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제53화. 컴백(3)
오후 3시 정각에 맞춰서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동시 시청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걸 그룹의 컴백 무대라서 그런지, 기자들 역시 팬들 못지않은 취재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악이 깔리면서 유권성이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다.
“하니엘의 컴백 쇼케이스 무대 진행을 맡게 된 유권성, 인사드리겠습니다!”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깊숙하게 숙이면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가 나름 많은 무대에 서봤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긴장된 적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코미디 무대에 설 때에도 이렇게까지 심장이 쿵쿵 뛴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자들의 입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MC 경력을 쌓아온 그답게, 분위기 띄우는 역할을 확실하게 도맡았다.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진행할까요? 하니엘 여러분들을 모시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유권성의 부탁에 따라 쇼케이스를 보러 온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그녀들을 맞이했다.
리더인 이연을 필두로 한 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카메라 앞에 선 하니엘 멤버들.
이연이 신호를 주자, 멤버들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천사, 하니엘입니다!”
이 인사말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리움마저 느껴지는 인사말에 멤버들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어색함을 느꼈다.
표정만 봐도 그녀들이 현재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유권성이 나섰다.
“두 번째 앨범으로 다시 팬분들한테 인사드리게 되었는데. 그동안 무대가 많이 그립진 않았나요?”
“엄청 그리웠어요!”
“빨리 데뷔 때처럼 언니들하고 다 같이 서서 노래하고, 안무도 펼치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팬들의 관심과 환호.
가수들은 여기에 중독되고, 그리고 매료된다.
하니엘 멤버들도 그렇다.
무대를 펼치기 전에 우선은 자리에 앉아 가벼운 앨범 소개와 함께 프리 토킹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이번에 작업한 두 번째 앨범에 대해 이연 씨가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이런 건 대부분 리더의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연은 멤버들 중에서 가장 먼저 마이크를 집어 드는 일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번 앨범은 팬 여러분들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서 준비했습니다. 운동회 종목과 연관되어 있는 노래들도 많고요. 타이틀곡 제목도 Tug of war, 줄다리기로 지어봤어요.”
“그래서 무대의상도 치어리딩 느낌이 나도록 디자인하신 거군요.”
“네, 맞아요.”
SSS에서 이미 치어리딩 미션을 통해 비슷한 콘셉트를 소화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치어리딩 미션 때에는 비아 씨가 센터를 섰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나요?”
“네. 맞아요. 선배님,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하니엘 광팬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하니엘 팬분들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을걸요? 저기 채팅창 보세요. 다들 그렇다고 하잖아요.”
유권성의 말을 증명하듯,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글자가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올라가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그러면 이번에도 비아 씨가 센터에 서는 건가요?”
비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 그룹의 센터는 역시 이연 언니죠.”
모든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비아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무대 만나보시고, 그다음에 토크를 이어나가도록 할까요.”
“네!”
마침내 공개되는 두 번째 타이틀곡의 정체.
스태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서 의자를 치웠다.
유권성도 그녀들이 편하게 무대를 펼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
리허설 때처럼 멤버들이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많이 긴장해서일까. 서로의 심호흡이 들릴 정도였다.
노래가 흘러나오기 전에 이연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있어. 긴장하지 말고 해보자.”
이연 덕분에 멤버들은 다시 한번 용기를 얻었다.
귀에 때려 박히는 드럼 소리가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일곱 명의 멤버들이 살짝 숙였던 고개를 동시에 추켜올렸다.
단체 군무에서는 한 명만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유독 티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돌들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했다.
그 성과를 오늘, 팬들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
선봉에 선 이연을 따라 멤버들도 각자 맡은 파트를 소화하면서 그간의 노력을 무대 위에 모두 펼쳤다.
메인 보컬 파트이자 가장 중요한 후렴구를 맡은 이연이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내가 줄을 당기면
나에게 와줄래.
Come this way.
그 선을 넘으면
오늘부터 넌 내 거야.
이연의 귀여운 도발이 이어졌다.
채팅창의 반응은 프리 토킹 때보다 더 열띤 모습을 보여줬다.
중간에 렉이 걸릴 정도였다.
기술적인 문제는 스태프들에게 맡겨두고.
이연과 멤버들은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집중했다.
무대가 거의 막바지로 향할 때.
멤버들이 다 같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 명씩 짝을 지어 두 명이 머리 위로 크게 하트를 그렸다.
하니엘은 멤버 숫자가 짝수가 아닌 홀수다 보니 한 명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센터에 선 이연 혼자서 양팔을 이용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야 했다.
멤버들이 선보이는 애교 섞인 엔딩 포즈에 사람들은 또 한 번 열광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좀처럼 보기 힘든 이연의 애교 행동은 희소가치가 매우 높았다.
환생한 지 얼마 안 된 이연이었더라면 이런 동작을 마지막으로 하자고 말이 나왔을 때부터 결사반대를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된 이후로 이런 것들에 많이 적응한 모양인지 이제는 약간의 어색함 빼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큰 사건 없이 무사히 무대를 마무리 지은 멤버들.
객석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오른쪽, 왼쪽, 그리고 가운데. 세 번씩 나눠서 인사를 건넸다.
무대로 다시 복귀한 유권성 역시 엄지를 계속 추켜올리면서 여운이 남는 표정으로 짧은 소감을 전했다.
