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77화 (177/299)

177화

제49화. 선배와 후배(2)

아야가 메인보컬 파트를 맡는 게 좋아 보인다.

먼저 이렇게 말을 한 이연의 반응에 가장 크게 놀란 사람들은 바로 하니엘 멤버들이었다.

왜냐하면 SSS 촬영 당시에 보여줬던 이연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연은 원하는 바가 있으면 다른 연습생들과 경쟁하고, 즉석으로 대결을 펼치면서라도 그것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 움직였었다.

주요 파트를 두고 진절혜와 즉석으로 오디션 대결을 벌였던 장면은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SSS 명장면 중 하나로 회자될 정도였다.

그랬던 이연이 양보라니.

상대가 아이비제이 다음으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대선배님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물론 이연은 단순히 선후배 관계 때문에 아야에게 양보를 한 게 아니었다.

미랑은 이연에게 숨겨진 속내에 대해 물었다.

“양보하려는 이유가 뭔지 알려줄래?”

“아야 선배님 목소리가 ‘이별이라 말하지 마’라는 노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미랑 선배님께서 말씀하셨던 체력 문제의 경우에는 저희가 안무를 약간 각색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니까요.”

메인보컬이 후렴구를 부를 때, 목소리를 내기 편한 동작으로 수정하면 된다.

ENB의 노래를 고르긴 했지만, 반드시 그녀들과 노래며 안무까지 똑같이 소화해야 한다는 룰은 이번 파트너 미션에선 없었다.

이번에 서로 같은 팀을 맺게 된 두 그룹들의 입맛에 어울리게, 알아서 노래와 안무를 재해석하면 된다.

댄스곡이었던 것을 발라드로 바꿔도 되고.

이런 식으로 장르의 전환마저 허용하겠다고 미리 고지했는데, 약간의 안무 수정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듣고 보니 이연의 말이 맞는 모양인지 미랑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이연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편, 아야는 설마 이연이 자신과의 경쟁이 아닌 양보, 화합을 택할 줄은 몰랐던 모양인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재능 넘치는 후배와의 대결을 앞두고 각오까지 굳혀뒀는데.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쉽게 끝나 버렸다.

아야와 동갑내기인 예지가 이연에게 확인 차원에서 재차 물었다.

“정말로 그냥 아야에게 메보 파트 넘길 거야?”

“그냥은 아니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보다 아야 선배님이 주요 파트를 잘 소화하실 수 있을 거라고 봐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현재 아야의 마음속에서 이 파트너 미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의 싹이 조금씩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자기가 주장한 게 아무것도 채택되지 않아서 그러는 거겠지.’

파트너 미션의 핵심은 두 팀이 마치 한 그룹처럼 융합되어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미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중간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면 안 된다.

현재까지는 이 불협화음의 주체가 아야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였다.

미랑이 아무리 선배이자 최연장자로서 두 팀의 의견을 조율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 할지라도.

‘채찍질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달랠 수 없어.’

당근이라는 요소도 같이 적절하게 들어가야 한다.

이연이 그 역할을 자처한 셈이었다.

실제로 이연이 자신을 두둔하고 나설 거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 못 했었는지, 회의 내내 굳어 있기만 했던 아야의 시선이 멍하니 이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도도한 선배님께서 이제 마음이 좀 풀리셨나.’

후배가 토라진 선배의 마음까지 달래줘야 하고.

파트너 미션. 참 어려운 임무다.

* * *

안무 회의까지 모두 끝내고 두 그룹들이 처음으로 연습실에서 합을 맞춰보기로 했다.

안무 연습은 미랑의 주도하에서 이루어졌다.

“연이가 키가 크니까 좀 더 앞으로 나오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반걸음만 살짝…… 응. 지금이 딱 좋아.”

안무 연습을 하면서 이연은 MAYO가 왜 아이비제이와 같이 4세대 최고의 인기 걸 그룹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깨닫게 되었다.

연습을 할 때 그 어떤 그룹보다도 디테일하고 진지하게 임한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설렁설렁하게 연습에 임하는 경우가 없었다.

“원, 투, 쓰리, 포. 오린이하고 비아, 둘이 흩어지는 타이밍이 0.5초 정도 느려. 비아가 더 빨리 움직여야 해. 알겠지?”

“네, 선배님!”

“좋아. 그리고 리샤. 방금 좋았는데, 표정에 너무 자신감이 없어. 자기 파트가 아니라고 입꼬리를 쉬게 하지 마. 항상 웃어. 무대에 올라가면 언제 어디서 카메라가 너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머릿속에 늘 염두에 둬야 해.”

“죄송합니다, 선배님.”

“죄송할 건 없고. 앞으로 바꿔가면 되는 거니까 조금만 더 신경 써줘.”

프로 마인드가 넘쳐나는 피드백이었다.

이연도 하니엘 멤버들 사이에서 굉장히 엄격하게 연습을 주도하는 리더로 소문이 자자한데. 미랑도 그녀에 못지않을 정도로 빡셌다.

그래도 하니엘은 이미 이연이라는 예방주사를 맞은 덕분인지 미랑의 이런 스타일에 곧잘 따라오는 모습을 보였다.

미랑도 하니엘 멤버들의 이런 점을 높게 샀다.

“오케이. 한 번만 풀로 안무 맞춰보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자. 매니저님, 노래 틀어주세요.”

박도수와 함께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던 MAYO의 매니저가 알겠다고 수신호를 보냈다.

아직은 레코딩 작업이 끝나지 않았기에 ENB의 원곡을 위주로 안무 연습을 풀어나가는 중이었다.

노래에 맞춰서 11명의 걸 그룹 연합이 각자 자신의 포지션에 맞게 안무를 소화했다.

