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제53화. 컴백(2)
이제 컴백까지 단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 코앞까지 다가온 컴백일에 멤버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역시나 이거였다.
“팬들이 우리 이번 앨범,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쉬는 시간에 비아가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언니들에게 물었다.
세상 모든 가수들이 다 한 번씩은 해봤을 그런 걱정이다.
비아처럼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 멤버들 대부분도 그녀와 같은 걱정거리를 품고 있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이연이 그런 멤버들을 향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답했다.
“괜찮아. 이번 곡들 다 잘 뽑혔어. 데뷔 앨범 때보다 이번이 더 반응이 좋을 거야. 내가 보장할 테니까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다시 연습 시작하자. 알았지?”
이연이 이렇게 말을 하니까 멤버들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 표정을 지었다.
하니엘의 안무 연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홍류현 실장은 작게 혀를 내둘렀다.
팀이 흔들릴 때마다 이연은 늘 이렇게 나서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덕분에 하니엘은 언제, 어느 때에 무대를 서더라도 안정적인 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연이가 물건이야, 물건.”
홍류현 실장의 혼잣말을 바로 근처에서 들은 박도수 매니저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연이 없으면, 아마 저희 그룹은 망했을지도 몰라요.”
“아니지. 연이가 없었으면, 애초에 하니엘이라는 그룹이 탄생하지도 않았을걸?”
“그렇겠네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SSS 시절, 다재다능 팀으로 시작해서 하니엘로 발전하기까지.
늘 이연이 중심이 되어 움직였다.
그러나 걸파이트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이연 못지않은 재능을 지닌 선배 아이돌들도 많아서인지. 이연은 아주 가끔 생각대로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혜원의 기량이 매섭다.
그럼에도 홍류현 실장은 하니엘이 보여주고 있는 지금의 흐름 자체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었다.
“솔직히 현재 걸 그룹 중에서 아이비제이, MAYO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팀이 몇이나 되겠어? 이 정도면 우리 애들이 진짜 대단한 거지.”
그것도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걸 그룹이.
업계 관계자들 대부분도 홍류현 실장과 같은 의견이었다.
“올해 바짝 활동해서, 이번에 상 한번 노려봤으면 좋겠네.”
“저번에는 데뷔 시기가 살짝 아쉬웠죠.”
“그러게.”
해가 넘어가려고 할 때쯤에 걸쳐서 데뷔를 한 탓에 연말에 펼쳐지는 가요대전 무대에 서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그러나 이번 연도는 다르다.
“상 한번 싹 쓸어 담고. 그러면서 올해는 하니엘의 해로 만들어보자고. 박 매니저도 힘들겠지만 고생 좀 해줘.”
“예, 걱정 마세요!”
박도수 매니저 또한 안무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멤버들만큼 의욕이라는 이름의 불꽃을 키웠다.
* * *
컴백 쇼케이스 무대를 직접 보기 위해서 하니엘 멤버들은 직접 현장을 찾았다.
지난 데뷔 쇼케이스 때보다도 훨씬 더 규모가 컸다.
“무대 크기도 그때보다 더 커진 거 아니에요?”
유키가 자신의 팔을 수평으로 쭉 뻗으면서 매니저에게 물었다.
“그렇지. 사실 그때도 웬만한 걸 그룹 데뷔 무대 기준보다 호화스럽긴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으니까.”
진행자 섭외도 돈을 많이 썼다.
이번 쇼케이스 진행은 LC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15년 차 코미디언, 유권성이 맡기로 했다.
원래는 이은솔에게 맡기기로 했었는데, 그의 갑작스러운 스케줄 사정으로 인해 급하게 MC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게 되었다.
유권성이 MC로 선정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같은 소속사라는 점, 그리고 그가 하니엘의 열혈팬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팬클럽에도 가입되어 있었고. 앨범이며 관련 굿즈며 죄다 집에 사서 한쪽에 진열해 놓을 정도였다.
그의 하니엘 사랑은 팬덤에서도 인정할 정도였다.
이런 애정이 결국 2번째 앨범 쇼케이스 진행자라는 영광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유권성이 진행을 맡을 거라는 말에 여솜이 궁금했던 것을 털어놓았다.
“근데 유권성 선배님, 저번에 라디오에 출연하셨을 때 그렇게 말하셨던데. 저희 행사 관련해서 진행 문의 들어오면, 자기는 출연료 안 받고도 할 수 있다고. 이번 것도 혹시…….”
박도수 매니저가 크게 웃었다.
“공짜로 부려먹을 수는 없지. 그래도 이 바닥에서 15년째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인데. 게다가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요즘 또 잘나가잖아?”
유권성은 8년에 가까운 무명 시절을 딛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 머릿속에 그저 뚱뚱한 코미디언이라는 인식만 남아 있었는데. 요즘은 화려한 입담에 재치, 그리고 베테랑 방송인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예능감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요즘 대세 코미디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니엘은 유권성과 같이 만나서 방송에 출연해 본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이번이 첫 만남이다.
“권성 씨, 잠깐 밖에서 통화하고 있다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봐.”
“네.”
쇼케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이렇게 미리 인사를 나눠두는 게 좋다.
당일에는 자기소개고 뭐고.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박도수 매니저가 말한 대로 유권성이 자신의 매니저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쇼케이스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들이 대화는 하니엘의 명랑한 소개 외침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일곱 명의 아이돌이 단체로 목소리를 높이니까 현장 전체가 울릴 정도였다.
하니엘과 처음으로 만난 유권성의 작은 눈이 급속도로 커졌다.