“저도 오늘 처음 들어보는 건데, 노래 정말 좋네요! 상큼하고, 발랄하고. 특히 이연 씨의 하트가 가장 인상에 남더라고요.”
이연은 억지 미소와 함께 좋게 봐주셔서 고맙다는 대답을 남겼다.
처음에는 약간의 반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있긴 했었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멤버들과 같이 무대를 마치고 나니까 뿌듯함이 밀려왔다.
* * *
하니엘의 컴백 시기에 맞춰서 걸파이트 시즌 2도 첫 방송을 타게 되었다.
몇 달 동안 펼치게 될 4세대 걸 그룹의 최강자를 가리는 무대.
그래서인지 첫 회부터 관계자들의 예상을 아늑히 뛰어넘은 시청률이 기록되었다.
벌써부터 대박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아이비제이의 첫 유닛인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데뷔와 MAYO, 기타 걸파이트 시즌 2 참가 팀들의 컴백까지 잡혀 있으니.
프로그램을 향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한동안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컴백 쇼케이스 무대를 가지기 이전에 촬영했던 영상들도 하나둘씩 공개되기 시작했다.
데뷔 앨범 활동 때에는 SSS 촬영을 마치고 거의 바로 앨범 준비에 들어가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두 번째 앨범은 여유롭게 기간을 가지고 준비한 덕분에 멤버들은 한결 편안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한가한 정도까진 아니었다.
오늘도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방송국을 들락날락했다.
오전에는 이연, 그리고 시우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의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하기로 했다.
배우 장유하가 그녀들을 헤드셋을 끼고 있는 그녀들을 맞이했다.
“오늘의 게스트죠. 대세 걸 그룹, 하니엘 여러분들을 모셔봤습니다!”
“안녕하세요, 하니엘입니다!”
장유하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멤버들을 보면서 예쁘고 귀여운 딸들을 바라보는 엄마 미소를 지었다.
“어쩜 작년보다 더 예뻐지신 거 같아요. 다들 귀엽고. 부럽다.”
“선배님도 충분히 예쁘고 귀여우신걸요.”
“어머머, 이제 귀엽다는 말 들을 나이가 아니에요.”
그래도 내심 기분은 좋은 모양인지 장유하의 입가에서 미소 꽃이 시들지 않았다.
예쁘다는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권이연을 제외하고 말이다.
“청취자분들도 아마 아실 거예요. 저하고 이연 씨하고 그리고 시우 씨하고. 공통점이 하나 있다는 거요.”
장유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취자들은 그녀가 말한 공통점의 정체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맞혔다.
멤버들도 작게 물개 박수를 치면서 청취자들의 추리력이 놀라움을 드러냈다.
장유하가 이연과 시우, 두 멤버들을 보면서 멘트를 이어나갔다.
“‘근무 중 이상 무’ 여군 특집 때 저희가 함께 훈련받았었잖아요. 맞죠?”
“네, 선배님. 그때 선배님을 처음 뵈었죠.”
“이렇게 후배들이랑 같이 고생하고 나니까 뭐랄까. 전우애? 그런 게 진짜로 생기더라고요. 실제로 촬영 끝나고 우리끼리 단톡방 만들었잖아요.”
“맞아요.”
촬영이 막 끝났을 때야 서로 톡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비교적 많이 조용해진 편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연과 시우가 두 번째 앨범으로 컴백한 일을 계기로 다시 톡방이 시끌벅적해졌다.
“그러고 보니까 올해 모이자고 말하고서 정작 한 번도 안 모였네.”
“저하고 시우가 준비해서 추진해 볼게요, 선배님.”
“어머, 그래?”
“네. 저도 선배님들 다시 뵙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채미하고는 최근까지도 같이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연락도 자주 해요.”
“채미가 원더존 소속이지? 요즘 걸파이트 시즌 2, 반응이 장난 아니던데.”
첫 방송부터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관련 영상 조회수 상승세도 가히 폭발적이다.
여기에 연관 검색으로 하니엘까지 뜨고 있었다.
걸파이트 시즌 2에 참가하는 그룹들 중에서 하니엘이 가장 많은 수혜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화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어?”
“1라운드 마지막 미션까지 다 끝났어요. 이번 달 말 분량까지라고 보시면 돼요.”
“결과는 당연히 말 못 하겠지?”
“네. 방송을 통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우리 그룹이 1등이라고 당당히 자랑하고 싶었다.
입이 매우 근질거렸지만, 스포일러를 해버리면 여러모로 문제가 생기니까.
그래서 이연과 멤버들은 프로그램에 관해선 입을 꾹 닫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청취자 여러분들한테 이연 씨가 인사 한 말씀 해주실까요?”
“네. 저희 두 번째 앨범,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청취자 여러분들 가정이 두루 평안하시기를 바라고, 또…….”
“잠깐, 잠깐만요. 스톱. 너무 딱딱하잖아요. 보이는 라디오니까 카메라 보면서 좀 더 귀엽게. 알았지?”
“귀엽게…….”
한숨을 삼킨 이연은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면서 양손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목소리 톤도 두 단계 정도 업시켰다.
“자, 잘 부탁드려요. 저희 많이 사랑해 주시고요.”
근처에서 멤버들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이연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미션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