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80화 (180/299)

180화

제50화. 파트너 미션(2)

무대 순서를 정하고 다시 각 팀의 대기실로 돌아오게 된 이연과 미랑.

그사이, 스튜디오에는 또 다른 녹화가 진행 중이었다.

리샤가 이연을 향해 손짓했다.

“연아. 일로 와서 봐봐. 저기 저분들, 익숙하지 않아?”

민주린이 걸파이트 시즌 2 파트너 미션 촬영을 알리는 멘트를 읊는 동안, 카메라가 이번 미션의 평가를 맡을 특별 평가단의 모습을 슬쩍 비췄다.

대기실 화면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밝혀진 평가단의 숫자는 총 다섯.

그중에 두 명은 이연도 익히 아는 얼굴들이었다.

한 명은 히트곡 제조기라 불리는 오용하 프로듀서.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민주린보다도 더 오랫동안 활동했던 여성 솔로 가수, 전이은.

두 사람 다 SSS 전문가 평가 미션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익숙하게 보였던 거다.

“오 프로듀서님은 오디션 프로그램 여기저기에 자주 얼굴 비치시는 분이니까. 여기에 나오실 줄 알았어.”

전이은은 평가하는 자리에 앉은 게 SSS 이후로 오랜만이었지만, 그래도 이연은 두 사람의 평가에 나름 만족하는 편이었다.

지난 SSS 녹화 때에도 그랬지만, 두 사람이 보는 눈이 정확하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편파적인 평가는 없을 거라고 안심할 수 있는 명단이었다.

실력 대 실력의 대결.

그래서 이연은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곧이어 민주린이 첫 번째 무대를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파트너 미션, 대망의 첫 타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나와주세요!

단체 의상을 예쁘게 갖춘 샤이걸스와 가을소녀가 민주린의 소개에 따라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화면을 지켜보던 여솜과 오린이 동시에 손을 모았다.

“어머, 예쁘다!”

“펄 들어간 거 봐. 반짝반짝거리고. 너무 좋네.”

“근데 샤이걸스 선배님들이 저렇게 의상을 화려하게 입으신 거, 저는 이번에 처음 봐요.”

“그치? 무대의상은 딱 보니까 가을소녀 쪽 의견이 많이 반영됐네.”

이연도 오린의 생각에 동의했다.

샤이걸스의 무대를 하나부터 열까지 빠지지 않고 완벽하게 챙겨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많이 봤다고 자부할 정도는 된다.

지금까지 샤이걸스가 올랐던 수많은 무대 중에서 저렇게까지 자신들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적은 없었다.

반면, 가을소녀는 멤버들의 숫자가 가장 많은 그룹이다 보니 의상도 바짝 힘을 주는 편이었다.

의상이라도 화려해야 12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블라인드 미션 때도 그렇고. 샤이걸스 팀이 의외로 고집이 많이 센 편은 아닌가 보네.’

자신들의 팀 컬러를 버린 적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심지어 무대의상 콘셉트도 가을소녀 쪽을 따라줬다.

나중에 또 파트너 미션처럼 두 팀이 협업해서 무대를 꾸미는 때가 온다면, 이연은 샤이걸스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물론 파트너 미션을 또 수행하라고 할 것 같진 않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미리 염두에 두는 것도 괜찮은 방식이다.

민주린이 먼저 선배 그룹인 가을소녀 쪽으로 마이크를 기울였다.

-두 그룹이 같이 팀을 짜서 무대를 준비한 게 이번이 처음이시잖아요.

-네, 맞아요.

-준비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초영 씨가 가을소녀 팀을 대표로 말씀해 주실래요?

고개를 끄덕인 초영이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들의 연습 과정이 어땠는지를 말했다.

-분위기 너무 좋았어요. 우리 샤이걸스 후배님들이 열심히 도와준 덕분이에요. 그리고 사실 저희 둘이 서로 데뷔한 이후에도 많이 접점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서로 친해지는 계기가 된 거 같아서 행복했어요.

-샤이걸스도 동의하시나요?

그녀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저게 그 유명한 선배의 압이라는 건가?’

물론 실제로 분위기가 좋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여럿 모이면 의견 충돌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이돌의 삶을 살아온 그녀들이 하루아침에 한 팀으로 뭉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MAYO와 하니엘도 사소한 충돌은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아이돌인 이상, 카메라 앞에서는 늘 밝고, 착하고. 이런 모습들만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을소녀는 아이돌로서 참 정석적인 그룹이다.

아이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가을소녀와, 현존하는 4세대 그룹 중 가장 독보적인 칼라를 지니고 있다는 샤이걸스의 만남.

이연은 미랑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곧바로 조명이 꺼지고.

잠시 후에 스포트라이트 한 줄기가 가을소녀의 리더, 초영을 비췄다.

무대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빠른 분석을 마칠 수 있었다.

미랑도 마찬가지였다.

“저쪽 팀은 아예 가을소녀 중심으로 가기로 했나 보네.”

“아무래도 가을소녀 선배님들이 대중들한테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요.”

블라인드 미션 당시에 민주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걸파이트는 각 참가 그룹의 출발선상이 다르다고.

SSS와 가장 큰 차별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반인들이 아닌 전문 평가단이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이니까 대중적인 인지도는 크게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심사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대중들의 입장을 아예 고려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평가한다 할지라도 가을소녀 중심으로 가는 편이 좋다.

