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85화 (185/299)

185화

제51화. 연애 상담(4)

자신이 잘못 기억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연은 재차 유혜영이 보내준 남자의 사진을 확인했다.

틀림없다.

유혜영과 최근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자랑했던 그 남자가 확실하다.

남자는 옆에 있는 여성과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로 사람들과 함께 이연 쪽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연은 팬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남자의 옆에 서 있던 여성이 이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

“저, 하니엘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두 분은 오늘 데이트 나오신 건가요?”

데이트라는 말에 남자와 여자의 표정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젊은 커플들한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달달함 그 자체였다.

이연도 많은 주변에서 나름 많은 커플들을 봐왔기 때문에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대답은 남성 쪽이 먼저 꺼냈다.

“예. 데이트 중입니다.”

확신에 가득 찬 말이었다.

여성이 팔꿈치로 남자를 쿡쿡 찌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최대치로 드러내고 있었다.

남자가 ‘뭐 어때’라고 말을 하면서 애정이 가득 담긴 미소로 여자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어느 시대든, 양다리 걸치기 좋아하는 사람은 꼭 있네.’

여기에 자신의 유일한 중학교 동창생이 엮여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이연은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두 분은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하셨나요?”

나름 티비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해 봐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이연의 말투는 진행자가 멘트를 소화하는 것과 비슷해졌다.

두 사람이 같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오빠가 작년 10월에 나한테 고백했었지?”

“그게 벌써 그렇게 됐나? 시간 엄청 빠르네.”

사귄 지도 꽤 된다.

남자가 굉장히 괘씸했지만, 이연은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했다.

“두 분 다 잘 어울리시네요. 좋으시겠어요.”

두 사람이야 좋겠지.

다른 한 사람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굉장히 암울한 기분이 될 것이다.

여성이 들뜬 얼굴로 이연에게 작은 부탁을 했다.

“괜찮으시다면 사진 부탁드려도 될까요?”

팬들에게 흔히 받는 사진 요청이었다.

이연은 다시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네. 언제든지요.”

“감사합니다! 오빠도, 빨리!”

이연이 다정하게 서로 붙어 있는 여성과 남성 앞에 살짝 무릎을 구부리면서 위치를 잡았다.

여성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이연은 추가로 자신의 폰을 꺼내며 말했다.

“제 걸로도 한 번 더 찍어도 되죠?”

“네, 당연하죠!”

이연은 일부러 두 사람에게 추가 포즈를 요청했다.

“커플이시니까 좀 더 다정하게 포즈 취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요?”

서로가 서로의 볼에 얼굴을 맞댔다.

그러면서 각자의 손으로 하나의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이연은 그들의 모습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아주 보기 좋네요.”

찰칵.

사진을 찍은 뒤에 이연은 미련 없이 그들을 보내줬다.

이연은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콜라, 팝콘 셔틀이 된 권민준을 기다렸다.

저 멀리 권민준이 양손 가득 콜라와 팝콘을 가져오는 게 보였다.

시간에 딱 맞춰서 온 권민준을 보면서 이연은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행동을 취했다.

슬쩍 손을 뻗으면서 권민준과 팔짱을 꼈다.

그러자 권민준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야!”

“남녀가 이렇게 다니면, 너는 그 두 사람을 뭐라고 생각할 거 같냐.”

“무조건 커플이겠지. 그보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토할 거 같으니까 좀 떨어져.”

몸서리를 치는 권민준과 달리, 이연은 남매와 같은 포즈로 서 있던 아까 그 커플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 둘이 이연에게 서로 사귀는 사이라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알아낸 걸 유혜영에게 말해줘야 하나, 아니면 말아야 하나.

기분 좋게 영화를 보러 나왔다가 고민거리를 하나 안고 가게 되었다.

* * *

오랜 고민 끝에 이연은 유혜영에게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먼저 연락을 취했다.

소중한 친구가 카사노바한테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연이 영화관에서 어떤 것을 보고 왔는지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 유혜영은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설렘이 가득한 표정을 드러냈다.

먼저 카페에 와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던 이연이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네.”

“응. 아까 오빠가 나 먹으라고 커피하고 케이크 교환권 보내줬거든. 내가 좋아하는 카페 거 메뉴 딱 골라서 주는 거 보고 오빠가 내 마음을 정말 잘 안다는 게 느껴져서. 그래서 기분이 좋아.”

달콤한 말과 행동으로 여심을 사로잡는 게 카사노바의 특징이다.

만약에 이연에게 그런 남자가 붙는다 할지라도 그녀는 절대로 넘어가진 않을 거다.

애초에 여자가 아니니까.

그러나 유혜영은 아직 남자 친구 한번 제대로 사귀어보지 못한 풋풋한 여대생이다.

그렇다 보니 경험 많은 선배의 농간에 마음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대한 말을 꺼내기 전에 이연은 먼저 유혜영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 선배가 그렇게 좋아?”

“응. 이번에도 같이 영화 보러 가지고 내가 먼저 제안해 보려고.”

“무슨 영화?”

“얼마 전에 개봉한 거 있잖아. ‘다이빙 러브’ 말이야. 이거, 평가가 괜찮다고 해서. 오빠가 나보다 먼저 영화 보고 왔다고 하기 전에 얼른 연락해 보려고.”

