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무대의상으로 갈아입기나 해.”

오늘은 스피닝만 첫 무대를 가지는 날이 아니다.

걸파이트 시즌 2에서 높은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MAYO 팀 역시 간만에 새 앨범으로 무대에 올라설 예정이다.

이다음 주에는 가을소녀와 CDP, 원더존이.

그 후에는 샤이걸스, 그리고 대망의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데뷔가 예정되어 있다.

하니엘이 걸파이트 시즌 2 참가팀들 중에서 가장 빨리 컴백한 축에 속했다.

이렇게 컴백, 데뷔 시기가 몰리게 된 이유는 역시 걸파이트 시즌 2의 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고작 2화밖에 안 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파이트 시즌 2는 케이블뿐만 아니라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들을 모두 통틀어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황이전 PD의 입꼬리는 아래로 내려오는 법을 까먹기라도 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초승달을 그리고 있었다.

각 그룹들의 소속사도 알 것이다.

이렇게 프로그램이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 때, 이때에 맞춰서 컴백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본의 아니게 컴백 전쟁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피닝 같은 신인 걸 그룹 입장에서는 자연재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신인이든, 기존에 활동하던 아이돌 그룹이든. 결국은 무대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하니엘의 이른 컴백은 신의 한 수였다.

‘오채일 대표가 머리를 잘 썼어.’

이연의 생각과 딱 일치하는 컴백 전략을 사용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중간에 약간의 트롤짓을 할 뻔했지만, 이연이 딱 잘라서 그건 아니라고 대신 총대를 메며 말해준 덕분에 불상사는 없었다.

유키마저 무대의상을 다 입었을 때.

스태프가 대기실을 찾아와서 언제부터 리허설이 시작될지 미리 알려줬다.

그 전에 볼일 있는 사람들은 미리 끝내두는 편이 좋다.

여솜이 이연을 불렀다.

“연아. 같이 화장실 갈래?”

“그럴까.”

안 그래도 이연도 한번 미리 갔다 올까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잘됐다.

두 여성이 팔짱을 끼고서 화장실로 빠르게 나아갔다.

중간에 아는 얼굴과 딱 마주쳤다.

“안녕, 얘들아.”

이은솔이 먼저 그녀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디 가는 길이야?”

이연이 바로 뒤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화장실이요. 선배님은요?”

“나? 나는 뭐…… 밖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대본 좀 보다가 왔지.”

오늘 출연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가요 프로그램, ‘뮤직 페스티벌’을 이끄는 세 명의 진행자 중 한 명이 바로 이은솔이었다.

그가 하니엘 후배들을 보고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번 컴백 때 내가 MC 맡기로 했었는데. 미안해.”

“아니에요. 선배님 스케줄이 우선이니까요.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솜이 먼저 나서서 이은솔에게 괜찮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연도 여솜과 비슷한 말을 하면서 신경 쓸 필요 없다고 그를 위로했다.

“다음에 너희 관련 이벤트 있으면, 내가 꼭 MC 볼게. 아, 그리고 연아.”

“네, 선배님.”

“조만간 우리 회사에서 너희 쪽으로 연락이 갈 거긴 한데. 나, 지금 솔로 컴백 작업하고 있는 거 알지?”

이연은 알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뮤직비디오 촬영해야 하는데. 너한테 섭외 요청 들어갈 거야. 잘 생각해 보고 나중에 답변 줘.”

“선배님 뮤직비디오라면 무조건 출연해야죠.”

선배님의 기분을 고려한 약간의 사탕발림이 첨가된 멘트였다.

그래도 이은솔은 이연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다.

“고마워. 그래도 친한 사이일수록 이런 건 확실하게 검토하고 가는 게 좋으니까. 잘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선배님.”

“오늘 무대 힘내고. 조금 있다가 보자.”

이은솔이 먼저 걸음을 재촉하면서 장소를 이탈했다.

멀어져 가는 이은솔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뗀 여솜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연을 바라봤다.

“선배님이 너, 엄청 마음에 드셨나 보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예전에 이은솔 선배님 솔로 앨범 뮤직비디오 촬영할 때, 웬만하면 여성 셀럽 없이 그냥 혼자 촬영하는 걸로 가고 싶다고 하셨거든. 근데 선배님이 먼저 너한테 출연 제의할 정도면, 너를 엄청 마음에 드셨다는 뜻 아닐까? 적어도 싫은 사람한테 이런 제안을 하진 않을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연은 이런 생각도 했다.

지난번에 이은솔과 같이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커플 게임 영상으로 큰 화제 몰이를 한 적이 있으니까.

아직도 그 영상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가 될 정도였다.