지금 하고 있는 장르만 봐도 그렇다.

일렉트로닉 팝. 가을소녀의 주 종목 중 하나다.

그녀들의 1집 앨범, 그리고 세 번째 싱글 타이틀곡도 일렉트로닉팝 장르였다.

반대로 발라드나 조용한 노래를 좋아하는 샤이걸스의 주 장르라 보긴 어렵다.

그렇다 보니 가을소녀 멤버들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을소녀 선배님들이 많이 양보했네요.”

의상 콘셉트도 그렇고. 곡 장르도 그렇고. 이연과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랑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양보…… 글쎄. 나는 오히려 샤이걸스가 아주 전략적으로 접근했다고 보는데. 경연 방식에서 발라드는 아무래도 많이 불리하니까.”

가창력을 뽐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르지만,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댄스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걸파이트는 걸 그룹 아이돌들 간의 대전이다.

이연은 샤이걸스가 왜 가을소녀를 지명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알면 알수록 탐나는 그룹이야.’

무대는 점점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엔딩 포즈 역시 가을소녀를 중심으로 마무리되었다.

대기실에서 박수가 터졌다.

누가 어느 정도의 분량을 가지고 갔는지, 이런 걸 따지기 이전에 무대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연도 두 팀의 무대를 보면서 여러 차례 감탄사를 흘릴 정도였다.

SSS 때와 비교하면 경쟁하는 팀들의 수준이 아예 다르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기야. 데뷔를 꿈꾸는 자들과 현역들의 차이인데. 당연한 말이다.

민주린이 다시 무대로 등장하면서 심사 위원들의 평가를 물었다.

-퀄리티 높은 한 편의 짧은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안무라든지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첫 무대라서 긴장을 많이 하셨을 텐데, 너무 잘 봤어요. 개인적으로 두 그룹한테 정말 잘했다고 박수 보내주고 싶어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이연도 평가단 위치에 앉아 있었다면, 비슷한 소감을 말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상당히 훌륭한 무대였다.

샤이걸스, 가을소녀 팀이 선보인 공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바로 두 번째 팀, 이어서 만나보시겠습니다!

전초전은 끝났고.

이제 하니엘과 MAYO에게 있어서 최종보스라 할 수 있는 그룹이 속한 팀이 모습을 나타냈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그리고 CDP.

그녀들이 당당한 걸음걸이를 선보이면서 무대에 올랐다.

* * *

여러모로 기대를 한 몸에 모으는 그룹이었기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비아의 경우에는 화장실 가고 싶어 하는 것까지 꾹 참아내면서 자리를 지킬 정도였다.

-두 그룹,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민주린의 말에 따라 혜원이 먼저 신호를 줬다.

-둘, 셋.

-안녕하세요! 저희는 I.C.입니다!

두 그룹의 합동 소개 멘트를 듣던 리샤가 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 방금 선배님들이 ‘아이, 씨……’ 하면서 욕하신 줄 알았어.”

사실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이연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만큼 발음에 유의해야 하는 팀 명이었다.

I.C.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떻게 이런 팀명을 짓게 되었는지 이연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I’하고 CDP의 ‘C’에서 알파벳 하나씩 따왔나 보네요.”

이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이크를 쥔 I.C의 팀장, 혜원이 팀명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저희 그룹의 약자를 하나씩 따서 지었습니다.

-네. 딱 봐도 그럴 거 같았어요.

민주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연과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어차피 팀명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메인은 역시 무대다.

무대를 접한 순간, 이연은 눈을 의심했다.

옆에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우미가 혼잣말을 흘렸다.

“왜 센터 포지션에…… 리브 선배님이 서 계신 거지?”

CDP의 센터이자 리더, 리브가 I.C의 무대 센터까지 꿰찬 거였다.

10명 중 9명은 아마 I.C 팀의 센터를 혜원이 맡을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이연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혜원은 그녀에게 센터 자리를 양보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센터 못지않게 주목받을 수 있는 포지션인 메인보컬 자리 역시 CDP 멤버에게 양보했다.

전문 평가단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대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미랑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톱 끝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이연은 미랑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선배님들은 이번 무대에서 전력이 노출되는 걸 방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셨네요.”

어차피 블라인드 미션에서 1위를 차지했으니까.

그녀들은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에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거다.

일부러 CDP 멤버들을 주축으로 내세우면서, 자신들은 최대한 뒤로 숨은 채로 임하겠다는 작전.

1라운드 마지막 그룹 미션을 위해 이번에는 힘을 아껴두겠다는 뜻이었다.

CDP 입장에서도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이러한 전략은 딱히 손해 볼 게 없었다.

그 대단한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먼저 CDP에게 센터와 메인보컬을 양보하겠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만큼 자신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다.

서로가 얻어가는 게 있다. 결국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의도대로 딱딱 들어맞은 셈이었다.

미랑의 바로 뒤에 찰싹 붙은 아야가 모니터 쪽으로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선배님들, 완전 여우들이시네. 여우들이셔.”

미랑이 아야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내가 보기엔 여우는 아닌데.”

“그럼?”

“호랑이 그 자체야.”

언제, 어느 타이밍에 무대를 씹어 먹을지 모르는 맹수들.

손톱 깨물기를 겨우 멈췄던 미랑이 다시 손가락 끝을 입 근처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