스마트폰으로 바람둥이한테 바로 톡을 보내려고 하는 유혜영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이연이 짧고 굵은 말을 흘렸다.

“이미 봤을걸.”

“봤다고? 오빠가?”

“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엊그제 영화관에서 마주쳤거든.”

유혜영이 당황하는 사이, 이연은 그녀를 보자고 했던 목적부터 먼저 말해주기로 했다.

“그 선배라는 사람, 이미 여자 친구 있어.”

유혜영은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미 임지가 있는 몸이라고 하면 누구든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거,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여자 친구하고 그 영화 보러 왔다가 나한테 딱 걸렸어. 이게 그 증거야.”

혹시 몰라서 이연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신까지. 셋이서 함께 찍은 셀카 사진을 유혜영에게 직접 보여줬다.

유혜영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 여자…… 오빠가 분명 친누나라고 했는데…….”

“친남매라면 이렇게까지 다정하게 있지 않지. 내 남동생은 내가 팔짱을 끼는 것만으로도 몸서리를 치는데.”

“호, 혹시 연이, 네가 오해했다거나…….”

“보통 남매끼리 ‘고백했다’라는 말은 안 쓰잖아.”

“…….”

이연은 자기가 확보한 증거는 다 보여줬다.

이제 남은 건.

“네가 결정해야 해.”

친구를 믿고 이 현실을 받아들일지, 말지.

그건 온전히 유혜영의 몫이다.

“……그 사진, 나한테 보내줄 수 있어?”

“알았어. 바로 보내줄게.”

이연은 유혜영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혜영은 이연에게 받은 사진을 수차례 보더니, 이내 그 선배라는 사람에게 직접 물었다.

지난번에 친누나라고 말했던 그 여자, 사실 오빠의 여자 친구였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혜영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 자리를 뜬 유혜영을 기다리면서 이연은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지난번에 유혜영이 일하던 가게에 갔을 때처럼 마법을 사용하면 그녀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연은 일부러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유혜영이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카페로 돌아온 유혜영은 이연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연아……!”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이연의 품에 와락 안겼다.

가슴에 얼굴을 묻은 유혜영이 소리를 삼키면서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는 유혜영의 이런 행동에 당황했던 이연이지만, 이내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기 시작했다.

옷이 친구의 눈물로 얼룩지는 게 뭐 대수일까.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니까. 그런 사소한 건 뒤로 미루기로 했다.

* * *

며칠이 지나고.

이연은 걸파이트 1라운드 마지막 미션 내용이 공개되는 녹화를 소화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자리를 잡았다.

촬영이 시작되기에 앞서, 최공예 코디가 급하게 이연을 찾았다.

“연아!”

“네, 언니.”

“잠깐만. 너한테 전화 왔는데.”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이연은 잠시 스튜디오 밖으로 나와서 최공예 코디가 가지고 온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유혜영한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연아, 미안해. 한창 바쁠 텐데.

“아니야, 괜찮아. 왜?”

-저번에 네가 알려준 그 X끼 소식 때문에.

어느새 ‘오빠’에서 ‘그 X끼’가 되어 있었다.

하기야. 먼저 수작을 부리다가 걸린 건 그쪽이니까. 욕을 먹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서로 앞으로 그냥 얼굴 안 보기로 했어.

“잘했어.”

결국은 이런 엔딩이 나오게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참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그 X끼’가 되어버렸지만, 당시에는 유혜영이 정말로 좋아했던 오빠였으니까.

첫 사랑이 아프게 끝난 거 같아서 이연은 그게 좀 신경이 쓰였다.

“나중에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날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마.”

-고마워. 그래도 내가 친구는 정말 잘 둔 거 같아. 너 없었으면 난 아직도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있었겠지?

“나중에 네 손으로 그 꿈을 현실로 만들면 돼. 사랑이라는 건 언제든 다른 형태로 찾아올 수 있으니까.”

-……와. 방금 그 말, 엄청 멋있었어.

“그래?”

친구가 기운을 차린 게 느껴져서 이연은 조금이나마 안심이 됐다.

나중에 또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약속을 잡은 후, 이연은 스마트폰을 다시 코디에게 돌려줬다.

자리로 돌아온 이연은 다시 녹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하니엘 멤버들이 데뷔 무대를 가지기 전에 치르는 마지막 걸파이트 시즌 2 경연의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그만큼 매우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민주린이 오프닝 멘트를 끝내고, 각 그룹들에게 돌아가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근황을 물었다.

“먼저 지난 경연에서 1위를 차지했던 팀부터 들어볼까요?”

MAYO의 미랑이 마이크를 들면서 말했다.

“컴백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보낸 거 같아요. 아마 다들 그러실 거예요.”

선배든 후배든. 미랑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니엘 역시 컴백 이야기로 비슷한 근황을 전했다.

모든 팀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토크를 마쳤다.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1라운드 마지막 미션 공개만을 앞뒀다.

“대망의 1라운드, 그 정체를 여러분들에게 공개하겠습니다!”

민주린의 신호와 함께 스튜디오 전면에 크게 설치되어 있는 대형 화면이 바뀌었다.

[체인지 미션]

또 의미 모를 미션 타이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연은 예전부터 이런 방식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밑에 설명도 좀 같이 적어주지.’

물론 민주린이 곧바로 설명을 해줄 테지만, 그래도 이연 입장에선 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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