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96화 (196/299)

196화

제53화. 컴백(4)

컴백과 동시에 하니엘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Tug of war’의 음원 순위가 벌써 차트 2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아직 음원이 공개된 지 3일도 안 되었음에도 성장 속도가 상당히 가파른 편이다.

박도수 매니저가 차를 운전하면서 음원 차트 순위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로 꺼냈다.

“MStage에서는 이미 8위라고 하더라. 그쪽 관계자 말 들어보니까, 내일이면 1위 찍을 거 같대.”

“블루베리하고 피링은요?”

“피링은 지금 11위고. 블루베리는 14위 될걸? 둘 다 다음 주쯤 되면 5위권에는 무난하게 들 수 있을 거야.”

지난 타이틀곡의 경우에는 아이비제이라는 거대한 산을 만난 탓에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데뷔 앨범을 통해서 하니엘 멤버들은 상대가 아무리 넘사벽인 탑급 걸 그룹이라 할지라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걸파이트 시즌 2 1라운드 마지막 미션에서 아이비제이, MAYO 같은 쟁쟁한 라이벌을 꺾고 1위를 차지했으니까.

음원 차트 싸움이라고 해도 크게 불리할 점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가 정말 잘 뽑혔어. 찐 프로님이 괜히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리는 분이 아니라니까.”

박도수 매니저의 말이 맞다.

아무리 인기 있고 멤버들의 기량이 출중해도, 결국은 노래 퀄리티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니유들처럼 하니엘 멤버들의 이름과 성격, 그리고 멤버들 간의 케미까지 전부 다 파악하진 못한다.

일반인들은 아무래도 노래를 통해서 그 그룹을 먼저 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결국은 얼마나 좋은 노래를 발표하느냐에 따라 그 그룹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박도수 매니저는 두 번째 앨범이 오히려 데뷔 앨범보다 더 유의미한 성적을 거둘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모두가 다 이번 앨범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하니엘은 차근차근 위로 향하는 계단을 밟고 있었다.

* * *

오늘은 오랜만에 몸 쓰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헬스로 유명한 이영석, 차예은 부부로부터 필라테스를 배우기로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은 의상팀에서 미리 준비해 둔 레깅스와 크롭탑을 착용했다.

운동에 관심이 많은 리샤가 레깅스 제품들을 면밀히 살피면서 물었다.

“이거, 신제품인가요?”

“네! 잘 아시네요. PPL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요? 착용감이 나쁘지 않아서요. 저도 나중에 따로 구입하고 싶은데.”

“리샤 씨한테는 저희가 그냥 드릴게요.”

“아니에요! 공짜로 받으려고 일부러 그런 말 한 거 아닌데…….”

“괜찮아요. 서비스라고 생각해 주세요.”

덕분에 리샤의 입꼬리는 귀에 걸려 내려올 줄 몰랐다.

반면,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비아와 유키는 리샤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아,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야.”

유키가 비아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이때, 한 여성이 뒤에서 나타나 두 사람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아이돌이 운동을 싫어하면 안 되잖아요.”

오늘 멤버들에게 필라테스를 가르쳐 주기로 한 차예은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막내즈 멤버들이 크게 당황하면서 방금 한 말은 농담이라고 대충 둘러대기 시작했다.

일일 필라테스 선생님을 맡은 차예은이 호호 웃으면서 멤버들의 말에 적당히 어울려 줬다.

“어려운 동작들 안 시킬 거니까 안심하셔도 좋아요. 대신에…….”

차예은이 자신의 남편인 이영석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제 남편은 살살 안 할 거 같으니까 긴장하시는 게 좋아요.”

이영석은 멤버들의 뭉친 근육을 직접 손으로 압박하면서 풀어주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이영석의 손은 상당히 맵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남녀노소 그가 손으로 꾹 누르기만 하면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대기 바빴다.

이런 류의 영상이 인터넷에 상당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탓에 차예은의 필라테스 방송에도 이영석이 고정 게스트를 꿰차게 된 거였다.

멤버들은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언니들. 우리, 오늘 멀쩡히 숙소로 돌아갈 수 있겠지……?”

여기에 대해 우미가 들려준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건 아마 이영석만이 알 것이다.

* * *

필라테스 촬영을 위해서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운동 관련 프로그램 중에서도 차예은의 필라테스 교실은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촬영 규모도 꽤나 컸다.

카메라만 수십 대가 포진되어 있었다.

하니엘 멤버들은 어느 카메라에 시선을 맞추는 게 좋을지 헷갈릴 정도였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멤버들을 향해 차예은이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

“첫 동작은 간단한 것부터 먼저 시작해 볼 거예요. 롤 업(Roll up)이라는 동작인데, 앞에 매트 보이시죠?”

“네.”

“매트 위에 바르게 누워보세요. 그다음에 팔을 어깨너비로, 머리 방향 쪽을 향해 쭉 펴세요.”

여기까지는 쉽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상체를 들어 올리고, 앞으로 쭉 숙이세요. 쭉쭉…… 더!”

“아아……! 서, 선생님! 아파요!”

“여기서 더 안 내려가요……!!”

멤버들의 입에서 벌써부터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쉬운 동작들만 시킨다고 그랬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솜 씨. 더 내려가실 수 있잖아요. 제가 눌러 드릴까요?”

“아아아아니에요! 이걸로도 추, 충분해…… 아아악! 선생니이임!!”