여기서 이은솔과 이연, 둘이 같이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면, 그것만으로도 이은솔의 신곡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연은 이은솔이 자신을 선택한 거라 생각했다.

여기에 이은솔의 사심이 약간 첨가되어 있다는 건 그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컴백 쇼케이스 이후, 짧은 기간 동안 나름 많은 가요 프로그램 무대에 올라봐서 그런지 하니엘 멤버들의 얼굴에는 한결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리허설 때 보여줬던 것 이상의 기량을 뽐내면서 만족스러운 무대를 마친 그녀들.

마지막 차례인 MAYO의 차례까지 모두 끝난 뒤, 무대에 올랐던 가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연아.”

바로 뒤에 서 있던 미랑이 이연에게 먼저 다가가서 친근함을 표현했다.

“무대 봤어요, 선배님. 멋있으시더라고요. 노래도 좋고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우리 곡이 이번에 정말 잘 나오긴 했나 보다.”

걸파이트 시즌 2 녹화에 참여하면서 미랑은 이연이 지닌 음악적 잠재능력을 여실히 맛보게 되었다.

SSS를 통해 접했던 이연의 면모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미랑은 이연의 말을 후배가 일반적으로 하는 칭찬보다 훨씬 무게감을 두고 받아들였다.

“너희 곡도 이번에 굉장히 좋더라. 어제 음원 순위 보니까 벌써 5위 안에 들었던데? 이제 오늘 1위까지 차지하면 되겠어.”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이비제이 완전체와 컴백 기간이 겹친 탓에 당시에는 1위의 영광을 쉽게 누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어떨까.

그 해답을 알려주기 위해 이은솔과 뮤직 페스티벌 MC들이 무대 한가운데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 주, 영예의 1위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공개해 주세요!”

이번에 하니엘과 맞붙게 된 팀은 8인조 보이그룹, ELTIN이었다.

ELTIN도 국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팀이다.

활동 경력도 5년이 넘다 보니 팬덤도 탄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선배 그룹과 맞붙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미랑은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니엘이 이길 거라고.

각 집계 항목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침내 이번 주 1위 팀이 공개되었다.

“하니엘! 축하드립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이은솔의 우렁찬 외침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면서 하니엘의 1위 수상을 축하했다.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으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모습을 보이는 하니엘 멤버들.

이은솔이 이연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수상 소감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런 건 대부분 이연의 몫이었다.

“저희 컴백하는 데 많은 고생을 해주신 오채일 대표님, 홍류현 실장님, 나현아 트레이너님, 은서해 트레이너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저희 하니유 여러분들! 앞으로도 노력하는 하니엘에 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제는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내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이연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직접 현장까지 응원을 나온 하니유들은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앨범 활동은 시작이 나쁘지 않다.

* * *

뮤직 페스티벌 출연 당시 이은솔에게 들었던 내용대로 이연에게 그의 솔로곡 뮤직비디오 촬영 제의가 들어왔다.

이연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할게요.

그녀의 의지에 따라 작업이 빠르게 성사되었다.

뮤직비디오 촬영 당일에 현장을 찾은 이연은 감독으로부터 다시 한번 오늘의 일정을 전해 들었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지난 사랑에 대한 미련과 아픔으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네.”

밝은 분위기는 아니다.

이것만 머릿속에 입력해 두면 될 것 같았다.

촬영에 앞서 이연은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의상 자체는 평범했다.

노출을 싫어하는 이연을 고려해서 그런지, 배려한 티가 많이 나는 의상들이 주를 이뤘다.

‘사이즈도 딱 맞네.’

아마 의상팀들이 서로 협업하는 과정에서 이연의 허리나 다리 길이 사이즈 같은 것을 미리 공유했을 것이다.

의상을 다 갖춰 입고 나온 이연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카메라 뒤에서 이은솔의 단독 컷 촬영을 조용히 지켜봤다.

이번에 발매될 그의 솔로 앨범 타이틀곡, ‘떠나지 마’가 스튜디오 내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노래 괜찮네.’

레코딩도 잘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유명한 벡스 멤버인 이은솔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다음 장면을 찍기 위해 마침내 이연이 카메라 앞에 섰다.

“두 분, 서로 가깝게 마주 본다는 느낌으로 붙어주실 수 있으세요? 은솔 씨가 왼팔로 이연 씨 허리 감싸는 형태로요.”

“이렇게요?”

“네, 좋습니다!”

덕분에 두 사람의 몸이 잔뜩 밀착되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에 이은솔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

“괜찮아요. 선배님이니까요.”

어떤 의미가 담긴 말일까.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이은솔은 권이연 언어를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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