이연이 아야에게 메인보컬 자리를 양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아예 비중 없는 포지션으로 빠지게 된 건 아니었다.

이연에게는 보컬 실력뿐만 아니라 하나 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비주얼이다.

마침 ENB에는 걸 그룹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비주얼계의 절대 강자가 있었다.

나린이라는 이름의 멤버였다.

ENB 그룹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도 나린은 배우, 모델 활동을 겸하면서 여전히 연예계의 대표 비주얼로 불리고 있었다.

ENB는 이런 나린의 비주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그녀가 한순간이라도 무대에서 돋보일 수 있는 안무 대열을 타이틀곡 무대에 꼭 포함시켰을 정도였다.

나린의 이 역할을 이번에는 이연이 맡게 되었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었다.

아야도 나린의 자리에는 이연이 가야 한다는 말에 군말 없이 동의했었다.

그렇게 한 차례 안무를 맞춰본 두 팀은 미랑의 말대로 잠깐 숨 돌릴 틈을 가지기로 했다.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복도로 향하는 이연의 뒤를 미랑이 따랐다.

“잠깐 나하고 이야기 좀 할래?”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마지막 문장은 일부러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뻥긋거리면서 이연에게 알렸다.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했다는 듯이 ‘네, 선배님’이라 답했다.

미랑과 함께 화장실로 이동한 이연은 그녀가 왜 자신을 따로 보자고 했는지부터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네가 메인보컬 맡았으면 했는데.”

그래서 미랑은 일부러 이연을 밀어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연이 먼저 굴러들어온 기회를 차버릴 줄은 몰랐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야 선배님이라면 충분히 잘하실 수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그리고 무대마다 반드시 메인보컬만 주인공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연이 보기엔 ‘이별이라 말하지 마’의 주인공은 메인보컬이 아니라 나린 포지션을 맡을 멤버다.

즉, 이연 본인이다.

MAYO에서는 아야가 메인보컬과 함께 비주얼도 담당하고 있다, 네 명의 멤버 모두가 다 예쁘지만, 그중에서도 아야는 피팅 모델 출신이었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아야를 먼저 메인보컬로 빼버렸으니까. 이연은 눈치 볼 것 없이 바로 나린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가 전부 계산된 행동이었다.

여기에는 미랑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다.

이연이 미랑에게 내건 두 번째 조건 때문이었다.

무대를 꾸밀 때 MAYO, 하니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분량을 나눠 가질 것.

어떻게 본다면 첫 번째 조건과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뭐가?”

“제가 말씀드렸던 조건들을 잘 이행해 주셔서요.”

“뭐…… 네가 조건으로 걸지 않았어도 내가 먼저 그러자고 말했을 거야. 나도 후배니까 선배한테 다 양보해야 한다는 건 죽어도 싫거든.”

그럼에도 미랑은 이연이 마지막으로 내걸었던 ‘세 번째 조건’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세 번째 조건 말이야. 진짜로 꼭 그렇게 해야 돼?”

“네.”

“타협의 여지조차 없는 거야?”

“네.”

“정말로?”

“네.”

“…….”

이연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그럼에도 미랑은 아쉬움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얻어가는 게 있으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생기게 마련이니까.

“알았어. 내가 애들 잘 설득해 볼게. 그쪽은 네가 말할 거지?”

“그래야죠.”

“서로 멤버들이 잘 이해해 줬으면 좋겠네.”

“그렇게 만들 겁니다. 반드시.”

이연의 표정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의욕이 깃들어 있었다.

* * *

‘이별이라 말하지 마’를 하니엘, MAYO 버전으로 새롭게 녹음하기 위해 두 그룹은 오늘, 렛플이 아닌 LC 엔터테인먼트로 모이게 되었다.

프로듀싱을 진세혁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녹음실을 방문한 MAYO 멤버들이 진세혁 프로듀서를 보자마자 격한 반가움을 드러냈다.

“찐 프로님!”

“안녕하세요! 이게 얼마 만이에요?”

MAYO한테서도 찐 프로라는 별명으로 불리자, 오히려 하니엘 멤버들이 놀랐다.

“원래부터 선배님들하고 친하셨어요?”

“어. MAYO 애들한테 내가 예전에 곡 몇 개 작업해서 준 적 있었거든.”

찐 프로가 입을 열기 전에 이연이 먼저 그 몇 개의 곡 중 하나를 언급했다.

“‘P Time’도 프로듀서님이 작곡하셨던 거죠?”

“어, 맞아. 역시 연이가 잘 아네.”

MAYO의 대표 히트곡 중 하나가 방금 언급된 ‘P Time’이었다.

그 곡을 계기로 MAYO와 진세혁 프로듀서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두 그룹 다 같이 작업해 본 프로듀서라는 경력 덕분에 이번 파트너 미션에 진세혁 프로듀서가 선정되었다.

“자, 우선 파트별로 먼저 설명해 줄게.”

종이를 일일이 나눠준 진세혁은 가장 먼저 메인보컬 파트를 언급했다.

“연아. 내가 따로 표기해 둔 파트 있거든? 포인트 주고 싶은 곳들 위주로 표시해 둔 건데…….”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아야가 차가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진세혁의 말을 끊었다.

“찐 프로님. 이번 메인보컬, 제가 맡기로 했는데요.”

“엥? 진짜로? 나는 당연히 연이가 맡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찐 프로님은 저보다 이연이가 더 메보 파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맞긴 한데. 아니지! 네가 노래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고.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진세혁을 바라보는 아야의 시선이 매우 따갑다.

헛기침을 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억지로 지우려고 시도해 보는 진세혁이었지만.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야의 따가운 눈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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