여솜은 의도치 않게 득도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모든 멤버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이연만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롤 업 자세를 소화하고 있었다.

차예은도 사람이다 보니 우등생 쪽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연 씨, 너무 잘하시네요. 안 아프세요?”

“네. 평소에 스트레칭으로 자주 하는 동작이라서 이 정도는 쉬워요.”

유연함 그 자체였다.

어렵게 첫 번째 난관을 돌파한 멤버들을 향해 차예은은 두 번째 시련을 내려줬다.

“다음은 소위 ‘고양이 자세’라고 불리는 동작인데요. 엎드린 채로 다리를 모으고, 엉덩이만 뒤로 쭉 빼주세요. 허리는 최대한 내려주시면서 등하고 엉덩이 라인이 S자를 그리게 해주세요. 몸 곡선이 예쁘게 나와야 해요.”

그래도 두 번째 동작은 첫 번째 동작에 비해서 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일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다.

여전히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이연이 가장 두각을 보였다.

“다들 이연 씨 봐주세요. 저 동작 그대로 하시면 돼요.”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된 것처럼, 이연은 상체를 숙이고서 엉덩이를 들어 올린 동작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비아가 작게 혼잣말을 흘렸다.

“저 언니 요염한 거 봐. 고양이가 아니라 여우네, 여우. 사람을 아주 홀리게 만들어.”

대놓고 말을 못 할 뿐이지, 스태프들도 비아와 같은 생각이었다.

* * *

필라테스 지옥을 넘어서.

그것보다 더 심한 지옥이 그녀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헬스 트레이너 이영석입니다.”

나시 티 사이로 보이는 팔뚝 근육에 멤버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팔로 그냥 누르는 것도 아플 텐데.

근육이 뭉친 부분만 골라서 자극하면, 얼마나 아플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영석은 잔뜩 겁에 질린 하니엘 멤버들을 보면서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안 아프게 해드릴 테니까요.”

“그거, 차예은 선생님한테도 이미 한번 들었던 말인데요.”

“맞아요. 이젠 안 속아요.”

하니엘 멤버들은 어느새 똘똘 뭉쳐서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펼쳤다.

그녀들의 모습에 이영석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면, 더 아프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

“…….”

“…….”

귀여운 반항은 몇 초도 안 돼서 단숨에 제압되었다.

가장 먼저 연장자인 우미가 나섰다.

이영석은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손으로 우미의 왼쪽 허벅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쪽이 다리 근육이 가장 뭉치기 쉬운 곳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를 살짝 눌러주면…….”

“아야야야야! 서, 선생님!”

우미가 두 손으로 매트를 탕탕! 두드리면서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우미가 저렇게 격한 표현을 하는 것은 멤버들도 처음 봤다.

그러나 이영석은 게스트들의 이런 반응을 여러 번 봐온 모양인지 침착하게 말했다.

“다음은 종아리 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꾹 들어가는 부분을 누르면, 이렇게…….”

“아아아아아악!!!”

기다렸다는 듯이 우미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우미 씨, 리액션이 상당히 좋으시네요.”

“지, 진짜로 아파서 그래요!”

“조금만 참으세요. 이렇게 해야 뭉친 근육을 확실하게 풀 수 있으니까요.”

우미의 뒤를 이어서 이번에는 나름 운동 좀 했다고 자부하는 리샤의 차례가 다가왔다.

리샤는 필라테스 단계에서도 이연의 뒤를 이어서 차예은한테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은 멤버이기도 했다.

“리샤 님의 경우에는 폼 롤러를 이용해서 골반 쪽을 자극해 볼 건데요. 롤러를 밑에 깔아주고, 위아래로 살짝 움직여 보세요.”

“으헉……!”

아이돌답지 않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리샤조차도 이영석 앞에서는 GG를 쳐야 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격파를 당해갈 때.

하니엘의 마지막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이연이 나섰다.

모든 멤버들의 기대가 이연에게 쏠렸다.

“연이 언니는 괜찮을 거야.”

“맞아. 필라테스 받을 때에도 멀쩡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자기 관리가 확실한 사람이 바로 이연이었다.

리더를 향한 굳은 믿음과 함께, 이연이 요가 매트 위에 엎드려 누웠다.

이영석이 우미가 고통스러워했던 허벅지 부근을 꾹 눌렀다.

그럼에도 이연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이영석조차 놀랄 정도였다.

“이연 님은 평상시에도 스트레칭 같은 걸 자주 하시나 보네요.”

“네. 피곤해도 늘 아침저녁으로 하는 편이에요.”

“좋은 자세네요.”

종아리도 무사통과였다.

아파하는 장면들은 다른 멤버들이 워낙 많이 뽑아줬으니까.

한 명 정도는 이렇게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아 보이긴 했다.

이영석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연은 무사히 통과시켜 주려고 했었다.

“마지막으로 날개 쪽만 자극 한번 해보고 다음 분 모셔볼게요.”

“네.”

이영석은 이쪽이 사람들이 가장 덜 아파하는 구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눌렀는데.

“아읏……!”

이연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한 야릇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지켜보는 멤버들도, 그리고 이영석도. 모두가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가장 당황한 사람은 바로 이연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본인도 놀란 모양인지 커다란 눈을 여러 차례 깜빡였다.

이영석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괜찮으신 거 맞죠?”

“예? 네! 괘, 괜찮아요.”

설마 본인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을 줄이야.

‘조심해야겠어.’

여자의 몸에 많이 적응했다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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