“우와……! 하니엘이잖아! 아, 안녕하세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저, 유권성이라고 합니다.”
“선배님을 저희가 왜 모르겠어요.”
“다 알고 있어요, 선배님.”
하니엘 멤버들이 애교 섞인 멘트에 유권성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른 유명한 걸 그룹들도 많이 있지만.
유권성에게는 하니엘이 제일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하니엘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
그게 옆에 있던 매니저 동생에게 자신의 볼을 가리켰다.
“내 얼굴 좀 꼬집어봐라. 이거, 꿈인지 아닌지 확인 좀 해보게.”
유권성의 매니저는 이런 거 사양하지 않는 성격이다.
살집이 두툼한 볼을 꼬집자, 유권성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덕분에 하니엘 멤버들은 웃음을 참아내느라 때아닌 고역을 치러야 했다.
선배님 앞인데, 웃을 수는 없으니까.
유권성은 그런 하니엘 멤버들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웃기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정말로 믿기지가 않아서 해본 거라서…… 아무튼 정말 영광입니다. 항상 앨범 잘 듣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좋은 노래 기대하겠습니다.”
“네, 선배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미있는 사람이 MC를 맡았다.
이연은 무대 뒤쪽으로 걸어가는 유권성을 보면서 자신의 전생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런 느낌의 개그 코드가 존재했었지.’
당시에도 관객을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래뿐만 아니라 연극, 그리고 코미디 등등.
같은 무대라 할지라도 누가 그곳에 오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각양각색의 매력이 살아 숨 쉬는 곳.
그래서 이연은 무대가 좋다.
* * *
컴백 쇼케이스 당일.
새벽에 일어난 멤버들은 샵에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에 출연하는 방송 스케줄보다 훨씬 중요한 날이니까.
그걸 알아서인지 샵 원장과 직원들도 오늘만큼은 대동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총동원해서 하니엘 멤버들을 꾸미기로 했다.
미용 관련 업계에서 최근에 돌기 시작한 말이 하나 있었다.
풀메이크업을 한 권이연은 무적이고 여신이다.
샵 원장은 이연의 미모를 보고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여태껏 수많은 걸 그룹 아이돌들의 메이크업을 맡아 왔던 터라 예쁜 사람에 대한 내성이 많이 쌓여 있을 줄 알았는데.
이연은 원장에게 또 다른 시련을 줄 정도였다.
“이연 씨 때문에 제가 더 정신이 혼미하네요.”
홀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원장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약간의 위기 아닌 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제시간 안에 샵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쳤다.
뒤이어 그녀들은 곧장 쇼케이스 현장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잠깐 방문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무대가 완벽한 모습을 갖춘 상태였다.
위와 아래에 달린 조명 장치들도 그렇고.
온갖 장비들이 무대에 올라설 하니엘을 촬영하기 위해서 수차례 점검 과정을 거쳤다.
열심히 준비한 무대인데. 중간에 장비 고장으로 인해 사고라도 발생하면 큰일이니까.
그래서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스태프들이 예민해진 상태라 그런지 가끔씩 고성이 들릴 때도 있었다.
대기실로 향하던 멤버들의 작은 어깨가 움찔했다.
“무섭다…….”
비아가 바짝 쫄은 듯한 표정으로 고성이 들린 방향을 향해 소극적인 시선을 던졌다.
반대로 이연은 평소와 똑같이 무덤덤한 얼굴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두 번째 앨범 활동을 알리는 첫 스타트 무대니까. 스태프분들도 신경이 많이 쓰이겠지.”
늘 처음이라는 건 긴장되고 힘들다.
그럼에도 이연은 오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잘 풀릴 거 같아.’
SSS 파이널 무대 때 받았던 그런 느낌과 얼추 비슷했다.
대기실로 향한 그녀들은 아주 간단하게나마 식사를 진행했다.
1시간이 넘어가는 쇼케이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먹어둬야 한다.
그래야 힘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어선 안 된다.
최공예 코디가 무대의상들을 가리켰다.
“허리 많이 조여야 하니까 적당히만 먹어. 특히 리샤.”
“괜찮아요, 언니. 저 아시잖아요. 먹어도 배 안 나오는 거.”
“아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무리 대비를 잘해도 사고를 완벽히 방지할 수는 없다.
그걸 잘 알기에 리샤도 이번에는 최공예의 말에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무대의상을 입은 이연이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폈다.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 Tug of war(줄다리기)라서 그런지, 의상도 운동회 느낌이 나도록 치어리더 복장 콘셉트로 꾸며져 있었다.
레드 톤의 프릴 스커트를 살짝 들어 보이면서 작게 한숨을 삼킨 이연.
‘속바지 입었으니까 뭐.’
이제는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시키기로 했다.
흰색 부츠를 신고 가볍게 몸을 움직여봤다.
최공예가 그런 이연을 보면서 물었다.
“연아. 어때? 불편하진 않지?”
“네. 편하고 좋아요.”
보기에는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의상이었는데. 막상 입어보니까 의외로 착용감이 나쁘지 않다.
이거 말고도 여러 벌의 무대의상이 존재한다.
나중에 가요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한 벌씩 차차 입어볼 기회가 생길 것이다.
모든 멤버들이 전부 무대의상으로 다 갈아입었다.
리허설도 마치고.
이제 정말로 본 무대만 남은 상황이다.
“방송 10분 전입니다! 하니엘 멤버분들, 슬슬 준비해 주세요!”
“네!”
이전부터 그래왔듯이 멤버들은 손을 모아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맨 먼저 대기실을 나선 이연이 멤버들과 함께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 스테이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